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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최순재(증언자-최인숙)
이름: 관리자
2016-12-13 14:55:10  |  조회: 1531



피랍인
생년월일: 1934년 12월
출생지: 서울 성동구 상왕십리
당시 주소: 서울 성동구 상왕십리 1492번지
피랍일: 1950년 7~8월
피랍장소: 자택
직업: 보인상업 중고등학교 3학년
직계/부양가족: 조모, 부모, 누나 1, 남동생 1, 여동생 2
외모/성격: 별명이 색시, 자상함


증언자
성명: 최인숙(1933년)
관계: 누나
증언성격: 간접증언


특이 사항(납치주체/상황/원인)
- 증언자는 피랍자의 한 살 위 누나로 전쟁 당시 먼저 피랍되어 북한으로 끌려갈 뻔 했지만 기지를 발휘해 무사히 집으로 돌아옴.
- 집에서 자던 중 증언자인 누나를 다시 납치하러 온 인민군에 의해 끌려간 이후 소식이 없음.
- 피랍자가 장남이었기 때문에 할머니와 부모님의 상실감이 굉장히 컸음. 결국 피랍자의 할머니와 아버지는 마음의 병이 커져 돌아가심.


“난 다행히 미친 척 해서 풀려나기는 했는데, 잡혀가보니 사람이 무척 많았어. 서울서는 길에서 댕기는 사람은 쓸어갔어요. 집집마다 뒤지기도 하고. 우리 동네 여자 반장님은 ‘우리 반에는 잡아갈 사람이 없다’, ‘노인네 밖에 없다’ 그래가지고 인민군이 그냥 갔대. 그러다 내가 풀려나왔다 그래서 반장 앞세워 가지고 날 잡으러 왔는데 내가 없으니 동생을 잡아간 거지.”

“울 엄니가 내가 또 잡혀가겠다고 생각해 날 데리고 피했어요. 차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래서 시집가면 준다고 준비했던 비단을 양평 쪽으로 가면서 하나씩 주고 밥 얻어먹고 그래 가며 피했지. 그러고선 집에 돌아가 보니 우리 동생이 납치 당해갔다는 거야. 우리 아버지도 붙들려 갈 뻔했는데, 쌀 구하러 나가시는 바람에 무사했어요. 할머니가 보니까 반장하고 인민군이 와서 ‘인숙이 동무 어디갔냐’고 그러기에 ‘아파서 병원에 갔다’고 답했대요. 그랬더니 ‘자는 동무는 누구냐’고 그러더니 강제로 동생을 깨워서 데려갔대요. 그 후로 못 본 거에요. 어머니하고 나는 그 장면도 못 본거예요.”


직업 및 활동

<피랍인은 당시 17세였으며, 보인상업중고등학교 3학년이었음>

문_ 피랍인은 어떤 일을 하셨어요?
답_ 보인상업중고등학교 3학년이었어요.

문_ 납북 당시 가족 상황은 어떻게 되었지요?
답_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나, 순재 외에도 남동생 하나, 여동생 두 명이 더 있었어요.


납북 경위

<동네 반장을 앞세운 인민군이 집에서 자고 있던 피랍자를 납치해 감>

문_ 어떻게 납치가 되셨지요?
답_ 7월인가 8월인가 그랬어요. 모기장치고 잘 때니까. 밤에 동네 반장하고 민청에 있는 인민군이 나를 잡으러왔어요. “인숙이 동무 어디 갔느냐?”고 물어봤대요. 그래서 우리 할머니가 제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다고 답하니까, 저 동무는 뭐냐면서 모기장을 잡아채더니 막 일어나라고 그러더래. 그러니까 제 동생이 17살이니까 컸거든요. 건강하고 그러니까 인민군이 저 동무 데려가자고 그러더래. 

문_ 그때 동생이 끌려갔을 때 무슨 말을 했지요?
답_ 할머니에 의하면 동생이 ‘할머니, 불이 있으면 비행기가 폭격하니 불 피우지 마세요. 저 갔다 올게요.’ 이렇게 말하고 갔대요. 

문_ 어디로 갔는지 아세요?
답_ 모르죠, 어떻게 알아. 거기서 잡아가서 어디로 갔는지 모르지요.


납치 이유

<대한청년단 성동구 구단부 학생과에 있었던 피랍자의 누나인 증언자가 먼저 납치되었으나, 기지를 발휘해 도망쳐 나와서 집을 떠나 피신 해 있는 사이에, 다시 집으로 찾아온 인민군이 집에 있는 피랍자를 발견하여 납치해 감>

문_ 왜 납치되셨을까요?
답_ 처음에는 제가 먼저 납치되었어요. 6․25가 터져서 학교도 안가고 집에만 있었는데, 학교도 안 나오고 민청에도 안 나온다고 잡으러 와서 잡혀 갔어요. 반장하고 총을 맨 인민군이 와서 ‘빨리 안 나오면 총을 쏜다’고 위협하면서 저를 잡아갔어요. 그래서 진명여고라는 학교에 갇혀있는데 저 말고도 남녀노소 많이 붙들려 왔더라고요.
생각해보니 여기서 탈출해야지 내가 살 것 같고, 또 엄마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밥을 나흘이나 안 먹었어요. 그러니까 기운이 없어서 쓰러지대. 그 때부터 아프니까 엄마를 부르고 울고 막 그냥 악도 쓰고 발버둥치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높은 인민군이 ‘이 동무가 미쳤느냐, 왜 이러느냐?’고 그래요. 한 일주일은 날 뛰었을 거예요. 나중에 의사 세 명이 와서 진찰을 하더니 가망이 없다고 정신이 좀 이상하다고 그래서 내보내졌어요.
신발을 신고 나가라는데 미친척해야 하니까 신으면 안 되잖아. 맨발로 뛰어 나왔어요. 그런데 어느 한 장교가 총을 들고 나를 계속 쫓아오더라고. 길에서도 미친척하고 손뼉치고 엄마를 불렀다가 울었다가 그냥 내가 몸부림을 치다시피 했어요. 그렇게 동네에 오니까 아는 아주머니가 날 보더니 ‘숙이 왜 여기 와 있느냐, 웬일이냐?’ 그래요. 그러니까 그 장교가 ‘이 동무를 아느냐? 이 동무 집이 어디냐?’고 물어봐서 우리 집에 데려다 줬거든.
우리 어머니가 그 장교 뒤를 쫓아가니까 저기 동회 쪽으로, 민청 쪽으로 가더래요. 거기가 옛날에는 민청이라고 그랬어요. 가더니 뭐라고 하는 것 같더라는 거야. 그래서 어머니가 안 되겠다고 이러다가 또 잡혀가겠다고 날 데리고 피했어요. 차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 나 시집가면 준다고 마련했던 비단을 싸서 양평 쪽으로 가면서 그거 하나 주고 밥 얻어먹고 그래 가며 도망갔지요. 얼마 지나서 어머니가 집에 가보니 동생이 납치당해 갔다는 거야. 우리 아버지도 붙들려 갈 뻔 했는데 다행히 쌀 구하러 나간 덕분에 할머니 혼자 계실 때 잡혀갔대요. 할머니가 보니까 반장하고 인민군이 와서 ‘인숙이 동무 어디갔냐’고 그러기에, ‘아파서 병원에 갔다’고 답했대요. 그랬더니 ‘자는 동무는 누구냐’고 그러면서 강제로 동생을 깨워서 데려갔대요. 그 후로 못 본 거예요. 어머니하고 나는 그 장면도 못 본 거예요. 원래는 나를 잡아가려다가 내가 없으니 동생이라도 잡아간 거예요.

문_ 증언자님을 끌고 간 이유가 뭐죠?
답_ 나보고 반역자라 하며 끌고 갔어요. 내가 대한청년단 성동구 구단부의 학생과에 있었거든요. 진명여고에 끌려 가보니 북한으로 데려가려고 하는 거예요. 나만 그런게 아니라 서울에 있는 많은 사람이 잡혀갔어요. 길에서도 잡아가고 직장 갔다 오는 사람도 잡아가고. 동네에서 저기 민청에 협조를 안하면 무조건 반역자로 잡아가요. 그러고는 진명여고 안에서 낮에는 아군 비행기가 뜨니까 꼼짝도 못하게 하고 강당에 쭉 가둬놓고 교육만 시키는 거예요. 북한에 대해서, 정치에 대해서 가르쳐요. 꼼짝달싹 못하게 포위를 해서 학교 담 앞에 총을 들고 보초 서고 그랬어요.


납치 후 소식

<없었음>

문_ 납치 이후 들려온 소식은 있었나요?
답_ 통 못 들었어요.

문_ 찾으려는 노력은 해보셨어요?
답_ 그 때 휴전 전에 포로 교환을 했었잖아요. 포로들이 성동 경찰서에 올 때는 우리 어머니가 아들이 올까 싶어서 경찰서에 가서 노상 사셨어요. 그런데 오지 않으니 우리 어머니 마음이 어떻겠어? 매일같이 저 때문에 동생을 잃어 버렸다고 그랬어요. 하도 우리 어머니가 그렇게 우는 바람에, 그 원망소리에 소름 끼치도록 질려서 약이라도 먹고 죽으려고 그랬었어요. 나도 한이 많이 맺혔어.
그래서 1980년대에 KBS에서 이산가족 찾기 운동했었잖아요? 그 때는 내가 방송국에서 살았어. 혹시나 우리 동생이 한국에 있지는 않을까 해서요. 계속 가서 사진을 들고 있었다고요.

문_ 이산가족 신청은 해보셨어요?
답_ 벌써 옛날에 했어요. 어머니하고 나하고 가서 적십자사에서 했어요. 그리고 또 지난번에 납북자들도 신청할 수 있다고 해서 또 했어요. 그때도 적십자사에 갔더니 이전에 신청한 사연이 다 기록되어 있었어요.


남은 가족의 생활

<할머니와 아버지는 화병으로 얼마 있다가 사망하였으며, 피랍자의 어머니 역시 누나 대신 집안의 장손이 잡혀갔다며 마음의 병을 심하게 앓음>

문_ 납치 후에 나머지 가족들은 어떻게 생활하셨어요?
답_ 1․4 후퇴 때 피난을 갔는데 수원까지 갔다가 되돌아 왔어요. 어머니가 마음의 병이 심해져 더 못 간 거죠. 할머니는 우리 동생 잡아간 반장 있잖아요. 그 사람한테 펄펄 뛰면서 ‘애를 잡아갔으면 데려와야 되지 않냐, 너도 자식을 기르면서 그러면 되겠느냐? 당장 데려오라.’고 막 항의했어요. 그 사람도 딸도 있고 조그마한 아들도 있었거든. 그렇게 속병을 앓다가 할머니도 전쟁 끝나고 돌아가셨어요. 아버지도 동생 때문에 울화병이 나서 밥도 안 잡수시고 그러더니 49세에 돌아가셨어요. 나는 어머니가 양평에 어느 시골집에다가 맡겼는데 그 집의 며느리가 돼서 지금까지 살았어요. 

문_ 그렇게 결혼하신 거예요?
답_ 그럼요. 난리통에 시집가서 불행했어요. 근데 또 거기에도 인민군이 잡으러와. 그 집이 과수원집이었거든요. 배하고 사과밭이 있으니까 인민군이 노상 들끓어요. 그래서 인민군이 ‘저 여성동무는 누구냐?’고 시어머니한테 그러면, ‘여성 동무가 아니라 나이 먹은 늙은이’라고 그렇게 모면했어요. 시골 사람들 수건으로 두건 쓰잖아요. 수건 쓰고 시어머니 옷을 입고 일을 했어요. 누가 물어보면 시어머니가 나이 많은 우리 늙은 며느리라고 그러면서 그냥 과일을 막 주고 달래 보내고 그래서 내가 괜찮았어요.

문_ 이후에 반장은 어떻게 됐어요?
답_ 우리 남편이 서울 수도방위사령부에 있었거든요. 그래서 동생 소식을 듣고 그 반장을 잡자고 그랬거든요. 그랬더니 우리 아버지가 뭐라는 줄 알아요? ‘그 사람도 자식이 딸렸는데 그 사람 잡는다 해서 우리 순재가 돌아오느냐. 그렇게 해서 그 애가 돌아온다 그러면 그렇게 하겠지만 그 집 가족들도 있으니까 용서해 주라.’고 사위한테 그러셨어요. 그래서 그 반장은 무사했어요.

문_ 신고는 하셨나요?
답_ 오래 전에 했지요. 그래서 56년 적십자 실향사민 명단에 등록되어 있어요.


호적 정리

<다시 살아 만날 것을 기대한 어머니 때문에 호적 정리를 하지 않음>

문_ 호적정리는 하셨어요?
답_ 그냥 놔뒀어요. 우리 어머니가 살아오면 어떡하느냐고, 그것마저 빼버리면 안된다고 해서 놔두었어요. 그래서 아직 살아있는 상태로 남아있어요. 


연좌제 피해

<없었음>

문_ 연좌제 피해는 없었나요?
답_ 직접적인 피해는 없었고 형사들이 조사를 왔었어요. 동생한테 혹시 소식이 왔나 몇 차례 물어보더라고. 그래서 내가 ‘혹시 간첩이 돼서 돌아왔을까 봐 그러느냐?’하고 물어보니까 ‘아니요, 혹시 소식이 있나 해서요.’그러더라고요. 한두 번 오고 오지 않았어요.


정부에 바라는 말

<납북자 생사 확인>

문_ 정부나 사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답_ 어서 빨리 우리 동생 소식이라도 좀 알았으면 해. 북한으로 끌려갔으니 뭐 했겠어요? 전쟁터에 끌려갔을 것 아녜요? 전쟁에 내보내려고 그 사람들 다 잡아갔겠지. 그래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그게 궁금해. 또 동생도 이미 여든 살이 되었고, 배고파서 굶어 죽었을지도 모르니 소식이라도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통일이 된 후라도 동생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바라지요.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문_ 납치된 동생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세요?
답_ 나야 많지. 나 때문에 가서 고생을 했으니 한이 많지요. 나 아니면 왜 걔가 붙들려서 갔겠어? 내가 붙잡혀 갔으면 걔는 잡으러 오지도 않았지.
순재야! 누나 때문에 네가 대신 붙들려가서 얼마나 고생했냐? 엄마, 할머니, 아버지 다 너를 못 봐서 한 맺혀 돌아가셨다. 나도 너를 못보고 죽을까봐 걱정스러우니, 내 소원이라도 좀 풀게 너를 만나자. 우리 언제 다시 만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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