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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이종각 (증언자-이진수)
이름: 관리자
2013-09-16 10:28:16  |  조회: 2004


050531B 이종각 / 2005. 5. 31 채록
// 첨부: 문서 오른쪽 상단 차례로 배치 사진1 (피랍자: 이종각), 사진2(증언자:이진수)

피랍자
성명: 이종각(李鍾珏)
생년월일: 1909년 1월 27일생(충북 고산군 출생)
당시 주소: 충북 청주
피랍일: 1950년 9월 27일경
피랍장소: 충북 청주시 북문로 1가 4거리 노상
직업: 청천면장
직계가족/부양가족: 배우자, 자녀 2남 4녀
외모 및 성격 : 마른 체격에 급한 성격

증언자
성명: 이진수(1933년생)
관계: 아들
증언 성격: 직접증언 간접증언 V

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 납치상황 및 원인)
오랫동안 청천면장을 해 왔던 피랍자는 전쟁 직후 가족 및 일가 친척과 충북 영동으로 피난했다가 우천 등으로 상황이 여의치 않아 다시 청주 인근 지역으로 돌아와 두 달 정도 생활했음. 그러다 다시 그 지역 좌익계를 피해 9.28수복 직후 청주 본가로 들어왔다가, 동네 길 어귀에서 장총을 든 사람에게 끌려가 납북됨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호적 정리를 위한 법 제정, 전쟁 피해자 보상 및 생사 확인










“동네 친구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를 만나셨나 봐요. 당시 9.28 수복되고 나니까 ‘민보단 같은 걸 조직해서 동네를 지켜야 하지 않겠냐?’며 제안을 했대요. 그러니까 아버지가 그 때 당시 그런 것 때문에 밖에 왔다 갔다 하시다가 걔들한테 꼬투리를 잡혀서 납북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호적 정리하는 거 법을 빨리 제정해서 해 줬으면 좋겠다는 것과 5.18 이런 것도 피해자 보상을 해주고 하면서, 우리도 6. 25 전쟁 피해자인데 피해자 입장에서 정부에서 빨리 좀 법적 조치를 해 주셨음 좋겠고, 살아계시다고 하는 것은 100 분의 1도 가능이 없으니 시체라도 찾는다든가 어디서 어떻게 돌아가신 것이라도 좀 알고 그렇게 제발 우리 세대에 좀 해결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직업 및 활동

<청천면장을 하고 있었음>

Q : 전쟁 당시 어떤 일을 하고 계셨는지?
A : 청천면장을 오랫동안 하셨어요. 괴산군 일대를 왔다갔다하면서 면장을 하시고, 특히 청천면에서 오랫동안 면장을 하셨죠.

납북 경위

<전쟁 직후 피랍자는 충북 영동으로 가족 및 일가 친척과 피난했다가 우천으로 상황이 여의치 않아 다시 청주 인근 지역으로 돌아와 두 달 정도 생활함. 그러다 그 동네 주민 중 좌익 계열이 있음을 알고 또 다시 이를 피해 9.28수복 직후 청주 본가로 들어왔다가, 동네 길 어귀에서 장총을 든 사람에게 끌려가 납북됨>

Q: 어떻게 납북이 되셨는지?
A: 6.25 되니까 피난을 다른 사람은 시골로 가는데 아버지는 청천면에서 어머니하고 가족이 살던 청주로 왔어요. 아버지가 청주로 올라오셔서 모두가 충북 영동까지 피난을 갔죠. 그런데 일행(집안 친척)이 한 20 여명 되는데 노인들이고 하니까 잘 걷지를 못해요. 충북 영동까지 가긴 갔는데 소나기가 쏟아져서 강물이 범람을 했고, 전부 흙탕물이 돼서는 피난민들이 건너가지를 못해서 하루 이틀 기다리는데 인민군이 또 나타났어요. 그래서 피난민들은 손을 땅에 비비고 흙을 묻히고 노동자인 체 하고 있기도 했고, 결국 더 이상 남하를 못하고 올라왔죠. 그래서 청주시에서 한 30리 떨어진 곳에서 방을 얻어 두 달 정도 피난생활을 했어요. 그런데 동네 주민 하나가 인민군 무슨 간부인 거 같아요. 동네 어르신들 사이에서 전세가 불리하니 피난민, 불순분자를 처단할 거라는 소문이 나요. 그래서 저는 고향으로 도망가고, 아버지는 청주 본가로 들어와서 숨어 살았어요. 그랬기 때문에 사실상 저는 아버지가 납치 된 것은 저도 못 봤고 나중에 집안 아저씨가 와서 얘기해서 알았어요. 9. 28수복 직후에요. 추석이 다음 다음 날인가 그랬어요. 당시 청주 보문당이라고 해서 문구점도 하고 책방도 하던 가게가 있었는데 거기에서 아저씨가 보니까 (아버지가) 사복을 입고 장총을 든 인민군과 옥신각신 하더래요. 장총을 들었으니 지방 빨갱이 같기도 했었대요. 아무래도 (아버지가) 전에 민보단이라도 해야 겠다 했으니 이미 삐라를 만들다 걸렸든지 해서 어떤 식으로든 걔들한테 빌미를 잡혀 끌려간 게 아닌가 생각돼요.

납치이유

< 청천면장을 오랫동안 하면서 인지도 있는 인물이었고, 수복 후 청년단 결성을 위한 움직임도 있었던 추정됨>

A: 공직에 계셨으니까 다른 특별한 청년 활동은 없었고, 나중에 납북되시고 난 다음에 들었는데, 그 때쯤 동네 친구(송재갑)의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를 만나셨나 봐요. 당시 9.28 수복되고 나니까 민보단 같은 걸 조직해서 동네를 지켜야 하지 않겠냐며 제안을 했대요. 그러니까 아버지가 그 때 당시 그런 것 때문에 밖에 왔다 갔다 하시다가 걔들한테 꼬투리를 잡혀서 납북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납치 후 소식

<없음>

납북 후 남은 가족의 생활은?

<넉넉지 않은 형편에 있던 집을 줄여가며 생활함>
A: 어머니하고 우리 여섯 식구는 어머니만 믿고 살았죠. 산에 가서 나무를 하기도 하고, 오촌 당숙이 피난민 수용소에서 간부로 근무하셨어요. 청주 시내 시청에 근무하면서. 그래서 그 아저씨가 피난민 배급 나오는 거 보태주고 해서 살다가 제가 군대 들어 가서 봉급 나오는 거 조금씩 어머니한테 보내주고 그렇게 해서 거의 반은 굶다시피 하고 반은 먹으면서 살다가 나중에 제가 군대생활 하면서 서울 와서는 좀 나아지고 했죠. 그 때 당시 아버지 살아계실 때 사놓은 집이 한 채 있었던데 이걸 팔고 팔고 해가지고 생활을 하다가 나중에 집이 전세로 전락했어요. 그러나 나중에 제가 제대하면서 잠실에 조그만 집을 얻어 가족하고 살면서 아들하고 딸 둘을 데리고 살고 있어요.
정부의 노력

<없음>

Q : 신고는 하셨나요?
A : 신고를 그 때 못했어요. 그래도 동네에서 다 알고 하는데 그 때 당시는 좀 있으면 오시겠지 생각한 거에요.

Q : 정부의 도움은?
A : 도움 받은 건 없어요.

연좌제

<없었음>

호적정리

<증거 불충분으로 호적 정리 못 했음>
A : 군대 가서 제가 호적정리를 하려고 면에 갔는데, 우리 고향 면에서도 (부친의 납북 사실을) 다 알고 있으니까 해 달라 했더니 자기네들도 말만 들었지 근거가 없어서 못하겠다 하더라구요. 변호사를 선임해서 하라고. 그래서 변호사한테 물어보고 하니까 법원에 신청해서 하면 접수를 해서 신문에 실종 공고를 3개월 내면 3개월 후에 정리된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 당시 제가 몇 번 왔다 갔다 하다가 군대 생활 하던 중이고 하니 괜히 쓸데없는 일 해서 불이익이나 당하지 않을까 해서 나중에 해야겠다 했는데 그 다음엔 목격한 아저씨도 돌아가시고 그래서 끝내 못했죠. 동네서는 다 알고 청천에서도 아무개 면장이 납북된 것을 다 알지만 호적정리는 증거가 있어야 되기 때문에 목격자 두 사람 이상을 인증을 받아오라 하는데 확인서 받을 사람이 없어요. 집안 사람도 당시 목격자도 아니고 그래서 제 지금 생각이 호적 정리하는 법을 나라에서 빨리 제정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정부에게 바라는 말

<호적 정리를 위한 법 제정, 전쟁 피해자 보상 및 생사 확인>

A : 호적 정리하는 거 법을 빨리 제정해서 해 줬으면 좋겠다는 것과 5.18 이런 것도 피해자 보상을 해주고 하는데 우리도 6. 25 피해자인데 피해자 입장에서 정부에서 빨리 좀 법적 조치를 해 주시고, 이북하고 왕래도 있고 쌀도 주고 비료도 주면서 줄 건 다 주고 있는데
받을 건 못 받고 있는 것 같아 불만이 많아요. 할 말은 하고 받아 올 것은 받아오고 여기서 공산주의자들도 다 송환은 해 주면서 우리에겐 전혀 그런 것이 없잖아요. 우리 정부에서 강력하게 항의 해서 살아계시다고 하는 것은 100분의 1도 가능이 없으니 시체라도 찾는다든가 어디서 어떻게 돌아가신 것이라도 좀 알고 그렇게 제발우리 세대에 좀 해결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빨리 마무리 해줬으면 하는 게 소원입니다.

피랍자에게 전하는 말
A: 아버지께서 살아계시면 우리 식구가 지금 여섯 식구모두 단란하게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분위기인데 그러지 못해 안타깝고 어머니가 아흔 셋인데 아직 살아계십니다. 지금 아버지 제사를 지내고 있는데 어머니 뵙기도 민망하고 어머니 살아계실 때 빨리 모두 해결을 해서 어머니 소원을 풀어줬으면 하는 게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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