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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홍성목(증언자-이화명)
이름: 관리자
2016-12-13 15:53:19  |  조회: 1619

피랍인

생년월일: 1917년 12월 28일

출생지: 전북 김제군

당시 주소: 서울 중구 주자동 법무부 관사 6호

피랍일: 1950년 7월 2일

피랍장소: 아현동

직업: 검사

직계/부양가족: 배우자, 자녀(아들 2)

외모/성격: 과묵했지만 가정적인 성격

 

증언자

성명: 이화명 (1924년생)

관계: 배우자

증언성격: 간접증언


특이 사항(납치주체/상황/원인)

- 피랍인은 증언자의 남편으로서 전쟁 당시 공안부 검사였기 때문에 좌익들의 1차 목표물이었을 가능성이 큼.

- 한강 인도교 폭파로 인해 남쪽으로 피난을 가지 못했으며 전쟁 발발 1주일 후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외출을 했다가 행방불명됨.

- 정치보위부로 사용되었던 국립 도서관은 물론 서대문 형무소 등 피랍인이 끌려갔을 것으로 예상되는 다양한 곳을 찾아봤지만 행방을 알 수 없었음.


직업 및 활동

<대한민국 건국 초기부터 검사로 일을 하였으며, 전쟁 당시에는 공안부에서 업무를 보며 좌익 사건들을 다루었음>

문_ 전쟁 당시 어떤 일을 하셨는지요?

답_ 보성 중학교를 졸업하시고 일본 중앙대학교 독법부에서 유학한 후 사법시험에 합격하셨어요. 그래서 8․15 해방 이후 대한민국 검사가 되었어요.

문_ 다른 사회활동은 안하셨나요?

답_ 안했지요. 할 시간도 없었고요.


납북 경위

<남쪽으로 피난을 가지 못해 아현동 누이동생 집에 잠시 피해 있었음.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외출하였다가 소식이 끊김>

문_ 언제 납북이 되셨지요?

답_ 1950년 7월 2일에 갑자기 행방불명이 되었어요. 그때 납북이 됐는지, 그대로 즉결 처분을 당했는지 알 수가 없어요.

문_ 6․25가 터진지 일주일 만에 잡혀가셨네요?

답_ 그렇죠. 피난을 못 갔기 때문이에요. 남편이 검사고 우리 집 역시 법무부 관사라서 빨리 피난을 갔어야 했는데 못했어요. 지프차를 타고 아들 둘을 데리고 가는데 한강다리에서 헌병들이 못 가게 저지를 시켰어요. 할 수 없이 친척집에 가려 하는데 친척도 소용없어요. ‘너희들 숨겨주면 우리도 모가지가 달아난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데, 새벽 2시에 국군이 한강 인도교를 폭파시켰어요. 결국 아현동 시누이네 집으로 갔어요. 그 집에 얼마 있다가 남편이 납치됐어요.

문_ 납치 상황을 조금 더 자세하게 해주세요.

답_ 시누이네 집에 숨어 사는데 누군가에게 전화가 왔었나봐요. 전화를 받고, 시누이의 남편이 여기에 이렇게 있으면 다 걸린다고 야단을 해서 남편과 시누이 남편 두 사람이 같이 나갔던 것으로 기억해요. 그 후에 행방불명이 된 거에요.

문_ 어디에 간다고 하셨죠?

답_ 시누이 남편이 나갔다가 들어와서 제가 물었더니 ‘몰라요, 내가 법무부 사무실에 들렀더니 없어요.’ 그러더라고요. 두 사람이 같이 나가 놓고선 소식을 모른다고 하니까 후들후들 떨리데요. 제가 그때 얼마나 섭섭했는지,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책임감이 없나 했어요.

문_ 그래서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시고요?

답_ 몰라요.


납치 이유

<납치현장에 있지 않아 구체적인 이유는 모르지만, 가족들은 피랍인이 공안부 검사였기 때문에 좌익들의 표적이 되었다고 짐작하고 있음>

문_ 납치당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답_ 검사였잖아요. 그 이유로 누군가에게 끌려가 집에 못 돌아온 것 같아요. 사실 당시에 우리나라에 좌익들이 많았잖아요. 많으니까 좌익하고 싸우는 공안부 일이 굉장히 많았었다고 해요. 공안 일을 쭉 맡았었기 때문에, 오제도 검사라고,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꽤 알려진 분하고 같이 일을 하셨어요. 남편은 고시를 패스해서 정식으로 검사가 되신 분이고 오제도 검사는 검사보로 계시다가 나중에 해방이 되면서 검사로 임명된 분이죠. 오제도 검사 이름을 꺼내는 이유는 당시에 빨갱이나 좌익을 잡아들이는데 그 분이 아주 혁혁한 공을 세웠거든요. 남편도 그 분과 같이 공안 일을 많이 하셨기 때문에 검거 리스트 1호로 올랐을 거라 생각해요.


납치 후 소식

<없었음>

문_ 이후에 들은 소식이 있나요?

답_ 국립도서관이 전쟁 때 정치보위부로 사용되면서 많은 사람이 갇혀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남편 만나면 주려고 토마토 같은 것들을 사가지고 찾아 다녔어요. 도서관에 가면 사람들이 자기 가족이 왔나 하고 창문을 내다보는데 가서 명단을 보면 홍성목은 없어. 그래서 토마토 같이 무거운 것을 들고 며칠을 찾으러 다녔어요.

문_ 현재의 롯데백화점 본점 자리를 말씀하시는 거지요?

답_ 예. 그 자리가 원래는 서울 국립도서관 자리에요. 거기도 가봤고 또 비슷한 곳 몇 군데가 있어서 다 찾아다녔지만 못 만났어요.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된 줄 알았는데 거기에서도 명단에 없었어요.


남은 가족의 생활

<전쟁 중에 많은 고생을 하였지만, 피랍인의 부인인 증언자가 영문 타이핑 기술로 일자리를 구해 생계를 이어나감>

문_ 납치 후에 나머지 가족들은 어떻게 생활하셨나요?

답_ 제가 아들 둘 데리고 전쟁을 겪느라 얼마나 고생을 많이 한 줄 알아요? 꿀꿀이 죽을 끓여먹고 보따리 장사부터 안 해 본 게 없어요. 그러다 1․4 후퇴 때는 다섯째 동생하고 애들 둘을 업고 남편 고향인 김제까지 하루에 100리 씩 걸었어요. 또 김제에서는 ‘우리 가족 때문에 쌀 떨어진다.’ 면서 구박해서 아무런 연고 없는 완도까지 피난을 갔어요. 아는 사람도 없으니 매일 갯가에 가서 조개니 뭐니 캐가지고 끓여먹다가 그것도 힘들어서 결국 보름 만에 김제로 돌아왔어요. 그 후에 저만 서울에 와서 겨우 취직하고 애들 둘을 데리고 왔어요. 영문 타이핑을 배운 적이 있었는데 우리 조카사위가 나를 무역회사에 넣어주데요. 그렇게 돈 벌어서 방 얻어가지고 처음에는 둘째 아들을 데려 오고 나중에 큰 아들을 데려와서 살았어요.

호적 정리

<1967년 정부 시행령에 의해 피랍인을 사망으로 처리할 수 있었음>

문_ 호적 정리는 어떻게 하셨어요?

답_ 처음에는 행적을 알 수 없어서 못하다가, 나중에 사망으로 처리하려고 해도 행방불명된 사람은 사망으로 할 수 없다고 해서 호적 정리를 못했어요. 그러다가 1967년 5월 19일에 정부 시행령으로 행방불명자를 사망인으로 호적상에 신고하여 정리할 수 있게 해 줘서 그때 사망으로 정리를 했어요.


연좌제 피해

<없었음>

문_ 연좌제 피해는 없었나요?

답_ 저희 가족은 직접적으로 없었어요. 아들들은 정상적으로 군 복무를 했고 사업으로 외국에 나갈 때에도 신원조회에 걸리지 않았어요. 납치 피해를 입었다는 지인들 중에는 다른 사람들이‘자유의사에 따라 월북한 사람이다.’라며 의심을 하기도 하고, 외국에 마음대로 나가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정부에 바라는 말

<생사 확인 및 보상>

문_ 정부나 사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답_ 남편의 생사확인을 해주었으면 합니다. 또한 우리가 이렇게 살아온 것에 대한 보상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국가에서 납북된 가족들을 신경을 많이 써주고 마음으로도 많이 위로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어요. 전쟁 상해 용사들은 정부 보상도 받는데, 납북자들은 아무런 혜택이 없으니까 너무 야속했어요. 야박하다고 느낄 만큼 정부의 지원이 아무것도 없었어요. 더욱이 남편은 공무원이었고 그 이유로 잡혀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그렇지요.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문_ 피랍인에 관한 추억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답_ 지금 살아있으면 나이가 97세이니 벌써 죽었을 지도 모르지요. 그래도 밤에 눈만 감으면 생각나요. 아들을 그렇게 귀여워해서 매일 안고 다녔어요. 그리고 저를 얼마나 아껴 준지 아세요? 그런 남자 대한민국에 없어요.

문_ 납치되어 가신 피랍인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해주세요.

답_ 여보! 당신 나이가 97세인데 건강하게 이북에서 잘 지내고 있으면 얼마나 감사하겠소. 지금도 당신만을 그리며 살고 있으니, 좋은 소식이 들릴 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니 소식 좀 전해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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