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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권경정 (증언자-김옥분,권기영)
이름: 관리자
2013-09-16 10:22:44  |  조회: 2709


050518A 권경정 / 2005. 5. 18 채록
// 첨부: 문서 오른쪽 상단 차례로 배치 사진1 (피랍자:권경정), 사진2(증언자:김옥분 권기영)

피랍자
성명: 권경정
생년월일: 1920년 음력 4월 19일 (경상도 봉화 출생)
당시 주소: 서울시 마포구 도화동 71번지(마포 형무소 관사)
피랍일: 1950년 7월 초
피랍장소: 마포 형무소 부근 집 다락방
직업: 마포 형무소 간수부장
당시 직계가족/부양가족: 배우자(임신 중), 자녀 1남 1녀
외모 및 성격 : 키가 크고 호남형

증언자
성명: 1.김옥분(1928년생) 2.권기영(1945년생)
관계: 1.배우자. 2.장남
증언 성격: 직접증언 V 간접증언 V

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 납치상황 및 원인)
마포형무소 간수 부장으로 있던 피랍자의 가족은 마포 형무소 관사에 살다가 전쟁 즈음해서 상황이 나빠 인근에 작은 방을 얻어 거주함. 전쟁이 나고 형무소 문이 열리고 피랍자는 남쪽으로 피난을 가려 했으나 가족들이 걱정돼 남하를 포기, 7월 경 피랍자의 사촌의 뒤를 밟은 지방 좌익들에 의해 연행된 뒤로는 소식을 들을 수 없음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피랍자 생사 확인









‘이웃 동네 사람들이다’ 라면서 데려갔으니 누군지 몰라. 사변 나고 보니까 동네 사람이 다 빨갱이였어. 그 때가 여름이었는데 7월쯤이었겠지.

피난은 봉화 우리 친정으로 갔지. 가서 애들 데려나 놓고 나는 친정 밥 얻어먹고 있다가 장사했지. 휴우. 그만 물어요. 가슴이 터져. 고생한 거 말도 말고 그만합시다. 그 고생한 걸 어찌 다 말해.

직업 및 활동

<마포 형무소 간수 부장으로 근무 중 전쟁 발발>

Q : 당시 피랍자는 어떤 일을 하고 있었는지?
A(김옥분) : 마포 형무소에 간수부장으로 있었어

납북 경위

< 피랍자의 가족은 마포 형무소 관사에 살다가 전쟁 즈음해서 상황이 나빠 인근에 작은 방을 얻어 피신함. 7월 경 피랍자의 사촌의 뒤를 밟은 지방 좌익들에 의해 연행된 뒤로는 소식을 들을 수 없음>

Q : 당시 납치 상황에 대해 자세히 얘기해주시겠어요?
A(김옥분) : 6.25사변 나자마자 형무소 문을 확 여니까 끝이지 뭐. 죄인들도 나오고 하니까. 우리는 첨엔 형무소 관사에 있었는데 (상황이 안 좋아서) 도망가려고 방을 얻어 있으면서 남편에게 계속 부산으로 내려 가라고 했어. 그래서 남편이 강을 건너러 갔는데 가다가 생각해보니 애가 다섯 살 세 살짜리 있지. 나는 아기를 배고 있지. 그러니 셋을 두고 갈 수 없다고 도로 돌아 온 거야. 다시 왔다가 붙들려 간 거야. 안동에 사촌 동생들이 있었는데, 우리가 방을 줘서 우리 집에 같이 있다가 6. 25가 나고 며칠 동안 자기 집에 간다고 갔었어. 그러다 형님이고 형수고 하니 우리가 궁금해서 다시 집에 찾아왔는데 (그 놈들이) 그 뒤를 밟아서 따라서 들어와서 (남편하고) 걔들까지 셋을 다 잡아 간 거야. ‘이웃 동네 사람들이다’ 라면서 데려갔으니 누군지 몰라. 사변 나고 보니까 동네 사람이 다 빨갱이였어. 그 때가 여름이었는데 6월 아니면 7월쯤이었겠지. 장소는 서울 마포 형무소 근처였는데 잘 몰라….
A(권기영) : 6.25전쟁 나고 이듬해 1.4후퇴 때 저희들을 피난을 가게 됐는데 그 전에 저희 아버지가 납북된 경위는 아버지가 마포 형무소 직장을 떠날 수 없었기 때문에 아는 집 2층 다락방에 숨어있다가 지방 공산 당원의 밀고로 잡혀갔다고 알고 있습니다. 직장에서 후퇴하라는 얘기도 없었고 해서, 직장에 출근할 목적으로 인근에 숨어 계셨다고 들었어요.
납치 후 소식

<전혀 알 수 없음>

Q : 납치된 이후에 아버님 소식을 들으셨던 게 있으셨나요?
A(김옥분) : 전혀 몰라. 내가 그 길로 애는 배 있는데도 경찰서고 형무소고 사람 내노라고 안 간 데가 없는데 이놈들은 말이 똑같아. '곧 나갑니다. 집에 가 계세요.’ 전부 다 똑같은 말만 해. 밤낮 찾아 다녀도 못 찾아.
A(권기영) : 저희들 어머니가 백방으로 당시 인민 위원회라든지 여러 군데를 알아봤는데 알 수가 없고, 그 이후로 행방불명이 된 상태에요. 나중에 목격했다든지 하는 것도 없었고, 거의 소식이 두절된 상태에요
납북 후 남은 가족의 생활

< 피랍자의 처가 친정에 아이들을 맡기고 장사를 하면서 어렵게 생계를 유지함>

Q : 피난은 가셨는지?
A(김옥분) : 피난은 봉화 우리 친정으로 갔지. 가서 애들 데려나 놓고 나는 친정 밥 얻어먹고 있다가 장사했지. 봉화가 고향이고 하니. 휴우. 그만 물어요. 가슴이 터져. 고생한 거 말도 말고 그만합시다. 그 고생한 걸 어찌 다 말해. 다 지나간 얘기.

Q : 납치된 이후에 자녀들이나 식구들 생계는 어떻게 하셨는지?
A(김옥분): 피난 갔다 와보니 관사에는 아무 것도 없어. 세간 살이고 뭐고 하나도 없어.
다 가져가고 하나 없어. 내가 피난 갈 때 옷을 꿰매 많이 해 가지고 가서 시골에 그걸 하나씩 주면서 쌀 한 되 씩 받고 산 거야. 나중에는 애들 셋은 친정에 맡겨놓고 내가 장사했어. 처음에는 기름 장사에서부터….
A(권기영) : 어머니가 그 동안 작은 구멍가게도 하시고, 보따리 장사도 하시고, 나중에 식당을 하시게 됐는데 저희 3남매를 위해 많이 고생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호적 정리

<미정리>

A(김옥분): 호적정리 안돼있어. 그걸 어떻게 하는 지도 모르겠어.

정부의 노력

<전혀 없음>

Q : 당시 신고는?.
A (김옥분) : 곧바로 친정으로 내려가는 바람에 신고를 못했다고. 올라오지를 못해서 신고를 못했어. 그 당시 했으면 뭐라도 타 먹었을지 몰라도 못했다고.

Q : 정부에서 도와준 것은 없으셨나요?
A(김옥분) : 1원도 안 타 먹었어. 10월도 안 타먹었어. 내가 보따리 장사도 하고 옷 장사도 하고 다 했지. 그래가 살았어. 도움 받은 거라 봤자 친정에 애들 맡겨 놓은 거지. 내가 장사했으니까.

연좌제 피해

<없었음>

Q : 납치 이후에 정부나 관청의 감시는 없었는지?
A(김옥분) : 감시를 하기만 해봐. 내가 그냥 있는가? 애들 삼 남매를 두고 사람이 잡혀 갔는데 우리가 누구 때문에 그렇게 된 건데. 마침 친정 가는 차가 하나 있어서 봉화를 가려는 데 겨울 12월 동지 달 추운 날이었어. 그런데 차에 자리를 하나 안 내줘서 내가 경찰서를 찾아갔었어. 당신네들이 우리를 보호 안 해주면 누가 하냐고, 빨리 자리 만들어 달라고. 얼마나 울고 불고 난리를 쳤는지 몰라. 빨리 자리하나 만들어 달라고. 애들하고 얼어 죽기 전에 친정 가야 한다고..

Q : 그러면 연좌제 피해는 없었는지?
A(권기영) : 그런 건 없습니다. 공산당원도 아니고, 엄연히 국가 공무원이기 때문에 연좌제 관계로 피해를 본다든가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제가 어릴 때는 어디서 왔는지 모르지만 경찰서 계통 같아요. 어머니에게 아버지 관련해서 물을 적이 있는 것 같아요. 몇 번 있다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정부에게 바라는 점

<피랍자 생사 확인>

Q : 정부나 관청에 바라는 게 있으시다면?
A(김옥분) : 솔직히 정부가 우리 같은 사람들 좀 봐 줘야 한다고. 이렇게까지 냉정하게 그럴 수가 없는 거야. 우리가 형무소 간수부장으로 있었는데 이렇게까지 나 몰라라 하고. 아무것도 없어. 혜택이라곤 없다고. 우리네 자식들 사업하는 거 잘 하도록 도와준다거나 해야 되는데 도움이 뭐 있어? 해꼬지나 안 하면 다행이지. (어떻게 됐냐고) 묻는 놈 하나 없어.
바라는 거는 남북 통일되기나 기다리는 거야. 이제야 세월이 하도 흘러 더 바랠 수도 없겠지만 혹시 끌려가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그게 알고 싶은 거지…. 도움이야 삼 남매 데리고 피난 다니고 할 때 그 때 좀 돌보아 줬으면 얼마나 좋았느냐 그거지. 이제 이야기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어. 이제 뭐 우리 고생했으니 배상해 달라고 할 수가 있어? 무슨 소용이 있어. 정부 있으면 자기 배 불리기 바쁘지 우리 이렇게 고생한 거 누가 알겠어. 미안하다고 말 한마디 하는 사람이 있길 하나. 정부 소리는 하지도 말라고. 하다못해 떨어져나간 쌀이라도 한 주먹 주고 돌아 봐 준일이 있나? 말 한마디 해 준 사람이 있나? 정부 정치 바라지도 않겠지만 바라는 사람도 없어.
A(권기영) : 사실 소식이라도 알고 생사확인이라도 되면 마지못해 제사라도 지내드리고 또 호적정리도 해야 되겠고, 우선 이북에서 생사라도 확인되면 나름대로 그런 정리도 하고 그 외에 공무원이기 때문에 국가에 대해서 보상이라도 민원해 볼 수 있을 텐데 생사를 모르니 처리할 수도 없고 또 자라나는 자손들한테도 미안하고. 그러니 이북에서는 빨리 생사라도 확인해 줬으면 좋겠어요. 정부가 요청을 당연히 해야 하는 거고, 그게 정부에서 할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정부에서는 단 한 사람의 국민의 생명이라도 소중히 여겨주셔서 미국만큼은 못되더라도 최대한의 노력은 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하고, 여태 생사를 모르고 지내는 가족들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조속히 결과가 나와 줘서 후손들이라도 고통 없는 앞날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피랍자에게 전하는 말
A(김옥분) : 이제는 보고 싶은 거 말해봐야 소용없는 거야. 이제는 죽은 사람이지 뭐. 10년 전까지도 기다려도 봤는데 이제는 소용 없는 일이야.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은 거 말할 수 없지만. 꿈에 한번 딱 보였는데 내가 부엌에서 일하다 보니 옷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어. 그러니 남편이 '옷이 그게 뭐야?' 그래요. 참 깨끗한 사람인데 마누라가 보니 그 모양이니 그랬나 봐. 그렇게 한 번 꿈에 보이고는 다시는 안 나타나
A(권기영) : 아버지. 정말 살아계신다면 하루 속히 소식이라도 전해 줬으면 싶습니다만 지금 연세로 봐서 생사관계도 확실히 살아있다고 보장할 수도 없는 입장인데 마지막이라도 혹시 살아계신다면 그 동안 못다한 효도의 기회라도 주어졌으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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