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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망배식 편지 낭독 - 오경자
이름: 관리자
2016-09-28 14:32:26  |  조회: 1768

아버지 사랑하는 우리 아버지

 

 

오경자

 

 

아버지

저를 알아보시겠습니까?

알아보다 마다. 하루도 눈에서 떠나 보내지 못했는데 어찌 모를 수가 있겠니?

아버지 그날 아침 어머니가 안간힘을 쓰고 마시우게 했지만 끝내 한 모금도 제대로 넘기지 못하고 떠나신 그 죽사발 기억하시지요? 얼마나 배가 고프셨어요?

아버지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포승줄로 공꽁 묶어 세워놓고 온 집을 벌집처럼 들쑤시기를 6시간도 더 하고 , 왜 이렇게 아무 것도 없느냐는 생트집을 늘어놓으며 가택수색이라는 것을 끝내고 아버지를 끌고 나가려 하는 내무서원에게 어머니는 애원하듯 사정했지요.

죽 한 모금만 먹고 가게 해달라는 간청에 크게 선심 쓰듯 거드름을 피우며 턱으로 그러라고 했지요. 어머니는 떨리는 손으로 죽 대접을 들고 와 그를 쳐다보며 손을 풀어달라는 표정으로 기다렸지요. 아무 반응이 없는 그를 향해 어머니는 손을 좀 풀어줘야 먹을 것 아니냐고 모기소리보다 작게 말했어요. 그의 대답, 기억하시죠?

믹이오.’하고 비웃듯 먼 산을 쳐다보는 그 사내의 군복 색깔 때문에 저는 평생 카키 색만 봐도 모골이 송연해 져서 초록색을 좋아하건만 카키색은 스카프 한 장도 사절입니다. 그 사내의 억센 함경도 사투리 때문에 지금도 그 말투가 섬뜩해서 싫습니다. 끝내 손을 풀어주지 않으면서 왜 빨리 안 먹이느냐는 재촉의 몸짓에 어머니는 할 수 없이 아버지의 묶인 손 사이에 죽대접을 끼워 넣고 온힘을 다 해서 아버지 입 쪽으로 밀어 올렸지만 묶인 상태여서 그릇에 아버지 입이 닿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가엾어진 아버지가 필사적으로 몸을 굽혀 죽 대접에 입술을 갖다 대려 했지만 잘 안 되었습니다. 그렇게 빈 속으로 아버지를 떠나 보낸 어머니는 멀건 근대 죽이 눈에 밟혀 평생 근대를 입에 대지 않고 이승을 뜨셨습니다.

이렇게 큰 집에 어째서 피아노 한 대도 없고 전축도 없느냐고 화를 내면서 커다란 제니스 라디오를 어머니 머리에 이게 하고 아버지를 끌고 나가며 어머니를 뒤따르게 했습니다. 남편은 포승줄에 묶여 앞서고 가녀린 아내는 하릴 없이 해 보지도 않은 임질(머리에 물건을 이고 나르는 일)을 하고 뒤따르는 이 모습이 195094일 서울 특별시 중구 저동 214번지 우리 집 저택에서 벌어진 광경입니다. 우리 집 정원과 담을 함께 한 중부경찰서 가 (그들이 내무서로 썼다는데,) 바로 그 우리 옆집이지만 지금의 평화방송 앞으로 해서 ㄷ자로 뺑 돌아가야 하는, 꽤 거리가 있는 길을 어머니는 어떻게 걸어갔는지 모를 지경입니다. 어머니는 중부서 건물 정문 앞에서 머리에 인 라디오만 뺏기고 따발총에 떠밀려 쫓겨 오고 말았습니다. 건물 안으로 끌려 들어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어머니 망막에 찍힌 마지막 사진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날 그 순간 이후 아버지의 소식은 실오라기 하나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고도 강제납치는 안했다는 저들의 발뺌은 파렴치라는 말로 표현하기엔 너무 약하고 점잖아서 더욱 화가 납니다. 아니 분통이 터지고 치가 떨립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그 후로 가을이 싫다 하셨습니다. 피난 가서도 내리 3년을 날마다 통곡으로 보냈습니다. 아버지를 따라 나서던 남산길 새벽산책도, 천자문을 따라 읽던 행복한 시간도 이미 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침에 눈 뜨면 머리맡에 놓여있던 초콜릿도 쿠키나 비스킷도 그후론 구경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어머니 때문에 저는 내색도 못한 채 바보 아이처럼 무심한 척 꾸미고 살아야했고 공부를 잘하는 것만이 유일한 어머니 사랑이고 효도였습니다.

아버지, 그해 5302대국회의원선거에 낙선하시고 고향에서 뒷정리를 하고 계시다가 제가 백일해로 죽을 것 같다는 어머니 성화에 못 이겨 백일해에 특효라는 고향 냇가의 민물고기 짜가사리라는 것을 짚에 끼어들고 서울집에 오신 것이 618일 이었습니다. 바로 그 다음 일요일 625일이 원수의 6.25발발이니 제가 얼마나 아버지께 미안해 하며 살았는지 모르실겁니다. 저 때문에 지옥불로 걸어들어오신 것 같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어서입니다.

어머니는 9살짜리 저를 잘 키워서 대학 까지 졸업 시켜서 기자를 만들어 내셨습니다. 하지만 시집 안 가겠다는 제 고집에 사위 구경도 못하고 제 나이 스물 일곱 되던 해 가을에 한 많은 이승을 떠나셨습니다. 1.4후퇴 때 전주 외가집으로 피난을 가서 여학교까지 졸업하고 10년만에, 고려대학 학생이 되어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저동의 대지 450평 그 큰 저택은 여러 사정으로 환도 무렵 어이 없이 우리 손을 떠나고 어머니는 생활능력이 없어 오빠가 전적으로 온통 살림을 떠맡아 힘겹게 꾸려나갔습니다. 외할머니가 믾이 도와 주셨지만 오빠가 참 애 많이 썼습니다. 하늘에서 만나셨으면 칭찬해 주셔야 합니다. 오빠 덕에 경제적인 어려움은 모르고 자랄 수 있었기에 별 어려움은 없이 지냈습니다. 아이들이 저녁에 퇴근하는 아버지 목에 매달리고 아버지를 외치며 골목 밖으로 뛰어 나갈 때 속으로 울었던 것 빼고는 말입니다. 별로 부러울 것 없이 살았지만 아버지 수염 볼에 얼굴을 부비고 싶어 오빠에게 매달리는 철부지 시절도 잘 넘겼습니다.

19년을 하루같이 아버지의 밥멍덕을 발치에 묻어두고 문을 잠그지 못하고 아버지를 기다리며 사시던 어머니는 큰 병도 없었는데 환갑도 못 넘기고 홀연히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아마도 어느날 어머니가 너무 가엾어 아버지가 데리러 오셨던 모양입니다. 아버지 이제 우리나라는 세계10위권을 넘나드는 경제 대국이 되었구요, 우리도 잘 들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그토록 기다리셨다는 맏손자가 바로 태어나 벌써 환갑을 넘겼습니다. 저도 남매를 잘 길러 사회에 공헌하고 있습니다. 손주도 남매를 두었습니다. 저는 대학에서 강의도 했고 수필가로 책도 여러 권 내며 아버지의 딸로 부끄러움 없이 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올 초에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대신 써서 출간했습니다. 꼭 남기고 가야 할 역사라는 사명감으로 썼습니다.

아버지 아버지들의 기념관을 정부가 지어 준다합니다. 그 소식을 듣고 아버지 보다 어머니 생각이 더 났습니다. 서른 여덟 젊은 나이에 어이 없이 남편 뺏기고 소식 한 자 못 듣고 북으로 목을 늘이고 살다 간 가엾은 어머니여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유품을 잘 두었는데 기념관에 가져 가려하니 아무리 찾아도 찾아지지 않아 애를 태우고 있습니다.

아버지 어제는 그 기념관의 이름을 공모한다는 편지를 국무총리실로부터 받았습니다. 좋은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잠을 설쳤습니다. 마음에 드시는 이름을 생각나게 도와주세요.

이제 저도 아버지 곁으로 갈 날이 가까워옵니다. 애들도 다 제몫을 하고 있으니 여한은 없습니다. 아버지가 원하셨다는 법관이 되고자 전공까지는 했지만 노력이 부족해 뜻을 이루지 못해 죄송합니다. 하지만 여성운동 소비자 운동 등을 통해 약자의 권익을 대변하는 일을 평생하며 살아오다가 작가의 길을 걸으며 기록으로 시대를 남기고 가겠다는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이제 소원이 있다면 죽기 전에 통일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더 이상 전쟁의 공포는 없어야 하고 민족의 분단을 더는 오래 방치하면 안 되기 때문이지요. 북은 날로 기막힌 일만 저지르는데 한심한 작태를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 걱정이 태산입니다. 특히 안보에 대해 정신 못 차리는 정치인들의 망언을 듣노라면 분개하기보다 잠이 안 옵니다.

아버지, 우리들의 훌륭하고 불운했던 아버지! 이제 편히 한을 잠 재우시지요. 아버지들이 남겨놓고 가신 어린 것들도 다 자라서 늙어가고 있습니다. 가엾은 아내들도 이제 하늘로 떠나셨고 남으신 분들도 문 앞에 서 계신지 오래입니다. 기념관이 완공되면 어머니의 넋이라도 한 줄기 가져다 놓으렵니다. 그것 밖에 이 못난 딸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버지, 그래도 그런 날이라도 볼 수 있어 기쁘고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내년 우리들의 이 자리는 통일의 축하잔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도 하늘에서 기도해 주십시오. 안녕히 계십시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존경하는 우리 시대의 불운한 아버지들 모두 안녕히 계십시오.

 

2016.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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