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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홍범표 (증언자-홍성주)
이름: 관리자
2013-09-17 11:46:37  |  조회: 2088


2006. 11. 13. 채록
061113A 홍 범 표 (洪範杓)

피랍인
생년월일: 1925년생
출생지: 충북 제천
당시 주소: 충북 제천시 백운면 방학리 653번지
피랍일: 6.25 전쟁 중
피랍장소: 자택
직업: 농업, 대한청년단 면소재지 지부 부단장
학력/경력: 초졸
직계/부양가족: 배우자, 자녀 2남.
외모/성격: 장신이고, 힘이 센세고 장수형.장군형.

증언자
성명: 홍성주(1946년생)
관계: 아들자
증언 성격: 간접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상황/원인)
-6.25전쟁 중 의용군으로 강제소집 되어 잡혀갔음. 마을의 20~30대 대부분이 잡혀갔다가 돌아왔는데감, 피랍인은 미처 도망나오지 도망하지 못함.
-피랍인은 당시 대한청년단 면소재지 지부 부단장이었다고 함음.
-피랍 이후 가족들이 생활하는데 시경 치안부 등에서 자주 조사가 나오며 감시가 심했음.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피랍인 생사확인

“동네에 소집된 거죠. 마을 청년들 모두. 뭐 도망가 봤자 다 붙들려 오고, 붙들려 가게 되고. 예전에는 씨족사회 비슷하게 한 마을의 이삼십 세대가 전부 홍 씨 집안사람이었는데, 거기 젊다는 사람들은 다 붙잡혀 간 거지. 나중에 다른 분들은 돌아 왔는데 아버지만 못 돌아 오신 거지.”

“그 때는 젊은 사람들은 거부할 수 없이 무조건 소집이 되고, 소집에 응하고.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고 모아진 상태로 이동을 했는데, 그 자체가 따지고 보면 의용군으로 징집이 된 거죠.”

“ 행불자의 아들은 보이게 안 보이게 당시 시경 치안부 같은 데서 한 달에 한두 번씩 꼭 조사가 나왔었어요. 아버지가 빨갱이로 간첩이 돼 내려와서 우리 어머니와 나를 접선한다고. 뭐 일방적으로 어머니가 출타를 하신다거나 친척집에 이삼 일 다녀온다고 하면 바로 ‘아버지하고 접선했을 것이다. 너는 아느냐?’ 이런 식으로 추궁을 했었고, 보이게 안 보이게 상당히 타격이 많았죠. ”

○ 직업 및 활동

<농업에 종사했고, 대한청년단 면 소재지 지부 부단장 역임.>

답_ 농부죠 뭐. 그리고 아버님이 인물이 좋으시고 키고 크고 그래서 대한 청년단 면소재지 지부의 부단장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 납북 경위

<6․25전쟁 중 의용군으로 강제소집 되어 마을의 20~30대 대부분이 잡혀감. 피랍인은은 미처 도망나오지도망하지 못함>

문_ 당시 나이가 어렸는데 아버지의 피랍상황을 기억하는지요?
답_ 나는 다섯 살 정도라 제대로 기억은 못하고, 당시 상황은 아버님 주변의 친척들, 나이 좀 드신 분들을 통해 듣죠. 아버지 나이 쯤 되는 수십 명이 같은 날 같이 붙들려 가서 이 후에 외삼촌이고 할아버지고 우리 친척들은 다 돌아 왔는데, 유일하게 우리 아버지만 지금까지 행방불명이 된 거죠.

문_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세요.?

답_ (잡혀갔다가 돌아와) 생존해 있는 우리 외삼촌도 나이가 거의 75살 쯤 됐는데, 그 분들 얘기로는 그 당시는 전투를 하면서 앞뒤로 총을 들고 서 있고, 다른 사람들은 100명 200명씩 야간에 행진을 하곤고 했대요. 그 중 돌아온 사람들은 대부분 중간에 '배가 아프다'고 하면서. 땅콩이나 콩을 캐 먹고먹으면서 일부러 배를 아프게 해서했다고 그러네. 그러면 결국 설사를 하고 하고 똥을 싸게 되고, 몸부림을 치다고 논두렁에서 넘어지고 그런 식으로 해서 렇게많이들 한 사람들은 다 돌아왔어요.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워낙 키가 크고 맨 안쪽에 섰기 때문에, 뒤에 중간 중간에 서 있던 우리 외삼촌이나 친척들이 "야 범패야 너 빠져라" 하고 신호를 줬는데도, 맨 앞에서 가다 보니 쉽게 도망을 못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문_ 그러면 아버님의 경우는 소집이 되셨던 거죠?
답_ 동네에서 소집된 거죠. 마을 청년들 모두. 뭐 도망가 봤자 다 붙들려 오고, 붙들려 가게 되고. 또 소집됐다가 도망 나온 사람들은 그 다음날 또 다시 붙들려 가고 그런 식이었으니하니까.

문_ 다른 분들도 같이 납치가 된 것인지건지?
답_ 동네 사람들 거의 다 그런 거지. 예전에는 씨족사회 비슷하게 한 마을의 이삼십 세대가 전부 홍 씨 집안사람이었는데, 거기 젊다는 사람들은 다 붙잡혀 간 것이죠거지. 나중에 다른 분들은 돌아 왔는데 아버지만 못 돌아 오신거지.

문_ 그 수가 많았나요?
답_ 마을에 있는 청년들은 무조건 다 붙들려 갔다고 해요.



○ 납치이유

<의용군으로 보낼 목적>

답_ 그 때는 젊은 사람들은 거부할 수 없이 무조건 소집이 되고, 소집에 응하고.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고 모아진 상태로 이동을 했는데, 그 자체가 따지고 보면 의용군으로 징집이 된 거죠.



○ 납치 후 소식

<군번도 없이 전쟁에 투입된 터라 생사확인이 어려움>

문_ 어디까지 갔다고 들었는지?
답_ (돌아온 분들은) 지역으로는 음성, 면소재지 조금 벗어난 곳에서 왔다고 하고.

문_ 이북까지 갔었다는 얘길 듣지는 못했는지?
답_ 평양까지가지 가지는 못했을 것 같아. 중간에 가다가 무수한 전투가 벌어졌을 텐데. 다른 사람들은 나중에 연락이 와서 원호혜택 같은 거라도 받는데, 아버지의 경우는 행방불명불자다 보니, 그 당시 의용군 같은 경우는 군번도 없었잖아요. 그러니 비참하게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는 그 자체죠. 이북에 넘어갔는지, 중간에 사망이 됐는지 모르죠.


○ 남은 가족의 생활은?

<피랍인의 차남은 홍역으로 죽고, 배우자가 고생하며 장남을 길러 냄>

답_ 남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피난 갔다 와서 홍역으로 죽고, 어머니는 나 하나를 대통령 만들겠다고 키우시면서 고생을 숱하게 하셨죠. 어머니는 결혼해서 열일곱에 나를 낳고, 5년 만에 남편을 잃어버리고, 두 아들을 데리고 피난 갔다 왔다가 작은 아들은 죽고. 아들 하나 있는 건 친척 집에 맡겨놓고, 서울에서 식모살이도 하고 길거리 판매도 하고 나중에 돈을 좀 모아서는 하숙도 치고. 고생 많이 하셨지. 우리 가족 뿐 아니라 그 당시 나처럼 납북 가족이 있는 경우 다들 그렇게 어렵게 살았죠 뭐. 우리 어머니가 재혼이라도 했으면 개인적인 행복이 있을까 몰라도. 저는 결혼하고 애도 낳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어머니가 참 존경스러워요.
당시에는 홀어머니의 아들이란 상황에는 여자들이 시집도 안 왔어요. 나는 용케 좋은 사람 만나 살고 있지만, 그런 상황(납북자 가족)에 있는 사람들이 불행했던 사람들이 많죠 다.

문_ 평소 어머니가 아버님 얘기는 많이 하시던가요?
답_ 어머님이 상당히 지독하게 독수공방하시면서 혼자 사시다 보니까 상당히 냉정하시고,
여태까지 아버님에 대한 얘기를 별로 꺼내시지 않았어요.



○ 정부의 노력

<없었음>

문_ 신고는?
답_ 남들은 아버지를 찾으려고 노력도 해보고 하는데, 그런데 내 생각에는 살아계시지도 않는 것 같고. 정부가 하는 얘기나 이런 걸 볼 때 부정적으로 보이고, 안 될 것 같고, 하면 뭐하나 싶어 그냥 있었어요.

문_ 정부의 지원이나 노력은?
답_ 정부의 의지가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기도 하고, 적십자에 의뢰해서 가족 상봉을 하는 것도 극소수의 인원만 접촉이 되고 하는데 그 많은 사람들을 다 어떻게 할 거냐고. 더구나 나 같은 경우는 명단이 확실치도 못하고. 겨우 6.25사변납북가족모임이 있으니 여기에 조금 기대치를 갖고 있지만. 정부가 관심이 화끈하게 없는 것 같아.



○ 호적정리

<행방불명으로 되어 있음>

답_ 여태 사망 신고를 안 하고 행불자로 돼 있어요.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머니 보시기도 그렇고, 그냥 놔둔 거죠. 사망신고를 하려고 해도 증인도 있어야 하고 상당히 복잡하더라고요.



○ 연좌제 피해

<시경 치안부 등에서 자주 조사가 나오며 감시가 심했음>

답_ 내가 결혼하기 전까지는 어머니와 둘이 살았는데, 학교 다닐 때도 공무원 쪽이니 군대 쪽으로는 비밀취급인가가 안 나올 정도였어. 행불자의 아들은 보이게 안 보이게 당시 시경 치안부 같은 데서 한 달에 한두 번씩 꼭 조사가 나왔었어. 아버지가 빨갱이로 간첩이 돼 내려와서 우리 어머니와 나를 접선한다고. 뭐 일방적으로 어머니가 출타를 하신다거나 친척집에 이삼 일 다녀온다고 하면 바로 ‘아버지하고 접선했을 것이다. 너는 아느냐?’ 이런 식으로 추궁을 했었고, 보이게 안 보이게 상당히 타격이 많았죠. 비밀취급인가라는 것은 신분보장인데 아버지가 납치됐다는 것 때문에 자녀에 대한 감시, 뭐 그런 게 된 거지. 당시 안기부, 치안 본부 등에서 항상 요 주위 인물로 취급된 거지.

문_ 취업하실 때는?
답_ 취업할 때도 당연히 이력서 접수 같은 것을 할 때는 상당히 어려웠었지.



○ 정부에 바라는 말

<피랍인 생사확인>

답_ 일본 같은 데는 단 한 사람이라도 납치가 되면고 하면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나서고 하는데, 우리는 그런 면이 상당히 부족하지요, 역량이. 더구나 남한과 북한의 게임에서 외교적으로도 그렇고 우리 스타일과는 맞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러니 그 쪽의 전술에 휘말리고 있는 것 같고 하니 큰 기대는 못하죠. 통일이 되는 것도 어렵고, 내 아버지 찾는 일은 더 어려울 것 같고. 뭐 그렇습니다.



○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문_ 많이 그리우셨을 것 같은데?
답_ 많이 보고 싶었죠. 애들 공부 가르쳐서 잘됐을 때, ‘아 이런 건 좀 보여드리고 싶다다’ 하는 게 있죠.

문_ 가족에게 전하는 말?
답_ 이쪽이나 저쪽이나 살아계셨다 하면 이북에서 가족 형성이 됐을 걸로 믿고 그러면 그 쪽에서의 생활대로 건강하게 잘 사셨으면 좋겠어요.
사시실 제가 아버지란 말을 불러본 적이 없어요. "아버지 건강하십시오쇼." (눈물)

문_ 어머니님의 마음은 어떠셨을까요?
답_ 휴. 못하겠어요(한숨). 우리 어머니가님이 혼자서 나를 아버지에님에 대한 신뢰로 내 행동이나 자라오는 여러 가지를 자기 남편의 끄나풀이라는 마음으로 나를 대한 것처럼 느껴져요. 지금까지 어머님이 아버님에 대한 얘기는긴 별로 없었지만, 암묵적으로묵시적으로 아버지를 대하는 안목으로 나를 지켜보신 것 같아요.

문_ 더 하고 싶은 말씀은?
답_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소원이겠지만 하루 빨리 통일이 돼서 나 같은 환경에 처해 있는 사람들의 바람이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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