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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곽한봉(증언자-곽천병)
이름: 관리자
2017-03-16 14:35:57  |  조회: 1228

곽 한 봉( 郭漢封)
2016.9.30. 채록


피랍인
생년월일: 1919년 5월 30일
출생지: 충청북도 옥산면 금계리 230번지
당시주소: 충청북도 옥산면 금계리 230번지
피랍일: 잘 모름. (장남이 7, 8세때)
피랍장소: 옥산면 금계국민학교
직업: 방직공장 책임자, 이장, 농업
직계/부양가족: 어머니, 배우자, 2남
외모/성격: 미남이고 성격도 좋고 한문도 많이 앎.


증언자
성명: 곽천병
관계: 장남
증언성격:  간접증언


직업 및 활동
<납북자 곽한봉은 1919년 5월 30일 충청북도 옥산면 금계리 230번지에서 살다가 영등
포 방직공장에서 책임자로 일하다 고향으로 내려와 이장 일을 하였고 인민군이 들어왔을
동네 사람들과 같이 끌려가 학살당함>


문_ 증언자의 성함, 생년월일 및 납북자와의 관계는?
답_ 곽천병. 생년월일은 1943년 4월 22일입니다. 저는 납북자의 장남입니다.
문_ 납북자의 성함, 생년월일, 출생지 및 거주 지역은?
답_ 곽한봉입니다. 생년월일은 1919년 5월 30일이고, 고향은 충청북도 옥산면 금계리
230입니다. 6·25때는 영등포 방직공장에서 근무하시다가 일본군 때문에 고향에 내려
왔습니다.
문_ 납북자의 당시의 직업과 출신 학교는?
답_ 할아버지가 재산이 많았습니다. 농토도 있지만 배운 게 많으니까 이장을 하셨습니
다. 출신 학교는 잘 모르겠습니다.
문_ 납북 당시 가족 구성원과 수는?
답_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남동생, 저 이렇게 살았습니다.
문_ 납북자의 경력 및 사회 활동은?
답_ 영등포에서 큰 방직공장 책임자로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바로 고향으로 내려 온 거죠.
문_ 납북자의 외모 및 성격 등의 특징은?
답_ 외모는 저보다 미남이고 성격도 좋았습니다. 한문도 많이 배웠고 할아버지가 훈장
이셨으니까. 고모님들도 글도 잘 알고 한문도 많이 알고 그랬습니다. 큰아버지도 청주
법원에 계셨습니다.


납북 경위
<날짜는 잘 모르지만 증언자가 7, 8살 무렵 금계국민학교에 아버지를 포함 200여 명이
묶여서 매를 맞고 38선을 넘어 끌려감>


문_ 6·25전쟁 도발 전 당시 상황은?
답_ 북한이 남침을 하는 바람에 잠깐 공산화가 됐었죠. 그 때 우리 동네의 금계국민학교
에 200여 명이 밧줄로 묶여 있더라고요. 인민군이 몽둥이로 두드려 패더라고. 비명소
리가 들리니까 한심스럽죠. 아버지도 두드려 맞으니까. 물론 이북으로 가지 않으려고
맞았겠죠. 그러다 보니까 어느 날 200여 명이 싹 없어졌더라고.
문_ 그 날이 언제인지 기억나시나요?
답_ 그건 나는 모르겠습니다. 나이가 어렸으니까.
문_ 납치 시기와 당시 증언자 나이는?
답_ 그 때 제가 7살이나 8살쯤 되지 않았나.
문_ 납치 방법은?
답_ 한 동네에 우리 동네 사람만이 아니라 다른 동네 사람들도 붙잡혀 왔었어요. 그러다
가 얼마 있다가 200여 명이 붙들려가더라고요.
문_ 아버님을 누군가 잡으러 집으로 왔나요?
답_ 그것은 모르죠. 왜냐하면 좌파도 있고 하니까. 그래서 다 잡혀 와서 운동장에 밧줄
로 묶여서 두드려 패는 것만 봤습니다.
문_ 납치 장소는?
답_ 그건 모르죠. 제가 나이가 어렸으니까. 어머니는 울고불고하고.


납치 후 소식
<북으로 같이 끌려갔던 고모부와 친척 형님은 탈출에 성공하여 살아 돌아왔는데 고모부
에 의하면 아버지가 탈출을 시도하다 총살당했다고 함>


문_ 어머님께서 누구 때문에 아버님이 붙잡혀 가셨는지도 못 들으셨나요?
답_ 그건 못 듣고 그 때 집안 형님도 있었고 고모부도 같이 붙들려 갔다가 38선까지 넘
어갔답니다. 그 때에 또 사람들이 이남으로 탈출하려고 했어요. 고모부는 무사히 탈출
했습니다. 아버지도 탈출하려다가 학살당하는 걸 봤다고 고모부가 어머니한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친척 형님은 아버지보다 나이가 좀 어렸는데, 가다가 산고개 길, 낭떠
러지에서 떨어졌다고. 그런데 인민군이 총을 쐈는데도 안 맞고 무사히 살아서 고향까지
와서 농사도 짓고 공장도 차려서 돈도 많이 벌었어요.
문_ 탈출해서 돌아온 사람들의 증언은 들어 보셨는지?
답_ 끌려가다가 밥도 못 먹고 두드려 패고 그런 상황이지만 말만 잘 들었으면 되는데 안
가려고 하니까 두드려 패는 거에요. 친척 형님은 나이도 젊고 그래서 낭떠러지에서 떨어
졌어도 용케 총에 안 맞고 살아서 왔죠.
문_ 고모부님이 탈출하셨다고 했는데 그 때 아버님이랑 같이 붙잡혀 가신 건가요?
답_ 그렇죠. 같이 붙잡혀 가시다가 38선 넘어서 탈출하다가 우리 고모부님은 탈출에 성
공했고 아버님이랑 몇 사람은 인민군이 총살하는 걸 봤답니다. 고모부도 살아야 되니까
도망 온거죠.
문_ 고모부 말씀으로는 아버님은 사살당하셨다고 하신 건가요?
답_ 그렇죠. 그걸 밤중에 어머님한테 말씀하는 것을 제가 들었죠.
문_ 고모부님한테 아버님이 남긴 말씀은?
답_ 그런 건 없어요. 끌려가는 판국에 무슨 좋은 말 하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탈출할까
그런 생각 뿐이죠.
문_ 아버님이 붙잡혀 가신 뒤 적십자사, 정부나 관청 등에 신고는?
답_ 안했어요. 사느라 바빠서. 우리는 어리지, 어머님은 먹고는 살아야겠지.
문_ 고모부님이 탈출하신 뒤 또 납치를 당하셨다고 하던데 언제 납치당하신 건가요?
답_ 그건 모르죠. 고종사촌들이 아버지가 또 납치당하셨다고. 그래서 여태 소식이 없
죠. 그러고 고모님은 시집갔어요. 그래서 고종사촌들은 외갓집하고 상대를 안 해요. 자
기는 큰 집에 떼어놓고 어머님은 시집 가버렸으니 외갓집을 원수로 여기더라고요.
문_ 그 후로는 소식을 못 들으셨나요?
답_ 집안 형님은 같이 가다가 중간에서 낭떠러지에 떨어져서 돌아온 거고.
문_ 동생은 그 당시 몇 살이었나요?
답_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입니다.


남은 가족의 생활
<외갓집이 잘 살았고 증언자는 농사를 짓고 살아옴>


문_ 남은 가족의 피난, 생계, 양육 등은?
답_ 우리 동네가 피난처에요. 그래서 서울에서 이사 간 사람들도 전부 피난오고. 굳이
피난 갈 이유가 없었죠. 그래서 쓸만한 사람들을 붙잡아 간 거에요. 피난 왔다가 좌파들
이 있으니까 이북으로 끌려간 겁니다.
문_ 가족들은 그 이후에 어떻게 사셨나요?
답_ 우리 외갓집이 순천 박씨입니다. 우리 할아버지가 벼슬을 해서 일제강점기 총독부
에 계셨어요. 재산도 엄청났고 종이 우리 집으로 먹을 걸 싣고 왔어요.
문_ 옥산에서 계속 사셨는지?
답_ 그렇죠.


연좌제 피해
<없었음>


문_ 연좌제 피해는?
답_ 안 당했어요. 내가 농사짓는 사람인데 취직할 사람도 아니고. 배운 사람들은 취직이
안 됐어요. 그러다가 나이가 차서 군대에 갔죠. 군대에서도 피해는 없었고. 이상하게 군
대도 좋은 자리가 있었어요. 제가 장기자랑을 잘 했거든요. 논산에서도 우리 조카가 조
교에요. 그래서 얼마나 편합니까. 그러다가 전방에 갔는데 우리 집안 할아버지가 5사단
장이셨어요. 그래서 거기서도 내가 장기자랑을 잘 하니까 구락단에 파견을 시키더라고.
그러다가 월남을 갔습니다. 거기서도 제가 배운 것도 없지만 의병 조장을 시키더라고
요. 문에서 권총 차고 있는 거. 이상훈씨가 대대장이었는데 같은 충청도 출신이고.


호적 정리
<호적 정리함>


문_ 납북자 호적 정리는?
답_ 했죠. 제가 결혼도 했고 애들도 있으니까 할아버지 돌아가셨는데 산소가 없으니 어
떻게 하느냐고 그래서 아버지 시신을 만들어서 상의를 해서 할아버지 밑에다가 묘를 썼
습니다.
문_ 남은 가족들의 현재 생존 여부는?
답_ 어머님은 7, 8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내 동생이 약간 머리가 안 좋았습니다. 그
런데 어떻게 간신히 결혼을 시켰지. 청주에서.
문_ 어머님은 몇 세에 돌아가셨는지?
답_ 87세에 돌아가셨습니다.
문_ 어머님이 아버님에 대해 하신 말씀은?
답_ 별 말씀 안 하셨어요. 행복하게 사셨으니까. 영등포 사실 때에도 금성호텔 그 분하
고 사돈 간이고 그래요. 고모부가 아버지가 학살당했다는 말을 했기 때문에 돌아올 거라
는 기대는 안 했죠.
문_ 어머님이 고생은 크게 안 하셨나요?
답_ 안 하셨죠. 고생은 제가 했죠. 땅을 줬으니 제가 농사를 지었죠.


정부의 노력
<없었음>


문_ 아버님이 납치된 후 정부의 대처 상황 및 지원 노력은?
답_ 없습니다.


정부에 바라는 말
<같은 민족끼리의 다툼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문_ 현 정부, 대한민국 사회에 바라는 점은?
답_ 글쎄요. 저는 월남전 다녀와서 1970년대에 마트를 했습니다. 10년을 하고 정리를
했어요. 인생은 이게 아니다. 그래서 집도 사고 땅도 사고 그랬습니다. 1980년대에는
내가 새마을 시장 해달라고 해도 안 했어요. 새마을 회장, 통장, 경찰서 위원장 등 엄청
났어요. 그렇게 봉사활동을 많이 했습니다. 대통령 표창도 두 개고.
문_ 희망사항은 없으신가요?
답_ 글쎄요. 우리 민족이 삼국시대부터 서로 싸웠습니다. 형제가 싸운 것이나 마찬가지
에요. 이건 도저히 안 됩니다. 한 민족이 이게 뭡니까? 만약 6·25사변이 안 터졌다면
저는 큰 인물이 됐을 겁니다. 만약 내가 잘 배웠으면 국무총리는 했을 거에요. 그래서
김일성이 남침을 해서 우리 민족이 얼마나 고생을 했습니까? 우리 아버지가 안 끌려갔
으면 나도 큰 인물 됐을 거예요.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문_ 피랍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답_ 어떻게든 숨어서 이북으로 안 끌려간 사람이 있습니다. 나중에 죽더라도 숨어서 안
갔으면 자식들도 공부 열심히 하고 엄마도 그 당시에 청춘 아니었습니까? 서른 둘에 과
부가 됐으니. 벌초 때는 동생하고 같이 하는데 제가 아버지한테는 잔을 안 놔요. 어머님
한테만 잔을 놓고. 그래서 동생이 왜 아버지한테 잔을 안 드리냐고 하면 제가 아버지 밉
다고. 어떻게 해서든 안 갔으면 됐을 걸 말이야. 그러면 동생이 그러지 마시라고.
문_ 남은 가족의 납북자와의 추억은?
답_ 저도 재주가 많았거든요 어릴 때에도. 아버지도 농사지으면서 대장간을 하신 게 생
각이 나요. 아버지가 원래 머리가 좋았어요. 그러니까 이장을 하면서 붙들려 간 거지.
아까운 인물이에요. 우리 아버지의 형님들도 다 법원 계통에 있잖아요.
문_ 아버님 제사는 하고 계신가요?
답_ 네. 아버지는 어머니 돌아가신 날로 해서. 무당한테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어머니
생일날 학살당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나는 그냥 어머니 돌아가신 날로 모시자. 그렇
게 신고를 했지.
문_ 어머님이 아버님이 어떻게 붙잡혀 갔다는 이야기는 전혀 하신 적이 없으신가요?
답_ 우리 어머님이 원망 같은 건 안 합니다. 아버지만 붙들려 간 게 아니니까. 금계국민
학교에 사람들이 붙들려 있었던 걸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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