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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정헌각(증언자-정헌홍)
이름: 관리자
2021-09-16 15:12:25  |  조회: 195
190411C 정 헌 각 ( 鄭憲珏)

생년월일: 1932년생
출생지: 전북 익산군 함열면 와리 749-2번지
당시 주소: 전북 익산군 함열면 와리 749-2번지
피랍일: 1950년 8월 5일
피랍장소: 함열면
직업: 농업
학력/경력: 함열초등학교 졸업, 서당에서 한학도 함
직계/부양가족: 부모, 첫째 형 내외, 조카들, 형제 2남
외모/성격: 무난한 성격과 건장한 체격에 손재주가 많고 머리가
좋았음.

증언자
성명: 정헌홍(1935년생)
관계: 막냇동생
증언성격: 직접증언

특이사항(납치주체/상황/원인)
• 18세 또래 동네 청년들을 대상으로 학교를 무상으로 보내주고 취직도 시켜준다고 하여 따라가게 됨. 그
유인책으로 동네 사람들이 형님을 포함하여 여러 명이 따라감. 이웃동네 모두 합해 50~60명을 북으로
데려감.
• 3개월 동안 걔네들의 행적을 본 다음에 공산당은 거짓말쟁이고 호랑이 하고는 같이 살아도 공산당 하고
는 같이 못 산다라며 공산당을 좋아했던 모든 사람들이 후회를 하고 등을 돌림.

직업 및 활동
<초등학교 졸업 후 아버지 농사일을 도움. 족보를 필사할 만큼 한문을 많이 배웠음.>
문_ 형님의 직업이나 사회적 활동은 하셨나요?
답_ 초등학교 졸업하고 집에서 아버지 농사일을 도왔어요. 사회적 활동 같은 것은 한 적
이 없어요. 농사지었고 한문을 서당에 가서 많이 배웠어. 족보도 복사를 하고 그랬었죠.

납북 경위
<18세 또래 동네 청년들을 대상으로 학교를 무상으로 보내주고 취직도 시켜준다고 하여
따라가게 됨. 그 유인책으로 동네 사람들이 형님을 포함하여 여러 명이 따라감. 이웃동네
모두 합해 오륙십명을 북으로 데려감.>
문_ 전쟁 나기 전에 동네 분위기는 어떠했나요?
답_ 마을 분위기는 평화롭고 화목하고, 농촌의 아름다운 살기 좋은 마을이었어요. 근데
6·25전쟁이 터지고 불안이 시작이 된 거죠. 특별한 이변이 있는 건 아니었는데.
문_ 형님이 어떻게 납북되셨나요?
답_ 여름인데… 아마 칠월인가 팔월인가 그럴 거예요. 인민군들이 들어왔고 비행기가
철로 폭파하고 이런 상태였는데, 동네 청년들을 모아 가지고 ‘학교 보내 주겠다. 학교 무
상으로 보내주고, 거기 나오면 취직도 시켜준다.’ 그래서 우리 마을에 110호 정도가 살
았는데 그때 그 유인책에 동참해서 간 애들이 우리 형님을 비롯해서 여섯 명이 따라갔어
요. 며칠 후에 앞동네, 뒷동네 다 합쳐가지고서는 일개 소대 한 오십명 육십명 열을 지
어가지고 강경 쪽으로 가는 거야. 우리 동네가 함열인데, 함열하고 강경하고는 기차역
하나 사이거든. 전북하고 충남하고 경계선이야.
우리 누나 댁이 용안인데 내가 그때 용안 누나 댁에 가 있었는데, 북으로 끌려가는 그 형
님 대열을 본 거야, 우리 누님 댁 뒤에 신작로로 가더라고. 거기서 우연히 만났어. 18살
먹은 청년들이 한 오십명 육십명이 끌려갔다기보다도 열을 지어가지고 북쪽으로 간 거
야. 강경 쪽으로. 강경 쪽이 다시 말하면 북쪽이거든. 북으로 끌려가는 줄은 전혀 몰랐
죠. 1%도 그런 생각은 못했어요. 의심을 못했죠. 그 당시에 비밀리에 라디오라도 누가
하나 가졌어도, 그걸 알았을 텐데, 전혀 몰랐어요.
그냥 평상시 입던 그대로 뭐 준비하거나 한 것도 없고. 그때 가는데 보니깐 주먹밥을 해
서 먹었다고 그러더라고. 하나씩 나눠 줘서 소금 좀 해가지고 어떻게 주먹밥 나눠 줘서
먹었다고 하더라고. 그러니깐 이제 잠깐 가는데 따라가면서 누나하고 나하고, 그 행렬
이 빨리 빨리 간 게 아니라, 보통 천천히 갔으니까 그러니깐 이제 따라가면서 잠깐 얘기
하고 계속 따라갈 수는 없잖아. 그러니깐 ‘형님 잘 가’, ‘그래 잘 있어라’ 그런 거지. 그래
서 ‘잘 갔다 온다.’, ‘잘 다녀오세요.’ 이 정도로 인사하고 헤어진 거지. (내가) 누님 댁에
갔다가 누님도 그걸 봤고 나도 그걸 본 거야.
인솔하는 사람은 그냥 보통 사람이었어요. 완장을 두르거나 총을 들고 위협하거나 이런
것도 전혀 없었고요. 거기는 자발적으로 간 사람들이었으니까요. 우리 동네 허◯선, 정
◯선, 김◯렬… 이름이 다 기억은 안 나는데 형님을 포함해서 한 6명 정도가 끌려갔어
요. 전부 열여덟살 쯤이었고요.

납치 이유
<인민군들이 후퇴하면서 의용군 등 인적자원으로 모아서 끌고감.>
문_ 왜 납치하였을까요?
답_ 6·25때 유월에 인민군들이 내려왔는데 그 후로 칠, 팔월 되니까 비행기가 철로, 다
리를 폭파하고 그러더라고요. 우리는 전쟁이 어떻게 되는 줄 전혀 몰랐지. 다 끌려간 후
에 한 달도 못 되가지고 이제 UN군들이 올라오는 거야. 도로로 미군들이 장갑차, 트럭
몰고 백인, 흑인 이렇게 올라오더라고요. 그때서야 인민군들은 물러가고 국군이 올라온
다. 그걸 동네사람들이 그때서야 알게 됐어. 집에서는 공부하러 갔다. 공부하러 갔다.
이런 속임수에 그냥 다 온가족이 공부하러 갔다. 이제 곧 온다. 이렇게만 알고 있었지.
지금 생각하면 전쟁이 불리하게 되니까 인적자원들을 모아가지고 북으로 끌고 간 거예
요. 근데 그렇게 말하면 따라올 놈이 없으니까 이번에 모집하면 공부 무상으로 시켜주고
졸업한 담에 취직도 다 시켜준다. 모여라. 이러니 동네 청년 중학교 못 간 애들이, 우리
형님 같은.
그 당시에는 중학교 가는 확률이 20~30% 밖에 안됐어요. 전부 가난해서 못 갔으니까
요. 그러니 동네 중학교 못 간 청년들이 ‘야! 공부시켜준데, 공짜래. 거기 나온 담에는
취직도 시켜준데, 야! 가자가자.’ 이래가지고 앞동네 뒷동네 전부 해서는 끌고 간 거야.
후퇴하면서 인력자원들을 감언이설로 끌고 간 거야. 근데 그걸 전혀 몰랐지. 그 당시 전
황이 벌써 후퇴하는 지도 몰랐고, 동네 사람들도 전혀 인민군들이 후퇴하는 줄 몰랐어.
후퇴하면서 인적자원을 끌고 간 거야. 그래서 그 당시 그 무리들을 의용군이라고 그랬어
요. 명칭을 의용군이라고 불렀어.
문_ 납치된 걸 안 다음에 동네 분위기는 어떠했나요?
답_ UN군 올라오고 나서야, ‘아 끌려간 거로구나. 아 속았구나.’ 그런 걸 알았지. 공산
당이라는 거를 남한에 있는 사람들은 잘 몰랐어.
남한에도 공산당원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3개월 동안 걔네들의 행적을 본 다음
에 공산당은 ‘거짓말쟁이고 호랑이하고는 같이 살아도 공산당하고는 같이 못 산다.’라고
피부로 느끼고, 공산당을 좋아했던 모든 사람들이 후회를 하고 등을 돌리고 공산주의는
거짓말쟁이라는 걸 안거지. 어떻게 했냐면 논들을 뺏어 가지고 나눠줬어요. 그때는 좋
아들 했어. 논을 다 주니까요. 그런데 농사지으니까 평수를, 한 평을 딱 재더니 그놈을
수확을 하는 거야. 한 평에서 예를 들면 벼가 얼마 나왔다. 콩이 반 되가 나왔다. 100평
이다 하면 생산 예산치를 확률을 내는 거예요. 이거 다 내라 이거야. 그러고 배급 타 먹
으라는 거야. 그러니까 동네사람들이 일본 놈들, 왜놈도 이러지는 않았는데 이거는 왜
놈 뺨치는 놈들이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6·25동안 3개월이 남한에 있는 사람들로 하
여금 공산당의 진모를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지.
그래 가지고 반공의식들이 강화가 되었고 정신들을 차렸고 내가 나중에 알게 된 얘기지
만, 그 전에는 동네 동네마다 공산당원들이 있었어. 우리 동네에는 없었어. 그런데 밤중
이면 죽창 만들어가지고 동네에서 군사 훈련을 시키고 그랬다고 그러더라고. 동네 빨갱
이가 나는 못 봤는데, 그런 소리를 이웃 마을에서 그런 일들을 했다고 그러더라고. 그런
데 6·25, 삼개월 동안 북한 애들 통치를 받았거든. 그러고 나니 공산당은 거짓말쟁이고
겉과 속이 다르고 왜놈보다 더 지독한 놈들이고, 다 알게 된 거지.
그 놈들이 갈 적에 사람들 많이 죽이고 갔어. 경찰가족, 군인가족, 돈 많은 부자들 모두
요. 우리 마을에는 죽은 사람은 없었어요. 앞마을 뒷마을에 그런 일들이 있었어요. 갈
때 추잡하게 하고 간 거야.
문_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된 가족들은 어떻게 하셨나요?
답_ ‘아이구! 속았구나.’ 하고. 절망적이고 ‘우리 형님이 끌려갔구나, 비극이다’ 이렇게
생각했지. 어떻게 대처할 방법이 없었지. 큰형님도 뭐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지.

납치 후 소식
<당시 부모님이 노쇠하시고, 큰형님도 가족이 있어 둘째 형을 찾지 못함. 전쟁 끝나고 형
과 함께 납북된 김학렬이 의용군으로 가다가 빠져 나와 국군장교가 되어 마을로 돌아옴.
김학렬을 통해 폭탄이 떨어지는 바람에 다 흩어졌고, 형은 아마 북으로 갔을 거라는 얘기
를 들음.>
문_ 납치 이후 형님에 대한 소식은 들으셨나요?
답_ 전쟁에 아들 하나 잊어버렸다 (하고 있는데), 그런데 나중에 학렬이가 그 대열에서
빠져나와서 포로로 잡혔어. 그 전에는 전혀 못 듣다가, 한참 지나고 …. 전쟁 끝나고 한
10년도 넘어서지. 학렬이가 국군 장교가 되어서 마을을 찾아왔어요. 동네 의용군으로
끌려갔던 그 가족들이 궁금해서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학렬이가 북으로 가는 대열에서 빠져나와 가지고 포로로 잡혔대. 포로로 잡혀
가지고 거제 수용소에 있다가 거기서 포로 석방할 때 나와서 우리 국군에 지원입대를 했
어. 그래서 장교가 되서 우리 마을에 나타난 거야. 이분이 대위까지 진급을 하고 제대를
했었지.
동네 사람들이 ‘야, 너 임마 같이 가서 왜 너 혼자 왔느냐?’ 그랬더니, 같이 가다가 임진강
지역 어딘가에서 공습을 받았대. 비행기에서 기총 사격하는 바람에 뿔뿔이 헤어져가지고
각자 살기 위해서 뭐 친구고 나발이고 할 거 없이 각자 행동을 하는 바람에 다 흩어졌다고
그러더라고. 근데 자기는 가다가 거기서 낌새가 안 좋은 것 같은 느낌이 있어서 뒤로 빠
진 거고, 그 대열 대부분 사람들은 공습을 피해서 빨리 빨리 북으로 도망을 갔다고, 그럼
나머지는 어떻게 됐겠느냐 하니까 내 생각에는 북으로 갔을 겁니다 그러더라고.

남은 가족의 생활
<피난은 가지 않았음.>
문_ 피난은 가셨나요?
답_ 피난은 안 갔어요. 6·25가 터졌는데 인민군들이 동네로 들어오더라고요. 들어와서
총 메고 개별적으로 당신들은 해방되었다고 그러는 거예요. 이게 뭔지 해방이 뭔지 멍하
니 있었죠. 근데 그 인민군들이 처음에 내려올 때는 아주 신사적으로 해하지 않았어요.
질서도 지켰고, 그런데 빨간 돈을 가지고 왔어요. 빨간 돈은 인민군들이 만들어낸 임시
화폐에요. 임시화폐를 가지고 앞으로 이 돈을 쓴다고 그러더라고요. 옛날돈은 이제 못
쓰고. 그러면서 뭐 과일도 사고 뭐 하고, 우리가 뭐 갖다 주면 그냥 안 먹고 그 돈을 주
고 그랬어. 이제 북한 애들이 내려오면서 화폐를 만들어 가지고 북한군들한테 줘서 앞으
로 이 돈 쓴다, 민폐 끼치지 말아라 그랬어요.
근데 나중에 들어온 담에 그 돈은 다 무용지물이었지. 지금 생각하면 교육을 철저하게
받고 내려왔어요. 민심들을 잃으면 전쟁에 실패한다가 역사의 교훈이거든요. 그러니 민
간을 해치치도 않았고 강탈하지도 않았어요.
근데 나중에 후퇴할 때는 양상이 달랐지. 나중에 후퇴하는 걸 우리가 봤는데 전부 개인
별로 가더라고. 동네에 와 가지고 인민군복은 벗어던지고 집에 들어와서 민간복을 도둑
질해서 입고서 철로 따라서 개별적으로 북상하더라고.
내려올 때도 걔들이 개별적으로 내려왔어. 호남선 쪽으로는 주력 병력이 안 온 거 같아.
좀 강한 주력 부대는 경부선 쪽으로 간 것 같아. 내가 군소령으로 제대했거든요. 주력부
대는 배치를 안 했던 것 같아. 그냥 인민군 올라갈 때도 저항이 없었고, 내려갈 때도 저
항이 없었어.
이제 UN군이 와가지고 인민군 치하 3개월 동안 공산진영에 협조했던 사람들이 많이 수
난을 당했어요. 마을에서 수난을 당하고, 그때 인민군들이 내려와서 경찰가족, 군인가
족, 또 돈 많은 사람들을 굉장히 많이 괴롭히고, 심지어는 후퇴하면서 죽이고 갔다고.

정부의 노력
<없었음.>
문_ 형님을 찾기 위한 활동은 하셨나요?
답_ 아버님도 연로하시고, 형님도 일가가 있어서, 동생이 없어진 것에 대해서 손을 쓰지
못했어요. 신고를 할 분위기도 아니고.
문_ 정부에서 도움은 준 것이 있나요?
답_ 없었어요.

호적 정리
<호적 등본에 형의 이름이 빠져 있음.>
문_ 호적 정리는 하셨나요?
답_ 아마 납북자로 기록했겠지. 내가 지금 호적등본을 떼보면 없어. 납북되었다 죽었다
이런 게 없어. 사망으로 처리가 안 됐어. 아마 그냥 생존으로 미확인으로 있을 거야. 근
데 지금 호적등본해보면 이름이 빠졌어. 어떻게 처리가 됐는지 이름이 빠졌어.

연좌제 피해
<군대 장교, 군목이었는데, 2급 기밀을 신청해도 납북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나오지 않
았음. 보안대 높은 위치에 있는 조카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연좌제로 인해 월남전도 가지
못할 뻔 하였음.>
문_ 연좌제 피해는 있었나요?
답_ 내가 연좌제 피해봤지. 내가 군대 장교로 갔는데 2급 기밀을 신청을 했는데 안 나오
는 거야. 왜 안 나오느냐 했더니 형님이 의용군으로 끌려갔기 때문에 연좌제에 걸렸다
그러더라고. 내가 군목으로 갔거든요. 목사님으로. 그래도 군목은 아무리 연좌제가 있
어도 하나님을 믿는 신앙과 공산당은 도저히 합할 수가 없다 그래서 군생활하는데 지장
은 없었지만, 그게 처음으로 연좌제 피해를 봤구나 하고 느낀 거예요. 2급 기밀을 신청
을 하면 연좌제로 하는 거예요. ‘납북자의 가족, 동생’
내 조카가 보안대 그러니까 정보처 아주 고급 위치에 있었어요. 그분이 나를 많이 변호
해주고 그랬지. 그래서 내가 월남전 가는데도 그것 때문에 못 갈 뻔했어. 못 갈 뻔했는
데, 목사님은 형제가 공산주의라고 치더라도, 군생활에 지장은 없게 했었는데 여하튼 2
급 기밀 취급은 안 나와.

정부에 바라는 말
<동독과 서독처럼 서로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음.>
문_ 정부에 바라는 점을 말씀해주세요.
답_ 생사확인이라도 해준다고 하면은 고마운 거지. 영상으로라도 생존 확인만 해줘도,
상당히 목마른 사람에게 해갈이 되는 거죠. 영상상봉이라도 되면 더 좋은 거고요. 편지
왕래 한다면 더 좋은 거고. 동독 서독처럼 왕래할 수만 있으면 더 좋고. 동독 서독은 왕
래를 했거든. 서로 왕래해서 가족도 만나보고, 갈 때 짊어지고 가서 서독 사람들이 동독
사람들에게 먹을 거 입을 거 갖다 주고 그랬다고. 우리도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는
데, 쉽지가 않지. 세습 김일성, 김정은은 이제 무너져야지. 이게 세습이 안 무너지고서
는 북한이 오픈할 수가 없어.
근데 이거는 뭐 우리 정부에서 갈급하게 요망하지만, 북한이 응하지 않잖아. 북한이 응
하면 자기들 민심이 흔들릴까봐 그래서 안 해주는 거야. 지금 현재 남한이 이렇게 자유
롭게 잘 사는 거, 형님한테 형님, 나 지금 남한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 소령제대 했고
요, 목사 했고요. 서울에 아파트 가지고 애들 저 대학원까지 보냈고요, 행복하게 삽니다
내가 형님 만난다면 그런 얘기 안 할 겁니까? 그렇게 되면 남한이 지금 형편없이 고생하
며 살고 있다. 심지어 깡통 주워 먹고 미군 쓰레기 먹고 산다. 이렇게까지 악평을 하지
는 않을 거니까요. 김정은이가 완전 거짓말을 했구나. 그럼 북한 체제가 흔들리는 거야.
그렇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이산가족은 안 만나게 해주려고 하고 상봉도 안 해주려고 하
는 거예요.
어쩔 수 없이 인권문제가 있고, 남한의 도움을 받으려고 하니까 백명 백명 이렇게 받으
려고 하죠. 걔네들은 해주면서도 아이, 이거 안 해주는데, 이거 하면 우리 실태 드러나
는데, 북한 체제가 흔들리는데, 누구보다도 더 잘 알지. 북한의 지도급들은 그러니 안
해주려고 하는 거예요. 세계에서 인권문제로 자꾸 UN에서 뭐라고 하니까 할 수 없이 눈
물을 머금고 하는 거지 걔들이 뭐 달가운 마음으로 해주나.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형님이 남한에 오시면 내 집을 팔아서라도 도와드리고 싶음.>
문_ 형님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을 해주세요.
답_ 형님이 만약에 살아 계시다고 한다면 우리 자유대한에 오시면 내가 내 집 반절을 팔
아서라도 주고 싶어. 혹시 형수님이 있다던지, 조카들이 있다던지 하면. 그 형님이 나를
무척 사랑했었어.
나를 데리고 누나 댁에도 가고 냇가에 가서 목욕도 하고, 우리 형님이 아주 손재주가 좋
고 머리가 좋았어요. 그래서 한문도 많이 배우고 그 당시에 풀무를 만드는데 만들어서는
엄마 밥하는 데 다 해주고 이런 손재주도 좋았고 그랬어요. 글씨도 잘 쓰고 그랬는데 불
행하게도 복이 없이 끌려간 건데, 오신다면 옛날 얘기하고 아버지 엄마 다 돌아가시고,
큰형님 돌아가시고 누나도 돌아가시고, 이제 형님만 살았다면 형제 중에는 우리 형뿐인
데… 내가 도와드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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