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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박점석 (증언자-박정선)
이름: 관리자
2013-09-16 10:32:46  |  조회: 2046


051004A 박점석 / 2005. 10. 4 채록
// 첨부: 문서 오른쪽 상단 차례로 배치 사진1 (피랍자:박점석), 사진2(증언자:박정선)

피랍자
성명: 박점석(朴点石) / 아명: 박승기
생년월일: 1897년 2월 13일 (서울 출생)
당시 주소: 서울 마포구 아현동
피랍일: 1950년 7월경 (B29기 용산 폭격 며칠 후)
피랍장소: 서울 마포구 아현동 자택
직업: 약방 운영, 대한청년단 아현동 지부장
직계가족/부양가족: 배우자, 자녀들
외모 및 성격 : 키가 크고 준수한 얼굴.

증언자
성명: 박정선(1936년생)
관계: 딸
증언 성격: 직접증언 V 간접증언

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 납치상황 및 원인)
전쟁 발발 후 당시 약방을 운영하며 대한 청년단 아현동 지부장을 맡아 하던 일단 피랍자는 친척집에 피신 함. 7월경 용산 일대를 잿더미로 만든 B-29 폭격(50.7.16) 이 있은 후 동생이 피해를 입은 것을 듣고 시신 수습 차 잠시 집으로 돌아옴. 이후 가족의 생계 유지를 위해 당시 운영하던 약방에서 약품을 가방에 담아 팔러 떠나기 전 이발소에 다녀 오는 길에 곧바로 연행되어 소식 없음. 이 후 피랍자의 차남도 의용군으로 잡혀가 소식 없음. 중공군이 들어올 때 중공군 장교 차림으로 집에 들렀다는 소문만 들을 수 있었음
.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피랍자 생사확인








“옆집이 전라도 사람인데 그 사람이 빨갱이로 지하운동을 하던 사람이야. 우리는 몰랐는데 그 사람이 우리 아버지를 내무서에 고발을 해서 우리 아버지가 잡혀가게 된 거래. 엄마가 그러는데 내무서 옷 입은 게 아니라 그냥 평복 입은 사람 두 사람이 와서 아버지를 찾더래.

“1.4 후퇴 때 우리 집터에 중공군 장교가 왔다갔다하더래. 우리 오빠도 전쟁 중에 잃었어. 어느 날 어떤 사람이 편지를 가져왔는데, 오빠가 '내가 길가다가 붙들렸는데 의용군으로 붙잡혀간다 수성국민학교에 있다' 라고 적었어. 엄마하고 나하고 수성 국민학교에 뛰다시피 해서 가니까 벌써 다 떠났어 낙동강 쪽으로, 그래서 죽었겠구나 했는데 1.4후퇴 지내고 환도해서 올라오니까 동네 주민들이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

납북 경위

< 전쟁 발발 후 피랍자는 친척집에 피신 중이다가, 용산 일대를 잿더미로 만든 B-29 폭격(50.7.16) 이 있은 후 피해를 입은 가족(동생)시신 수습 차 잠시 집으로 돌아옴. 이후 가족의 생계 유지를 위해 당시 운영하던 약방에서 약품을 가방에 담아 팔러 떠나기 전 이발소에 다녀 오는 길에 곧바로 연행됨. 나중에 동네 좌익이 밀고 했다는 얘기를 듣게 됨>
A: 아부지가 내가 동네 일을 많이 봤으니까 아무래도 몸을 피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고는 가족회의를 해서 아버지는 당인리 발전소 근처 외갓집으로 피신하셨어요 그리고 가족은 엄마와 나하고 동생 어린애들만 집에 있었었요 그런데 왜 아버지가 다시 집으로 오셨냐면 B-29가 처음에 용산을 폭격을 했거든요. 그 때 작은 아버지가 용산에 3층 건물에서 건교 택시라고 사장을 하셨어요. 그런데 거기서 (폭격으로)건물이 무너지는 바람에 돌아가셨어요 그러니까 아버지가 라디오를 듣고 집으로 나오신 거에요. 구루마에 작은 아버지 시신을 모셔와서 식구들끼리 염을 했어요 그리고 돌아 가신지 3일 후 시신을 모시고 돌아와서는 ‘이제는 작은집까지 책임져야 하니까 내가 더 이상 숨어있을 게 아니다’ 라면서 트렁크에 약을 전부 꺼내 넣으시고 그걸로 시골을 다니며 행상을 해서 쌀이라도 받아와야겠다고 하셨어요. 그런 식으로 식구들 연명을 해야 되지 않겠냐 했어요 그런데 그 때 당시는 이승만 대통령이 전쟁이 금방 끝난다고 방송을 했거든 그래서 서울 시민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피난도 안 갔어요. 그러다가 아버지가 트렁크를 싸놓고 ‘이제 길을 떠나야 하니까 이발을 해야겠다’ 하시고 이발소로 가셨어요. 이발소를 가셨는데 집에서 그 쪽으로 가는 길이 두 길이 있는데, 아버지가 혹시 인민 위원회 이런 사람 만나면 안 좋으니까 사람이 안 다니는 길로 가셨나 봐요. 나중에 안 사실이 그 옆집이 전라도 사람인데 그 사람이 빨갱이로 지하운동을 하던 사람이야. 우리는 몰랐는데 그 사람이 우리 아버지를 내무서에 고발을 한 것이야. 그래서 우리 아버지가 잡혀가게 된 건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엄마가 그러는데 내무서 옷 입은 게 아니라 그냥 평복 입은 사람 두 사람이 와서 아버지를 찾더래. 그래서 엄마가 지금 잠깐 어디 나가셨다고 그러고, 나보러 눈짓을 하는 거야. 빨리 아버지 찾아가서 피신시키라고. 그런데 내가 환한 길로만 가니까 아버지는 이미 이발을 하고 집으로 오셨더라구. 나는 이발소 찾아가니까 지금 막 가셨다고. 그래서 나는 막 되짚어서 집에 오니까 그 사람들하고 얘기를 하고 있어요 그게 운명이에요. 내가 다른 길로 갔으면 아버지를 만나서 “아버지 수상한 사람들이 아버지를 찾으니까 빨리 외갓집으로 피신하세요” 하면 되는데 내가 어린애니까 좁고 외진 골목길 보다는 항상 다니던 길로 간 거지. 그 사람들하고 뭐라 얘기가 됐는지는 몰라요. 벌써 이미 얘기가 됐나 봐. 아버지가 나는 가서 조사할 게 없다고 나는 경찰도 아니고 상업하는 사람이고 특별한 사람 아니니까 당신네가 나를 의심하면 묻고 싶으면 할 수 없다고 하면서 따라가더라고. 우리 엄마는 너무 맥이 풀려서 못 움직이더라구. 그리고 나더러 저 사람들이 아버지를 어디까지 끌고 가는지 따라가 보래요. 그래서 따라 가는데 마포 경찰서 쪽으로 내려 가더라구. 그래서 내가 막 따라가니까 아버지가 뒤를 돌아다보고 너무 조그만 애가 거기까지 걸어오니까 ‘아버지는 죄 없으니 금방 갈 테니 오지 마라’ 하시고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얘야 집에 가 있어 아빠 집에 보내 드릴께’ 하면서 빨리 가라더라고. 내 판단으로는 따라가봤자 소용이 없겠더라구. 그래서 중간쯤 따라가다가 공덕동 초입에서 돌아왔죠.
납치이유

<당시 약방을 운영하며 대한 청년단 아현동 지부장을 맡아 동네 주민들의 존경과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음, 지방 좌익의 고발을 당함>
A : 아버지는 약국을 하셨어요. 활달하시고 자청적으로 의협심이 강하셔서 가난한 사람 보면 나눠주려 하셨어요. 그리고 해방이 되니까 그 때 당시 동회장을 하시고 대한 청년단 단장을 하셨어요. 인기도 많으시고 성품이 아주 좋으셔요. 아주 외향적이셔요. 제가 어렸을 때 우리 아버지를 보면 굉장히 사람들이 좋아하셨어요.
납치 후 소식

<없었음.>

A: 어머니가 우리 오빠하고 같이 마포 경찰서에 시체가 많다 죽였다는 소문을 듣고 가서 다 뒤져보고 서대문 경찰서에도 많이 죽였다 길래 거기도 가고, 미아리 고개 있는데도 가보시고 그러다 포기를 하셨어요..

연좌제 피해는?

<동생이 외국으로 공부하러 나갈 수 없었음>

A: 우리 동생은 고등학교 교장까지 됐는데, 그 때는 박사 되고 외국으로 유학을 가야 되는데 연좌제로 이게 걸리는 거야 우리 집안이 공부를 참 잘했어요. 사촌들은 다 유학을 가서 박사 되고 다 코스가 좋았는데 내 동생, 오빠는 다 빨갱이로 취급을 하는 거야. 그래서 외국으로 나가지를 못했어요. 그래서 나도 고등학교 밖에 못 나왔으니까 공부를 더 하고 싶었거든. 우리 아버지가 너는 머리가 좋으니까 외국까지 공부해서 여성지도자 해준다고 맨날 그러셨어 그런데 못했지. 우리 동생은 더 공부를 하려고 했는데 외국이 차단을 되니까 그 때는 아버지가 납치당해 갔다는 것까지 오해를 받더라구. ‘월북했지 납북자가 아니다’ 이러면서. 그래서 ‘어이구 니네 마음대로 생각해라’ 하고 말았어. 우리는 너무 한이 맺힌 사람이고 변명해봤자 소용이 없으니. 그러다가 협회가 생기니까 내가 처음으로 갔다니까. ‘아이고 이런 동지들이 있구나.’ 했어.

정부의 노력

<없었음.>

Q: 신고는?
A: 남산 꼭대기 적십자 사에 내가 가서 신고했어요

Q: 신고하고 나서 정부에서 도움은?
A: 그런 거 없어, 아무 것도 없었어요. 그 때는 돈 주는 사람 없어요. 나라에서도 그런 거 안 해줘. 그 때 우리 아버지가 대한청년단 단장을 하고, 우리 옆집 아저씨가 서기인가 총무인가 했는데 그 사람까지 다 잡아 갔어.

정부에게 바라는 말

<피랍자 생사확인 요청>

A: 나는 서명날인이라도 하든지 무슨 뭐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지금 현정부가 이북 사람들에게 너무 저자세로 하니까.. 통일부 장관이 지난번에 납북인사 소식 들을 수 있는 희망이 있다고 해놓고 그거는 회담하는데 자료는 꺼내지도 못 했다잖아.

나는 연세적으로 볼 적에 돌아가셨을 꺼 같고 살아계셨더라도 좋은 데는 못 가셨을 거 같아. 아오지 탄광이나 그런데 가셨을 꺼 같고.. 어디서 어떻게 돌아가셨더라도 유골이라도 찾을 수 있으면.. 뭐 증거품이라도 하나 있으면 좀 봤으면 좋겠다.

피랍자에게 전하는 말

Q: 어머니는 어떠셨어요?
A : 어머니는 자다가 보면 혼자 앉아 있어요. 얼마나 가슴 찢어지게 아프면 그랬겠나 싶어 그러다 돌아가실 적에 내가 통일이 되면 영감 소식을 듣고 죽을 줄 알았는데 못 듣고 세상을 떠나니 안타깝다 그렇게 유언을 하시더라고…

Q: 만일 아버지가 살아계시다면?
A :아버지 우리자손들이 아버지 안 계셔도 다 잘됐어요.. 서울대학 나오고 다 좋은 사람들이 됐는데…. 그러니까 아버지가 안 계셔도 고생은 했지만 저희들은 보람 있게 잘 살고 있습니다.

특이 사항

<아버지 납북 이후 실종 되었던 둘째 오빠가 환도 이후 중공군 장교로 왔었다는 소문을 들음>

1.4 후퇴 때 노인네들은 피난을 안가고 움을 짓고 사는데 이렇게 보니까 우리 집터에 중공군 장교가 왔다갔다하더래. 그 오빠가 중국으로 건너가 가죽 장화을 신고 권총을 차고 왔더래. 동네 사람들은 죽일까 봐 무서워서 가만히 내다보니 약국 집 둘째 아들이더래 그렇게 왔다 갔다 10분 그러다가 가더래. 그러니까 이게 진짜 중공군 장교로 들어갔나? 우리 오빠가 빨갱이었나? 빨갱인 아닐 텐데. 대학 다닐 때는 유진오박사가 제일 아끼던 제자였대 시계를 바꿔 찾으니. 그 정도로 대학 다닐 적엔 괜찮았나 봐요 그러다가 어떤 사람이 편지를 가져왔는데, '내가 길가다가 붙들렸는데 내가 의용군으로 붙잡혀간다 수성국민학교에 있다' 이래가지고 엄마하고 나하고 수성 국민학교에 뛰다시피 해서 가니까 벌써 다 떠났어 낙동강 쪽으로, 그래서 죽었겠구나 했는데 1.4후퇴 지내고 환도해서 올라오니까 친구가 동네 주민들 얘기를 하더라구요. 내 생각에는 이 사람이 학문도 있고 하니까 중공군으로 들어가서 어떻게 아버지 소식을 알라고 그 쪽으로 했나 그런 생각이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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