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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납북이야기]단 한 번 만이라도-이경숙
이름: 관리자
2013-09-24 12:05:04  |  조회: 3161
단 한 번 만이라도

이경숙

2010년 8월 21일 아침
“죽기 전에 아버지 한 번 봤으면…….”
“어머니 만날 수 있어요. 천당에서.” “아멘” 한 마디를 마지막으로 남기시고 다음날 94세를 일기로 어머니는 그렇게 가셨다.

6․25 전란으로 남편이 북한괴뢰군에게 납북 당한 후 꼭 60년이 되는 해 여름, 어머니는 떠나셨다 아버지가 1950년 음력 8월 초이틀 초승달마저 저버린 칠 흙 같은 밤에 끌려가신 후 60년 길고 긴 세월을 홀로 사시며 어머니께서는 아버지를 잊으신 적이 없으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어머니께서 고이 간직하고 계셨던 수첩 속에서 60여 년 전 아버지의 빛바랜 명암 판 사진 한 장, 아버지와 어머니가 두 살 쯤 되는 오빠를 데리고 찍은 귀퉁이가 헤어 닳아진 누런 사진, 그리고 이제는 60을 훌쩍 넘겨버린 세자식의 사진과 명함, 그리고 손자 손녀 사진이 들어있었다. 하나님을 영접하신 어머니는 늘 기도와 찬송이 넘치는 생활을 하셨는데 통성기도에서는 우리도 잊고 하기 어려운 남북통일을 기원하며 울먹이시면서 기도를 올리실 때면 우리들도 눈시울을 적신 적이 많았다.

어머니 아버지는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삼남매를(만7세, 3세, 1세) 낳아 이웃에서 부러움을 살 만큼 행복한 부부였다고 한다. 6‧25전쟁으로 모든 꿈은 산산이 부서지고 남편을 북에 납북당한 어머니는 너무나도 가슴이 미어지고 찢어지는 슬픔으로 하루하루를 견딘다는 것이 큰 아픔이었다. 어머니는 정신을 잃고 길에 스러져 사경을 헤매기도 하였다.
아버지를 잃은 어린 삼남매를 데리고 엄동설한의 추위 속에서 1‧4후퇴의 피난길을 떠나야만 했다. 피난길에서는 남편 잃은 슬픔도 모자라 그 소중한 7살 아들마저 잃어버리고 세 살 배기 딸을 새파랗게 얼어붙은 발을 동동 거리며 눈밭 길을 걸릴 수밖에 없었고 드디어는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그 딸을 살리려고 피난길에 갖고 나간 모든 재산을 써 버릴 수밖에 없었으며, 이제 갓 첫돌을 지낸 등에 업힌 작은딸 아이는 밤낮으로 허기져 울고 보채 사정사정하여 얻은 헛간의 잠자리마저 쫓겨나기 부지기수,
아들을 찾으려고 밤이면 종이에 얼굴을 그리고 낮엔 방을 붙이며 헤매고 또 헤매어 드디어 4개월 만에 찾은 어린 아들! 여자 혼자의 힘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없는 이 엄청난 고통으로 어린 세 자식을 부둥켜안고 전쟁의 아픔을 감내해야 했던 어머니!
그래도 어머니는 강했다. 남편 없이 세 자식을 잘 키우셨다. 우리 삼남매가 모두 중학에 합격할 때마나 동네 사람들은 무척 부러워했다. 6‧25휴전이 될 무렵 어머니는 청계천가에서 옷 장사를 시작했으나 여의치 않아 허름한 음식점을 차려 앞치마를 두르고 음식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이 보기 싫어 옆 가게 건너 책방에서 몸을 숨기고 빠끔히 어머니 모습을 훔쳐보곤 했다. 5학년 때는 어머니의 그런 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좀 철이 들었었나 보다. 어머니는 자식교육에 온갖 정성을 다하였다 오빠는 우수한 중학에 합격하여 중학 2학년까지 신학기면 시장에서 노트를 벌여 놓고 팔곤 했다. 나는 공부나 열심히 하지, 하면서 그런 모습도 싫어했다.

그러나 늦게 장사를 마치고 돌아오시는 어머니를 신작로 멀리 동생과 마중 나가 어머니를 기다렸다. 머리에 큰 함지박을 이고 오시는 모습은 멀리서도 잘 보였다. 달려가 함지박을 받아들고 누가 누가 더 효녀가 되는 듯 먼저 들겠다고 다투곤 했다. 우리가 하늘의 별을 세며 까만 하늘에 아버지 얼굴을 그려본 날이 몇 날 이었을까?

늦은 밤이면 어머니는 정화수를 떠서 장독대에 올려놓으시고 아버지가 돌아오시길 빌며 치성을 다 하셨다. 바람결에라도 스쳐가는 남편의 음성을 듣고 싶어 “보길 아버지…….”하고 부르시는 소리에 우리는 아버지가 오신 줄 알고 뛰어 나간 적도 있었다. 그리고 늘 점쟁이 집을 찾아 다니셨고 그때마다 한 가닥 희망을 갖고 사셨다. 점쟁이들은 “이제 몇 달 안에 오신다. 한 밤중에 오실 것이다.” 어머니가 점쟁이 집에 갔다 오시는 날엔 우린 어머니 기분을 살피고 아버지가 오신다고 믿게 되었다. 우린 한밤중에 오신다는 말에 대문 빗장을 열어 놓고 댓돌에 앉아 아버지를 기다리곤 했다. 아버지가 오시면 공부 잘 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어머니 말씀에 공부도 열심히 했다.

세월은 유수 같아 어머니는 교회 발간지에 6‧25에 대한 글을 자주 기고하시고 우리 가정의 행복을 빼앗아 간 김정일을 저주하였다. 사랑과 온유를 몸소 보여 주시며 사랑을 실천 하셨지만 김일성은 용서하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매년 6‧25를 즈음해서는 손자 손녀가 다니는 학교에 가셔서 어린이들에게 6‧25 체험담을 들려주는 일을 큰 보람으로 여기시곤 했다.

어머니는 유난히 꽃을 좋아하셨다.
봄이 되면 잎도 없이 분홍빛을 하늘거리는 진달래, 여름이면 따가운 가시에 연분홍으로 탐스럽게 피는 장미, 가을이면 피었다가 꽃잎이 낱낱이 떨어지는 국화, 겨울이면 반질반질 두꺼운 잎이 좀처럼 꽃잎을 열기 어려운 동백.
나는 어머니께 이 꽃들을 좋아하시는 이류를 물은 적은 없다. 하지만 어머니 평생 큰 딸인 나와 함께 사시면서 나는 그 까닭을 저절로 알게 되었다. 봄이 되면 신혼의 추억이 깃든 진달래꽃이 많았던 덕수궁을 자주 찾으셨고, 여름이면 마당 가득 탐스런 장미를 손수 돌보시며 아름다워야 할 중년의 세월을 홀로 삼남매를 잘 키우기 위해 어떤 유혹도 뿌리치시고 가시를 돋으며 사라야 했던 시절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 가을이면 늘 국화 화분을 사다가 정화수 대신 현관, 대문, 장독대에 죽 늘어놓으시곤 했다. 동백화분은 유일하게 집안에서 꽃을 피우길 기다리곤 하셨다. 반질 하게 잎을 닦으시며 “저 동백은 너희 아버지 오기보다 더 어렵게 핀다.”하셨다. 어머니 맘속엔 언제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맴돌고 기다림이 애타게 사무쳐 있었다.

어머니는 돌아기시기 며칠 전에도 먼저 세상을 떠나셨을 지도 모를(생존 시 아버지 95세) 아버지 건강을 걱정하며 60년 전 납북되어 가실 때 도망쳐 오라고 긴바지를 잘라 밤새 반바지로 만들어 청운학교 운동장에 이틀간 수용되어 있던 아버지에게 운동장 담을 타고 전해드렸던 그 짧은 바지 때문에 추웠을 거라고 아버지 걱정을 하시던 어머니, 그러나 그 때 그 생생했던 기억으로 눈가에 맺히는 눈물 눈물…….눈물을 주르륵 흘리시는 우리 어머니 !!!!!!

이제는 그리움과 안타까움 속에 다시 만나 남편과 부둥켜안고 통곡 할 수도 없고 든든하고 미더운 남편의 따뜻한 품에 안겨 온기마저 느낄 수 없이 60년의 기다림으로 떠나가신 어머니, “아버지는 꼭 살아 돌아오실 거란다” 하시는 믿음으로 60년을 참아 오신 어머니, 지금은 분명히 그 사랑하던 아버지를 만나셨을 것 같다. 저기 천국에서 천년만년 해로하시길 빌어본다.

이제 반세기 하고도 10년의 세월은 너무나도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6‧25가 할퀴고 간 이 큰 상처는 아물지도 않았는데 잊혀 가고 있다. 전교조 세력의 지속적인 편향 교육으로 남한이 북침했다고 거짓말을 일삼는 젊은이들 그리고 좌파 세력들, 북한위협에 대한 과소평가, 이 시각에도 미사일을 쏘아 올리며 핵실험도 마다않는 김일성의 후손 김정일, 김정은 또 이들과 함께 천둥벌거숭이가 되어 날뛰는 대한민국의 시대착오적 좌파 ‧ 종북 철딱서니들에게 이 절절히 애달프고 피맺힌 사연도 거짓으로 들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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