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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홍남석 (증언자-홍능자)
이름: 관리자
2013-09-16 10:30:16  |  조회: 2324


050825A 홍남석 / 2005. 8. 25 채록
// 첨부: 문서 오른쪽 상단 차례로 배치 사진1 (피랍자:홍남석), 사진2(증언자:홍능자)

피랍자
성명: 홍남석(洪南錫)
생년월일: 1910년 10월 26일 (경기도 평택군 청북면 삼계리 태생)
당시 주소: 경기도 평택군 청북면 삼계리
피랍일: 1950년 9월 15일
피랍장소: 마을 창고 회의장
직업: 사업(전쟁 당시 안동에 화학공장을 짓던 중)마을구장(이장),
직계가족/부양가족: 배우자, 자녀 5남매
외모 및 성격 : 키가 크고 준수한 외모

증언자
성명: 홍능자(1941년생)
관계: 차녀
증언 성격: 직접증언 간접증언 V

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 납치상황 및 원인)
전쟁이 발발하자 피랍자는 안동에서 공장을 짓던 중 가족을 걱정해 고향으로 돌아옴. 인민군이 여러 차례 자택으로 피랍자를 찾으러 와서 총격을 가하고, 가족의 목숨을 걸고 협박하기도 함. 납치 당일은 잡혀가지 않기 위해 당시 사람들을 모아놓고 공산 교육을 하던 회의장에 갔다가 그를 찾으러 온 인민군들에게 연행됨. 이후 인근 주민의 거짓 고발 때문에 심한 고문을 당했다고 전해짐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납북자 생사 확인 및 유골 송환, 납북인사 가족 보상
(對북한) 평화 통일








“인민군들이 집에다 막 총을 쏘고 문 벽면에다 우장을 걸어놨는데 그걸 아버지로 알고 쐈는지 그 우장이 몇 구멍이 났어요. 아버지 내놓으라면서. 다행히 그 때는 아버지가 잡으러 온다는 걸 알고 이미 피신한 상태라 위기는 모면했는데 그 뒤로 계속 협박을 가하는 거에요. 홍남석 안 나오면 가족을 다 죽인다고 동네에 소문을 내고, 그 동네에서 아무 것도 모르고 한글도 모르는 사람들은 위원장이라고 완장을 차고, 지주의 재산을 다 나눠 준다니 나서서 아버지를 찾아 다니고 했어요”

“거기 무식쟁이들도 잡혀갔는데 지들이 매 안 맞으려고 ‘홍남식이가 다 했습니다’ 그러더래요. 그래서 우리 아버지를 그렇게 때리더래요. 때리니까 살점이 다 튕겨서 하얀 중의 적삼에 피가 엉겨 붙었더래요. 그 정도로 맞으셨대요. 거기서 잡혀갔다 나온 사람에게 들은 말이에요.”

납북 경위

<전쟁이 발발하자 피랍자는 안동에서 공장을 짓던 중 가족을 걱정해 고향으로 돌아옴. 인민군이 여러 차례 자택으로 피랍자를 찾으러 와서 총격을 가하고, 가족의 목숨을 걸고 협박하기도 함. 납치 당일은 잡혀가지 않기 위해 당시 사람들을 모아놓고 공산 교육을 하던 회의장에 갔다가 그를 찾으러 온 인민군들에게 연행됨. 이후 인근 주민의 거짓 고발 때문에 심한 고문을 당했다고 전해짐>

Q: 전쟁 직후 바로 피난을 가지 않았는지?
A: 피난은 못 갔어요. 1.4후퇴 때만 피난 가려다 못 갔지. 피난 당시는 (우리 동네는) 아무도 안 갔어요. 다 서울에서 왔어요. 우리 고모도 서울에서 왔어요. 우리 아버지가 (공장을 짓던) 안동에서 오셔서 모두 데려가려고 했는데 바로 잡혀가시는 통에 못 갔죠.

Q: 납북 경위?
A: 제가 열살 때인데 그 때는 6.25가 나고 여름 방학 때였던 것 같아요. 아버지가 안동 공장에서 가족 때문에 집에 오셨어요. 와 계신데 (인민군들이) 집에다 막 총을 쏘고 문 벽면에다 우장을 걸어놨는데 그걸 아버지로 알고 쐈는지 그 우장이 몇 구멍이 났어요. 아버지 내놓으라면서. 그 때는 아버지가 잡으러 온다는 걸 알고 피신한 상태였어요. 그래서 그 위기는 모면했는데 그 뒤로 계속 협박을 가하는 거에요. 홍남석 안 나오면 가족을 다 죽인다고 동네에 소문을 내는 거에요. 그 동네에서 아무 것도 모르고 한글도 모르는 사람들이 위원장이라고 완장을 차고, 지주의 재산을 다 나눠 준다니 나서서 아버지를 찾아 다니는 거에요. 그리고 그 동네 안에 잠재 공산당들이 있었나 봐요. 아버지 친구 중에도 공산당이 하나 있었대요. 해방되고 공산당 잡으러 다니던 때 우리 집 큰 항아리에 숨겨 주고 살려 준 나중에 그 친구가 배신해서 아버지를 잡으러 다니고 한 거에요. 결국 아버지는 가족을 죽인다고 하니까 나오셔서 하루 주무시고 그 이튿날은 회의장엘 갔어요. 왜냐면 6.25나고 마을에 큰 창고가 있었는데 (인민군들이 동네 사람들에게)날마다 나와서 노래 배워라, 회의 한다 그랬어요. 그 때 안 나가면 반동 분자로 몰리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도 날마다 가서 무슨 인민군 노래 배우고 가서 만세 부르고 인민군들이 연설하는 거 듣고 그랬어요. 안 나오면 안되니까. 그날도 (동네 사람들을 나오라고 하니까) 아버지가 안 나가면 반동 분자로 몰아 갈 것 같아 그 날 나갔어요. 그 당시 대학교에도 공산당들이 있었나 봐요. 예전에 아버지가 한 번 잡혀가셨는데 우리 사촌 오빠 친구들이 공산당들이 있어서 사촌 오빠가 우리 작은 아버지다, 내 주라고 부탁해서 풀려 나신적이 있었어요. 그러니 (납북 되신 날은) 또 안 가면 무슨 일이 있을까 봐 회의를 간 거에요. 그런데 그 날 낮 11시쯤 한 남자 여자 인민군 몇 명이 집에 왔어요. 오더니 막 총을 쏘면서 아버지를 찾아내라 하더라구요. 그러니까 우리 엄마가 겁이 나서 '회의장에 갔다' 했더니 거기를 찾으러 갔어요. 그래서 그 곳에서 아버지를 잡아서 우리 집 앞에 신작로가 쭉 있는데 거기를 인민군이 앞에 총 들고 뒤에서 총을 겨누고 우리 아버지는 중의 적삼입고 우리가 자꾸 대문에서 내다보니까 대문 쪽을 계속해서 쳐다보며 가시더라구요. 그게 마지막이에요

Q: 함께 잡혀간 사람들은 없는지?
A: 그날은 우리 아버지 한 분만 잡아갔는데 소식을 들어보니 아버지 친구들이며 동네 면장이며 경찰서 누구며 전부 잡아가고 굉장하더래요. 그런데 거기 무식쟁이들도 잡혀갔는데 지들이 매 안 맞으려고 ‘홍남식이가 다 했습니다’ 그러더래요. 그래서 우리 아버지를 그렇게 때리더래요. 때리니까 살점이 다 튕겨서 하얀 중의 적삼에 피가 엉겨 붙었더래요. 그 정도로 맞으셨대요. 거기서 잡혀갔다 나온 사람에게 들은 말이에요.

납치이유

<오랜 기간 구장(이장)일을 보면서 마을에서 신임과 지지를 얻었고 당시 동네 유지였음>

Q: 아버지가 어떤 일들을 했는지?
A: 구장. 지금으로 말하면 이장을 오랫동안 하셨어요. 당시 동네에 배운 사람이 없었는데
아버지는 소학교도 나오고 똑똑하셨어요. 그러면서 야학당도 지어 동네 문맹인도 가르치시고 아주 동리에 당시 100가구 정도 있었는데 우리 아버지 계실 때는 동네가 굉장히 융성했어요. 그러다 안동에서 화학 공장을 짓는다고 내려가셨다가 6.25를 맞은 거에요

납치 후 소식

<청북면 지서에서 평택 경찰서로 넘어갔다가 수복 되면서 손발을 묶어 트럭에 싣고 북송. 당시 도망한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피랍자가 너무 심한 고문을 당해 움직임이기가 쉽지 않아 도주할 엄두도 못 내고 끌려갔다고 함>

Q: 연행 이후 어디로 가셨다고 들었는지?
A: 거긴 청북 면 지서였고, 평택 경찰서로 다 넘어간 거에요. 넘어 갔는데 엄마가 우리 아버지를 만나려고 그 여름에 70리 길을 걸어 가신 거에요. 그런데 못 만나게 하더래요. 발이 부르터도 또 가고 또 가고, 피가 너무 묻었다니까 갈아 입힐 옷을 가지고 갔는데 끝내 못 만나게 했어요.

그 이후 행적은 9.28수복되고 (잡혀갔다 돌아왔던)면장님 얘기가 트럭에다 손을 묶고 발을 묶고 무슨 짐승처럼 싣고 갔다 그래요. 북한으로 끌고 갔다 그래요. 수복되니까 급해져서. 그렇게 가는데 미군 폭격기가 막 폭격을 하더래요. 그래서 인민군들이 산 속으로 숨기도 했대요. 그 때 면장님이 우리 아버지보고 도망가자고 했대요. 근데 아버지가 나는 너무 매를 맞아 한 발자국도 못 간다 가다 죽으나 여기서 죽으나 마찬가지다 라면서 돌아가서 가족들한테 소식이나 전해달라 했대요. 그러니 반은 이미 돌아가신 거에요. 그러니 북한까지 끌려가셨는지는 가다가 돌아가셨는지 그건 정확히 몰라요.

납치 후 남은 가족들의 생활

<시댁에서 조금 도움을 받아 납북자의 배우자가 1남 4녀의 자녀들을 키움. 경황이 없는 통에 있던 재산을 모두 시효가 지나 잃고, 어렵게 생활함. 자녀들의 교육도 제대로 시킬 수 없었음>

A: 우리 어머니는 80까지 사시고 돌아가셨어요. 근데 우리 어머니가 너무 그 때 너무 혼나서 자세히는 기억을 못하세요. 거의 정신이 나갔어요. 고생 많이 하셨어요. 아버지가 혹시 오실까 하고 저녁마다 밥을 떠서 아랫목에 밥을 이불에 덮어 놓고 아버지를 기다렸어요. 그리고 양복 입은 사람만 지나가면 아버님 오신다고 뛰어가고 그러셨어요

우리 엄마는 양반 집에서 시집오셔서 밭이 어딨는지 논이 어딨는지도 모르고, 집안 살림만 하셨으니 재산이 어디 있는지도 몰라요. 그래서 나중에 남동생이 커서 아버지 이름으로 된 재산을 찾으려고 재판을 했는데, 시효가 지나서 다 재산을 뺏겼어요. 재산 있는 것까지도. 공장도 못 찾고. 어린 아이들 데리고 정말 고생 말도 못하셨어요. 그러니 제가 가슴에 원한이 맺혔죠. 생계가 땅도 엄마 아는 건 다 팔고 그저 큰댁에서 좀 도와 주셔서 살았어요. 어머니가 고생을 많이 했어요. 저는 형편을 알고 중학교도 못 가고 동생만 보내고 저는 그 때 공부 못한 게 지금까지도 한이 되요. 지금 같으면 학자금도 있고 했을 텐데…. 형제들 다 공부도 못하고 우리 남동생만 고등학교 나왔지 나머지는 다 초등학교 밖에 못나왔어요. 나중에 소송을 했어도 다 찾을 수 없었고. 그러니 고생은 말도 못했어요

연좌제 피해

<없었음>

A: 그건 없어요. 그건 우리 아버지가 공산당에게 끌려가신 거라 그런 건 전혀 없어요.

정부의 노력

<없었음>

Q: 아버지를 찾으려는 노력은? 신고라도?
A: 어디 가서 계신 줄 알아야 찾죠. 정부에다 말할 엄두도 못 냈고, 나는 열 살이고, 어머니는 집안 일하느라 모르고 남동생이 커서 겨우 기반을 잡았지 당시는 어디 가서 뭘 할 줄을 몰랐어요

Q: 정부 차원의 조치가 있었는지?
A: 그런 건 전혀 없었어요. 다만 아버지를 고발한 사람들 잡아간 건 알아요. 9.28 수복 후 바로 치안대가 있었는데, 아버지를 (잡아)넣은 다섯 사람을 우리 앞마당에 불러왔어요. 큰아버지가 쫓아 오셔서 내 동생 찾아 내라며 그 사람들을 때려서 한 사람이 머리에 피가 났는데 우리 엄마가 쑥을 얻어다 매어 줬어요. 그렇게 인정이 많으셨어요. 지금 나는 법이고 뭐고 때려줬을 텐데 못 때린 게 한이데요. 그런데 우리 어머니는 불쌍하다고 그걸 막아 준 사람이었어요.

정부에게 바라는 점

<납북자 생사 확인 및 유골 송환, 납북인사 가족 보상>

A :. 제가 바라는 건 요즘 전라도 민주화 운동 한 것, 독립운동 한 것에 대해 다 뭔가가 있는데 우리 아버지도 나라가 부족해서 잘못해서 끌려간 거인데 우리는 아무 보상도 없고, 그 이름이라도 우리의 잘못이 아니었다는 것이 바로 됐으면 좋겠고, 우리한테도 조그만 보상이라도 있었으면 해요. 우리가 그렇게 어렵게 살았으니까. 제 욕심이라 할지는 몰라는 너무 힘들게 살았으니까. 또 그리고 요즘 북한에 다 양보하고 주고 하는데 우리도 이거 한가지 납북자의 생사확인쯤은 정확히 알아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거기 이름이 있으니까 어떻게 돌아가셨고 언제 돌아가셨고 어디에 묻혔는지 이 정도는 알아서 하다못해 시신이라도. 우리 아버지는 돌만 새겨 엄마 옆에 묻었어요. 그게 한이 되요. 뼈라도 추려서 엄마 곁에 묻었으면 여한이 없겠어요.

또 북한에도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북한이 우리에게 진실로 평화 통일을 하자는 것인지 다른 야욕을 가지고 남한테 와서 허위로 평화통일을 하자는 것인지 그게 젤 알고 싶고요. 북한이 더 이상 전쟁은 안 해야 된다. 핵은 없어야 된다는 걸 꼭 말하고 싶어요. 전쟁은 절대 있어서는 안돼요.

피랍자에게 전하는 말
A : 우리 아버지가 지금 살아계시면 아흔 다섯인데 옛날에 고생한 얘기부터 아마 열 흘을 얘기해도 모자랄 거에요. 요즘은 아버지가 꿈에도 안 보여요. 한 번 만이라도, 단 한번만이라도 아버지를 보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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