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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신치호 (증언자-조금자,신경순)
이름: 관리자
2013-09-16 10:43:21  |  조회: 2524


051017A 신치호 / 2005. 10. 17 채록
// 첨부: 문서 오른쪽 상단 차례로 배치 사진1 (피랍자:신치호), 사진2(증언자:조금자 신경순)

피랍자
성명: 신치호
생년월일: 1922년 8월 18일(황해도 평산군 적암면 온정리 출신)
당시 주소: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 2가 30번지
피랍일: 1950년 7월 경
피랍장소: 서울시 종로구 숭인동
직업: 육군본부 4국 3과장, 통알처장, 신익희 조병욱씨 보좌관
당시 직계가족/부양가족: 배우자, 자녀 2녀
외모 및 성격 : 신장 175cm, 미남형

증언자
성명: 1.조금자(1923년생) 2.신경순(1946년생)
관계: 1.배우자. 2.장녀
증언 성격: 직접증언 간접증언 V

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 납치상황 및 원인)
피랍자는 동료와 함께 피신 했다가, 다시 처가로 도망하던 중 집 앞에서 인민군들에게 발견되어 지프차를 타고 동묘 경찰서로 연행됨, 당시 직속 높은 간부들(정치 관료)및 부하 직원들 사이에 간첩들이 많아 피랍자가 피신할 만한 모든 곳이 감시 하에 있었음. 피랍자는 육군본부 4국 3과장, 통알처장, 신익희 조병욱씨 보좌관을 하면서 다양한 정치 활동을 맡고 있는 인물이었음.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납북자 생사확인 및 공무원 가정 피해 보상








“아버지는 농사꾼처럼 꾸미고 숨어 계셨는데, 6.25가 터지니까 간첩이 다 인공기를 들고 나오면서 신치호씨 잡으라고 뒤집어 졌대요. 그런데 알고 봤더니 아버지 직속 밑에 부하들이고 전부 다 간첩이에요. 바로 아버지 밑에 가방 들고 다니던 사람도 다 간첩이었대요. 그러니까 친정이고 어디고 샅샅이 다 알고, 어디서 자는 것까지 다 아는 사람이니까 그 사람들이 잡아 간 거죠.”

“우리 어머니가 노출을 시키지 말라고. 간첩들이 많다고 쥐도 새도 모르게 자식들 다 죽인다고 그러셔도 우리는 이날 이 때까지 입 닫고 살았죠. 사람 하나 사라지니까 다 무서운거야.”

직업 및 활동

<육군본부 4국 3과장, 통알처장, 신익희 조병욱씨 보좌관>

A(신경순): 직책은 육군 본부 4국의 3과장. 또 하나는 남북 통일하는 통알 과장. 지금 정보 부장 역할 하는 것이었고요. 그 때 당시 신익희씨와 조병욱 박사의 직속 비서 일을 하셨어요. 이승만 대통령을 일 주일에 두 세 번 만나서 결과 보고를 했었대요. 이북에 넘어가고 넘어온 사람은 잡아다가 문초해서 집어넣고 여기서 간첩은 교육시켜 이북으로 보내고 그런 일을 하셨어요.

납북 경위

<피랍자는 동료와 함께 피신 했다가 다시 처가로 도망하던 중 집 앞에서 발견되어 연행됨, 당시 직속 높은 간부들(정치 관료)및 부하 직원들 사이에 간첩들이 많았음>

Q: 어떻게 납치당하셨는지?
A(조금자): 이 사람이 어디로 어디로 돌아 다니다가 (군인)1부장이란 사람하고 같이 다녔는데 그 집은 마누라 하고 애기하고 같이 다녔대. 우리집이는 혼자 다녔는데. 그런데 그 집 애기가 뭐 사러 가자고 조르는 바람에 엄마가 밖에 나갔는데, 벌써 그 빨갱이들이 이미 얼굴을 다 알잖아. 그래서 그 집으로 쫓아 들어왔대요. 다행히 남편은 그 집에서 피해서 숨을만한 곳는 이미 다 물색해놨지. 일본 사람 집인데 지하에 모래를 쌓아뒀었대. 처음에 전부 나오라 해서 다 나왔는데 그런데 이 사람은 어떻게 용케 빠졌어. (지하에) 모래 속으로 들어가서 모래를 끼 얹고 드러누웠었대. 조금 있으니까 '사람 도망갔다'고 그러더래요. 그랬는데 촛불을 키고 보니까 얼굴 위로 사람들이 요로케 요로케 지나가더래. 그리고 잠잠하니까 그 길로 우리 친정으로 왔지. 발가벗은 몸이고 하니까. 그런데 친정으로 오니까 이미 친정을 다 포위하고 있더래. 그것도 모르고 터벅터벅 왔다가 그 사람들이 다짜고짜 잡고 잠깐 할말이 있다고 그 길로 끌러갔대.
A(신경순): 6. 25사변 직전에도 아버지는 얼굴이 다 알려져 있으니까 농사꾼처럼 바지 저고리입고 갓 쓰고 그러고 다니셨대요. 그리고 집으로 못 들어 오시고. 저희 어머니 친정이 숭인동인데 거기서 농사꾼처럼 그러고 계셨는데, 6.25가 터지니까 간첩이 다 인공기 들고 신치호씨 잡으라고 뒤집어 졌대요. 그런데 알고 봤더니 아버지 직속 밑에 부하들이고 전부 다 간첩이었대요 바로 아버지 밑에 가방 들고 다니던 사람들이 다 간첩이었대요. 그러니까 친정이고 어디고 샅샅이 다 알고, 어디서 자는 것까지 다 아는 사람이니까 그 사람들이 잡아 간 거라구요. 잠깐만 말하고 온다며 지프차타고 여럿이 와서 데려갔대요.

Q: 주변에 간첩이 많았다고 했는데?
A(신경순) : 항상 우리집에는 이북돈이 (많이) 있었어. 왜냐면 여기서 교습, 훈련시켜서 돈 줘서 보내야 되니까. 그런데 백발 백중 안됐대. 왜냐면 아버지 밑에 사람들이 다 간첩이래. 그 때는 간첩인지 아무도 몰랐을 텐데 나중에 보니까 아버지 가방 들고 다니는 사람. 밑에 위에 사람 다 간첩이었대. 여기 서 완벽하게 교습시켜 돈 줘서 이북으로 보내면 죽고 죽고 한 명도 살아온 사람이 없었어

Q: 혹시 부하 이름을 기억하는지?
A(조금자) : 조영철

납치이유

<정치적인 활동을 많이 했고, 좌익 사상자들을 다수 구속 시켰음. 상사 및 부하(조영철 外) 모두가 간첩이라 철저한 감시 하에 있다가 납치됨>
A(조금자): 육군 형무소에서 적색 분자들 다 잡아다가 이 사람 통해서 하나씩 (형무소에) 다 들어가고 그랬죠. 그러다 6.25 사변 때 (이 사람들이) 다 튀어나왔으니까 애 아버지를 해치운 거지
납치 후 소식

< 동묘 경찰서로 잡혀간 후 하루 만에 끌려간 뒤로는 소식 없음>

A(조금자): 동묘 경찰서로 나는 어린애를 업고 쫓아갔는데 오지를 못하게 해요. 문간에 섰는데 총대로 밀고 가라 그래요. 조사할 게 있으니까 보낼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그래서 파출소에 있지도 못하고…

Q: 때리거나 그런 건 없었는지?
A(조금자): 그런 건 없어요 그 속에서 조용히 얘기하고 그래요
A(신경순): 그러고 그 담 날 가니까 아무도 없더래. 그래서 여기 있는 사람 어딨냐고 했더니 모른다고. 그 다음부터 소식이 없어요.

Q: 그 이후 찾아보려는 노력은?
A(신경순): 이산 가족 할 때는 혹시나 살아계시나 싶었는데, 살아계신 건 아닌 것 같아. 우리가 몇 십 년 찾아봐도 안되고, 우리 작은 아버지가 살아 계신데 이분이 기자셨어요 그래서 외국에 많이 다니셨는데 거기서도 찾아보려고 갖은 노력을 해도 잘 안됐어요.

Q: 어떤 노력을?
A: 외국에 가셔서 혹시 이북에는 안 계시고 타국에 계시나 해서 대사관을 통해서 찾아보시고 했는데 하나도 없대요. 결론은 우리는 돌아가셨다 생각하고 여태껏 살았어요

납북 후 남은 가족의 생활은?

<피랍자의 배우자가 혼자 자녀 둘을 키우느라 고생이 많았음. 식당일, 침대 사업 등 많은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함>

A(신경순) : 우리 어머니가 딸 둘 데리고 대구로 피난 갔다가 그 다음부터 거기서 피난 가서 있다가 다시 서울로 올라왔죠. 올라와서 한강로에 있는 우리 집에서 살았는데, (처음) 거기 가보니까 무덤이 몇 개가 있더래. 근데 보니까 우리 아버지는 아니고 생 모르는 사람을 거기다 파묻어 놨더래요. 그 집에다. 커다란 집에 어떤 사람이 드러누워 있으니까 “당신 신치호냐” 그러니까 사람들이 그냥 “그렇다” 그랬대나 봐. 그러니 거기서 총 쏴서 묻고 묻고 했다는데 시체가 두 구 있으니 도저히 무서워서 살 수가 없었어요. 우리 어머니가 그 때만 해도 나이가 스물 여덟 아홉이고 우리가 세 살 다섯 살이니까. 그 때부터 고생 바가지지 뭐. 고생 엄청 하셨어요

A(신경순) : 식당 해서 근근히 먹고 살았죠. 그 때 신익희씨만 찾아가도 뭐라도 있었을 텐데 우리 어머니가 노출을 시키지 말라고. 간첩들이 많다고 쥐도 새도 모르게 자식들 다 죽인다고 그러셔도 우리는 이날 이 때까지 입 닫고 살았죠. 사람 하나 사라지니까 다 무서운거야. 믿었던 사람들이 다 간첩이니까…

호적 정리?

<실종 정리>

A: (신경순) 호적 정리는 이북에 그 때 당시 호적이 돼 있었대요 혼인신고가. 본적이 황해도 평산이니까. 그러다가 서울에 오셔서 가호적을 하셨어요. 딸 둘을 낳아서. 그리고 6 25때 신고 기간이 있었어요. 그 때만 해도 아버지가 살아 계신지 아닌지 모르니까 일단 살아 계신 걸로 해서 우리가 학교를 들어가야 하니까. 지금은 제적시켜놨는데 한 10여 년 됐어요. 제가 돌아가신 분인지 어쩐지 모르고 호적에 넣어둔다는 게 그렇더라구요. 그래서 실종 신고를 했어요. 법원에 가서 재판을 해서. 기일도 모르고 생신만 8월 18일인 거만 알아요

연좌제 피해는?

<가족이 피랍된 사실을 주위에 밝히지 않고 침묵하며 살아와서 큰 피해는 없었음>

A(신경순) 그게 무서우니까 우리가 조용히 피해 살았지. 이름 석자까지도 감추고 살았으니까. 아버지 이름 석 자를 내놓지 못하고 살았죠

정부의 노력

<없었음>

Q: 신고는?
A(신경순) : 맨 첨에 이산 가족 할 때가 한 십 몇 년 됐어요. 15년 넘었죠? 그 때부터 했어요. 난 그때 방송국에 와서 접수하러 해서 제일 먼저 가서 접수하고 했어요. 그 때만 해도 아버지 살아계시리란 희망이 있었는데 이제는 연세도 살아계셔도 84세고, 그런데 우리가 찾아 보려고 해도 안되니까 작은 아버지가 찾아보려고 대사관이고 소련까지 가봐도 없고.

.Q: 신고하고 나서 정부에서 도움은?
A(신경순) : 10원도 없었어. 그래서 우리가 자라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아버지가 나라를 위해 가정이고 뭐가 다 버리고 가신 분인데, 아니 군인도 가서 저거 하게 되면, 보상이 되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보상도 못 받고 이렇게 억울하게 사나 자라면서 그런 생각은 했었다. 그러나 또 어머니가 조용히 살자고 하고 그 때만 해도 이승만 대통령, 신익희씨 모두 살아 계셔서 말 한마디만 하면은 학교라도 무료로 다닐 수 있는 혜택이 있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우리는 그런 보상 10원도 안받고 정말 어렵게 살았어요.

정부에게 바라는 점

<피랍자 생사 확인 및 공무원 가정 보상 해결>
A(신경순) : 그거는 진작했어야 해. 우리가 공부할 때 너무 힘들었거든요. 그 때 조금이라도 우리를 보상을 해줬으면 공부라도 제대로 했을 텐데 공부들도 다 못했어요. 어머니 혼자 식당에서 일하면서 먹고 사는 것도 힘들 때에 무슨 딸 들 공부시켰겠어요. 그 때는 보상 받았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어요. 그런데 지금이라도 어머니도 계시고 하니까 살아 생전 그렇게 하면(보상) 좋을 것 같긴 하죠.
피랍자에게 전하는 말
A(조금자) : 죽기 전에 한번 봤으면 한이 없어… 내가 맨날 아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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