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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최용준 (증언자-최홍재)
이름: 관리자
2013-09-16 10:24:04  |  조회: 3152


050520A 최용준 / 2005. 5. 20 채록
// 첨부: 문서 오른쪽 상단 차례로 배치 사진1 (피랍자:최용준), 사진2(증언자:최홍재)

피랍자
성명: 최용준(崔容俊)
생년월일: 1907년 음력 6월 20일(서울 출생)
당시 주소: 경기도 평택군 평택읍 평택리
피랍일: 1950년 7월 말 경
피랍장소: 경기도 안성군 원위면
직업: 의사 (세브란스 의전 卒)
직계가족/부양가족: 배우자, 자녀 1남 9녀
외모 및 성격 : 키 175cm, 원만한 성격

증언자
성명: 최홍재(1941년생)
관계: 아들
증언 성격: 직접증언 V 간접증언

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 납치상황 및 원인)
피랍자 최용준은 세브란스 의전을 졸업하고 평택에서 동아 의원을 운영하던 의사로 교통부촉탁의를 겸하고 있었음. 전쟁이 발발하고 평택에서 30리 떨어진 인근 산 속으로 가족 모두 피신함. 7월 말 경 안면이 있던 지방 좌익들이 찾아와 협조를 요청, 의사로서 환자 치료를 위해 따라 나선 후 연락이 두절됨. 가장이 피랍된 후, 집마저 폭격에 맞아 불타 없어지자 피랍자의 아내가 도너츠 장사 등을 하며 9남매를 키워옴, 납북을 월북으로 오해 받아 피랍자 자녀들의 유학, 해외출장 등에 곤란을 여러 차례 겪음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피랍자 생사 확인 및 정부의 적극적인 문제 해결 의지 촉구, 북한에 주소가 없는 경우에도 이산 가족 신청을 할 수 있는 해결책 마련
(對가족회) 납북자 가족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대정부 요청 강화






“북쪽 사상을 가진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이 산 속으로 찾아와서는 아버지한테 '최선생 협조해 주시오, 같이 갑시다' 해서 아버지는 불려서 따라갔다고 해요. 협조해 달라는 건 의사니까 치료해 달라는 거니까. 그런데 그게 마지막이 된 거죠.”

“중앙 정보부로 담당자를 만나러 갔어요. 딱 보더니 '무슨 개소리가 많냐?' 면서 금방 팰 듯이 '당신 지금 신분을 보장하지 못하니까 (여권을) 못 주는 거다'라는 거야. 그럼 어떻게 해? 나는 당장 내일 미국을 가야 되는데 꼼짝 말고 가만히 있으란 거야?”

“내가 그 때 물어봤어요. 우리 아버지가 어찌됐는지 정보부에서는 알고 있느냐고. 근데 아무 것도 모른대요. 모른다면서도 막연하게 납북자라면 그렇게 엄청난 피해를 준 거야.”

직업 및 활동

<피랍자 최용준은 세브란스 의전을 졸업하고 평택에서 동아 의원을 운영하던 의사였음. 당시 교통부 촉탁의가 되어 준 공무원 신분을 지니고 있었음>

Q : 전쟁 당시 어떤 일을 하고 계셨는지?
A : 우리 아버지 명함이 있는데 평택 동아 의원을 하셨고, 도청에서 역에 긴급사고 발생시 의사들이 올 수 있게끔 촉탁으로 의뢰를 하는데 그 때 아버지가 교통부 촉탁의가 돼서 교통부원증도 있었어요. 준 공무원 신분으로 병원에 위촉을 해서 당시 철도 사고 난 사람들을 맡아서 치료해주고 하는 일을 하셨어요..
납북 경위

<전쟁 상황이 악화되어 평택에서 30리 떨어진 인근 산 속으로 가족 모두 피신함. 7월 말 경 안면이 있던 지방 좌익들이 찾아와 협조를 요청, 의사로서 환자 치료를 위해 따라 나선 후 연락이 두절됨>

Q: 어떻게 피랍 되셨는지?
A: 6.25사변이 터지니까 사람들이 서울에서 내려오면서 (당시 거주지였던)평택에 들러서 같이 부산으로 피난 가자고 하곤 했어요. 그런데 공부하느라 딸 셋이 서울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있으니까 궁금하고 걱정이 돼서 아버지가 못 간다며 피신을 못했죠.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결국 멀리는 못 가고 우리는 평택 시내에서 30리쯤 떨어진 산 속 마을로 일단 피난을 갔어요. 아버님은 혼자 병원에 계시면서 부상당한 환자들이 오고 하니까 진료를 보고 하셨어요. 그러다 딸들이 일주일 만에 서울에서 평택까지 걸어서 왔어요. 그래서 우리가 피난한 곳으로 가족 모두 모였죠. 그 때쯤 인민군은 다 들어왔어요. 7월 말쯤인가 몇 사람들이 산 속으로 찾아 왔어요. 그런데 다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었대요. 북쪽 사상을 가진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이 산 속으로 찾아와서는 아버지한테 '최선생 협조해 주시오, 같이 갑시다' 해서 아버지는 불려서 따라갔다고 해요. 협조해 달라는 건 의사니까 치료해 달라는 거니까. 그런데 그게 마지막이 된 거죠. 어머니는 그 사람들을 아니까 옷이랑 영양제 같은 것을 싸서 아버지에게 전해 주려고 찾아갔대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전해 주겠다’ 고만 하고 직접 아버지를 보지는 못했대요. 그게 마지막이에요.

납치이유

<의료인이었으므로 전쟁 중 부상자를 치료할 목적>

납치 후 소식

<소문만 무성할 뿐 소식 없음>

A : 그리고는 이사람 저 사람 입을 통해 평양 어디서 봤다는 사람도 있고, 판문점에서 포로교환 할 때 북측의 의사로 나왔다는 얘기도 들리고 직접적으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고 소문만 무성했어요.

납북 후 남은 가족의 생활은?

<남편이 피랍된 후, 평택 집마저 폭격에 맞아 불타 없어짐. 피랍자의 아내가 도너츠 장사 등 다양한 장사를 하며 9남매를 먹여 살림, 서울로 와서는 장성한 딸들이 교원, 간호사 등 직업을 가지면서 생계에 보탬을 줌>
A: 어머니가 혼자 몸에 서른 여덟인데 애가 아홉이야. 아홉을 줄줄 끌고 다니는데 제일 막내는 불과 3개월짜리였고, 그 고생한 건 말 안 해도 짐작이 될 거야. 다행히 워낙 평택에서 유지로 지냈다 보니 주위 사람들이 많이 동정해줬어. 근데 사실 인민군이 들어와 있을 때는 혹시나 피해가 올까 봐 전부 외면했어. 나중에 국군이 들어오니까 우리 집이 폭격 맞아 전부 날아갔으니 이웃들이 자기 집에 와 있으라고 하고 그랬어. 그 사람들도 결국 인민군에 동조했던 것을 피해를 덜 보려는 거였지. 그러면서 우리 어머니는 숙명을 나오시고 넉넉한 집안에서 호강스럽게 살 던 분이었는데 애들이 있으니 나가서 별 장사 다하시고, 음식 솜씨가 좋으니 음식을 해서 집에 일봐주던 분한테 대신 팔아달라 그러고 그렇게 애들을 먹여 살렸어. 그 후엔 다행히 서울 집은 남아 있어서 애들을 다 데리고 올라갔지. 그 때 부터는 딸들도 교원, 간호사로 근무 하면서 돈을 벌기 시작했지. 내가 국민학교 6학년 때인데 어머니가 시장에서 도나스 파는 장사했던 것도 기억나고 그렇게 고비를 넘겼죠.
정부의 노력

<없음>

Q : 신고는 하셨나요?
A : 어머니가 적십자에 신고를 하고, 1955년도인가 그 때 덕수궁인가에 모여서 납북자 궐기대회 같은 걸 한 적도 있어요. ‘가족 찾아내라’ 하면서. 근데 뭐 별 성과는 없었고, 그냥 명단만 낸 거죠. 당시는 적십자 밖에 신경 쓴 데가 없죠.

Q : 정부 차원에서 찾으려는 노력은?
A : 우리집은 피해만 보고 도움 받은 거 하나도 없어요. 소식이야 들을 수도 없는 거고, 납북자가 월북자로 의심받아 피해만 봤어요.

연좌제 피해

<피랍자의 자녀들의 해외 유학, 출장 시 신원 조회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음. 여권 관련 사항도 남산의 중앙 정보부에서 관리하며 피랍자의 가족들에게 피해를 줌>

A : 내 동생이 미국으로 유학을 들어가는데 엄청 힘들었어요. 엄청 심하게 조사를 해서. 근데 그게 조사한다고 나오냐고? 빨갱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아? 괜히 그렇게 오라 가라 하면서 고생을 시키더라고. 또 내가 피해를 본 건 79년도에 회사 때문에 미국을 나가려고 하는데 경찰서에서 신원 조사하는 자료를 남산 중앙 정보부로 보내더라고. 나는 미국 갈 날짜가 다 되어 가는데 여권이 안 나와. 여권과에 물어보니 신원 조회가 지금 남산에서 걸려있다 이거야. ‘아버지가 6. 25때 행방불명 된 사람이다’ 라면서 남산에서 해 주질 않는 거야. 이게 참 한심한 얘기 아니냐고. 회사 담당자는 자기들은 못하겠다고 ‘직접 가 떼라’ 그러고
그래서 내가 여권과에 직접 가서 과장을 만나고, 결국은 중앙 정보부로 담당자를 만나러 갔어요. 딱 보더니 '무슨 개소리가 많냐?' 면서 금방 팰 듯이 '당신 지금 신분을 보장하지 못하니까 (여권을) 못 주는 거다'라는 거야. 그럼 어떻게 해? 나는 당장 내일 미국을 가야 되는데 꼼짝 말고 가만히 있으란 거야? 이렇게 한심한 노릇이 어딨어? 그런데 그 담당자가 잠시 내 서류를 뒤적거리더니 참 웃기는 얘기지. 내가 경복고등학교를 나왔는데 그 친구가 경복 고등학교 나왔다 그거야. 내 서류를 보더니 자기가 한 해 후배인 거야. 나보고 욕지거리 하던 사람이 별안간 안색이 달라지더니 '아유 형님 제가 몰라봤습니다' 이래요. 그게 경복 나온 거라고 무슨 상관이야? 그리고 자기 선배랍시고 '죄송합니다' 라며 사과하고, 최홍재씨 여권 빨리 만들라고 전화를 해요. 그런 식으로 여권이 나오더라고. 내가 그 때 물어봤어요. 우리 아버지가 어찌됐는지 정보부에서는 알고 있냐고. 근데 아무 것도 모른대요. 모른다면서도 막연하게 납북자라면 그렇게 엄청난 피해를 준 거야. 내가 그 직원과 선후배 관계가 아녔으면 미국 못 간 거지. 그렇게 &#50026;었던 시대라고. 난 운이 좋았으니 간 거지만, 운이 없으면 못 간 거라고. 이런 피해를 나 뿐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당했어.

호적정리

<실종자로 정리>

정부에게 바라는 말

<피랍자 생사 확인 및 정부의 적극적인 문제 해결 의지 촉구, 북한에 주소가 없는 경우에도 이산 가족 신청을 할 수 있는 해결책 마련>

A : 너무 오래돼서 바래봤자(한숨).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줘야 하는데 지금 아무리 졸라봐야 김정일이 눈치 보느라 말도 못 꺼내요. 김정일이한테 그런 얘기 꺼내 봤자 '몰라' 하면 그만이니 왜 정부에서 그걸 가지고 하겠어? 지금 정권에서는 기대할 수 없을 것 같아. 지금 여기 납북자 협의회 여러분이 애를 쓰는데 성과가 기대하기 힘드니. 전후 어부들 납북되고 한 것도 얘기도 못 꺼내는데 6.25때 얘기하면 북한에서 들어주지도 않을 거고,
정말 적극적으로 얘기해 줄 정부, 대통령이 나온다면 모르겠지만 힘들 것 같아. 생사 확인 알아보고 싶은 건 너무 당연한데 알아봐달라고 소리쳐봐야 정부에서 듣지도 않는데 뭐. 나는 요즘 이산가족 상봉하고 하는 걸 보면 너무 답답해. 우리 같은 경우는 신청도 할 수 없고 방법이 없잖아. 이북에 주소가 있어야 신청을 하지. 무슨 방법을 강구해서 해결책을 찾아줘야 하는데, 전혀 그런 여지가 없으니 답답할 뿐이지.

가족회에 바라는 말

<납북자 가족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대정부 요청 강화>

A : 내가 한 가지 실망한 게 작년에 내가 6.25날 가족 협의회에서 서대문 형무소 앞에서 궐기대회 하고 도라산에 갔는데, 납북자는 10만 명이 넘는다고 하면서 그 때 70명인가 80명인가 모였더라고. 그게 너무 섭섭하더라고. 지금 몇 백 명 나와서 그래도 들어줄까 말까 한데 몇 십 명이 뭐 해달라 하면 그걸 누가 들어주겠냐고. 그러니까 이런 행사들이 있으면 납북자 가족이 우선 열심히 나와서 해야 하는데, 어휴. 그러니 정부에서 겨우 몇 십 명 그러기 콧방귀끼고 말지 뭐. 앞으로 남북자 가족 손주고 며느리고 다 나와서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된다고. 몇 십 명 그래 가지고는 안 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정부에다 소리질러 봐야 협조해 달랄 상황도 아니고, 납북자 가족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는 게 필요하다 생각해.

피랍자에게 전하는 말
A: 북쪽에 쭉 살아계셨다면 내 동생들이 있을 것이고. 찾으면 또 혈육이 있을 수도 있고. 글쎄요 찾을 수 있을 런지.
지금 가족들 현황. 딸이 지금 둘은 가고, 남은 딸 아들 잘 살고 있고, 증손주고 있고, 어머니는 1992년에 돌아가셨고, 그렇게 다들 잘 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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