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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윤삼식(증언자-윤병조)
이름: 관리자
2021-09-27 15:33:07  |  조회: 224
190930A 윤 삼 식 ( 尹三植)

생년월일: 1924년 1월
출생지: 충남 예산군 광시면 대리 515번지
당시 주소: 서울시 서대문구 영천동
피랍일: 1950년 9월경
피랍장소: 자택
직업: 금융조합연합회 출납계장
학력/경력: 인천상업학교 졸업, 국학대학 졸업
직계/부양가족: 배우자, 자녀 3남
외모/성격: 물불 안 가리는 성격

증언자
성명: 윤병조 (1949년생)
관계: 3남
증언성격: 간접증언

특이사항(납치주체/상황/원인)
• 좌익 활동을 했다고 알려졌던 직장 동료가 찾아와 잠시 이야기 나누자고 하여, 당시 돌쟁이였던 증언자
를 툇마루에 내려놓고 나가서는 소식이 없음.
• 전쟁 중이었던 9월경 피랍되었으며 불안한 치안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직장에 출근을 하고 있었음.

직업 및 활동
<인천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졸업, 국학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납북 당시 금
융조합연합회 출납계장으로 근무.>
문_ 아버님이 하시던 일이 무엇인가요?
답_ (아버지는) 그 당시에 소학교까지는 충남 예산에서 다니셨고, 그 다음에는 인천에서
인천상업학교. 지금으로 하면 중고등학교가 5년제. 인천상업학교 졸업하시고, 국학대
학 졸업하시고. 지금 금융조합연합회 출납계장. 지금의 농협중앙회.
문_ 당시 형님 두 분은 어디에 계셨는지요?
답_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충남 예산에 (있었죠). 아버지는 서대문구 영천동. 금융조합
연합회가 서대문구에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때 인천상업학교 다닐 때부터 시골을 떠나
서 유학 생활을 하신 거지. 대학까지. 그래서 결혼하시고 금융조합연합회 근무하시다가
납북 당하신 거지.
문_ 6·25 전쟁 터지고 나서, 서울에 계셨는데 직장은 계속 나가셨나요?
답_ 네. 계속 나가신 거죠. 그러니까 형님들 두 분은 할아버지, 할머니 계신 곳으로 미
리 보내 놓고.
문_ 직장 외의 활동 사항을 말씀해주세요.
답_ 별도의 다른 활동은 하신 게 없고 취미 생활로 음악 활동을 좀 많이 하셨나 봐.

납북 경위
<좌익 활동을 한다고 알려진 금융조합연합회 동료 직원이 찾아와 이야기하자고 나간 이
후로 소식이 없음.>
문_ 어떻게 납북되셨는지요?
답_ 아버지가 안 오셔서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 사람이 금융조합연합회에 있었는데 북
쪽에 관여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고 해.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금융조합연합회에 그런(좌
익) 사람이 여럿 있었다고 그래요.
문_ 누군지는 아세요?
답_ 몰라요.
문_ 6·25 당시 어떤 상황이었는지?
답_ 6·25 당시,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이미 상당히 불안했고 그래서 직장에 출근하시는
데에도 조심을 많이 하셨다 그러더라고요. 출퇴근할 때나 오고 갈 때. (치안이) 안 좋았
나 봐요.

납치 이유
<셈이 무척 밝아 금융조합연합회 출납계장으로 근무, 인재활용을 위해 납치한 것으로 추
측됨.>
문_ 어머니가 살아 계셨을 때 아버지에 대해서 주로 하셨던 이야기는?
답_ 아버지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게 주판을 누구보다 잘 놓고. 돈을 백 장을 세면 안 틀
린다는 거. 뭐 금융조합이니까 그 당시에 출납계장이니까. 그리고 사진 찍는 거 좋아하
셨고. 악기 다루는 거 좋아하셨고. 그래서 집에 나 중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카메라하
고 악기가 몇 개 있었는데 이리저리 다니다보니 다 없어진 거지 뭐.

납치 후 소식
<아버지 지인 통해 납북 사실만 들었으며 그 후의 다른 소식 들은 바 없고, 서대문형무소
에 끌려갔다는 소문을 들었음.>
문_ 그 뒤에 소식을 들으셨나요?
답_ 없어요. 아버지 친구분들한테 납북 당하셨다는 것만 이야기 들었지. 다른 것은 없어
요. 그 사람 이름을 어머니가 알아야 되는데 그걸 모르시더라고. 그 충격에 의해서. 나
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어머니가 금융조합 연합회 쫓아다니고 하시다 보니까 서대문형
무소로 끌려가셨다 소리는 들었나 봐요. 큰형님이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하셨더라고. 그
리고 형님이 우리 가족회에도 나오시다가 형님이 돌아가시고 나서부터 내가 나오는 거
야.

남은 가족의 생활
<납북 이후 큰아버지가 올라오셔서 예산으로 데리고 갔고, 학비를 대주시며 생활에 많은
도움을 주심.>
문_ 형님 두 분이 당시 여섯 살, 네 살이니까, 같이 예산에 내려가셨을 수도 있었을 텐데요
답_ 아버님 직장이 여기니까 생활하시는 게 혼자 계시면 불안하니까.
문_ 피난도 그 사이에 못 가신 건가요?
답_ 네. 그래서 어머니가 고생을 상당히 많이 하셨더라고. 나중에 큰아버지가 충남 예산
에서 올라오셔선 다 데리고 어머니 모시고 가서. 어머니는 오시겠지, 오시겠지 하고 아
버지를 기다렸고, 어머니가 날짜를 기억을 못 하시더라고 51년 겨울인 것 같아요. 한강
대교가 끊어지고 9월쯤 납치당하셨으니까 이제 조금 기다리시다가 아주 추운 겨울에 얼
음이 얼어서 한강을 걸어서 건너가셨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후엔 큰아버지 댁에서 할아
버지 할머니하고 계셨고, 다 같이. 집이 상당히 커. 그 집이 한 백십 년 됐는데 지금도
있어요. 그래서 나 어렸을 때 할머니가 항상 그러셨어요. 이 집은 네 아비가 여기서 태
어났는데 돌아와서 집이 없으면 허전할 거니까 네 아비 백 살 되는 해까지는 팔지 마라.
큰아버지하고 할아버지 집에서 살다가 예산에 집을 하나 지어서 우리 식구끼리만 나와
서 살고, 농사는 큰아버지가 이제 일꾼 세 사람이 있었나 봐. 여자 하나 밥 해 먹는 사람
그러고 남자 일꾼 둘. 그래서 농사지어서 다 주고. 그리고 60년대 초에 그렇게 있다가
60년대 후반 들어서 보문동에다 집 사서 형님들하고 나하고 사촌 형님이 하나 있는데
외아들이야. 이제 어머니가 넷을 밥을 해주고. 뭐 그래도 밥 먹고 사는 것은 걱정을 안
했지. 경제 활동은 거의 큰아버지가 하셨지. 그러니까 우리 어머니도 고생하셨지만 큰
아버지, 큰 어머니도 고생을 많이 하신 거지.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그리고 아버지 친
구분들이 내가 직장에 들어갔을 때도 보증을 서 주셨어.

정부의 노력
<기관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해 개인적인 노력을 해보았으나 알 수 없었음.>
문_ 어머님이 신고는 하셨는지요?
답_ 신고하셨죠. 언제 신고하셨는지는 모르겠어요. 뭐 찾으려고 날마다 금융조합연합회
도 하루에 몇 번씩 가셨고 그리고 동료 직원들한테도 이야기하고 금융조합 연합회가 작
은 데가 아니니까 아버지 친구분들한테 납북 당하셨다는 것만 이야기 들었지 다른 것은
없어요.
문_ 아버님 친구분들은 누구신가요?
답_ 인천상업학교까지 같이 다니신 분도 계시고 아버지하고 가깝게 지내신 분 같은 경우
는 조한익 선생님이라고 농산물유통공사 부사장님까지 지내셨다고 그 양반하고 교감선
생님 이런 분한테 말씀을 들었는데, 이야기가 다 똑같아요. 납북 당하셨다는 거. 그 사
람 이름을 어머니가 알아야 되는데 그걸 모르시더라고. 그 충격에 의해서. 아버지하고
국학대학 같이 졸업하신 선생님이 나 중학교 다닐 때 국어 선생님하셨다고. 그 양반한테
물어봐도 내가 지금 얘기하는 것 요 정도밖에 모르시지. 더 모르시더라고요. 전쟁통이
니까 누가 그 당시에 뭐… 증언도 잘 해줄 사람도 없고.
문_ 이산가족 찾기는 하셨나요?
답_ 아, 신청 다 했죠. KBS에서 83년도에 할 때도 했고 적십자사에서 이산가족 찾기
한다고 해서 했고 다 했어요. 그런데 소식은 없었어요. 큰형님이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하셨더라고. 형님이 여기 가족회에도 나오시다가 돌아가시고 나서부터 내가 나오는 거
에요.
문_ 그동안 정부의 지원은 있었나요?
답_ 정부 지원 같은 거 일절 없고. 그 사촌 형님 친구 분이 옛날에 안기부에 과장으로 계
셔서 아버지 생사 확인 차 노력을 해봤는데… 안 되는 거라. 그 양반이 ‘아버지가 북한에
계시다면 네가 북한에 쫓아갈 거냐. 가서 모시고 올 거냐.’ 지금도 그 형님을 한 3년 전
에도 봤는데 이야기를 안 하시더라고. 자기가 알지도 못하고. 그 당시에 과장이셨는데
그 양반이 생사를 안다 하더라도 낙심할까봐 이야기를 안 하셨겠지.

호적 정리
<연좌제에 걸려서 급하게 정리. 작은형님이 공무원이여서 바로 정리함.>
문_ 호적 정리는 언제 하셨나요?
답_ 호적 정리가 70년 6월에 했어요. 그때 내가 20대 중반. 옛날에는 그런 게 많았잖아
요. 그랬으니까 작은형이 공무원 생활하면서 면사무소에 근무하고 하니까 다른 집보다
호적 정리하기가 좀 편했죠. 큰형님은 동대문 시장 쪽에서 대유상업사라고 의류업체를
상당히 크게 하셨어요.

연좌제 피해
<큰형님이 해외 출장을 가려고 했는데 연좌제에 걸려서 못 가셨음.>
문_ 연좌제 피해가 있었나요?
답_ 내 기억으로는 큰형님이 해외 출장을 가시려고 했나 그랬는데, 연좌제에 걸리는 거
예요. 옛날에는 그런 게 많았잖아요.

정부에 바라는 말
<행적을 알고 싶고, 유골을 찾을 수 있으면 찾고 싶음.>
문_ 정부에 바라는 점을 말씀해주세요.
답_ 아버지… 아버지 행적을 당연히 알고 싶고. 그 다음에 거기 가서 끌려가셔서 언제
돌아가셨고, 뭐 하셨고 이제 젊으셨으니까 혼자 안 사셨을 거 아니에요. 내 동생들이 몇
이나 있는지, 언제 돌아가셨는지 행적을 당연히 알고 싶고 유골을 찾을 수 있으면 당연
히 찾아야지. 그래서 우리 어머니 산소가 충남 예산에 있는데 한 쪽은 비워놓고 아버지
함자 쓰고 비석을 묻고 합장을 했는데. 행적을 알고 싶고 혼자 안 사셨으니까 내 동생들
이 있을 거고, 그 다음에 돌아가신 날짜를 알고 싶고. 유골이라도 찾아서 고향으로 모셔
오고 싶고.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혹시 살아계시다면 건강하시라고 말씀 드리고 싶음.>
문_ 아버님한테 전하고 싶은 말씀을 해주세요.
답_ 아버님을 내가 기억을 못 하니까 특별히 드리고 싶은 말은 없고. 건강하시라는 말씀
밖에 더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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