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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박영근(증언자-박옥순)
이름: 관리자
2017-01-26 16:13:55  |  조회: 1144

박 영 근( 朴英根)
2016. 4. 18. 채록


피랍인
생년월일: 1934년경 (9월)
출생지: 강원도 인제군 남면 신월리
당시 주소: 강원도 춘성군 북산면 상수내리
피랍일: 1950년 12월
피랍장소: 춘천 방앗간
직업: 농업
직계/부양가족: 조부모, 부모, 작은 아버지 (군인), 7형제
외모/성격: 순진하고 착한 성격


증언자
성명: 박옥순
관계: 누이동생
증언성격:  간접증언


특이사항(납치주체/상황/원인)
• 피난 갔다가 돌아와 보니 1·4 후퇴 때 인민군들이 젊은이들을 다 붙들어가는 것을 보고, 방공호를 파서
숨어있었는데 어머니가 아파서 방앗간으로 쌀을 얻으러 가게 되었음. 그 때 인민군들이 방앗간에 있던
오빠를 부르며 밖에 환자가 있는데 저기까지 메고 가라고 해서 나간 뒤 아무 소식 없음. 당시 오빠의 나

이는 17세였음.


직업 및 활동
<납북자는 17세로 맏아들이었고, 성격이 착하고 순진했음. 5학년까지 학교를 다니고 난
리가 나 농사일을 돕고 있었음>


문_ 증언자의 성함, 생년월일 및 납북자와의 관계?
답_ 박옥순. 1941년 5월 13일생입니다. 납북자는 오빠에요. 우리 맏이 오빠. 내가 세
번째고 두 번째 언니도 돌아가시고.
문_ 납북자의 성함, 생년월일, 출생지 및 거주 지역은?
답_ 박영근. 생년월일은 9월이라는 것만 알지 며칠인지는 몰라요. 지금 살아있으면 83
세 일거에요. 오빠 출생지는 인제군 남면 신월리. 전쟁 당시에는 상수내리에 살았어요.
지금은 강원도 양구인데 지금은 인제로 되어 있는 것 같아요. 내가 나올 때가 4살이었어
요. 강원도 춘성군 북산면 상수내리.
문_ 납북자의 당시의 직업과 출신 학교는?
답_ 직업이 없고 농사. 학교도 안 다녔었어요. 5학년인가 다니다가 난리가 나서 피난 간
것 같아요.
문_ 납북자의 외모 및 성격 등의 특징은?
답_ 외모가 아주 순진하고 착해요. 그래서 작은아버지하고 동갑이라도 일을 하러 가면
작은아버지는 놀고 오빠가 다 했어요. 작은아버지가 우리 엄마 젖을 먹고 컸기 때문에
같이 자랐어요. 그래서 할머니, 할아버지, 우리 동생들 다 한 집에서 살았죠. 작은아버
지가 제대하고 와서 같이 살다가 장가가서 따로 살았는데 형수님이라도 엄마같이 생각
한다고 하며 모셨어.
문_ 피난은?
답_ 피난을 충청도까지 갔다가 돌아왔어요. 걸어서 쌀이며 이불이며 싣고 나갔는데 들
어올 때는 다리도 다 끊기고 집도 다 타고 없어. 그래서 산골에 집이 있는 데 가서 살았
다니까요.
문_ 피난 간 날짜는 기억 하시는지?
답_ 그런 건 모르지.


납북 경위
<피난 갔다가 돌아와 보니 1·4 후퇴 때 인민군들이 젊은이들을 다 붙들어가는 것을 보
고, 방공호를 파서 숨어있었는데 어머니가 아파서 방앗간으로 쌀을 얻으러 갔었음. 그 때
인민군들이 방앗간에 와서 오빠를 부르며 밖에 환자가 있는데 저기까지 메고 가라고 하여
나간 뒤 아무 소식 없음>


문_ 납치 시기와 당시 증언자 나이는?
답_ 피난 갔다가 와서 동짓달 난리에 젊은 사람들은 다 붙들어 가잖아. 인민군들이. 그
래서 방공호를 파서 숨었는데 추우니까 불을 피워서 쬐고 있다가 불머리가 나서 똥을 다
싸고 그랬어요. 근데 엄마가 아파서 쌀을 얻으러 갔다가 붙들렸어요.
문_ 납치 장소는?
답_ 우리 친구가 춘천에서 사는데 방앗간이 저희 집이기 때문에 우리 오빠가 붙들려간
걸 다 알아.
문_ 납치 방법은?
답_ 방앗간에 들어가서 방앗간 주인(친구 어머니)을 데리고 오려고 앉아 있는데 인민군
이 와서 문을 열어보더니 젊은 사람이 있으니까 나와 보라고 그랬대요. 환자가 있는데
저기까지만 데려다 달라고 그랬대. 그래서 환자를 메고 갔는데 집에 안 오고 그 다음날
새벽같이 미군들이 들어와서 포를 차려 놓고 쏜 거에요. 우리 집에 가마솥에 물 데워서
미군들이 세수하고 그랬거든? 오빠가 안 오니까 할아버지가 가서 점을 쳤는데, 포항에
함정에 빠진 범이 있고 그물에 잡힌 고기라며 죽은 걸로 나온다고 그러더라고. 그 때가
동짓달 난리였어요. 6·25 나고 피난 갔다 와서 동짓달에. 그 때 비행기가 앵앵하고 다
니고 불빛만 보면 포격하고 그랬어. 그게 1·4 후퇴 때인지 나도 모르겠어요. 나도 학
교를 못 다녔어요. 피난 다니다 들어와서 시골에 학교도 없어. 그래서 학교를 가려니까
나이가 많아서 못 들어가요. 그래서 초등학교도 못 다녔다니까.
문_ 오빠가 붙잡혀 갔다는 사실은 어떻게 아셨는지?
답_ 붙잡혀 갔다는 걸 친구가 얘길 해서 알았지. 아버지가 이놈이 왜 안 오지하며 기다렸
는데 안 오고, 새벽같이 미군들이 들어왔어요. 이북사람들은 후퇴해서 들어가고 미군들
은 들어오고 그랬어요. 중국 놈들하고 한 달을 같이 있었다니까 우리가. 피난 갔다가 들어
와서 중국 놈들이 거기서 같이 밥을 해 먹었다니까. 그래서 아군들이 들어오니까 인민군,
중공군들이 다 후퇴해서 들어갔잖아. 그래서 폭격을 쏴서 엄청나게 죽었어요. 우리 사는
데 아군들도 죽었는데 군복을 입고 죽었는데 파리가 많아서 한 사람이 쫓고 다녀야 돼.

문_ 그 당시 식구는?
답_ 할머니, 할아버지, 오빠, 작은아버지는 군인이라 없고 아버지, 엄마, 동생 둘, 나
이렇게 살았지. 그 당시 오빠는 17살이었어요.


납치 후 소식
<없었음>


문_ 환자를 메고 간 뒤로 연락이 없는 건가요?
답_ 그렇죠. 그래서 아버지도 그 뒤로 병이 나서 1년인가 2년 있다가 돌아가셨어요. 내
가 14살 때 돌아가셨어. 엄마는 89세에 돌아가시고.
문_ 1·4 후퇴 때는 피난을 안 가셨나요?
답_ 네, 안 갔어요. 그 때는 그냥 살았어요. 중공군이 와서 가위 달라 뭐 달라 그래서 한
집에서 밥을 해먹고 그랬다니까. 해코지하고 그런 건 없었어. 개 잡아 달라, 닭 잡아 달
라 그러긴 했지만 해코지는 안 했어. 지금은 소양 댐을 막아서 고향 집이 물바다가 돼서
없어. 지금은 우리 집에서 높은 분들은 다 돌아가시고 이제 내 차례래. 내가 나이가 제
일 많다고. 지금 서울에 작은아버지가 한 분 계시는데 86이야. 그 작은아버지는 장교를
하셔서 여기저기 안 돌아다닌 데가 없어요.
문_ 전쟁 중 납북된 가족을 찾기 위한 노력은?
답_ 노력을 하는 게 아니라 찾을 수가 없죠. 그냥 포를 쏴서 이북으로 다 들어갔는데 아
군들이랑 미군들이 들어와서 그러니까 찾을 수가 없죠. 우리 오빠만 그런 게 아니라 그
친구 아빠도 붙들려갔다가 오다가 물에 빠져서 죽었어. 그래서 그 친구가 우리 오빠가
붙들려 간 걸 얘기해주더라고.
문_ 탈출해서 돌아온 사람들의 증언 또는 주변의 소문 등은?
답_ 없어요.


남은 가족의 생활
<아버지는 오빠가 납북되고 2년도 안되어 병으로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할아버지, 할머
니를 모시고 농사지어서 힘들게 생활>


문_ 오빠의 납치 이후 남은 식구들은 계속 거기에 사셨는지?
답_ 네. 농사짓고 살았죠.
문_ 남은 가족들의 현재 생존 여부는?
답_ 아버지도 병에 걸려서 돌아가시고 우리 어머님은 할머니, 할아버지 모시고 농사짓
고 사시다가 돌아가신 지가 8년 됐어요. 막내 동생은 환갑지내고, 61세에 뇌경색으로
죽고 6년 지났어요.
문_ 남은 가족의 피난, 생계, 양육 등은?
답_ 사는 게 힘들었죠. 시골에서 농사짓고 사니까.


호적 정리
<안 함>


문_ 납북자 호적 정리는?
답_ 안 된 것 같아요.


연좌제 피해
<없었음>


문_ 연좌제 피해는?
답_ 그런 건 없었어요. 서울에 계신 작은아버지는 장교로 제대하고, 3년 전에 돌아가신
작은아버지는 특무상사로 제대하셨어요. 그 작은아버지가 오빠랑 동갑이에요.
문_ 남은 가족의 납북자와의 추억은?
답_ 아까 말했지만 나무 해 오고 농사짓고 착하고 나를 데리고 다니며, 머래도 따고 토
끼도 잡고 그렇게 했다니까. 오빠가 너무 착해서 작은아버지는 건달이고 오빠는 농사일
을 잘 했어요.
문_ 남은 가족들이 납북자에 대해 묘사한 말은?
답_ 많이 했는지 어쨌는지 그 때는 내가 어려서 몰랐죠. 엄마가 많이 울었어요. 맏아들

문_ 납치 후 정부의 대처 상황 및 지원 노력은?
답_ 그런 거 없었어요. 난중이고 그러니까 전혀 없었지.


정부에 바라는 말
<별다른 것 없음>


문_ 현 정부, 대한민국 사회에 바라는 점은?
답_ 내가 뭐라고 말을 하겠어요. 우리 춘천 동생은 지금 보고서를 올렸는데 내가 그걸 뭐 하러 하냐고. 이미 죽어서 찾지도 못 할걸 하느냐 그랬는데 이 양반이 내가 못 살아도 남 못 사는 건 못 보는 사람이야. 그래서 오늘도 빈민들 지원하는 거 전화하고 그랬는데. 작은엄마가 시골서 농사를 지으니까 포도밭에서 일하다가 풀숲에서 소변을 봤대. 그런데 그게 들쥐 오줌에 오염이 돼서 열이 나고 설사를 하고 그래서 경희의료원에서 한 달을 호스를 맞고 살아나셨거든. 그 뒤로 밥도 못 잡수셔. 그래서 작은아버지가 개도 잡고 오리도 잡고 보신을 해 드렸단 말이야. 그래서 지금 80세인데 나보다 젊어 보여요. 잘 먹으니까. 그리고 도우미가 와서 9시부터 3시까지 밥 먹여주고 목욕 시켜주고 다 해. 작은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아무튼 그런데 우리 오빠는 죽은 것 같은 게 우리 아버지가 점을 봤는데 죽었다고 그러더라고. 우리 작은할아버지들은 다 이북에 계시고 안 나왔어요. 수철이, 수근이 뭐 다 이북에서 살아요.
문_ 이산가족 신청은 안 하셨나요?
답_ 안 했어요. 동생들이 연천에 사는데도 안 오는데 우리는 작은할아버지의 아들이니까 5촌뻘인데.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문_ 피랍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답_ 하고 싶은 말이야 오빠가 그 전에 나한테 잘 해주고 데리고 다니고 그랬으니 항상 오빠 생각이 나고. 작은아버지가 대신 오빠 노릇을 하고 그랬어요. 시집갔을 때도 오시고 그랬거든. 오빠 생각은 할 것도 없지 작은아버지가 오빠 노릇을 해 주시고 그랬으니까. 장가도 못가고 붙잡혀간 오빠만 불쌍한 거지.
이니까. 아버지는 얼마나 힘드셨으면 병이 나서 돌아가셨겠어. 병 난 것도 빨갱이한테 매를 맞은 거야. 우리가 이북에서 살다가 6·25 나기 전에 이남으로 나왔는데, 난리가 나니까 그 쪽에 있는 놈이 친구라는 게 나와서 밀고를 해서 빨갱이한테 매를 맞은 거야. 그래서 매를 많이 맞아서 열이 나서 돌아가셨다고.
문_ 아버님은 붙잡혀 간 뒤에 매만 맞고 다른 일은 안 당하셨는지?
답_ 인민군한테 붙잡혀 간 게 아니라 이장, 면장, 부장 한 사람들은 다 붙들어다 매를 때리고 그랬어. 우리 아버지 친구 하나는 돌로 쳐서 죽였대. 근데 아버지는 죽지는 않고 와서 돌아가셨지.
문_ 남은 가족들이 납북자에 대해 묘사한 말은?
답_ 하시긴 하셨지만 자잘하게 말씀은 안 하셨어요.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래 사시다가 돌아가셨거든? 그래서 할머니가 무척 무서웠어. 내가 작은아버지 사진이랑 오빠 사진이 있어야지. 그래서 대충 찾아서 가져왔는데. (사진을 보여주며) 엄마가 이렇게 생겼어요.
문_ 남은 가족들의 현재 생존 여부는?
답_ 나하고 우리 춘천 동생만 살아있어요. 원래 낳기는 7남매를 낳았는데 오빠, 언니, 나, 춘천 동생, 죽은 동생, 막냇동생, 여동생을 내가 업고 피난을 가다가 포성에 놀라서 눈이 경기를 한 걸 그냥 업고 가는데, 고개가 뒤로 넘어가니까 할아버지가 서 있으라고 불러요. 그래서 보시더니 죽었다고 그래서 그냥 돌돌 말아서 묻어놓고 피난을 갔다니까. 또 막냇동생은 아버지가 병나서 생긴 동생이야. 그런데 양잿물 마시고 죽었어. 그 전에는 우유가 없어서 꿀 같은 걸 타서 먹였더니 할머니가 빨래 삶으라고 양잿물을 하얀 통에 넣어놨는데 그걸 꺼내서 마셔서 소리를 질러서 나가 보니깐 애가 죽으려고 해서 비눗물을 갈아서 붓고 녹둣물을 붓고 그랬는데 그게 돼? 거기 1507 부대가 있는데 군인들한테 얘기해서 의무대 병원에 데리고 갔는데 일주일 만에 물 한 모금도 못 먹고 이빨도 말랑말랑하고 4일인가 있으니까 애가 누웠다가 일어나더니 피를 토하더라고. 그래서 죽었어. 7남매인데 지금 우리 둘밖에 없어 그래서. 우리 위로 오빠 언니가 없어지고 밑으로 동생 셋이 없어지고. 춘천동생은 74이고 나는 76이고.


정부의 노력
<없었음>


문_ 납치 후 정부의 대처 상황 및 지원 노력은?
답_ 그런 거 없었어요. 난중이고 그러니까 전혀 없었지.


정부에 바라는 말
<별다른 것 없음>


문_ 현 정부, 대한민국 사회에 바라는 점은?
답_ 내가 뭐라고 말을 하겠어요. 우리 춘천 동생은 지금 보고서를 올렸는데 내가 그걸 뭐 하러 하냐고. 이미 죽어서 찾지도 못 할걸 하느냐 그랬는데 이 양반이 내가 못 살아도 남 못 사는 건 못 보는 사람이야. 그래서 오늘도 빈민들 지원하는 거 전화하고 그랬는데. 작은엄마가 시골서 농사를 지으니까 포도밭에서 일하다가 풀숲에서 소변을 봤대. 그런데 그게 들쥐 오줌에 오염이 돼서 열이 나고 설사를 하고 그래서 경희의료원에서 한 달을 호스를 맞고 살아나셨거든. 그 뒤로 밥도 못 잡수셔. 그래서 작은아버지가 개도 잡고 오리도 잡고 보신을 해 드렸단 말이야. 그래서 지금 80세인데 나보다 젊어 보여요. 잘 먹으니까. 그리고 도우미가 와서 9시부터 3시까지 밥 먹여주고 목욕 시켜주고 다 해. 작은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아무튼 그런데 우리 오빠는 죽은 것 같은 게 우리 아버지가 점을 봤는데 죽었다고 그러더라고. 우리 작은할아버지들은 다 이북에 계시고 안 나왔어요. 수철이, 수근이 뭐 다 이북에서 살아요.
문_ 이산가족 신청은 안 하셨나요?
답_ 안 했어요. 동생들이 연천에 사는데도 안 오는데 우리는 작은할아버지의 아들이니까 5촌뻘인데.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문_ 피랍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답_ 하고 싶은 말이야 오빠가 그 전에 나한테 잘 해주고 데리고 다니고 그랬으니 항상 오빠 생각이 나고. 작은아버지가 대신 오빠 노릇을 하고 그랬어요. 시집갔을 때도 오시고 그랬거든. 오빠 생각은 할 것도 없지 작은아버지가 오빠 노릇을 해 주시고 그랬으니까. 장가도 못가고 붙잡혀간 오빠만 불쌍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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