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사업증언채록

증언채록

납북자-김재봉 (증언자-김항태)
이름: 관리자
2013-09-16 10:34:24  |  조회: 2629


051011A 김재봉 / 2005. 10. 11 채록
// 첨부: 문서 오른쪽 상단 차례로 배치 사진1 (피랍자:김재봉), 사진2(증언자:김항태)

피랍자
성명: 김재봉
생년월일: 1920년 7월 17일(인천시 강화군 출생)
당시 주소: 강화군 교동면 읍내리
피랍일: 1950년 8월 20일
피랍장소: 강화군 교동면 읍내리 자택 안방 천장
직업: 교동 지서 금융 조합원, 대한 청년단 단장
직계가족/부양가족: 배우자(임신 중)
외모 및 성격 : 보통 키에 호남형, 바르고 내성적임

증언자
성명: 김항태(1929년생)
관계: 배우자
증언 성격: 직접증언 V 간접증언

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 납치상황 및 원인)
6. 25전쟁이 발발하자 피랍자와 아내는 조카 10명을 데리고 인천으로 피난 갔다가 7월에 고향으로 다시 돌아옴, 오는 도중 피랍자는 삼산면 누이 집에 피신하다가 지방 좌익과 내무서원들에게 잡혀 심한 매질을 당하고 며칠 수감됐다가 교동으로 귀가 조치됨. 9. 28 서울 수복을 앞두고 인민군이 북한으로 쫓겨 가던 중, 다시 내려와서 동네 주민들을 납치해 감. 피랍자는 당시 그 지역 대한 청년단 단장이자, 교동 지서 금융 조합원으로 근무했었음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피랍자 생사확인 및 정부가 직접 기업 상대로 보상 문제 해결을 도울 것









“강화도는 미리 후퇴하라고 명령이 내렸었나 봐요. 하루 아침에 일어나니까 우리 앞 집에 사는 아저씨가 저 사람들(인민군)이 다 나갔다는 거에요. 이상하다 했죠. 그 때가 9.28 나기 열 흘 전쯤이었어요. 그런데 인민군이 나가고서는 그 이튿날 새벽에 다시 들어왔어요. 그 사람들이 며칠 더 있으면서 못 붙잡아 간 사람들 전부 잡아 간 거에요”

“나중에 우리 딸 10살 되던 해, 내가 시집을 안 갈래야 안 갈 수 없더라구요. 왜냐하면 지붕엔 풀이 내 키보다 더 크게 돋았고, 노랭이 굼벵이가 자꾸 떨어지고(흐느낌).”

직업 및 활동

<당시 대한 청년단 단장을 했고, 교동 지서 금융 조합원으로 근무함>

A: 대한 청년단 단장을 했대. 연애할 때 자기말로는 경찰들이 순찰 돌 때, 경찰 한 두 분에다가 동네 청년단원 두 사람 합쳐서 동네를 돌았대요. 왜냐면 그 당시는 암암리로 빨갱이들이 집집마다 찾아 다니면서 도장 찍어라 하면 입당이 되니까 그것을 모이지 못하게 순찰을 도는 거죠. 또 우리 집 양반 방에 그 당시엔 책장도 없죠. 그 때 책이 방바닥에서 저기까지 닿아 있을 만큼 많은거야. 그래서 동네 청년들이 밤이면 그리로 놀러 온대요. 와서는 책을 빌려 가고. 그래서 빌리러 오는 사람, 빌려간 사람, 빌려간 책 갖다 주러 오는 사람 해서 늘 방에 친구들이 그렇게 모였대요. 그런데 그 중에 한 사람이 '어제 나보고 공산당원으로 도장 찍으라는 사람들이 왔었다'면서 우리 집 양반 찾아와서는 ‘너가 찍으면 나도 찍고, 니가 안 찍으면 나도 안 찍겠다’ 했는데 남편은 아니라고 해서 그 사람들이 다 안 찍고 그랬어요.그 정도로 그러면 애국자 아니겠어요? 애국자들을 몰라보고 이렇게 무시하고 세상에 내가 그 동안 내가 어떻게 살았겠어요?

납북 경위

<6. 25전쟁이 발발하자 피랍자와 아내는 조카 10명을 데리고 인천으로 피난 갔다가 7월에 고향으로 다시 돌아옴, 오는 도중 피랍자는 삼산면 누이 집에 피신하다가 지방 좌익과 내무서원들에게 잡혀 심한 매질을 당하고 며칠 수감됐다가 교동으로 귀가 조치됨. 9. 28 서울 수복을 앞두고 인민군이 북한으로 쫓겨 가던 중, 다시 내려와서 동네 주민들을 납치해 감>

Q: 6. 25 때 바로 피난은 안 갔는지?
A: 인천으로 피난 갔다가 돌아왔어요. 우리 둘과 조카들 열을 데리고 금융 조합원 식구들과 조그만 배를 얻어 타고 사흘인가 갔는데 애들을 데리고 있으니 일도 많고 너무 힘들어 돌아왔죠. 그런데 돌아오는 중에 우리가 어느 배에 탔다는 것까지 벌써 그 사람들이 다 알고 중간에 와서 기다린 거에요. 다행이 우린 다른 곳으로 도망가서 그 땐 안 잡혔지. 그러다 중간 또 어디 섬에 삼산면이라고 보문사라는 절 있는 데, 거기가 누님 집이 있어 그리로 피신을 했어요. 그리고는 (남편이) 날보고 “교동 가서 집에 잘 들어가 있어라 내가 편안하면 금방 돌아간다” 이랬거든요. 그래서 우리들은 오고 그 사람은 안 오니까 배 터에서 군인들이, 동네 빨갱이, 내무서원이고 그렇겠지 뭐 내가 누가 내무서원인지는 모르니까. 여하튼 그런 사람들이 섰다가 남편은 안 왔다니까 그럼 잡아오라고 했나 봐요. 삼산면으로 가서 누님 집에 있는 걸 득달같이 잡아왔대요, 잡아와서는 때리고. 그래서 머리에서 피가 났다고(울음) 얼굴을 동여매고 있다고 기별이 왔어요. 그래서 제가 가니까(말을 잇지 못함). 그렇게 매맞고 거기서 감방에 며칠 갇혔다가 근신하고 있으라고 해서 나와서는 한 달쯤은 있었어요.

Q: 피랍 상황?
A: 강화도는 미리 후퇴하라고 명령이 내렸었나 봐요. 하루 아침에 일어나니까 우리 앞 집에 사는 아저씨가 저 사람들(인민군)이 다 나갔다는 거에요. 이상하다 했죠. 그 때가 9.28 나기 열 흘 전쯤이었어요. 그런데 인민군이 나가고서는 그 이튿날 새벽에 다시 들어왔어요. 그 사람들이 며칠 더 있으면서 못 붙잡아 간 사람들 전부 잡아 간 거에요 새벽에 들어와서 대문을 두드리는데 일어나려 하는데 벌써 대문이 부서져서 나자빠지는 소리가 나고, 사람이 집을 에워 싼 거에요. 남편은 우리 집 천장으로 올라가서 숨어있는데 거기 있냐고 소리지르니까 내려와서 붙잡아 가고, 그 다음부터는 내가 정신을 잃었어.

Q: 구타는 없었는지
A: 납북되기 전에 이미 다 맞았다고 누가 그러더라구요. 이후에 가보니 (잡혀간 곳)마당에다 둘씩 셋씩 세워놓고 끈으로 메 놨어요. 몇 미터쯤 떨어져서 보니까 눈을 쏘아볼 듯 보드라고. 그 때 나는 기운이 없어 외숙모 의지하고 겨우 서서 보는데 마지막이라 그러고 가는 건지 어휴.

납치 후 소식

<황해도 연백에서 어느 할머니를 통해 전해온 안부 쪽지 외에는 없었음>
A: 우리는 9.28때 잡혀 간 건데, 그 전에 6.25때 잡혀간 사람들은 소문듣기에는 강화도로 가서 개풍군으로 건너서 이북 땅으로 갔다고 하더라구요.
남편 소식은 잡혀가고 그 이튿날인가 봐요 자기 걱정 하지 말라고 썼고요. 당신의 남편 김재봉(눈물) 이렇게 쪽지를 그 당시 어떤 할머니가 전해준 거에요. 당시 교동사람들은 가까운 거리에 있어요 황해도 연백을 많이 왕래하고 사셨어요 할머니들은 온천도 다니고 연안온천 장에도 다니고 그랬대요. 그 때 (남편이) 거기(연백)까지 무사히 왔으니까 어떤 할머니를 보고는 얼른 찢어가지고 저희 집사람한테 전해주라고 했나 봐요.
납치 후 남은 가족의 생활은?

<은행에서 담보로 산 집에서 임신 중이었던 피랍자의 아내는 딸을 낳고, 피난민들과 함께 살았으나 이후 생활고에 시달려 재가함. 남편이 재직했던 금융 조합원에서 퇴직금을 주었으나 집안의 모든 빚을 제한 것이라 거의 도움이 되지 못함>
A: 우리 집이 하나 있었는데, 피난민들이 내려 오면서 부대 대장쯤 되는 분이 방 좀 달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나는 그 쪽이 식구도 많고 하니 안방을 쓰라고 주고, 나는 건넌 방으로 왔어요. 그 땐 뱃 속에 애기도 낳은 때에요. 그런데 밥을 내가 혼자 해먹고 하니 그 집 할머니가 애기 엄마가 어찌 밥을 해 먹냐며 같이 먹자고 해서 한 1년 그 집 밥을 얻어 먹었어요.(울먹이면서) 그런 중 애기 낳기 전에 금융조합에서 퇴직금이라고 갖다 주더라구요. 그런데 내가 그 당시 똑똑했으면 ‘지금 전시에 우리 남편이 놀면서 안 나가는 것도 아니고 잡혀갔는데 무슨 퇴직이냐’ 하고 본사로 뛰어 올라 갔을 거에요. 정말 분해요. 근데 직원이 하는 말이 다른 직원은 무단 결석하면 3개월이면 퇴직금을 주는데 전시니까 봐서 6개월이니까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퇴직금을 준다고 하더라구요. ‘회사는 회사대로 그렇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준 돈을 보니까 우리 집 담보로 갚기로 한 집값을 거기에서 제하고, 또 형님이 어디 가서 빚진 것도 제하고, 그리고 가져온 것이 아기 날 때 먹으려고 쌀 한말 사다 놓고, 미역 한 잎 사다 놓으니 아무 것도 없었어요. 남은 게. 난 지금 그게 원통해요 나는 대통령한테 하고 싶은 말이 그거에요 대통령이 금융 조합 이사 그 높은 사람들 보고 ‘전시에 무슨 퇴직금을 줬냐고 그 아줌마 딸하고 살게 두지 지금이라도 계산해서 줘라' 그런 말 해주라 해달라고 난 꼭 대통령 만나고 부탁하고 싶어요. 그거 아니고 그 딸도 어떻게 길렀는데(눈물). 그 땐 취직 자리도 없고 애가 딸렸으니 누가 식모로 쓰지도 않아요. 어휴(눈물) 이후 군인 집이 나가고 혼자 아이를 키우는 피난민 여자가 있어서 같이 살았어요. 그 이는 인천으로 장사를 하러 가고, 나는 집에서 애들 봐주고 그렇게 해서 먹고 살았어요. 나중에 우리 딸 10살 되던 해, 내가 시집을 안 갈래야 안 갈 수 없더라구요. 왜냐하면 지붕엔 풀이 내 키보다 더 크게 돋았고, 노랭이 굼벵이가 자꾸 떨어지고(흐느낌).
정부의 노력

<없었음>

연좌제 피해

<없었음>

호적정리

<피랍자의 조카들이 사망으로 정리함>

정부에게 바라는 말

<피랍자 생사확인 및 정부가 직접 기업 상대로 보상 문제 해결을 도울 것>

A: 바라는 게 있다면 물론 사람 찾아오든가 하는 거고. 나는 대통령한테 하고 싶은 말이 그거에요 대통령이 금융 조합 이사보고 그 높은 사람들 보고 ‘전시에 무슨 퇴직금을 줬냐고 그 아줌마 딸하고 살게 두지 지금이라도 계산해서 줘라' 그런 말 해주라고 난 꼭 대통령 만나고 싶어요.(눈물)

피랍자에게 전하는 말
A : 내 복이 없어서 당신같이 좋은 사람을 놓치고 거지 중에 거지로 사람들에게 멸시 당하고 업신여김을 당하며 살았어(흐느낌). 당신 만나서 못다한 얘기나 한 마디 하고 가려고 내가 살고 있는데 며칠 전엔 아파서 이제 죽나 보다 했어요. 또 살아난 거 같은데, 만일 거기서 가족을 이루고 산다면 오래오래 더 잘 살라고 하고 싶고, 조카 자식들이 당신이 장만한 집을 팔았어요. 우리 딸 줄 거라고는 그거 밖에 없는데 그걸 팔아서 가졌어(원통함).
딸이 나를 데리고 어느 계곡인가를 가서 거기다 발을 담그고 있는데 보니까 낙엽 잎이 여러 개 있는 중에 다른 건 흘러가는 데 하나가 깊은 데로 들어가서 맴돌고 있더라고. 저건 언제 내려갈건가 한참 얘기하다가 쳐다보면 그게 여전히 맴돌고 있어요. 그래서 내가 당신이 먼저 가셨다면 하늘나라에 가서 저렇게 맴돌고 나를 기다려 주고 내가 먼저 죽으면 내가 저렇게 낙엽처럼 내가 깊은 물에서 저렇게 기다린다고, 그러고 싶어요.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30 납북자-신치호 (증언자-조금자,신경순)
관리자
13-09-16 2523
29 납북자-유계식 (증언자-유종근)
관리자
13-09-16 2191
28 납북자-박성수 (증언자-박제완)
관리자
13-09-16 2151
27 납북자-김경도 (증언자-김재관)
관리자
13-09-16 2207
26 납북자-이재관 (증언자-이길용)
관리자
13-09-16 2184
25 납북자-유홍목 (증언자-유영숙)
관리자
13-09-16 1915
24 납북자-유한목 (증언자-유영숙)
관리자
13-09-16 2230
23 납북자-김재봉 (증언자-김항태)
관리자
13-09-16 2628
22 납북자-안호철 (증언자-김직자,안청자)
관리자
13-09-16 2469
21 납북자-박점석 (증언자-박정선)
관리자
13-09-16 2045
20 납북자-홍남석 (증언자-홍능자)
관리자
13-09-16 2323
19 납북자-김현일 (증언자-김영희)
관리자
13-09-16 1786
18 납북자-김우순 (증언자-김형목)
관리자
13-09-16 2400
17 납북자-이종각 (증언자-이진수)
관리자
13-09-16 2003
16 납북자-윤기섭 (증언자-윤경자)
관리자
13-09-16 2743
15 납북자-박기성 (증언자-박금석)
관리자
13-09-16 2195
14 납북자-이봉우 (증언자-유정옥,이소우,이상일)
관리자
13-09-16 2529
13 납북자-최시철 (증언자-전재임,최상동)
관리자
13-09-16 2346
12 납북자-최 준 (증언자-최광석)
관리자
13-09-16 1940
11 납북자-최용준 (증언자-최홍재)
관리자
13-09-16 3207
1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