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 소 문

노무현 대통령님,
정치하시기에 얼마나 힘이 드시겠습니까.
유례없이 청와대에서 이산가족과 납북자가족들에게 보내주신 위로의 편지를 잘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게 된 김 직자 씨의 딸 안 청자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소장에 기록되어 있아오며 그 외에도 6.25전쟁납북자 가족들이 연좌제 때문에 죽기까지 피해를 입은 것이 사실인 것은 익히 아실 것입니다.

6.25납북자 가족 중에는 민주화운동할 때 그 연좌제에 걸렸던 가족들도 있습니다. 저의 아들도 80년대에 시국관련하여 수배, 감옥살이를 했거니와 거기에서 연좌제를 당한 것입니다.
전경환 사무실 점거공범자들 중에 유독 납북자 안 호철의 외조카인 제 아들이 형량을 더 받은 것이었습니다. 아픈 지난 일이 되었다 해도 아직 그 출신 사람들이 사회에 발 딛기가 수월치 않은 것이 사실이 아니겠습니까.
이 사실이 문제가 아니라 현 정부가 6.25전쟁납북자 문제를 소홀히 하고 있으니까 민주화운동했던 사람들이나 현 정부가 잘 하기를 바라는 가족들이 이중으로 고통당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87년 당시 민주화실천가족협의회 구속학생 학부모 대표였습니다.
저는 존경하는 노무현 대통령님을 두 번 만난 적이 있습니다. 한번은 변호사로서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하여 애쓰시던 때였습니다. 그때 그 사무실에서 만난 대통령님 수하에서 일하는 청년들의 머릿털과 얼굴이 이천수의 그것들 같은 색깔이었습니다. 얼마나 햇볕에 그을리고 먼지 뒤집어쓰며 죽는지 사는지 모르고 활동하였으면 머릿털까지 색이 바랬을까 놀라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비애국자 같았습니다. 그때 대통령님께서는 물론 우리에게 큰 용기를 주셨댔지요.

또한번은 우리가족들이 민정당사 앞에서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다가 닭장차에 실려 분산되었었는데 다시 모여서 두 야당의 사무실에 나누어서 도움을 요청하러 갔었습니다.
기억나시는지요. 대통령님은 당시 국회의원이셨고 그 많은 국회의원들이 우리를 본 척도 않고 지나쳐 가는데 바로 우리가 앉아있는 스치로플 깔판에 같이 앉으셨던 일. 거기에서 이태복 어머니의 등을 쓰다듬으시면서 위로를 하시고
“아직 멀었습니다. 저들은 한 손에 꿀단지를 들고 한손으로 어머니들을 돕겠다고 하니 잘 안 되는 것입니다. 아직 어머니들이 얼마나 눈물을 흘리셔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안타까워하며 말씀하셨는데 그때 이태복 어머님의 옆에 제가 앉아 있었습니다.

가족회원들의 적극적인 민주화운동 참여가 87년 전원석방 수배해제를 이룩해 놓았다고 기뻐할 번했습니다. 그러나 석방자들의 말은 아직도 감옥에 많은 장기수들이 있다는 거였습니다. 비전향장기수를 말함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때 면회투쟁을 하여 대전형무소에서 세 여인이 40여년만에 민간인으로서 처음으로 유한욱 할아버지를 면회했어요. 고문으로 반신불수된 몸, 그 분의 벌개지던 눈두덩을 아직 잊지 못하겠습니다. 그 비참함을 어찌...
활동하는 틈틈이 저는 납북되어간 우리 오빠도 이런 연속선상에서 자유를 찾거나 생사라도 알 수 있으려니 했던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6.15선언을 잘못해 놓고 그쪽의 장기수들만 넘겨 보내더니 이쪽에서 끌려간 수많은 6.25납북자와 가족들을 모르는 척하지 않았습니까. 저와 같이 활동했던 그때의 민주화가족들과 정부는, 계속 장기수들의 인권만 생각하고 그 인권운동가들이 북으로 가서 장기수들을 만나고 오게까지 (이 사실을 저는 우리 6.25납북자가족들에게 말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김대중 대통령님도 아직 존경합니다. 당의 대표일 때 우리를 만나주는 척 하고 나타나서 궁둥이를 의자에 대지도 않고 나가버릴 궁리만 하던 김영삼 그분과는 차이가 났었어요. 김대중 대통령님이 칠성판에 묶여 고문을 받았다면서 고문에는 하느님도 항복할 것이라던 말씀이 떠오릅니다. 지금 우리 가족들은 ‘빨갱이’로 색안시 당하던 시절에서는 벗어나 있습니다. 반면 저는 아직도 빨갱이로 보이지 않을까 근심하고 있어요. 민주화운동이 옳았다고 주장하니까 그렇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저와 같이 중간 틈에 끼인 6.25납북자 가족들도 많을 것입니다. 일제징용자 신고를 받듯이 우선 기존에 있는 6.25사변 피납치자명부등을 근간으로 6.25납북자 실태파악이라도 하도록 선처하시고 납북자로 인정하신 후, 북과 협상을 해나가시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시면 아직 살아계신 8,90대 노모들이 눈을 감으시기가 좀 편치 않겠습니까. 하루아침에 아버지, 아들 형님, 오빠들이 묶여가서 어찌되었는지 알지 못하고 눈을 감지 못할 6,70대 가족들의 원한을 어떻게 받으시겠습니까. 링컨 대통령이 한 소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나라의 큰일을 뒤로 미루었던 일화를 저는 알고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대통령님을 존경하고 염려하는 저 같은 사람들의 가슴에 그대로 존경하는 인물로 남아있지 않으시겠습니까. 최소한 납북자 가족들을 만나서나 언론으로라도 대한민국의 대통령 이름으로 이렇게 하겠다 하고 말씀해주시면 안 되시겠습니까. 안 되겠다고 하시면 저도 노모를 모시고 우리 가족회를 떠나 여생을 남모르는 곳에서 살가봅니다. 여전히 저는 대통령님이 정직한 분이라고 생각하며 얼마나 힘든 일이 앞에 놓여서 그 할 일을 포기하시는 걸까 해서요.

아직 살아계실 자연연령의 우리 오빠 같은 분들이 혹시 북에 살아 계시다면 이번의 우리 회 활동으로 해서 더한 불이익을 받지 않게 보장해 주실 수 있으면 해 주십시오. 못 하시겠으면 못 하시겠다고 먹혀들어가든 말든 말씀해 주십시오. 그리고 우리 회의가 창단되기 전에 만났던 비전향장기수 유한욱 할아버지와, 그들이 떠나기 전에 만나서 오빠들의 소식을 알게 해 달라고 인적사항 적힌 쪽지를 들려주었던 조창손님께서 개인 두 사람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배려해 주십시오.

대통령님, 어려운 시기 잘 극복하시고 나라를 크게 발전시키시며 그 역량 길이 남기시길 바라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2006년 1월 24일
6.25전쟁 납북 당시 춘천중학생 안 호철의 누이동생
안 청자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