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어느 곳에 계시는지

김미혜자

1950년 6월 25일 당시 다섯 살짜리 여자아이가 성장하면서 어머니로부터 들은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그때 우리 가족은 아버지 어머니와 8살 언니 5살 저와 2살이었던 여동생 그리고 우리 집에 와있던 친척대학생 두 사람과 우리 자매들을 돌보아 주던 언니를 합해서 모두 여덟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서울지검 부장검사로 재직하다가 나와서 변호사 개업한지 2년쯤 되었을 때였습니다. 지금은 그때의 우리 집 대문 오른쪽 기둥에 ‘변호사 김점석 법률사무소’라고 한자로 쓰인 간판이 붙은 사진을 보면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합니다. 6월 25일은 마침 일요일이라 아버지와 어머니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관람하고 있었습니다.

감자기 영화가 중단되고 불이 켜지면서 전쟁이 났다고 하면서 빨리 각자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저희 부모님이 용산구 남영동 43번지에 있는 집으로 돌아와 보니 길 건너있는 미군 부대에서 군인들을 가득 실은 트럭들이 연이어 어디론가 달려 사라지고 있어 평소와는 달리 매우 살벌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우선 우리 집에 와 있던 친척대학생 두 사람과 우리들을 돌보던 언니를 차비를 주어 고향인 목표로 내려보내고 사태를 살피고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버지는 법원에 들렀다가 당시 내무부 치안국장이셨던 이호 전 법무부 장관과 당시 부장검사이시던 장재갑 전 서울지검장을 만났더니 그들은 이미 지프차를 준비하고 있다가 아버지를 끌어 차에 태우면서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가족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왔기 때문에 남영동 우리 집 부근 큰길에 차를 세워놓고 집에 들러 떠난다고 얘기하고 오겠다고 10분만 기다리라고 하고 집으로 왔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어린 세 딸과 위궤양으로 목으로 피까지 넘어오는 어머니를 보고는 차마 그들을 두고 떠날 수가 없어 머뭇거리다가 떠나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가족 걱정은 하지 말고 기다리는 친구들과 빨리 떠나라고 재촉했으나 아버지는 끝내 걸음을 옮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아버지와 우리 가족들의 운명을 바꾸어 놓을 줄을 그때는 누구도 상상조차 못했습니다.

나중에 1951년 1.4후퇴 이후 우리 가족이 부산에 피란 가 있다가 어머니가 장재갑 검사를 만났더니 당시 큰길에서 30분 이상 기다리다가 너무 급해서 할 수 없이 자기들만 빠져나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북으로 납치되어 갔다는 말을 듣고는 그때 그놈을 멱살이라도 잡아끌고 왔어야 했는데 몹시 후회스럽다고 하면서 눈시울을 붉히더라고 했습니다.

6월27일인가 우리 가족들은 일단 피란을 가기위해 돈이 될 수 있는 옷감들과 약간의 쌀 들을 챙겨 배낭을 꾸려 지고 걸어서 한강다리를 건너 노량진 어머니 후배 집으로 갔으나 그 집에도 이미 다른 사람들이 도착해 있어 머물기가 곤란할 뿐 아니라 마침 이승만 대통령께서 서울을 사수한다는 방송을 해서 만약을 위해서 배낭을 일단 노량진 집에 두고 남영동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이미 대전으로 옮겨가서 그렇게 방송했던 것입니다. 아버지는 그 날 늦게 노량진에 두고 왔던 배낭을 가지고 오다가 한강다리가 폭파되는 바람에 미끄러져 한강 모래사장에 떨어졌으나 다행히 무사히 새벽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음 날 아버지 혼자라도 피란 가라는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피난 가겠다고 배를 구해 한강을 건너갔다가 역시 가족 걱정 때문에 다시 배를 타고 돌아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결국 아버지는 서울 탈출기회를 놓치고 집에 있을 수가 없어서 친척 이모 댁으로 가서 피신해서 있는데 아무래도 그 집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낌새가 이상해서 불안해서 견디지 못하고 또 가족들도 궁금하여 1주일 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 앞에 도착했을 때 평소에도 잘 알고 지내던 당시 대학생인 마을 여관집 아들이 붉은 완장을 차고 인민군과 함께 기다리고 있다가 아버지에게 용산 경찰서(당시내무서)로 가자고 했습니다. 잠깐 간단한 조사만 받고 오면 된다면서 자기가 책임을 지고 돌려보내겠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알리고 가겠다고 하고 집에 들어와 어머니에게 잠시 다녀온다고 하면서도 무슨 예감이 들었는지 어쩌면…….하고 뒷말을 잇지 못하고 불안한 모습으로 집을 나섰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당시 집에 피신해 있던 어머니의 친척동생과 함께 용산경찰서까지 따라갔는데 아버지는 경찰서 앞에서 뒤 한번 돌아보고 들어간 것이 마지막 이었습니다. 손짓한번 하지 못하고 뒤돌아보던 아버지의 그 모습이 어머니의 눈 속에 각인되어 지워지지 않는 아버지의 마지막 영상이 될 줄을 그 당시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결국 저의 아버지는 그때 운명의 담장 위를 위태롭게 걷고 있다가 그 담장의 북쪽으로 떨어진 것이지요. 이처럼 아버지는 무슨 사상이나 이념의 포로도 아니고 다만 자기 가족에 대한 애착과 유별난 선량한 남편이요 세 딸의 아버지였을 뿐인데… 경찰서를 지키고 있던 인민군들이 아버지가 조사를 끝나면 곧 돌아갈 거라면서 집에 가서 기다리라고 했으나 그날 돌아오지 못했고 다음날 어머니가 다시 용산경찰서를 찾아갔으나 조사 중이란 말만하고 면회도 안 시켰고, 또 그 다음날 갔더니 역시 조사 중이라고 하면서 나이 좀 듬직한 인민군 한사람이 아버지는 못나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7월 11일인가 아침에 남영동 우리 집 주변을 여러 명의 인민군들이 서서 지키고 있는 것을 보고 용산경찰서에 갔더니 당시 도서관(지금 명동 롯데백화점자리)이었던 서울시 정치보위부로 갔다고 해서 그리로 찾아갔으나 접근도 못하게 해서 돌아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어머니는 어린 저희들을 집에 두고 연일 아버지를 찾아 헤맸으나 결국 아버지의 그림자도 보지 못했습니다.

며칠 후 용산경찰서 인민군들이 와서 반동분자 집이라면서 여기 저기 딱지를 붙여 손도 못 대게 하고 집에 있던 돈과 쌀 돈 될 만한 물건들은 모두 가져갔으며 원효로의 조폐공사 공장 폭격으로 잠시 집을 비운사이에 사무실 집기며 모든 살림을 쓸어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9월 28일 서울 수복 후에 장후영 변호사(후에 대한 변협회장역임)의 연락을 받고 어머니가 만났는데 자기는 정치보위부에서 조사받고 나왔으나 아버지는 부장검사까지 지냈고 또 1950년 5월 30일 즉 5.30 2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던 것 등이 문제가 되었던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몸이 불편한 어머니와 어린 딸들을 몹시 걱정하더라고 전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1.4후퇴 후 부산을 거쳐 목포에 와 있을 때 당시 목포 지청장이던 윤무선 검사가 어머니께 1950년 9월 28일 서울 수복 후 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진 웃옷이 서대문 형무소(지금 독립문 역사박물관)에서 발견되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7월 8일 입고 가신 옷이 여름 신사복인데 당시에는 맞춤옷은 다 옷 안쪽에 이름을 새기던 시절이었습니다. 주인을 잃은 아버지의 옷이 무슨 사연을 품고 거기 남아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나마 그것이 우리 아버지에 대한 마지막 소식이었습니다.

목포는 어머니의 고향입니다. 1.4후퇴 후 우리 가족이 부산을 거쳐 목포에 가서 머물게 된 것도 목포에 친척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고향은 전남 무안군(지금은 신안군) 자은면 고장리입니다. 자은면은 목포 앞 바다에 있는 섬 자은도입니다.

어머니는 우리 어린 세 자매를 데리고 아버지의 고향 자은도를 찾은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어머니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인사 간다고 하였지만 나중에 내가 성장해서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견디기 어려울 때 아버지의 흔적이나마 더듬을 수 있을까 싶어 어린 딸들을 이끌고 아버지의 섬 자은도를 찾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찾은 아버지의 고향 자은면 고장리는 너무나 참혹한 사건이 휩쓸고 지나간 뒤 였습니다. 평화롭고 아름답기만 한 이 섬마을에 인민군이 들어와서 머슴 등 그들이 말하는 빈민들에게 붉은 완장 하나씩 나누어 주고는 그들을 충동질해서 잘사는 사람들을 사정없이 처단하도록 지시했습니다.

붉은 완장들은 떼 지어 다니며 수많은 사람들을 잡아다가 생사람을 가마니나 마대에 묶어 넣거나 맨몸에 돌을 묶어 바다에 빠뜨려 시체도 못 찾게 했습니다. 그 때 면장이던 저의 큰 아버지도 시신을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국군이 들어오자 붉은 완장들은 인민군을 따라 도망가고 미처 피신하지 못한 사람들은 가족들에게 붙잡혀 몽둥이에 맞아 죽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당시 이런 일이 우리 아버지의 고향에만 있었겠습니까? 도대체 사상은 무엇이고 이념은 무엇이며 공산주의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민족은 무엇이고 동족은 무엇입니까 그렇게 만행을 저질러 놓고도 지금에 와서 북한은 우리 민족끼리…….하고 떠들고 있는데 그럴 자격이나 있을 것입니까. 그리고 거기에 동조하는 세력들 도대체 그들은 누구입니까

어머니는 그 후 아버지의 고향 자은도를 다시 찾지 않았습니다.

저보다 세 살 위인 언니는 현재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언니를 포함한 회원들은 모두 그들의 부모 형제들이 생존 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린 지는 이미 오래 전입니다. 그들의 바람은 다만 납북 후에 어떻게 지냈는지 그것을 알고 싶은 일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평생 가슴에 맺혀있는 한을 조금이나마 풀고 싶은 간절한 심정들입니다.

몇 년 전 이산가족상봉을 위해 신청한 일이 있는데 그 때 북한적십자사로부터 전해진 한 줄짜리 답변서 ‘생사확인 불가능’이라는 지극히 허술하고 무책임한 답변서 한 장으로 이 땅에서의 아버지의 역사는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큰 아들의 시신도 못 찾고 법조계에서 출세 해 자랑스럽던 작은 아들은 북으로 끌려가 소식도 모르고 그래서 말문을 닫으셨던 아버지의 아버지, 매일 새벽 동네 우물의 첫 두레박의 물을 떠다놓고 자식을 위해 치성을 드리던 아버지의 어머니, 일본유학 시절부터 학비를 마련하며 후원했던 아버지의 형님도 그리고 아버지의 그 훌륭했던 친구분들 유인경, 이호, 장재갑, 이태희, 민복기, 김홍섭, 홍진기, 조재천, 장기영, 김갑수, 한봉세, 유무선… 우리사회의 한 시대를 움직였던 그 친구 분들도 다 떠나셨습니다.

지금은 어느 하늘아래 누워계시는지? 하늘 어느 곳에서 하늘로 가신 모든 분들을 만나고 계신지! 62년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아내와 세 딸들은 오늘도 참으로 착하고 바르게 살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