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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강신원(증언자-강석문)
이름: 관리자
2017-01-26 14:49:22  |  조회: 1461

강 신 원( 姜信元)
2016. 3. 30. 채록


피랍인
생년월일: 1906년
출생지: 경상도
당시 주소: 경기도 장단군 군내면 조산리 조산동 184번지
피랍일: 1950년 9월말
피랍장소: 자택
직업: 정미소 운영
직계/부양가족: 배우자, 5남 3녀
외모/성격: 키가 크고 마른 체격. 성격이 활발하고 인맥이 넓음.


증언자
성명: 강석문
관계: 차남
증언성격: 직접증언


특이사항(납치주체/상황/원인)
• 경기도 장단군에서 거주했던 납북자는 농사를 짓고 마을 이장을 맡고 있었으며, 대한청년단 마을 단장과
공장유격대에서 활동했음. 대한청년단 활동을 한 것이 납치 이유로 추정.
• 임진강 근처의 외숙모 집에 납북자만 8개월간 피난해 있다가 집에 돌아와 굴뚝 아궁이 밑에 땅을 파고 숨
어있었는데, 9·28수복 때 북으로 밀려올라가던 인민군들이 국군으로 위장하여 동네사람들을 나오라
한 후, 밧줄로 매어 끌고 감. 이 때 숨어있던 납북자도 발각되어 함께 끌려갔는데 묶여가던 많은 사람들
이 매를 맞았음.
• 남은 가족들도 악질반동분자의 가족이라고 인민군에게 쫓겨서 이곳저곳에 숨어 지냈고, 납북 사실 확인
이 안되어 동회에서 주는 배급물자 지급 대상에서도 한동안 제외되었음.


직업 및 활동
<대한청년단 마을 단장을 했었음>


문_ 증언자의 성함, 생년월일 및 납북자와의 관계는?
답_ 강석문이고요. 생년월일은 1939년 6월 28일생. 차남입니다.
문_ 납북자의 성함, 생년월일, 출생지 및 거주 지역은?
답_ 생년월일은 기억이 잘 안 나고, 성함은 강신원. 태어나신 곳은 경상도 어디라는데, 자
세히 생각이 안 나네요. 거주 지역은 경기도 장단군 군내면 조산리 조산동 184번지인가.
문_ 납북자의 당시의 직업과 출신 학교는?
답_ 직업은 농사 좀 짓고, 정미소 하고, 이장도 하시고 그랬죠. 출신 학교는 모르겠어
요. 아버지가 집에 잘 안 계시고 좀 여기 저기 돌아다니시다가 나중에 정착하셔서 정미
소 차리고 하셔서 잘 몰라요.
문_ 납북 당시 가족 구성원과 수는?
답_ 가족은 8명에다가 부모님 해서 10명. 누나, 형님, 나, 동생 합해서 8명이에요. 5남
3녀. 8남매. 할아버지는 모르겠고 할머니는 돌아가셨고요. 전쟁 바로 직전에.
문_ 납북자의 경력 및 사회 활동은?
답_ 대한청년단 마을 단장 하셨죠. 공장 유격대. 그래서 한참 전쟁 나서 군인들 정보도
가르쳐 주고 습격도 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하루에도 몇 명씩 잡아다 보내고 그런 것 보
니까.
문_ 납북자의 외모 및 성격 등의 특징은?
답_ 성격은 칼칼하고 외모는 빼빼해요. 키는 보통 키고 활발해요. 인맥이 넓고 많았어
요. 그 당시에 경찰이나 그런 사람들 다 알고 그래서, 납치당할 때도 풀어주자 말자 했
는데 너무 악질이라 안 된다고 그래서 끌고 갔죠.
문_ 피난은?
답_ 아버지만 피난을 갔죠. 임진강 옆에 외숙모네 집에 갔죠. 거기에서 숨어 있다가 8개
월만에 밤에 몰래 집으로 들어왔죠. 몰래 들어와서 내가 봤지만 굴뚝 아궁이 밑에 땅을
파서 들어가 계셨는데 그걸 알고 잡아갔죠.


납북 경위
<9·28수복 때 국군으로 위장한 인민군 20~30 명이 와서 굴뚝 아궁이 밑에 땅을 파고
숨어 있던 아버지를 끌고 감>


문_ 납치 시기와 당시 증언자 나이는?
답_ 철수할 때, 그 때니까 9·28수복 때. 다리 잘린 사람들, 인민군들 엄청 많았어요.
동네 앞으로 지나가면서 철수하는 도중에 다 쓸어 간 거에요. 우리가 고기를 잡으러 앞
동네 개울로 가는데 오는 길에 난리가 난 거에요.
문_ 납치자의 용모 및 신분 확인은?
답_ 군인들 한 20~30명 왔어요. 국방군이라고 했는데 그게 거짓말이지. 전부 군복을
입고 총을 메고 와서 다 나오라고 해서 다 나왔죠. 그랬는데 우리 아버지는 안 나간 거예
요. 안 나가고 있었는데 잡은 사람들을 총으로 때리고 그래도 안 나오니까 동네 나이 많
은 노인네가 알 거 아니에요. 76세인가 된 노인네를 소 외양간에 끌어놓고 치니까 불지
안 불어요? 할머니인데. 그 할머니가 아버지를 봤거든요.
문_ 납치 장소는?
답_ 아궁이 밑에 숨어 있다고. 그렇게 버텼는데 뭐 나오라고 그러니 안 나갈 수가 없잖아
요. 나갔는데 잡혀 온 사람들이 열아홉 명인가 됐어요. 거기에 주동자가 우리 아버지죠.
문_ 납치 방법은?
답_ 아버지가 나오니까 손목을 비틀어 매고 아버지 뒤로 사람들을 쭉 매고 한 1.5km도
못 가서 또 잡아서 매고 해서 지서에 있다가 끌고 갔죠. 인민군들이 국군으로 위장해서
납치하러 온 거죠. 동네 사람들은 나오라고 하니까 모르고 다 나간 거죠. 우리 군인이
왔다고 하니까 좋아서 태극기 가지고 만세 부르고 나왔는데 그 사람들까지 전부 쓸어 갔
죠. 나는 아버지 잡아갈 때 인민군인걸 알았죠. 그게 내무서원들이라고. 그 사람들이 총
을 거꾸로 잡고 팼죠. 하얀 옷을 입고 있던 사람들이 전부 벌겋게 되가지고….
문_ 납치 당시 납치자가 한 말, 연행되어 간 장소는?
답_ 말도 못하죠. 할 수도 없죠. 잡아서 바로 격리시키고, 우린 나가지도 못 하죠. 그 후
로 우리 잡으러 내무서원들이 많이 다녔어요. 악질이라고. 아주 악질반동이라고. 어머
님이 장티푸스 있잖아요? 그게 걸려서 머리가 빠져서 드러누워 있었는데 잡아봐야 소용
없으니까 한 사람이 그러더라고. 그냥 다 죽이고 가자고. 근데 군인이 10리 바깥에 있
었어요. 총성이 나고 그러니깐 그냥 빨리 가자고 그래서 급하니까 대충 갔지. 그러고도

우리 잡으려고 애 많이 썼어요. 그런데 우리가 호박 밭 같은 데 숨어 있고 외숙모가 밥
가져다주면 먹고 그랬어요. 한 몇 달 동안 숨어 있었죠. 그러고 갔다가 또 내려왔잖아
요, 1·4 후퇴 때. 우리는 그 때까지 아무도 없으니까 못 나갔죠. 내가 제일 컸는데 12
살이었으니까. 외삼촌도 전쟁 나니까 친척이고 뭐고 없어요. 나 살기 바쁘고 그러니까
다 도망가고. 당시에 군인 1사단의 어떤 사람이 차를 끌고 우리를 실어다가 법원리에 내
려주고 갔어요.


남은 가족의 생활
<배급에 의지하다가, 석탄 장사를 해서 생활함>


문_ 남은 가족의 피난, 생계, 양육 등은?
답_ 거기 가서 뭐 해 먹을 게 있어요? 그래도 그 당시에 군량미를 넣어 줘서 먹다가 얼마
안 있어 도저히 먹을 게 없어서 못 살겠다고 도로 수색으로 갔죠. 거기도 전쟁이니까 뭐
가 없죠, 아무 것도. 그런데 신문에 보니까 우리 바로 옆 동네도 그렇고 판다고 신문에
나오더라고요. 그게 이상해서 어떻게 된 일인지…. 내 땅이라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는 거죠. 이미 반세기가 지났는데 아버지도 그렇고 생사확인도 다 된 거고 지금 바란다
면 혹시 잘 되서 유골이라도 받아서 묘라도 하면 좋겠는데…. 지금 아버지 제사는 어머
니하고 한 달 차이로 지내고 있어요. 그렇게 살다가 내가 나이도 먹고 어머니도 머리가
낫고 하니까 석탄 장사를 시작했죠. 그게 장사도 아니고 수색역에 나가서 캐고 남은 석
탄을 주워다가 종로 3가까지 지고 가서 파는 거에요. 그거 팔면 천원 버니까 먹고 살았
죠. 그러다가 나이 먹고 직장도 가지고 그렇게 살았죠.


납치 후 소식
<납북 후 십년 이상이 지나 중국을 통해 아버지가 총살당했다는 소식을 들음>


문_ 탈출해서 돌아온 사람들의 증언 또는 주변의 소문 등은?
답_ 소식이 전혀 없었는데 한 십 몇 년 있다가 죽었다는 말을 어떤 사람이 해 줘서 돌아
가셨다고 알고 있어요. 중국에 통화를 해서 편지가 왔어요. 나한테 얘길 하는데 식구들
도 몰라요. 나만 알지. 돌아가셨다는 말해서 뭘 해요. 그래서 제사 날짜도 몰라요. 그냥
돌아가셨다는 말만 들었죠. 처음엔 개성 가다가 쏴 죽였다는 사람도 있고 판문점에서 쏴
죽였다는 사람도 있고 얘기가 많더라고요. 확인된 얘기는 아니지만, 개성 가서 아는 사
람들을 만나서 좀 있다가 총살당했다고 그러더라고요. 개성 입구인가에서 60명인가 쏴
죽였다고 그래요. 내가 식구들한테는 말을 안 했는데 그렇게 들었어요.


납치 이유
<대한청년단 활동을 한 것이 이유라고 추측>


문_ 납치 이유는?
답_ 대한청년단 활동도 하고 그러니까 악질 반동이라고 그래서 납치당했다고 알고 있어요.
문_ 적십자사, 정부나 관청 등에 신고는?
답_ 할 수도 없고 할 줄도 몰랐고. 수색에서 배급도 못 타고 그러니까 어린 마음에라도
다들 배급 타서 먹는데 우린 없어서 비지나 끓여먹고 하니까 속상했죠. 그러다 파주 군
청에 있는 사람한테 아버지 친구가 있다는 말을 듣고 납치됐다는 확인을 부탁을 해서 배
급도 타게 된 거죠.
문_ 남은 가족들의 현재 생존 여부는?
답_ 지금 형님이 돌아가셨고 어머니 돌아가셨고 아버지도…. 셋 빼고는 다 있죠. 어머니
는 한 4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문_ 남은 가족들이 납북자에 대해 묘사한 말은?
답_ 모르죠. 그 당시에는 어머니가 병에 걸려서 사람 취급을 안 했으니까. 살아 계셔도
워낙 시골에서 공부도 못 하고 그랬는데 아시겠어요?
문_ 남은 가족들이 배급을 받으며 살았던 이후에는 어떻게 사셨나요?
답_ 그 이후로는 석탄 장사하고 동생은 이발소하고 나는 장사하고 그러다가 군대에 갔고
그랬죠. 전쟁 끝나고 계속 수색에 사는 거에요.


연좌제 피해
<특별한 것은 없음>


문_ 연좌제 피해는?

답_ 그런 건 없었어요. 군대 가서 (아버지가) 납치됐다고 하니까 연락병 뽑을 때 안 뽑더
라구요. 아버지 실종됐다고 하니까 언제 그랬냐고 해서 6·25때 그랬다니까 나가라고.
그런 것밖엔 없었어요.


호적 정리
<구청에서 자동 정리함>


문_ 납북자 호적 정리는?
답_ 호적 정리는 안했는데 아버지가 없더라고요. 그 전엔 있었는데. 몇 십 년 되니까 구
청에서 정리를 한 것 같아요.
문_ 남은 가족의 납북자와의 추억은?
답_ 나는 아버지하고 시장도 가고 병원도 다니고 그랬죠. 나밖에 몰라요. 누이는 시집가
서 살고 있고 형님도 돌아가셨고. 얼굴은 나밖에 모른다니까요 아버지가 어떻게 생기셨
는지. 개성 마을도 가고 창경원도 가고 그렇게 놀러 다녔죠, 저는. 어머니는 안 다녔어
도 나는 아버지랑 다녔죠. 형이 여기에서 중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아버지가 돈 주는 것
도 봤거든요. 쌀도 보내주고. 형님은 서울에서 학교 다녔어요. 경기고등학교에. 형님은
공부를 좀 했어요.
문_ 납북자가 회원님에게 특별히 하신 말씀은?
답_ 그런 건 없었어요. 공부 열심히 해라 그런 것 밖에는.
문_ 형님이나 누님은 아버님에 대한 말이 없는지?
답_ 없어요.
문_ 현재까지 납북된 가족을 찾기 위한 노력은?
답_ 노력 할 길이 없잖아요. 납치당하는 걸 뻔히 봤는데 어떻게 해요? 소식 들을 길도 없
고. 이북으로 넘어간 걸 어떻게 찾아요. 그리고 죽었다는 소릴 들었는데…. 못 찾죠.


정부의 노력
<없었음>


문_ 납치 후 정부의 대처 및 지원 노력은?
답_ 전혀 없죠. 배급 다 같이 주는 것 말고는.
문_ 적십자사, 정부나 관청 등에 신고는?
답_ 안 했어요. 몰라서 못 한 게 아니라 그 당시에 아버지 밑에 세 사람이 1, 2, 3소대에
있었는데 아버지 심복이었거든요. 그 사람들이 다 이렇게 저렇게 대신 신고를 해줘서.
문_ 그 분들의 다른 도움은 없었나요?
답_ 없었어요. 대충 신고만 하고 가버렸으니까.
문_ 피난 나올 때 재산이나 집은 못 찾았나요?
답_ 집은 폭격을 맞아서 다 타버렸고, 토지는 있는데, 있어도 소용없잖아요. 탱크 막는
다고 싹 밀어서. 우리는 가지도 못 하고. 거기 가려면 신원확인 다 하고 가야 돼요. 친구
들이 거기 아직 살아서 가끔 가요.
문_ 아버님이 붙잡혀 가실 때 같이 붙잡혀 간 분들은 모두 못 돌아오신 건가요?
답_ 못 돌아왔어요.
문_ 잡혀간 분들 가족들하고는 연락을 안 하시는지?
답_ 안 해요. 하도 오래돼서 이제 봐도 모를 거에요. 내 나이 되어서 학교 동창들이나 알
지. 한 동네 살아도 다 몰라요. 60년이 넘었는데 지금 어떻게 알아요.
문_ 붙잡혀간 가족들도 찾으려는 노력을 할 경황이 없었나요?
답_ 없었죠. 내가 아버지 사진을 찾으려고 했는데 동네가 다 불타버려서 그럴 수도 없
었죠.
문_ 회원님 가족은 그 때 방공호에 들어가 계셨다는 건가요?
답_ 그렇죠. 비행기가 드럼통을 떨어뜨려서 불바다가 됐는데 비행기가 70~80대가 떴
어요. 그래서 동네가 다 불타니까 여기저기 송장만 남았지. 동네가 하루 만에 다 없어졌
어요.
문_ 돌아가신 분들도 많았겠네요?
답_ 많죠. 논도 벼 베어놓은 것도 그렇고 싹 다 타버렸거든요.
문_ 납치 시기는 기억이 안 나시는지?

답_ 가을쯤 된 것 같은데…. 짚단이 있었으니까.


정부에 바라는 말
<전쟁 전 파주 장단면의 개인 땅을 정부가 소유하고 있는데 원래의 소유주에게 돌려주었
으면 하며, 납북자의 유골이라도 송환되었으면 함>


문_ 현 정부, 대한민국 사회에 바라는 점은?
답_ 없어요. 나중에라도 지금 고향에 땅 조금 있는 거 정부에서 다 가진다고 하더라고
요? 전쟁이 났는데 개인의 땅을 정부에서 가지는 게 말이 되는 거에요? 주민들한테는 권
한이 없대요. 파주 군청에 아는 사람이 있다면서 들었다고 그래요. 그래서 지금 신문에
나오잖아요. 땅덩어리 판다고. 그걸 왜 농협에서 팔죠? 남의 땅을? 내가 볼 땐 그게 이상
하다고 봐요. 전쟁이 나서 피난 갔는데 왜 정부에서 개인 것을 가져 가냐고요. 그게 말이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정부에서 가져간 땅이라도 다시 돌려주면 좋겠다는 거죠. 통일촌
쪽에는 또 땅을 거래하고 그래요. 많진 않아도 비무장지대인데 거긴 거래가 돼요.
문_ 그럼 그런 걸 문의 해보셨나요?
답_ 아니요. 거기 사는 사람도 가만히 있는데 내가 문의했겠어요? 신문에 보니까 우
리 바로 옆 동네도 그렇고 판다고 신문에 나오더라고요. 그게 이상해서 어떻게 된 일인
지…. 내 땅이라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거죠. 이미 반세기가 지났는데 아버지도 그
렇고 생사확인도 다 된 거고 지금 바란다면 혹시 잘 되서 유골이라도 받아서 묘라도 하
면 좋겠는데…. 지금 아버지 제사는 어머니하고 한 달 차이로 지내고 있어요.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문_ 피랍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답_ 돌아가신 분한테 할 말이 있겠어요? 고생은 안 하시고 사셨지만 하늘에 가셔서 편하
게 계셨으면 좋겠어요. 자식들 걱정 안 하시고 사셨으면 좋겠어요.
문_ 다른 분들은 건강하게 지내시는 거죠?
답_ 형님하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거지 다른 사람들은 건강하게 살아요. 그 때 생각하면
기가 막히죠. 나올 때도 기찻길이고 도로고 전부 다 시체고 그랬는데…. 비행기가 기찻
길에 쏘는 바람에. 배 타고 가도 비행기가 어디서 나타나서 쏴서 배가 날아가고…. 우리
식구는 아버지만 납치당했지 다 살아서 고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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