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사업증언채록

증언채록

납북자-조수준(증언자-조종숙)
이름: 관리자
2017-01-26 15:37:32  |  조회: 1589

조 수 준( 趙秀俊)
2016. 4. 11. 채록


피랍인
생년월일: 1912년 8월 1일
출생지: 강원도 횡성군 횡성면 읍상리 315번지
당시 주소: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 350-32호
피랍일: 1950년
피랍장소: 자택
직업: 강원도 춘천 이재과장, 관재처장
직계/부양가족: 배우자, 2남 4녀
외모/성격: 키가 크고 운동을 잘함.


증언자
성명: 조종숙
관계: 장녀
증언성격: 간접증언


특이사항(납치주체/상황/원인)
• 해방 후에 강원도 춘천에서 이재과장과 관재처장으로 재직했으며, 횡성에서 국민회 회장과 당시 사정국
(중앙정보부와 비슷한 역할을 했던 기관)의 부총감으로 활동했는데, 이것이 납치 이유로 판단됨.
• 전쟁 당시 6남매를 두고 피난할 수 없어 서울 집에 있다가 납북자의 형이 조흥은행 본점 맞은편의 미림라
사를 운영하고 있어서 그 곳에 숨어있었음. 그러다 잠시 집에 와 있는 사이 동네 이웃이 밀고하여 8월 2
일 인민군 두 명이 와서 자술서를 써야 한다고 성북경찰서로 끌고 갔음.
• 중앙도서관, 국립도서관에 정치범들이 많이 수용되어 있었는데 그 곳에 있던 한 사람이 집으로 와 납북
자가 그곳에 붙잡혀 있다는 소식을 들었으나 아이들과 먹을 것이 없어 음식을 가져다주지 못함.
• 자유당 때, 『신동아』에 납북자의 이름과 함께 조소앙, 안재홍 등 네 명이 아오지탄광에서 고생을 하고 있
다는 기사가 난 적 있음.

직업 및 활동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동일은행 직원으로 일하다 해방 후 강원도 춘천 이재과장, 관재
처장으로 재직하였고, 강원도 춘천 국민회 회장 및 사정국 부총감으로도 활동함>
문_ 증언자의 성함, 생년월일 및 납북자와의 관계?
답_ 1936년생 6월 25일 입니다. 이름은 조종숙. 납북된 분은 아버님이에요. 제가 장녀
입니다.
문_ 납북자의 성함, 생년월일, 출생지 및 거주 지역은?
답_ 조수준. 생년월일은 1912년 8월 1일. 양력으로. 출생지는 강원도 횡성군 횡성면
읍상리 315번지. 그 당시 거주 지역은 서울시 동대문구 신설동 350-32호.
문_ 납북자의 당시의 직업과 출신 학교는?
답_ 경기중학교 나왔어요. 그리고 서울법대 나오시고. 강원도 횡성에서 수재라고 소문
이 났었죠. 직업은 그 당시에 법관으로 들어가면 일본인 앞에서 한국 독립군들 조사해야
되니까 그건 안 하겠다고 하시고 당시 동일은행에 들어가셔서 해방 전까지 생활을 하셨
어요. 해방 후에는 강원도 춘천에 이재과장하고 관재처장 두 가지를 역임해서 저희는 횡
성에 있었고 아버님께서는 강원도청인가 거기 계셨어요.
문_ 납북 당시 가족 구성원과 수는?
답_ 아버지, 어머니, 저, 남동생 둘, 여동생 셋 해서 2남 4녀.
문_ 납북자의 경력 및 사회 활동은?
답_ 강원도 횡성에서 국민회 회장으로 계셨다는데 자세한 건 초등학교 때니까 잘 몰랐
죠. 그리고 6·25 전에 아버지가 사정국이라고 지금으로 말하면 중앙정보부 같은 곳이
래요. 거기 부총감으로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인민군이 와서 그 소리를 들었어
요. 조수준 집 뒤지면 무기가 나올 거라고. 아버지가 무기를 갖고 다녔는데 그 무기가
여운형씨가 쓰던 권총이래요. 그런데 아버지가 나 같은 게 무슨 권총이냐고 도로 갖다가
반환한다고 갖다 주시고. 그리고 전차를 많이 이용 하셨어요. 자가용이 나와도 가스 한
모금 안 나오는 나라에서 무슨 자가용이냐고 반환하고 그랬어요. 그래서 아버지 친구 박
병교라는 양반이 너는 진정한 내 친구라고 하면서 납북된 뒤에도 애를 쓰고 그랬었죠.
문_ 납북자의 외모 및 성격 등의 특징은?
답_ 성격이 좋으셨대요. 저희 6남매를 주말이면 항상 데리고 나가시고. 우리 어머니 말씀이 키도 크시고 잘생기시고. 운동을 좋아하셔서 야구도 잘 하고 럭비도 잘 했대요. 서
울 운동장 가서 뛰면 여자들이 쫓아다녔다고 그러더라고. 그런데 집안이 농사짓고 그러
니까 일본에 가고 싶었는데 못 가셨대요. 해방되기 전에 피난을 가잖아요? 그러면 옛날
헛간 같은 데다가 글씨를 쓰셨는데 잘 쓰셨대요. 그런데 그런 걸 시골에서 제대로 관리
를 안 해서…. 어머니가 저하고 남동생을 피난시켜 놓고 안국동에 사셨거든요. 그런데
오셔서 다 모았는데도 많이 없어졌다고 그러더라고요. 어머니께서 가지고 계시면서도
6·25 나고 먹고 살기 힘들어지니까 이사 다니면서 없어졌어요. 우리 어머니께서 고생
많이 하셨어요. 우리 6남매가 공부는 잘 해서 큰 남동생이 연대 정외과 나왔어요. 둘째
남동생은 서울대학 의과대학 나오고. 지금 미국에서 정신과 의사잖아요. 여동생도 셋인
데 이대 사회과 나오고 뭐 하나는 일본에서 살고 막내는 거기에서 의사남편이랑 살고.
문_ 피난은?
답_ 피난을 못 갔어요. 우리 큰 집이 인사동에 있었는데 6·25나던 날은 총성이 나는데
우리 6남매하고 큰 집 식구들하고 이불 뒤집어쓰고 있었던 기억이 나요. 거기에서 하룻
밤인가 자고 나서는 도로 집으로 왔죠. 아버지가 이북에서 쳐들어온 게 혁명이라고 하더
라고요. 그 때 내가 5월 25일 무슨 선거에서 아버지가 낙선하셨어요. 그래서 돈도 없고
어려웠죠. 그런데 아버지가 피난을 못 가요. 6남매에 막내가 돌도 안 지나서. 우리 어
머님을 두고 못 가셨는데, 큰외삼촌이 강원도 횡성에서 올라오셔서 자네 이렇게 있으면
잡혀가니까 피난 가자고 했어요. 그래서 할 수 없이 미림라사라고 조흥은행 본점 맞은
편 상점에 숨어 계시다가 나중에 돌아오셨어요. 아버지가 어머니하고 7살 차이가 나는
데 애처가셨어요. 그래서 못 가셨지. 그런데 누가 동네에서 찔렀죠. 집에 한 번 왔을 때
자술서를 쓰라고 그런 것 같아요. 아버지가 무슨 자술서냐고 그랬는데 그 이튿날 도망을
갔으면 됐는데 식구들한테 피해가 있을까 봐….


납북 경위
<동네 사람이 밀고하여 인민군 두 명이 와서 자술서를 써야한다며 성북경찰서로 잡아간
후 소식이 없음>


문_ 그럼 아버님은 어떻게 붙잡혀 가셨는지?
답_ 그냥 두 사람이 와서 자술서를 쓰라고 하며 붙잡아 가고 우리 남동생이 그 때 자전거
가 있었어요. 그래서 엄마가 그거 타고 쫓아가 보라고 그랬어요. 그래서 성북서에 붙잡
혀 들어가는 것까지 봤죠.
문_ 납치자의 용모 및 신분 확인은?
답_ 인민군 경찰관 둘이 왔어요. 협박하진 않고 가자고 그러니까 아버지가 난 죄가 없으
니 가도 금방 나올 것이다 라고 하고 가셨죠.
문_ 납치 당시 납치자가 한 말은?
답_ 따로 말도 없고 그냥 물 한 그릇 달라 그래서 갖다 드리고 그러고 끝이에요.
문_ 납치 장소는?
답_ 중앙도서관, 국립도서관에 정치범을 다 수용했는데 한 사람이 나오더니 저희 집으
로 왔어요. 저희 아버지 이름을 대면서 밥 좀 해다 드리라고. 배고파서 애를 쓰시더라고
했어요. 거기에서도 그 양반을 반장을 시켜서 의자에 앉히고 우리는 밑에 앉혀 놨다고.
어머니가 먹고 살기 힘이 드니까 한 번도 못가셨죠. 6남매 먹이려고 재봉으로 팬티를 만
들어서 동대문 시장에 걸어가서 가져다 팔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한 보따리씩 해서 팔아
서 쌀도 좀 사오고 그랬죠.


납치 후 소식
<중앙도서관에 수용되어 있다가 나온 사람에게 그곳에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음>


문_ 탈출해서 돌아온 사람의 증언 또는 주변의 소문 등은?
답_ 아버님이 국립도서관에 계시다고 그랬는데 어머님이 한 번도 못 가셨어요. 쌀도 없
는데 너네 먹이기도 힘든데 어떻게 가냐고. 그러다가 9.28수복 때 이후로 영영 소식이
없었죠. 그 사람한테 들은 게 마지막이에요.
문_ 납치 시기와 당시 증언자 나이는?
답_ 8월 1일에 납치되셨는데 그 때 내 나이는 14살.
문_ 아버님 납치일과 생신이 같은 날인데….
답_ 그래서 제사를 지내도 생일에 지내야 된다고 했어요.
문_ 아버님이 납치되기 전 일상을 기억나는 대로 말씀해 주세요.
답_ 아침에는 밥도 못 드시고 죽이죠. 그래서 배가 고파서 애를 쓰고. 아버님 계실 때 자
전거를 가지고 시골에 옷을 가져가서 감자랑 바꿔 오신 것 같았어. 식구들이 굶어 죽게
생기니까. 그래서 붙잡혀 가셨지. 그 때 누가 찔렀다고 그랬는데 그 사람이 옛날에 우리

집에서 세를 살던 사람인데 한 번 크게 싸우고 집을 나갔대요. 상당히 우리한테는 안 좋
은 감정이 있었겠지.


납치 이유
<지금의 중앙정보부와 비슷한 역할을 한 사정국에서 부총감으로 일한 것이 납치 이유라
고 함>


문_ 납치 이유는?
답_ 국회의원 두 번 나오셨지. 어머니가 죄가 뭐냐고 물어보니까 사정국에서 일했던 것
때문에 붙잡혀 갔다고.
문_ 아버님이 붙잡혀 가신 뒤 인민군이 자주 찾아 왔는지?
답_ 날마다 왔어요. 그래서 총 내 놓으라고. 그랬는데 어머니가 부녀회장을 하고 그래서
인민군이 온다고 그러면 알려줘서 숨고. 그 당시에 어머니가 일부러 통반장 비슷한 걸
봤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많이 구해줬어요. 피난도 시키고.
문_ 전쟁 중 납북된 가족을 찾기 위한 노력은?
답_ 어머니가 찾으러 갔죠. 아버지 옛날 초등학교 다닐 때 담임선생님이 오셔서 대성통
곡을 하시더라고. 조수준 같은 천재를 뺏겼으니 어떻게 하냐고. 그래서 시체를 어디서
찾냐고 하니까 수색 같은데서 많이 죽였다고 하더라고요. 찾으러 갔는데 없더래요. 그
런데 나중에 많이 지나고서 신동아인가에 나왔는데 우리 아버지하고 조소앙, 안재홍,
그리고 또 한 사람 네 명이 아오지탄광에서 고생을 하고 있다고 기사가 났어요. 언제인
지는 기억이 잘 안 나요. 자유당 때인데….


남은 가족의 생활
<어머니가 가족들을 이끌고 피난을 다니고, 자녀들을 교육시켜서 현재는 모두 잘 살고 있
고 어머니는 89년도에 돌아가심>


문_ 9·28수복 후 서울에 계속 사셨는지?
답_ 살았죠. 그러다 1·4 후퇴 때 피난 갔어요. 제가 외갓집이 강원도 횡성인데 부자니
까 거기 가서 밥이나 실컷 먹자고 그랬더니 어머니가 안 가세요. 너네 거기 가면 공부도
못 한다 난 너희들 여기에서 공부시킬 거라고. 그래서 그 당시 미군의 누런 담요를 염색
하면 자주색 되고 그랬는데 그게 잘 팔리더라고요. 그래서 그걸 한 보따리씩 만들어서 동
대문 시장에서 다 팔고 오고 그랬어요. 그랬는데 1·4 후퇴 때 피난 가자고 그랬더니 아
버지가 그렇게 됐는데 무슨 피난이냐고. 그래서 피난도 안 갔어요. 그런데 옆집이 피난
을 갔는데 우리는 안 가니까 무서워 죽겠더라고요. 우리는 어리니까 뭘 알아요? 그래서
피난 가라니까 강원도 횡성으로 가라고. 우리 외삼촌이 큰 트럭을 가지고 횡성으로 식구
들 데리고 피난 간다고 가는데 어머니가 우리를 거기까지만 데려다 달라고 하셨어요. 그
래서 우릴 횡성에 내려다 놔서 거기에서 살았죠. 그랬는데 군인들이 후퇴를 하는데 공병
단이 맨 마지막에 가면서 다리를 끊고, 길을 망가뜨리고 가고 있었어요. 거기 장교, 소
위, 중위가 우리가 피난 가있던 뒷내개울 가기 전에 소작인이 살다 버리고 도망간 집에
들어 왔더라고요. 맨 마지막으로 후퇴한다고 그래서 어머니가 카메라 같은 걸 주면서 후
퇴하는데 우리 좀 데려가 달라고 했죠. 그러다 외갓집이 대지주라 쌀이 많아 쌀밥을 해주
고 친해져서 한 달인가 머물렀어요. 그래서 피난 갈 때 우리를 태우고 피난을 갔어요. 원
주를 지나 제천까지 갔는데 거기에서 들통이 나서 이후론 못 데려가겠다고 하더라고. 그
래서 나하고 걷지 못하는 식구들 열 다섯 명만 데려가 달라고 해서 우리만 태워서 왔는데
제천에서 어머니는 나중에 피난을 왔죠. 어떻게 제천에서 만나서 대구로 가야 되는데 도
저히 차가 없으니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이 15명만 다시 영주까지 데려가고 당신네들은 도
보로 해서 만나자고 영주까지 데려다 줬죠. 가는 도중에 단양에서 인민군들이 도망가면
서 총격전이 난다고 군인 트럭이 못 간다 그래요. 한 두 대는 못가고, 열 대 이상이 모여
서 산에 잠복하고 있다가 다 민다고 그래요. 그래서 단양에서 우체국에 우릴 풀어놓더라
고요. 그 때 별안간 소리가 나더니 인민군이 쳐들어 왔으니 책상 밑으로 들어가라고 그러
더라고. 그래서 할 수 없이 하룻밤 새우고선 열 몇 대가 거길 넘어갔어요. 거기가 영주더
라고. 우리 어머니는 제천에서 헤어져서 도보로 영주로 가는데 미국 사람들이 제천을 넘
어 가는데 막 타이어를 닦더래요. 그러면서 부산 가냐고 그래서 대구 간다고 그랬더니 타
라고 그러더래요. 그 때는 강간도 하고 그랬으니까 이모가 안 탄다는 걸 이래저래 죽는데
이판사판이라고 어머니가 그래서 차를 얻어 타고 영주까지 갔대요. 그런데 미국사람이
영주까지 간다는 걸 잘못 들어서 예천에 데려다 놨대요. 잘못 내려놓고 미안해서 도망을
가는데 예쁜 색시 왔다고 군인들이 쫓아 왔는데 결국 걸어서 영주까지 와서 만났어요. 우
리는 대구가 목표였는데 거기에서 그 탁소위라는 사람이 영천까지는 데려다 줬어요. 영
천에서 또 대구를 가려고 하니까 어머님이 탁씨 잖아요? 그런데 거기 졸병 하나가 여기
탁소위가 유명한데 한 번 만나보라고. 탁씨는 희성이라 다 친척이이에요. 그래서 탁소위
를 만나 한 달 동안 방을 줘서 편하게 살았어요. 그러다가 우리는 대구를 가야 된다고 그
래서 트럭을 하나 얻어 줘서 피난 가서 잘 지냈지. 거기 피난 가서도 6남매 공부 다 시키
셨어요. 그러다가 서울에 와서는 숙대 교육학과에 가라고 그래서 거기 갔죠.


연좌제 피해
<없었음>


문_ 연좌제 피해는?
답_ 그런 건 없었어요. 남동생이 공부를 잘 해서 양정에서도 몇 백 명 중에 일등을 하고
작은 동생도 공부를 잘 해서 그런 건 없었어요.


호적정리
<사망처리함>


문_ 납북자 호적 정리는?
답_ 사망처리 했죠. 그래야 된다고 해서.
문_ 남은 가족들은?
답_ 다 미국에 가 있어요. 여동생 하나만 일본으로 시집가고. 어머님은 1989년 10월
24일인가에 미국에서 위암으로 돌아가셨어요.
문_ 남은 가족들이 납북자에 대해 묘사한 말은?
답_ 많이 하셨죠. 나는 너희 아버지랑 살면서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 워낙 아버지가 이
해심이 많아서. 그런 말씀을 많이 하셨죠.


정부의 노력
<없었음>


문_ 납치 후 정부의 대처 상황 및 지원 노력은?
답_ 노력은 없었어요. 아무 것도 받은 게 없어.


정부에 바라는 말
<납북자가 언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만이라도 알고 싶음>


문_ 현 정부, 대한민국 사회에 바라는 점?
답_ 내가 바라는 건 아버지가 붙잡혀 가셔서 언제 어디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았으면
좋겠어요. 저번에 노무현 대통령 때도 이산가족 상봉 때 가라고 그랬어요. 그런데 우리
남편이 자기 친구가 갔는데 후회하더라고요. 여동생을 만나고 왔는데 여동생이 1년 있
다가 돈 좀 또 달라고 그래서 차라리 안 만날걸 그랬다고…. 나머지 사람들도 다 가지 말
라고 하더라고요. 이북이 하도 거짓말하고 그런 사람이 많아서 가지 말라고.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문_ 피랍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답_ 아버님이 살아 계시지도 않을 텐데, 돌아가셨으면 천당에 가서 어머니하고 오순도
순 사실 텐데. 내가 기도할 때 그래요. 예수 그리스도님, 두 분이 재미있게 사시라고.
꼭 그래요.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183 납북자-오남택(증언자-오순이)
관리자
17-03-16 1535
182 납북자-오해건(증언자-오경자)
관리자
17-03-16 1449
181 납북자-곽한봉(증언자-곽천병)
관리자
17-03-16 1227
180 납북자-김옥진(증언자-김일성)
관리자
17-03-16 1186
179 납북자-이규호(증언자-이종열)
관리자
17-03-16 1299
178 납북자-유정열(증언자-유지순)
관리자
17-03-16 1401
177 납북자-이종식(증언자-이재호)
관리자
17-01-26 1472
176 납북자-박영근(증언자-박옥순)
관리자
17-01-26 1339
175 납북자-이화실(증언자-이영석)
관리자
17-01-26 1486
174 납북자-조수준(증언자-조종숙)
관리자
17-01-26 1588
173 납북자-김구민(증언자-김호길)
관리자
17-01-26 1439
172 납북자-심동구(증언자-심인복)
관리자
17-01-26 1400
171 납북자-유창열(증언자-김수영)
관리자
17-01-26 1589
170 납북자-강신원(증언자-강석문)
관리자
17-01-26 1460
169 납북자-최준경(증언자-최수길)
관리자
17-01-26 1324
168 납북자-유원순(증언자-유재민)
관리자
17-01-26 1414
167 납북자-이순임(증언자-이종철)
관리자
17-01-26 1410
166 납북자-정관만 (증언자-정학운)
관리자
17-01-26 1348
165 납북자-권두한(증언자-권오건)
관리자
17-01-26 1568
164 납북자-염준모(증언자-염세환)
관리자
17-01-26 1854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