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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최영수(증언자-최영재)
이름: 관리자
2016-12-13 15:58:33  |  조회: 1740


피랍인

생년월일: 1911년 5월 14일(음)

출생지: 경기도 안성읍

당시 주소: 서울 종로구 혜화동 5통 6반 동소문 아파트 3층

피랍일: 1950년 7월 13일

피랍장소: 자택

직업: 경향신문사 출판국장

직계/부양가족: 배우자, 자녀(2남 1녀)

외모/성격: 다재 다능, 재담가

   

증언자

성명: 최영재(1947년생)

관계: 차남

증언성격:


특이 사항(납치주체/상황/원인)

- 경향신문 출판국장으로 재직 중인 언론인이었으며 문화계에서도 다양한 활동을 하였음.

- ‘최후의 밤’이라는 반공영화의 시나리오를 썼다는 이유로 피랍되었다고 추측.

- 북한으로 끌려가던 중 탈출을 시도하다 실패해 총살당한 기록이 1962년 동아일보 연재수기 ‘죽음의 세월’에 수록되어 있음


직업 및 활동

<일본 가와바타 화숙에서 동양화를 전공하였으며, 동아일보를 거쳐 경향신문사에서 출판국장을 하였음>

문_ 피랍인은 어떤 일을 하셨죠?

답_ 아버님은 경신학교를 졸업하시고 일본에 있는 가와바타 화숙이라는 미술학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었어요. 그리고 22살 때 동아일보에 들어가셨어요. 그리고 피랍될 당시에는 경향신문사 출판국장을 역임하고 계셨어요.

문_ 다른 사회 활동은 안 하셨나요?

답_ 다른 것도 많이 하셨지요. 영화 시나리오도 쓰시고 한국예술협회의 연극에도 관여하셨고 하여튼 다재다능하셔서 많은 일들을 하셨습니다. 우리나라 만화계에도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셔서 한국만화통사 같은 책을 보면 아버지에 대한 언급이 굉장히 많이 나옵니다.


납북 경위

<1950년 7월 13일 권총을 소지한 내무서원 2명이 집에 찾아와 납치해 감>

문_ 어떻게 납치가 되셨지요?

답_ 어머니한테 들은 이야기예요. 1950년 7월 13일 아침에 내무서원 2명이 집으로 찾아왔답니다. 와서는 양쪽에서 아버지 팔을 꽉 잡아서 끌고 나갔는데 형이 끌고 나가는 사람의 베잠방이에서 권총을 봤대요. 그때 아버지가 뒤돌아보시면서 ‘내 금방 갔다 오리다.’라고 그러셨는데 그 표정과 말씀이 다시는 돌아올 것 같지 않은 투였다고 하셨어요. 그리고는 못 돌아오셨죠.


납치 이유

<‘최후의 밤’이라는 반공영화 시나리오를 썼다는 이유로 끌려감>

문_ 왜 납치되셨을까요?

답_ 이미 북쪽에서 사람들을 납북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답니다. 아마 명단 중에 있었을지도 몰라요. 결정적으로 아버지가 ‘최후의 밤’이라는 반공영화의 시나리오를 썼다고 누가 밀고했대요. 나중에 유명한 소설가 정비석씨가 저한테 준 편지가 있는데, 납치되기 전날에도 명동에 같이 앉아서 신세타령을 하셨다고 그러셨어요. 아버지는 자술서라는 것만 쓰면 다 불문에 붙이고 용서해 준다고 하길래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쓰셨나 봐요. 그래서 이제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끌려가신 거예요.


납치 후 소식

<납치 이후 소식이 전해지지 않다가 1962년 동아일보에 ‘죽음의 세월’이라는 연재 수기를 통해 피랍자가 인민재판식으로 사형 당했다는 내용이 밝혀짐>

문_ 납치 이후 들려온 소식은 있었나요?

답_ 당시 비슷한 시기에 납북되신 문화예술인 중에 박계주, 구상 이런 분들은 도중에 탈출하셨어요. 그래서 안성에 피난 갔을 때 박계주씨가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저희 집에 오기도 했어요. 나는 이렇게 탈출했는데 아마 괜찮을 거라고 최영수는 약으니까 그 사람은 절대 납치 안 된다. 그런데 납치 도중에 돌아가셨다는 신문 기사가 나왔습니다.

1962년도인가 동아일보에 ‘죽음의 세월’이라는 제목으로 납북 인사들의 북한생활기가 나왔습니다. 북쪽에서 납치 인사들을 관리하던 조철이라는 사람이 귀순을 해서 쓴 건데 거기에 아버지와 관련된 언급이 있었어요.

8월 17일 긴 납북의 행렬이 황해도 해주에 이르렀을 때 아버지하고 변호사 하진문씨, 그리고 박인선씨 이렇게 세분이 탈출을 하다가 잡혔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주모자급으로 걸린 거예요. 그래서 인민재판식으로 8월 18일 날 총살됐다는 기사가 나왔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날이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짜라고 생각하고 그때를 기일로 삼아 아버지를 추모하고 있습니다.


남은 가족의 생활

<피랍자의 배우자가 삯바느질을 통해 3남매를 키움>

문_ 납치 후에 남은 가족은 어떻게 생활하셨어요?

답_ 어머니는 그때 서른 살이셨는데 그 후에 우리 가족의 삶은 너무 비참해서 이루다 말할 수가 없습니다. 제 친구들만 보더라도 직접 피해자가 아닌 사람들은 전쟁의 아픔에 대해서 잘 몰라요. 가족 중에서 피해당한 사람이 없는 집들은 잘 모릅니다. 어머니는 아주 곱게 자라신 분이에요. 경기고녀라고 지금의 경기여고를 졸업하셔서 공부밖에 모르니 기술이 없잖아요. 그러니 피난 삼아 아버지 고향인 안성에 내려 와서 할 게 없으셔서 집의 값나가는 물건들을 곡식과 바꾸어 연명했어요. 그것도 떨어져 외삼촌하고 이모 두 분한테 재봉틀을 하나 사달라고 했나 봐요. 그래서 삯바느질로 연명을 했지요. 그걸로 저희가 초등학교, 중학교도 졸업했죠. 그 재봉틀이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문_ 납북자 신고는 하셨나요?

답_ 그저 정부에서 납북자 신고하라고 해서 몇 차례 했습니다. 어머니가 하고 고모도 하고 그랬어요. 신고 이외에는 다른 납북자들도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었을 거예요. 북쪽에 편지를 보낼 수도 없고, 찾아갈 수도 없고 정부의 대책만 기다렸는데 그것도 없었으니까요. 

 

호적 정리

<피랍자의 동생에 의해 정리됨>

문_ 호적 정리는 하셨나요?

답_ 계속 소식을 기다리다가 ‘죽음의 세월’이라는 연재 기사에도 아버님 소식이 나오고 형도 취직을 해야 돼서 알아보니 이미 돌아가신 것으로 처리가 되어있더라고요. 제가 초등학교인가 중학교 다닐 때에 삼촌이 하셨더라고요.


연좌제 피해

<연좌제의 직접적인 피해는 없었음. 다만 아버지를 월북자처럼 생각하는 분위기가 한동안 있어서 가족들이 마음고생을 함>

문_ 연좌제 피해는 없었나요?

답_ 큰 피해는 없었어요. 다만 제가 서울교대에 입학했는데 교사가 되려면 신원조회를 하지 않습니까? 그때마다 어머니가 항상 긴장을 하셨어요. 또 형사가 오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주눅이 들어서 말씀하시고 그런 것이 생각나요.

그리고 아버지가 참 유명하신 분이었는데도 저는 아버지가 재주 많으신 분이라는 것까지만 알았지 그 이상은 몰랐어요. 가족들도 아버지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안했어요. 그래서 1969년도에 KAL기가 북으로 납치되었다가 일부가 다시 돌아오는 장면을 보고 평소 읽던 월간 ‘신동아’ 편집자에게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때 그것을 쓰면서도 아버지가 그 잡지의 편집자였던 것조차 몰랐어요.

문_ 이유가 무엇일까요?

답_ 우리 아버지를 월북자처럼 생각하는 시절이었어요. 납북자들은 그래도 사회에 조금이나마 기여를 한 사람들 아니겠어요? 그런 사람들인데도 납북자의 작품은 후배들이 연구하거나 발표하지 못했지요. 나중에 해금이 된 후에야 만화부터 여러 가지 소설, 수필, 시나리오 등이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했지요.

 

정부에 바라는 말

<임진각에서 맘 편히 제사라도 지낼 수 있도록 납북자를 위한 제단 설치 필요>

문_ 정부나 사회에 바라는 점이 있으면 말씀 해주세요.

답_ 임진각에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 있잖아요? 아버지가 그쪽으로 끌려 가셨어요. 그래서 돌아가셨다는 8월 18일만 되면 거기에서 다과를 놓고 절을 하는데 슬퍼요. 북쪽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은 망배단에서 절을 하는데 납북자 가족들은 그런 제단이나 추모비 같은 것도 없어요. 납북자가 수만 명이나 되는데 풀숲에 다과를 놓고 절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래서 납북자를 위한 제단이라도 하나 설치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문_ 아버님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해주세요.

답_ 못하겠어요. 눈물이 나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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