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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데일리](2019.07.08)전범국가 북한 반인도범죄 피해자들의 마르지 않은 눈물
이름: 관리자
2019-07-08 17:39:07  |  조회: 31

[이슈포커스]-6.25전쟁 바로알기(中-북한군 만행)

전범국가 북한 반인도범죄 피해자들의 마르지 않은 눈물

“가족 간에 생이별은 치유되지 않는 상처…정부 무관심에 또 상처”



[특별취재팀=임현범 팀장, 문용균·나광국 기자]북한에 의한 6·25 남침 전쟁의 총성이 멈춘 지 올해로 69년째를 맞이했다. 전쟁이 휴전 상태에 접어든지 반세기가 넘었지만 과거 북한에 사랑하는 가족을 빼앗긴 우리나라 납북피해 가족들은 여전히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해방 직후 북한은 신속하게 진행된 공산화 과정에서 공산주의 반대자들을 대거 숙청하고 북한 주민의 자유와 재산을 빼앗는 등 폭압적 방식으로 정권을 수립했다.   

 
북한은 6·25 기습남침을 통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적화시키기 위한 치밀한 사전계획 아래 대한민국 사회지도층, 지식인을 포함한 민간인 약 10만명을 강제로 납북시켰다. 전쟁상황에서 민간인을 폭력적 방법으로 납치한 행위는 명백한 전쟁범죄와 반인도범죄에 해당된다. 하지만 북한은 전쟁범죄 행위를 철저히 부인하고 은폐함으로써 현재까지도 책임을 회피해 오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을 대북정책의 주요 목표로 삼고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다양한 친북 정책을 펼치는 데 반해 북한의 반인륜적 범죄를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납북피해 가족들은 “북한이 전쟁 중 민간인을 납치한 범죄에 대해 시인하는 한편 피해자 범죄에 대해 법적 책임을 다하는 등 근본적인 해결 없는 남북관계 개선은 의미 없다는 사실을 정부가 인지해야한다”고 강조한다.
 
“6·25 납북자 문제 해결 없는 종전선언은 있을 수 없는 일”
 
“북한 내 부족한 지식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남조선에 있는 지식층을 데려와야 한다” 1946년 7월 31일 김일성은 이 같은 내용이 담긴 한 장의 담화문을 발표했다. 공산정권의 눈엣가시가 된 지주와 기독교인, 지식인들이 북한을 떠나 대거 월남하자 부족한 인재를 확보하고자 내린 지시였다.
 
북한군은 6·25전쟁 초기 서울을 점령한 뒤 3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전문 지식을 갖춘 지식인들을 납치해갔다. 이 시기 납치된 납북 피해자는 8만1821명으로 전체 9만5456명 중 85.7%에 달했다. 이미일(여·70) 6·25전쟁 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사장은 아버지가 잡혀간 1950년 9월 4일에 가족들의 시간은 멈춰있다고 말한다.

“당시 저는 너무 어려서 기억이 없지만 어머니께선 한평생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평안남도 덕천군 출신인 부친은 일본 와세다대에서 법철학을 공부한 지식인이었죠.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신 아버지는 유기공장을 운영하는 중소기업가가 되셨고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으셨죠. 당시 결혼 5년차였던 젊은 부부는 3명의 딸과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죠” 

“1950년 9월 4일 그날이 없었다면 그 행복은 지금도 유효했겠죠. 납치 당시 정치보위부에서 아버지의 출신지는 물론 북에 있을 때의 행적까지 모두 파악해 집으로 찾아왔어요. 무장한 북한군은 잠시 조사할 내용이 있다며 아버지를 데려갔고 그게 마지막 모습이었죠”

“한 순간에 남편을 잃은 어머니의 나이는 당시 28살에 불과했죠. 어머니께선 모든 걸 잃은 기분으로 매일 같이 시체가 쌓여있는 곳을 찾아가 아버지를 찾으셨다고 해요. 만약 아버지의 시체를 찾게 되면 그 자리에서 저희 자매들과 함께 동반 자살을 할 생각이었다고 하셨어요. 그 정도로 어머니의 삶은 절망 그 자체였죠”

1950년 9월 28일 한국군과 유엔군은 북한군에게 점령당했던 수도 서울 탈환에 성공했다. 같은 달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면서 그동안 열세에 있던 한국군과 유엔군의 전세가 역전되기에 이르렀고 이로써 서울탈환의 교두보가 확보됐다. 상륙작전의 선봉에 선 미국해병 제1사단과 한국군해병대는 18일 김포비행장을 탈환한 다음 행주나루터의 맞은편에서 한강을 건넜고 일부는 영등포와 여의도비행장 방면으로 진출했다.

한·미 연합군은 25일 오후부터 시가전에 돌입, 밤이 깊어가면서 점차 서울 중심부로 조여들기 시작했다. 26일을 고비로 북한군의 저항은 기가 꺾여 다음날 오전 6시 10분 한국군 해병대가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했고 28일 수도 서울은 90일 만에 완전 수복됐다. 다음날 정오 의사당에서 감격의 수도탈환식이 거행됐다. 

“한·미연합군이 서울을 탈환하면서 북한군은 다시 북쪽으로 밀려났어요. 북한군은 당시 서울에 있던 부상자들을 강원도로 이송했고 납북포로들은 북한으로 끌고 갔죠. 특히 북한군 부상자들은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더 이상 머무를 수 없자 청량리에서 기차를 타고 철원으로 이동했죠. 이 과정에서 서울대학교 간호학생들이 강제 동원됐다고 해요”

“당시 서울대학교 간호 학생이었던 박명자 할머니에 의하면 기차에는 북한군 부상자들로 가득했고 간호학생들은 학교에서 열차로 끌려가 이들을 간호했다고 해요. 그 과정에서 북한군의 악행도 이어졌고요. 철원까지 향하는 열차에서 박 할머니는 두 번의 탈출을 시도하셨다고 말씀하셨죠”

“한번은 점심시간 열차가 멈추고 인근 가톨릭교회에서 신부와 수녀들이 식사를 제공했다고 해요. 박 할머니께선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에 식사 전 기도를 드렸고 이를 본 수녀들이 박 할머니가 납북되고 있음을 알고 탈출을 도왔다고 해요. 신부와 수녀들은 약속 시간과 장소를 알려준 뒤 박 할머니와 서울로 도망을 치려고 했지만 북한군에 적발되고 말았죠. 북한군은 박 할머니 앞에서 신부와 수녀들을 총으로 쏴 죽였다고 말씀하셨죠” 

“6·25전쟁 발발 초기 북한은 남한 체제를 해체·전복시키기 위해 10만 명에 달하는 지식인과 공무원들을 계획적으로 납치했어요. 납북자 문제는 단순한 인도적 문제가 아니라 전쟁 범죄에요. 정부에 납북자 문제의 정상회담 의제화를 줄기차게 촉구했지만 추후 남북적십자회담에서 논의하겠다는 답변만 받았어요‘

이 이사장은 정부와 정치권의 태도에 울분을 토해냈다. 정부가 북한의 ‘조직적 범죄’에 대해 제대로 말도 하지 못하는 것을 넘어 정치권까지 북한 눈치를 보는 행태가 도를 넘었다고 지적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도 인도적 차원에서 해결해준다고 했지만 결국 해결하지 못했죠. 현 정부도 또다시 인도적 문제로만 취급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영영 희망은 없어요. 전쟁납북자 피해가족들은 단순히 가족을 잃은 게 아니라 삶을 잃어버렸어요. 납북자 문제 해결 없이 종전선언이 이뤄진다면 납북자는 대한민국 역사에서 지워지는 사람들이 될 거에요” 

눈물짓거나 체념하거나…“남북화해에만 매몰돼 납북피해자 외면하는 문재인정부”

김지혜(80·여) 6.25전쟁 납북인사가족협의회 회원은 6·25전쟁이 발발하고 하루가 지난 1950년 6월 26일 아버지와 헤어졌다. 김 할머니의 아버지인 김점석 씨는 1940년부터 부산, 평양, 군산, 청진 등에서 검사로 재직하다 납북 직전인 1950년 당시에는 변호사로 활동했다.

“6·25남침 다음날인 26일 아버지께선 법원 동료 2명과 함께 부산으로 피신하셨어요. 당시 북한이 지식인을 모두 잡아갔기 때문이죠. 1950년 7월 8일 가족이 걱정되셨던 아버지는 집에 방문하셨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당시 국학 대학생인 동네 청년과 북한군이 집에 찾아와 아버지께서 잠시 조사를 받아야 한다며 데리고 가셨어요” 

“어머니께서 7월 11일 용산 경찰서로 찾아가셨을 땐 아버지는 정치보위부로 이미 이송되신 후였고 어머니가 정치보위부로 찾아갔지만 면회를 할 수 없었죠. 그 후 1951년 1·4후퇴로 가족이 어머니의 고향인 목포에 피난을 가 있을 당시 목포지청장이셨던 윤무선 검사로부터 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진 옷이 서대문 형무소에서 발견됐다는 사실을 들었어요” 

“시간이 지나 2012년 50년 만에 공개된 CIA문서엔 서울 지역에서 납북된 654명 명단이 있었고, 그곳엔 아버지의 성함이 있었어요. 지금은 어머니도 돌아가셨고 세 자매는 어느덧 나이 먹은 할머니가 됐지만 여전히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있어요. 화목했던 가정이 단 하루 만에 송두리째 망가져버렸죠. 하지만 납북자 문제가 점점 잊혀져가고 정부도 외면하면서 납북자 피해가족은 너무 답답한 마음이 뿐이죠” 

전쟁납북자 최광욱 씨의 장남 최창림(73·남) 6·25전쟁 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사는 3남 3녀의 장남으로 황해도 황주에서 태어났다. 황주는 평양에서 40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최 이사의 아버는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던 지역유지였다. 해방 전에는 경성매일신문을 운영하며 토건사업도 하는 기업가였다. 

“제 나이 13살이 되던 해 봄에 고향에서 온 가족이 추방당했어요. 추방명령은 ‘오늘 일몰 전에 살던 집에서 떠나라’는 내용이었죠. 이후 저희 가족은 남한으로 도망 왔고 8월 초쯤 아버지께서 정치보위부로 연행되셨죠. 수복 후 삼청공원과 화신백화점 지하, 종로경찰서 지하실에서 많은 반공인사를 학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족들이 찾아갔지만 아버지는 안계셨죠”

“당시 남한으로 내려온 가족은 북촌에서 거주하고 있었는데 골목마다 ‘여기는 막다른 골목입니다’라는 글씨가 붙어있었어요. 혹시라도 도망치는 사람들을 위해 써놓았죠. 한 번은 집에 숨어있는데 포승줄에 묶여 끌려가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보였어요. 폭행과 고문으로 걷지 못하는 사람이 나오면 포승줄을 풀어서 총으로 쏴 죽이고 나머지는 계속 이동시켰죠” 

“6·25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의 만행은 정말 끔찍했어요. 길을 걷다보면 시체 냄새가 코를 찔렀고 생이별을 통해 삶이 망가진 가족은 수 없이 많았죠. 저희 어머니는 아버님이 쓰시던 놋그릇에 매일 아침밥을 담아 아랫목에 묻고 식탁포로 덮어 놓으셨어요. 밤에는 대문을 열어놓으시며 그 집에서 홀로 지내시다가 몇 년 전 9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죠”

최 이사는 납북자 문제를 방관하는 정부의 태도를 질타하는 한편 납북자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호소했다. 

“남북 화해를 추진하는 정부에서는 납북자 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어요. 그동안 정부의 북한 방문 목적이 경제적 지원이었다면 납북자를 몇 명이라도 돌려받아야 하는데 북한이 잘못하고 죄를 지은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죠. 납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피해가족들의 목소리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온 국민들이 납북자에 대한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어요”


[나광국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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