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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채록

납북자-이완중(증언자-이무성)
이름: 관리자
2021-09-27 11:20:22  |  조회: 197
190729A 이 완 중 ( 李完仲, 이완성 )

생년월일: 1917년 1월 12일
출생지: 서울시 중구 양동 34번지(현재 남대문로 5가 34)
당시 주소: 마포구 아현동 383의 108
피랍일: 1950년 7월 중순
피랍장소: 자택
직업: 관공신문사 창간 전 동아일보, 경향신문 기자
학력/경력: 선린 상고 졸업
직계/부양가족: 배우자, 자녀 2남 3녀
외모/성격: 깐깐한 성격

증언자
성명: 이무성 (1942년생)
관계: 아들
증언성격: 직접증언

특이사항(납치주체/상황/원인)
• 납북된 아버지와 좌익활동하던 작은아버지가 전쟁 이전부터 다툼이 잦았음. 작은아버지로 인해 아버지
는 기자생활하다 실직까지 하게 됨.
• 6·25전쟁 직전에 아버님이 탄광업 주간지를 창간하고 피난은 가지 않고 일하고 있던 차, 무장하고 완장
찬 두 명이 아버지를 끌고 감. 동네 젊은이 두 명도 함께 끌고감.

직업 및 활동
<동아일보와 경향신문 기자로 활동하다가 아버지의 동생(작은아버지) 때문에 일을 그만
두게 되어 관공신문사라는 광산 관련된 신문 창간.>
문_ 당시 아버님은 어떤 일을 하셨나요?
답_ 우리 아버님이 처음에 동아일보 기자였다가, 해방 직후에 경향신문 기자 생활을 하
시다가, 우리 작은아버지가 소위 남로당 빨갱이에요. 그래서 형제간에 다툼이 많고, 작
은아버지보다는 작은어머니가 남로당 공산주의자가 되어 가지고, 우리 어머니 말씀으
로는 작은아버지는 작은어머니 영향을 받아서 그렇게 됐다. 그래서 작은아버지가 해방
되자마자 경찰에 들어가셔서 경위를 했어요. 그러다가 옛날에 해방 직후에는 남한은 전
기가 부족하니까 북한에서 전기가 왔었어요. 그거는 아마 김일성이가 생각해서 준 게 아
니고, 미국하고 소련하고 합의하에 남한은 전력이 부족하고 북한은 전력이 남아돌아서
하나를 주기로 했나 봐요.
작은아버지가 전기를 끊으려고 하다가 걸려 가지고, 그 당시에는 (작은아버지가) 경찰
경위였는데 서울시경에. 그러다 걸려서 들어갔는데, 그 내용은 내가 라디오에서 연속극
으로 한 번 들었는데 오재도 검사라고 사상검사 그 사람에 관한 기록, 라디오에서 하는
문화방송에서 ‘특별수사본부’ 인가 그런 라디오 방송이 있었는데, 거기에 우리 작은아버
지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그걸 끊으려고 모의하다가 걸려서 들어갔는데, 우리 아버지가 경향신문사에 있다가 그
것 때문에 쫓겨 난 것 같아요. (작은아버지 일로) 연좌제… 그래서 아버지가 나오셔서 신
문사를 차리셨어요. 관공신문사라고 광산 관련된 주간지인가 봐, 일주일에 한 번씩 나오
는 거. 그걸 차리시고 두 번인가 세 번 밖에 발행 못하고· 265가 터진 거지.

납북 경위
<전쟁 중이라 조용히 있던 아버지를 남자 네 명이 집으로 찾아와서 당시 어렸던 증언자에
게 뒷산에 있던 아버지를 모셔오라고 함. 네 명 중 두 명은 완장을 차고 있었고, 집밖에
나가니 인민군 한 명이 따발총을 들고 집 앞에 있었음. 이때 두 명은 먼저 잡혀 온 사람이
었고, 그 중 한 명은 작은아버지 친구였음. 아버지가 집으로 오시자 바로 묶어서 함께 데
려갔음.>
문_ 당시 기억하는 마을 분위기는 어떠했나요?
답_ 6·25 나는 날은 골목에서 막 놀고 있는데, 우리 윗집에 내 친구 작은아버지가 있었
는데, 그분이 군인이셨어요. 군인 장교였어요. 소위. 근데 그분이 골목에서 놀고 있는
데 신발 끈도 안 매고 막 나오더라고. 그랬더니 우리 옆에 한 할머니가 아니, 어디를 그
렇게 급하게 가냐고 했더니, 북에서 전쟁이 나서 쳐들어왔대요. 그래서 비상이 걸려 가
지고 부대에 가는데 근데 그분이 101 헌병대에 있었다고 내 친구가 맨날 자랑을 했어
요. 그래서 101 헌병대라는 걸 아는데, 아마 서울에 육군 본부인가 거기에 101 헌병대
가 있었나 봐요. 그래 가지고 6·25 날은 그것만 생각이 나고.
6·25 나고 난 다음에 며칠 있다가 인민군들이 와 가지고, 우리 초등학교 다니는 사람
들 전부 다 학교 오라고 해서 학교에 가면 인민군 노래 가르치고, 가서 그거 부르고 그랬
죠. 장백산 줄기줄기 해가면서 그런 노래를 부른 기억이 있었어요. 그리고 전쟁 중이니
까 비행기 날아다니는 거 보고, 인민군들이 하얗게 비행기들이 기포라고 하나 하얗게 줄
그리는 것 연기같이 뿌리고 다니면 꼭 자기네 비행기라고 그랬어요. 나중에 보니까 UN
군 비행기였는데. 그때는 전기도 안 들어오고 라디오가 있어요? 뭐가 있어요. 그래서
우리 아버지도 나가지도 못하시고, 그래서 동네 사람들끼리 모여 가지고 그때 그때 정세
에 대한 정보교환을 하고 있었죠. 며칠간.
문_ 어떻게 납치되셨나요?
답_ 내가 집에서 놀고 있는데, 어떤 아저씨들이 네 명이 들어오더라구. (그중에) 동네에
서 봤던 사람이에요. 날 더러 아버지 어디 계시냐? 그래서 동산에 계시다고 했더니 가서
모시고 오라고 그랬거든요. 네 사람이 그랬는데 집에서 나오니까 인민군 한 사람이 따
발총을 들고 집 앞에 서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 사람을 보면서 올라갔어요. 우리 아버지
있는 곳으로 올라가서 내가 뭐라고 해요. 잡으러 왔다는 말이 아니고, 그냥 손님 왔다고
그랬더니 아버지가 걸어서 오면서 골목 어딘가를 들어서려고 하는데, 우리 먼 친척 아주
머니 한 분이 나와서 아버지를 붙잡으러 왔나 보다고 도망하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아
버지가 난 잘못한 게 없다. 완길이가 있는데. 완길이가 우리 아버지 동생이에요. 작은아
버지. 그 아주머니가 우리하고 친척이니까 알아요. 모든 사정을 다 잘 아니까. 완길이도
있는데 뭐 내가 뭘 잘못했어야지. 그러니깐 (그 아주머니가) 신문사 하지 않냐고 그랬더
니 아버지가 신문도 광산 신문이에요. 그런데 그게 경제 신문이에요. 하여튼 광산 신문
인데, 하여간 내려 왔어요. 슬리퍼를 신고. 그래서 골목으로 내려와서 우리 집으로 들어
갔어요. 그런데 집으로 들어가니까 바로 묶더라고. 그때는 네 사람이 들어왔는데, 네 사
람 중 두 사람은 이미 잡혀 온 거고, 두 명이 완장을 찬 거고.
문_ 아는 사람들이었나요?
답_ 나한테 아버지 데리고 오라고 한 사람은 안면만 있었는데, 우리 아주머니 말씀이 우
리 집 증축할 때 그때 와서 일한 사람이래요. 그런데 집이 용인인지 이천인지 그래요.
그런데 거기 와서 살면서 막일을 한 거죠. 예전에는 막일도 하고 그런 일 하는 사람들이
와 가지고 변소도 치우고 그런 일을 했어요. 그런 거 하던 사람이에요. 그 사람이 이제
우리 집에 데리고 온 거죠. 또 한 사람 아는 사람은 우리 작은아버지 친구라는데, 학교
선생이었대요. 잡혀온 사람은 국민학교 선생. 그 또래. 아버지가 이렇게 집에 들어가니
까 아버지를 보고 인사를 하더라고, 그러더니 옛날에는 철사로 마당에다가 빨래줄을 걸
쳐 놨었는데, 그걸 하나 끊어 가지고 묶더라고 세 사람을. 그래 가지고 가더라고.
그때 우리 어머니께서 안 계셨어요. 어머니가 이제 6·25가 나니까, 쌀을 사 먹던 사람
이 쌀이 떨어지니까 외갓집이 어디 있냐하면. 암사동 아세요? 암사동에 쌀 구하러 외삼
촌하고 그때 우리 외삼촌이 우리집에 왔다가 쌀이 떨어진 걸 알고 우리 어머니랑 쌀 구
하러 외갓집으로 간 거예요.
나가는데 우리 아주머니가 ‘어디로 붙잡아 가는 거냐?’고 했더니 마포경찰서로 간다고
한 것 같아요 그때. 그래 가지고 우리 작은아버지한테 연락을 하라는 것 같아. 한다는
건지 하라는 건지 하여튼 그렇게 이야기를 했어요. 그래서 붙잡혀 갔고, 어머니가 왔을
때는 이미, 그날로 우리 어머니가 오긴 왔어요. 그날 저녁에 그런데 우리 외삼촌이 또
붙들려 갔다는 거예요. 같이 가다가 동대문 어딘가에서. 우리 외삼촌은 의용군으로 끌
려갔어요. 나중에 외삼촌은 인민군복 입고 우리 집에 왔더라고요.

납치 이유
<특별한 이유는 없음. 신문사를 운영하고, 글을 쓰는 지식인이여서가 아닐까 추측.>
문_ 납치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답_ 뭔 이유가 있어요? 이유 없어요. 그냥 와 가지고 대문 걷어차고 이래 가지고 대문 열
어주면 들어와 가지고 막 뒤지고. 동네 아주머니 말씀처럼 글쓰는 사람이라서인지… (아
버지 가시고도) 8월 말까지. 우리 아버지가 7월 십 며칠날 끌려갔으니까 그때부터 한 달
보름간 그렇게 그냥 이틀이 멀다 하고 왔어요. 작은아버지가 집으로 오시고 나서는 그런
일이 없었어요.

납치 후 소식
<끌려간 아버지를 찾겠다고 작은아버지가 마포경찰서에 잘 이야기 했고, 교육 받고 나올
것이라고 하였음. 어머니가 마포경찰서에 수차례 면회를 하고자 했으나, 다른 곳으로 옮
겨 갔다고 하여 만나지 못했음. 9.28수복 후 못 데리고 간 사람들을 다 죽였다고 하여 시
체 있는 곳을 가 보았지만 못 찾았음. 그 뒤로는 소식을 알 수 없음.>
문_ 납북된 아버지와 외삼촌의 소식은 들으셨나요?
답_ 우리 외삼촌은 의용군으로 끌려가셨고. 그 후에 아버지가 가시고 난 뒤에 며칠 있다
가 어머니하고 같이 용산경찰서 있는 자리에 경찰관들 관사가 있었어요. 거기에 작은아
버지가 살고 있어서 거길 갔어요. 아버지가 붙잡혀 갔다고 이야기를 하려고 갔는데 거기
가 가지고 밥상이 들어오는데, 옛날에는 여자와 애들은 한쪽에서 먹고 나하고 내 사촌동
생하고 우리 작은아버지하고 한 상에서 먹는데, 우리 어머니가 걱정을 하고 이러니까 작
은어머니가 형님 좀 어떻게 꺼내라, 노력 좀 하라고 작은아버지한테 그러더라고요. 그
랬더니 작은아버지가 형은 정신 좀 차려야 한다고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 내가 아직도
그때가 잊혀지지가 않아요. 그 대화 장면이. 하여튼 우리 작은아버지가 나한테 그렇게
잘해줬어요. 나만 보면 항상 먹을 것을 사 가져오고 그렇게 잘하셨는데, 아버지 얘기하
니까 정신 좀 차려야 한다고 그런 이야기를 제가 들었어요.
그러고 나서 거기가 경찰 관사니까 안 좋아서 그런지, 작은집 식구가 다 우리 집 와서 살
았어요. 그게 들어오게 된 거는 맨날 우리 집에 와 가지고 뒤집어엎으니까 문짝이 떨어
지고 심지어 옛날에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게 한 일 년밖에 안 되니까 대청마루에다가
상청이라고 만들어놔요. 심지어 거기 촛대니 놋그릇 이런 것도 다 집어가요. 그리고 뭐
아무 쓸모없는 우리 아버지 일본 책들, 심지어 사진까지 다 집어 가더라고요. 하여튼 우
리 집에 있는 건 다 집어 갔어요. 자기들이 필요한 건 다 가져가더라고요. 그리고 맨날
뒤집어 엎고 그러니까, 그래서 작은아버지가 작은어머니와 우리 집으로 온 걸로 알고 있
어요. 작은어머니가 우리집에 온 뒤로는 그런 일이 한 번도 없었지.
작은어머니는 시청에 여맹위원(女盟委員) 간부로 나가고 그랬었어요. 작은아버지는 우
리 아버지께서 잡혀가시고 나서 일주일 뒤에 우리 집에 오셨더라고. 그리고 우리 어머니
한테 뭐라고 그러냐면 내가 경찰에 가서 이야기를 잘했다고, 마포경찰서에 가서 이야기
잘했으니까 무슨 교육받고 나올 거라고. 나는 모스크바 간다고 그때 그랬어요. 작은아
버지는 무슨 교육반 뭐가 있나 봐. 그래서 모스크바 간다고 해서 작은아버지는 가고, 그
러고 난 다음에 작은어머니가 우리집으로 왔구나. 지금 생각하니까.
작은아버지는 금방 모스크바로 가셨어요. 그래 가지고 면회가 안 돼서, 하여튼 어머니
가 몇 번 갔는데 면회가 안 되고 어디로 옮겨 갔다고, 여기 없다고 면회 갔더니 면회 안
시켜줬다고. 그런 얘기만 들었어요.
어머니가 얘기해 준 건 아니고 동네 아주머니들이… 그게 끝이었어요. 나중에 9.28 수
복이 되고 난 다음에 전부 다 못 데려간 사람들은 죽였다고 하더라고요.
죽여서 어디냐 하면 지금 시경인데, 서울경찰청이 있는 서소문에 가면 예전에 전매청 창
고가 있었어요. 지금 그 자리가 시경이 됐더라고. 시경이라고 옛날 치안국인데 경찰청
이지 지금의, 창고에 전부 다 죽여 놨다고 하더라고요. 9.28 수복되고 나서. 그래서 어
머니가 사람이 죽었다고 하니까. 우리 어머니도 그때 삼십대 초반이니까. 삼십 대도 안
됐지. 어머니가 열아홉에 시집와 가지고 이년 터울로 다섯 명 낳고 6·25가 났으니까.
무서우니까 우리 골목에 있는 할머니 한 분이랑 같이 가서 찾자고. 나도 쫓아갔어요. 걸
어서 서대문으로 해서 예전에 동아 출판사가 서대문에 있었는데, 그 뒤에 전매청 창고가
있었어요. 거기 들어갔더니, 내가 어렸을 때 봤던 건 창고가 어마어마하게 컸어요.
거기를 들어가려고 하는데, 나는 못 들어가게 하더라고요, 애니까. 그런데 냄새가 확 창
고 안에서 송장 냄새지. 보니까 사람들 죽여가지고 죽은 사람들이지. 전부 다 깔아놨어
요. 깔아 놓고 확인하라고. 언뜻 이러고 쳐다보니까 대개 까만 바지랑 흰 와이셔츠 입
은 사람들이 제일 많아. 대개 그 당시에 얘기하면 지식인들이지. 그런 사람들 일 거예
요. 대개는 그때 그런 사람들이. 그리고 또 그때는 더울 때니까. 그리고 양말 신은 사람
도 거의 없고. 우리 아버지는 발가락 끼는 쪼리 있죠? 그걸 신고 갔으니까 집에서. 그래
서 그런 사람들이 쭉 하여튼 셀 수 없이 많았어요. 그런 기억이 있네요. 그래 가지고 못
찾고 그냥… 나중에 얘기 듣기로는 일찍 잡혀간 사람들은 끌려서 북으로 갔다는 말을 많
이 해서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있었죠. 빨리 통일 되면 만나겠지 하고 우리 어머니는 그
때만 해도 한 이삼 년이면 통일이 되는 줄 알았어요.

남은 가족의 생활
<아버지가 납북된 후 막내가 홍역을 앓던 중 사고로 죽었고 어머니께서 장사를 하시면서
생계를 유지.>
문_ 남은 가족들은 어떻게 생활하셨나요?
답_ 우리 아버지가 잡혀갔을 때, 아버지 형제가 2남 1녀 중에 아버지가 장남이셔. 아버
지 밑에 여동생. 이름은 잊어버렸어요. 젊어서 돌아가셔서 원래 5남매예요. 내가 장남
이고, 내 밑에 여동생, 그 밑에 남동생. 이 맨 밑에는 6·25 때 홍역을 앓고 있었는데,
저녁이면 그냥 빨간 완장차고 우리 집 맨날 부수고 들어오고 그랬어요. 아버지 붙들려갔
는데 왜들 그렇게 몽둥이를 들고 들어오는지 밤에 어느 순간 자지러지는 애기 울음소리
가 내 동생이지 내 동생 울음소리가 나니까 어머니가 애 밟았나 보다고 막 소리 지르고
그랬어요. 우리를 다 내쫓고 집안을 뒤지는 거예요. 아버지 자기들이 잡아가서 없는 거
뻔히 알면서 그렇게 뒤지더라고. 그래서 그 동생은 그때 금방 죽었어요.
문_ 피난은 가셨는지요?
답_ 그때는 피난을 안 갔고, 1.4 후퇴 때 그때는 너무 지겨워 갖고 생각을 해보세요. 열
살, 여덟 살, 여섯 살, 네 살… 여기에다가 우리 어머니인데 어디 갈 데가 없잖아요. 우
린 지방에 친척도 없어요. 한강이 얼어 있으니까 건너가지고 피난을 어디까지 갔냐면 부
곡 지금의 의왕까지 왔는데, 거기에 어머니의 육촌언니가 있었대요. 그래서 그 집에 가
서 거기서 일주일가량 있었어요. 그러다가 남한산성 근방에 장진리라고 옛날에 있었는
데, 지금은 무슨 동인지 모르겠는데, 거기에 어머니 이모가 살고 계셔가지고 그쪽으로
또 왔죠. 거기로 와서 또 피난을 나가려고 하는데, 중공군들이 가로 막더라고요. 갈 데
가 없으니까. 어머니 이모네가 남한산성 근방에 살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쪽으로 왔는
데 거기서 또 피난 나간다고 하더라고. 그래 가지고 그 할머니네 식구 따라서 우리도 피
난을 가려고 나갔는데, 거기는 소가 있어 가지고 우마차에 싣고 가는데 중공군들이 길을
막더라고. 얼마 가지도 않았는데. 그러더니 그냥 들어가라고 하더라고. 집이 어디냐고
물어보고 그래 가지고 들어왔는데, 동네 사람들이 중공군들이 이 소를 봤으니 소를 뺏으
러 올 거다 해 가지고 동네사람들이 부랴부랴 동네 우물에 묶어 두고 그날로 소를 잡았
어요. 그래 가지고 나눴어요. 그러고 나서는 인민군이나 중공군은 못 본 것 같아요.
그 후 그런 거 본 기억도 없고 어머니가 암사동에 외갓집이 있었으니까, 암사동으로 왔어
요. 먹을 것 구하기가 좋다고 해서 암사동에 와서 있다가 미군의 폭격으로 우리 외갓집이
폭격을 맞아 가지고 거기서 우리 어머니가 다리에 총상을 입고 돌아가실 때까지 총알을 박
고 돌아가셨어요. 그때 우리 이모 한 분은 돌아가시고 그리고 집은 전소가 돼 버리고.
문_ 빨갱이었던 작은아버지 가족들은?
답_ 작은아버지는 모스크바를 갔는데, 이미 칠월에 가셨고 전쟁 나고 나서는 신분이 달
랐겠지, 경찰이 아니고 하여튼 끗발이 있었어요. 작은아버지가. 그래 가지고 작은아버
지가 갈 때 용산역에 가서 차로 다가 그 침목들 있죠? 열차들(선로에) 침목들. 그걸 갔다
가 한 차를 우리 집에 갖다 두고 가셨어요. 그러고 가셨어. 그래 가지고 뭐 그냥 우리 집
앞마당, 장독대 옆으로 그냥 그 나무가 하나 가득 있어 가지고 우리 골목 사람들이 많이
들 가져다가 때고 그랬어요. 그러고 작은아버지는 가고, 작은어머니, 작은어머니의 언
니, 내 사촌 동생들 둘… 그러다가 우리 작은어머니는 9월 25일쯤? 인천에 인천 상륙
작전 벌릴 때, 그때 작은어머니는 무슨 정보를 들었었나 봐. 그래 가지고 애들하고 자기
언니하고 같이 북쪽으로 갔어요. 그러고는 연락이 없죠.
문_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있으신가요?
답_ 내가 우리 작은아버지가 밥상에서 형 정신 차려야 한다고 그런 이야기 했을 때 내가
아주 참 우리 작은아버지 독하다고 생각했었거든. 그래서 내가 커서 내가 스물 몇 살 때
군대 다녀와서 우리 어머니한테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거든. 엄마는 어떻게 작은아버지
원망을 한번을 안 했어요. 작은아버지가 왜 원망스럽지 않냐 밉지 않냐?고 그런 식으로
그랬더니 너희 작은아버지가 너희 아버지한테 얼마나 잘했는데 하면서 아주 잘했데요.
어려서… 우리 어머니 결혼해가지고 왔을 때 총각이니까. 그때 보면 자기 형한테 그렇게
잘 하더래. 그래서 본심이 아닐 거다 이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너희 작은아버지가 그
렇게 얘기한 건 본심이 아닐 거다. 너희 작은아버지가 많이 노력했을 거다 그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심지어 양말 한 켤레를 사도 꼭 형님 먼저 한번 신어보라고 그랬대. 그전에.
문_ 생계는 어떻게 하셨나요?
답_ 우리 어머니가 양키 물건 장사. 우리 어머니의 그 동네 친구, 그분 남편분이 잡혀갔
는데, 그분도 우리 아버지 친구였어요. 성이 강 씨라는 것만 알지 이름은 몰라요. 그래
서 부인이 우리 어머니랑 친했어요. 그래서 후암동이 미군 양색시들이 많이 살았거든
요. 거기서 양키 물건들이 많이 나와요. 그래서 거기서 그걸 사다가 남대문 시장에 갔다
파는 거야. 그래서 우리 어머니하고 친구분이 같이 그걸 했어요. 그러다가 점점 크게 미
군들이 그때 휴가를 가면 우리나라 국내에서 못 놀고 일본이나 홍콩 가서 놀고 오면, 달
러를 해줘서 물건을 사 가지고 오면 남대문 시장이나 자유시장에 팔고 그랬거든요. 그런
걸 했어요. 우리 어머니가.

정부의 노력
<경찰에서 조사는 나왔으나 납북된 아버지보다는 좌익이었던 작은아버지에 대한 조사였
음.>
문_ 납북피해 신고는 하셨나요?
답_ 남한경찰서에서. 그때는 9.28 수복도 되고, 아니 1.4 후퇴 때 피난 나갔다 와서지.
그때는 경찰서에서 자주 나왔어요. 그런 걸 와서 조사했어요. 처음에 9.28 수복 되고
난 다음에, 경찰이 와서 조사를 했어요. 경찰인지 동사무소인지. 동사무소가 아니고 경
찰이었던 것 같아요. 경찰서에서 와서 조사했어요. 그래서 그때는 우리 아버지 이름을
완성이라고 안하고 완중이라고. 문패에도 완중이라고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 그때도 우
리 어머니는 없었던 것 같아. 우리 어머니는 하여튼 그때 아무것도 없었으니깐. 먹고 살
기 바빴고, 그래서 아주머니들이, 우리 앞집에 있는 분은 우리 어머니 팔촌인지 육촌인
지 언니예요. 그런 분이 우리 앞집에 살고 그러니까 그분들이 이야기를 해 주시고, 그분
들은 우리 아버지 잡혀가는 걸 직접 보고 그랬으니까. 그런데 용산경찰서는 우리 작은아
버지에 대해서만 얘기했지 우리 아버지하고는 전혀 아무 상관도 없어. 용산경찰서 있는
곳에는 우리 작은아버지가 사셨으니까.

호적 정리
<평창을 가서 처리해야한다고 하여 아직 하지 않음.>
문_ 호적 정리는 하셨나요?
답_ 호적 정리 안 했어요. 지금도 안 했어요. 내가 한번 가서 물어는 봤는데, 내가 산본
에 살 때 한 번 갔는데 내가 정리해놓고 가야지 하면서 물어봤는데, 어디 평창 가서 뭘
하라고 하는 바람에 안 했어요.

연좌제 피해
<아버지보다는 좌익이었던 작은아버지로 인해 연좌제 피해 있었음. 본인은 직접적으로
겪지 않았으나, 동생이 취업할 당시 겪었음.>
문_ 연좌제 피해는 있었나요?
답_ 여러가지로 많죠. 이사 가서 있으면 뭔 잘못이 있느냐? 통장이니 반장이니 와서 물
어보고, 왜 뒤를 캐느냐 경찰서에서 와서. 내 동생이 취직을 하는데 그때 무슨 일본에
가는, 해외에 나가는 거예요. 취업해서. 근데 그거에서 떨어지고 연좌제로. 한전에 취
직할 때도 안되더라고 연좌제에 묶여서. 그래서 경찰서에 찾아가서 잘 좀 해달라고. 그
냥 뭐 양복감이니 뭐니 양담배니 이런 거 사 들고 다니면서 그냥 잘 좀 써달라고. 나는
뭐 직접적으로 받은 거는 군대 갔을 때, 비밀 취급 인가가 안 나오더라고.
나는 일반 회사에 좀 다니다가 자영업 조금 하다가 동생도 취업이 안된 건 아니고 취업
은 됐어요. 사전에 쫓아 다녀서. 군대 제대해 가지고 일본 가는 무슨 회사에 취업을 하
려고 했는데, 그게 안 되고, 그 다음에 한전, 한전이 아니고 호남 전력이었어. 한전하
고 합쳤는데, 호남 전력에 취업할 때는 미리 찾아갔어요. 내가 담당을 찾아가서 이야기
를 했어요. 그랬더니 그러면서 뭐 우리 어머니하고 같이 가서 선물 주고 그랬더니 자기
가 알았다고 잘 써주겠다고 하더라고요. 나중에는 외국에 나갈 때는 무슨 일급이라고 그
러나, 몇 급 이상. 보증인 두 사람을 세워야 한다고 그래 가지고, 우리 사돈 양반이 군
인 이였거든. 대령이어서 그분이 두 사람, 친구분하고 두 사람이 보증서서 해줘서 나가
고 그랬어. 80년대 들어서인가부터는 조사하러 안 오더라고. 그래서 내가 우리 담당했
던 사람이 있었어요. 나 아는 사람이. 그래서 내가 왜 요즘 조사 안 하냐고 그랬더니 풀
렸대. 그러더라고요. 84년인가 85년 그때 풀린 것 같아요.

정부에 바라는 말
<전쟁 일으킨 사람들이 원망스러움.>
문_ 정부에 바라는 바를 말씀해주세요.
답_ 생사확인이나 유골송환은 별 의미가 없어. 글쎄. 전쟁 일으킨 놈들 다 망해 없어졌
으면 좋겠어. 그 놈들(북한)한테 잘하는 놈들 내가 좋아하겠어요? (웃음)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고생 많이 하신 우리 어머님을 하늘나라에서 만나면 잘해주시기를 바람.>
문_ 아버님께 전하고 싶은 말씀을 해주세요.
답_ (울먹이며) 그저 하늘나라에서 우리 어머님 만나면 우리 어머니한테 잘해줬으면 좋
겠어요. 우리 어머니가 고생을 너무 많이 하셨어요. 그것밖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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