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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납북이야기]생각하면 할수록 보고 싶은 큰오빠-황종순
이름: 관리자
2013-09-24 12:09:16  |  조회: 3693
생각하면 할수록 보고 싶은 큰오빠

황종순

제 고향이자 오빠의 고향 충북 보은군 회남면 법수리 25번지입니다.
뒷동산엔 진달래꽃, 할미꽃이 유난히도 많이 피었고, 옆에 산에서는 철따라 우는 소쩍새, 뻐꾸기……. 그리고 지금까지도 내 마음속에서 이상한 소리로 울던 새……. 기집 죽고 그렇게 울던 그 새……. 앞에는 금강이 유유히 흘렀고 여름철엔 미역 감는 어린 소년 소녀가 물속에서 개구리 수영하며 놀던 내 고향 그곳……. 그곳에 엄청난 슬픔을 안은 비극이 벌어졌었다는 것을……. 시간과 세월은 무심히만 흘러갔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쓰게 된 것은 우리 부모님의 한 서린 고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풀어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지금으로부터 62년 전에 일어난 일들을 어렴풋이 기억하며 부모님께서 당신 평생을 가슴앓이 하신 것을 제가 부모님을 대신하여 이글을 써봅니다.

우리 집은 아버지 황태봉, 어머니 안성예, 큰언니 황열, 둘째오빠 황중서, 셋째오빠 황완서, 넷째오빠 황전서 그리고 어머니 46세에 늦둥이로 태어난 막내 저 황종순.
무명 저고리에 단발 머리한 저를 항상 둘째 오빠는 목마를 태우고 큰집과 작은집을 오가며 일색이 왔습니다하고 저를 자랑했답니다. 그런 오빠를 볼 때마다 오빠를 퍽이나 따랐답니다.

그런 행복도 우리 집은 잠깐이었습니다. 6‧25전쟁이 터져 우리 어머니가 사남매를 데리고(당시 큰 언니는 출가했었습니다.) 진외가댁으로 피난을 갔답니다. 그때도 물론 중서 오빠가 저를 업고 우리 집에서 40리길 오지 마을로 들어갔답니다. 얼마나 배가 고파 제가 우는지 비행기가 폭격을 해도 중서오빠는 남에 참외 밭에 들어가 참외를 따 우는 저를 달랬답니다.
진외가에 도착하니 먹을 것도 없고 밤에 어머니가 나가 쑥을 뜯어 쑥 죽을 먹이니 얼마나 피곤하고 배가 부른지 우리 사남매는 죽은 듯이 잠에 취해 잤답니다. 그곳에서 일주일을 지내고 아버지 혼자 남아계신 회남면 내 고향 법수리로 돌아왔답니다. 아버지는 무사하셨고 집도 초가삼간 그 집이였습니다. 삼일 밤을 자고 잘 지냈답니다.
그런데 제가 좋아하던 중서오빠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렴풋이 손을 흔들며 눈물을 닦던 그 모습. 어린 내가 그 속을 이해할 줄 몰랐지요. 그때부터 어머니는 병석에 누우셨고 몸이 많이 부우셨으며 아버지께서 한약을 지어 오셔서 달여 드렸고 아버지는 젖을 먹는 저를 보시고 화를 내셨습니다. 하루아침 사이에 어머니는 식사를 못하시고 병석에서 누워계셨습니다.
제가 7세가 되었을 때 둘째 오빠한테 물어보았습니다. 사진 속 큰 오빠는 어디 갔냐고 그랬더니 오빠가 한숨을 쉬며 어머니한테 이런 말하면 안 돼 하면서 중서형은 빨갱이들이 큰오빠 등 뒤에 총을 겨누고 앞장서서 걸어가는 빨갱이 따라 가지 않으면 총으로 쏜다고 했답니다. 이것을 우리 둘째 오빠가 똑똑히 보고 들었답니다.
갈 때 큰 오빠가 잠깐만 작은 오빠를 보게 해달라고 하니 빨리 할 말을 하라고 해서 그때 큰오빠가 작은 오빠에게 한말이 부모님 내 대신 잘 모시고 어린 동생들 잘 보살피라고 하였답니다.
이 모습이 끝이고 이 모습이 끝이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우리 어머니는 아버지가 지어다 주신 한약 덕분에 병석에서 일어나셨는데 이번엔 아버지가 위장이 나빠지시고 폐가 나빠 병석에 누우셨습니다. 하지만 우리 아버지는 강하신 분이셨습니다. 병을 털고 일어 나셨습니다. 그리고는 제가 일곱 살 먹는 3월에 초등학교에 저는 입학을 하였고 오빠들은 중학교 졸업 후 취업을 하여 대전으로 다 나갔습니다. 우리 집은 세 식구가 살았지만 늘 부모님 가슴속에 가슴앓이를 앓고 계셔서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중서오빠가 집을 떠나기 전에 얻어다 심었다는 백일꽃. 백일을 핀다하며 백일홍 꽃이라면서요. 아버지 어머니는 싸리문 뒤에 큰 오빠 건강히 잘 자라 잘 살아있으라고 미루나무 두 그루를 심었는데 잘 자라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여름 장마가 비바람을 몰고 와 그 나무가 다 부러졌어요. 아버지는 아마 우리 중서가 잘못된 것 같다면서 중간이 부러진 그 나무를 보기 싫으시다 며 밑둥치를 베어 없애버렸어요. 그리고 눈물과 저에 가슴을 아프게 한 것은 이웃동네 죽은 처녀와 영혼결혼식을 시키던 그날 밤 소리 내지 못하고 여울 가에 둘러앉아 실컷 울은 기억이 생생이 납니다.
한평생을 가슴앓이하며 남몰래 우시던 우리 어머니 아버지…….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오빠를 보고 싶어 하시겠지요.
오빠는 살아 계십니다. 큰 언니(황열)가 미국 이민 가서 사시다 작년 12월 24일 돌아가셨고 언니가 살아있을 때 전해왔습니다. 큰 오빠가 살아있다는 것을. 통일부 장관님 이산가족 찾기를 재개해 주시고 이런 글을 드릴 수 있게 해주신 6‧25전쟁 납북인사가족협의회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졸필이지만 사실 그대로를 썼습니다. 보고 싶고 또 보고 싶은 우리 큰 오빠 이제 80세가 되었을 거예요. 닭띠래요.
오빠! 건강히 살아만 계세요. 언젠가는 꼭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오빠…….
고향을 꼭 오실 수 있게 될 거에요. 오늘이 어버이날인데 마음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싶습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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