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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납북자 및 법조인 납북자의 실상‘에 대한 토론문[누락분]
이름: 관리자
2010-06-22 15:04:14  |  조회: 2091
‘전시납북자 및 법조인 납북자의 실상‘에 대한 토론문

사단법인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사장 이미일

전쟁납북자와 납북 희생된 선배 법조인들의 실상을 조명하고 이의 구체적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하신 대한변호사협회에 감사드리며 더불어 법 전문가들을 모시는 귀한 자리에 저를 초대해 주셔서 감사드린다. 특히 이번에 김태훈 변호사님의 납북 법조인 실상에 대한 세밀한 연구와 발표를 통해 모르고 있었던 귀한 자료를 많이 알게 된 점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저희 가족회에서도 5년 전인 2005년 6월 “6·25전쟁 납치피해에 대한 법적 대응방안 모색”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한 바 있다. 모쪼록 오늘 토론회를 통해 북한의 납북범죄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현실적 방안과 납북문제의 해결방안이 결과물로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한다.

오늘 저는 지난 10년간 활동해 온 납북 가족회 대표로서 이 토론의 자리를 빌려 말씀드리고 싶은 바가 있다. 더불어 납북 관련 사료를 수집하고 정리해 온 납북사건자료원장으로서 근래에 빈번하게 잘못 사용되는 용어와 통계치의 정정에 대해 몇 말씀을 드리려고 한다.

1. 납치·연좌제·망각-3중 범죄의 피해자 6·25납북인사들…그들이 대한민국을 함께 세웠다.

8만 이상의 전시납북자 중 상당수가 대한민국 건국에 기여했고 새로 건설된 국가 운영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바로 그 때문에 북한의 남한 침략 후 한반도 적화의 주요 전략 중 하나였던 납북범죄 대상 1순위로 희생되어야 했다. 오늘 김태훈 변호사님의 발표 내용에서 당시 법조인 중 주요 요인들을 비롯한 30%가 납북피해를 당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사법제도가 거의 붕괴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는 대목은 법조계의 심각한 피해 실상과 함께 북한의 납북범죄가 의도한 바를 밝히 드러내고 있다. 이는 법조계에 한정되지 않는다. 정진석 언론사 전공 교수님의 연구물에 의하면 납북된 언론인 역시 226명에 달하고 있다.

납북피해는 사회 각 분야의 지도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수 만 명의 대한민국 청년들 역시 전쟁수행 인력을 필요로 했던 북한에 의해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 징병 또는 징용을 당했다. 지금과 달리 당시 대한민국 정부는 민간인 납북피해를 자국민에 대한 심각한 전쟁범죄이자 국가적 · 인적 손실로 인식하고 전쟁 중 및 전후의 혼란기에도 납북자 송환을 위해 전국 납북자명단을 일일이 수작업으로 2회나 작성하였고 후대에 기록으로 남겼다.

그러나 6·25 침략 60년이 된 지금까지 납북자는 없다는 북한의 억지 주장에 밀려 단 한명도 송환하지 못하고 있다. 송환은 커녕 어언 60년이 되도록 납북된 가족의 생사조차 모르는 피해가 계속되고 있다. 우리 전시납북자 가족들에게 납북만이 피해의 끝은 아니었다. 국가가 공산세력의 위협으로 존망의 위기에 처해 있었던 시절 가족이 북한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우리의 정부로부터도 연좌제라는 또 다른 피해를 당해야 했다. 하지만 6·25전쟁을 겪으면서 나라를 살려야 국민도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뼛속 깊이 체험한 우리 납북피해 가족들은 억울하지만 정부의 제재와 감시를 이해하며 감내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는 대한민국에 대한 기대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열심히 일하면 언젠가 나라가 부강해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국민의 4대 의무인 납세 국방 근로 교육을 성실히 수행해 왔다. 부강해진 대한민국이 막강한 국력을 바탕으로 남북관계를 푸는 시점이 오면 미해결로 남아 있는 6·25납북자 문제를 가장 먼저 거론하리라 굳게 믿고 기다려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북포용정책을 내세우며 가해자인 북한에 대규모 경제지원을 하는 상황에서조차도 당시 정부로부터는 전시 납북자가 납북자로 인정조차 받지 못하는 수모를 당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후 2000년 9월에 가진 기자회견에서 납북자 480여명 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언급하였다. 이 숫자는 전후납북자에 국한된 것으로 남과 북이 대화를 시작하는 중요한 시점에 6·25납북자는 납북자로 인정조차 받지 못하는 망각의 대상이 되었다. 납북피해 당사국인 대한민국이 패망하여 없어진 것도 아니고 이처럼 경제 강국으로 자리를 매김하고 있는데 어떻게 조국이 이들을 잊을 수 있는지- 조국의 망각이야말로 6·25납북자와 그 가족들에게는 피해를 넘어선 재앙이었다.

저 역시 사랑하는 아버지를 납북당한 가족의 한사람으로서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상황 앞에서 속수무책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에 전시 납북자 가족들이 모여 2000년 ‘6·25사변납북자가족회’를 재결성하였다. 정부가 몰라서 그러는 줄 알고 재결성 후 6·25납북자의 존재를 곧바로 알렸지만 뜻밖에도 정부 측 실무자의 반응은 냉담했다. 정부에 6·25납북자의 존재를 알려만 주면 알아서 자국민 보호 책무를 성실하게 수행해 주리라 기대했던 것은 큰 오판이었다. “전쟁 중 혼란기라 작성된 명단도 없는데 무슨 근거로 납북이라고 주장하느냐”며 우리의 존재 자체를 인정치 않았다. 우리 가족들이 “연좌제를 당했는데 분명히 명단이 정부기관 내에 있을 거니까 찾아보라”고 하고 우리 단체도 납북자명부 찾기에 나섰다. 이로써 연로하신 회원들과 함께 당시 정부를 상대로 기나 긴 진실게임이 시작되었다.

기록의 중요성을 절감한 저희 가족회는 지난 10년간 정부 발간 4종을 포함 총 7종의 6·25납북자명부들과 국내외 납북관련 문서들을 발굴했다. 더불어 생존한 납북자 가족들로부터 받은 납북당시 증언 채록을 모아 사료집으로 출간하는 등 6·25납북자의 존재를 입증하는 데 매진해 왔다. 정부가 한사코 없다고 주장하던 과거 대한민국정부가 작성해놓은 6·25납북자명부들을 가족회가 직접 발굴하여 존재를 입증했지만 정부가 이번에는 명부들 간에 숫자가 차이가 심해 신뢰할 수 없다며 또 다시 6·25납북자의 존재를 거부하였다. 정부가 자신들의 전신인 과거정부가 작성한 명부들을 검토해보지도 않고 무조건 거부할 수 있는지 어이가 없었다.

우리 가족회는 전쟁납북자의 존재를 법적으로 입증하기 위한 입법 활동에도 심혈을 기울여 왔다. 특별법 제정을 위해 국회, 정부, 국가인권위원회에 계속 도움을 청했지만 2005년까지 아무런 성과가 없어 어쩔 수 없이 2006년 1월 17일 국가를 상대로 직무유기 손해배상 청구 소송 2건(공무원 가족과 일반 가족으로 구분)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이 소송에서 2008년 2월 12일 패소했지만 이에 불복하여 다시 항소하였다. 그러던 차에 법제정 노력 7년 만인 지난 2010년 3월 2일 마침내 기적처럼 단숨에 제287회 국회(임시회) 제12차 본회의에서 <6·25전쟁 납북피해 진상규명 및 납북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안 대안>이 의결 통과되었다.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님과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님께서 각각 대표발의에 흔쾌히 나서 주시고 적극 밀어주신 성과라 생각하며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두 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대 정부 소송 건은 특별법이 통과된 만큼 소를 취하하기로 결정했다.

상기 법안이 지난 3월 26일 동 법률로 제정 공포되었다. 이는 대한민국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측면에서 가장 의미 있는 역사적 쾌거라고 생각한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지금까지 우리정부가 납북피해자 가족들에게 공식적인 위로나 사과의 말 한마디도 없었는데 다행히 이번 6월 17일 대통령실에서 위로의 말과 문제해결을 약속하는 서한을 보내왔다. 이러한 위로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60년간 응어리진 피해자들의 마음을 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앞서 언급한대로 국가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달라는 것이다. 정부가 납북피해 진상을 규명하여 확보한 납북자 명단을 가지고 이들의 소식을 알아내고, 유해송환과 생존자 보호 등을 행할 구체적 방안을 우리 실정에 맞게 마련하기를 바란다. 아울러 후대가 다시는 6·25납북자를 망각하지 않도록 기록으로 남기고 납북범죄희생 기념관을 건립하는 등의 기념사업을 전개하며 나아가 주권국가로서 자국민에 위해를 가한 북한에 대해 법적 청구권을 행사하기를 바란다.


2. 납북피해 문제 해결을 위한 전담기구 구성

납북피해문제 해결을 위한 전담기구 구성을 가족회 결성 후 줄곧 제안해왔지만 통일부 소속 담당자 한 명만으로 납북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정부의 납북자 정책에는 변함이 없다. 담당자라도 더 증원해 달라는 요청마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제 6·25전쟁납북자 특별법이 제정됨으로 납북자 수가 500명이 아닌 그 수 십 배가 되는 8만 이상임이 법적으로 인정되었다. 숫자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국회의원, 공무원, 사회 각 분야의 지도자와 지식인들을 비롯해 어린 학생에 이르기까지 전쟁납북피해가 한국 사회전반에 걸친 문제다. 납북된 자국민 보호는 피해자와 그 가족들만의 문제가 아닌 국가의 최우선 책무이다. 우리에겐 물리적으로 남은 시간이 없다. 오늘도 연로한 피해가족들은 속속 숨을 거두고 있어 가족회 대표로써 안타깝기만 하다. 우리 정부도 귀찮아서 북한처럼 납북피해가족들이 다 소멸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스럽다. 가족들이 한 분이라도 더 살아 계실 때 문제가 어서 속히 해결되기를 바란다.

이제 이 자리를 빌려 다시금 납북자문제 해결을 위한 대통령 또는 국무총리 직속의 납북전담기구 구성을 제안한다. 구성된 기구는 통일부, 외교통상부, 국방부에 전담공무원을 두며 국제법, 협상, 범죄심리, 북한실정, 외교 분야 등의 전문가와 가족대표의 자문을 통해 우리 실정에 맞는 다양한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문제해결을 총괄한다. 우리의 이 제안을 수용하기가 진정 어렵다면 우선 그 대안으로 통일부에 납북자과를 신설하고 담당공무원을 3명이상 배정하여 국가의 최우선 책무를 성실히 이행하기를 정부에 촉구한다. 일본의 경우 십 여 명의 납치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에 전담부서를 두고 수 십 명의 담당 공무원이 배치되어 일하고 있다. 일본처럼 하지는 못해도 일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인력은 배정해줘야 옳다고 생각한다. 간혹 납치문제를 연구하는 외국인들과 인터뷰를 할 때 한국납북자 수가 그렇게 많은데 일본과 대조적으로 우리정부에 납북자 문제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단 한 명밖에 안 된다는 사실에 놀랐다는 말을 들으면 정말 창피하고 부끄럽다.

반드시 당부드린다. 이번에 제정 공포된 특별법에 4년간 한시적으로 운영될 위원회와 사무국에 이 모든 문제를 떠넘기지 않기를 정부에 바란다.


3. 정부가 발간한 6·25사변 피납치자 명부의 신뢰성 문제

전쟁전후에 우리정부가 작성한 피납치자명부들은 앞서 김태훈 변호사님의 발제문에서도 상세하게 확인된 바대로 상당히 엄격하게 작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60년이 지난 지금 오히려 납북과 행불의 구분이 어렵지만 당시에는 사활이 걸린 이념전쟁으로 인해 피아간이 확연히 드러나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당시 정부는 납북과 행방불명을 엄격하게 구분하였고 납북이 확실하지 않은 경우 납북자 명단에서 배제되어 있는 것으로 드러난다. 1951년 행정조직을 통하여 개인별로 작성된 민간인피해조사표를 보면 피해유형에 사망, 납치, 행방불명, 의용군징집이 예시되어 있고 해당되는 피해를 선택하도록 되어 있다. 1952년 정부가 발간한 82,959명의 인적사항이 기재된 피납치자명부는 이 개인별 조사표를 근거로 작성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1952년과 1953년 두 차례 통계국에서 발간한 대한민국통계연감 자료에 의하면 6·25전쟁으로 인한 민간인 피해는 다음과 같다.

6·25전쟁으로 민간인 피해 현황 (대한민국 통계연감)

1952년도
총 수 965,990
사 망 236,475
학 살 122,799
부 상 225,582
납 치 82,959
행방불명 298,175

1953년도
총 수 990,968
사 망 244,663
학 살 128.936
부 상 229,625
납 치 84,532
행방불명 303,212


4. 납북과 행방불명은 구분되어야 한다.

위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당시 정부는 피해조사에서 사망과 학살을 구분했고, 납치와 행방불명을 분명하게 구분했다. 1952년 피납치자명부에 등재된 82,959명의 명단이 있고 이 숫자는 1952년 통계연감 납치 통계와 동일하다. 전쟁전후에 어려운 중에도 이렇게 구분한 이유는 피해에 대한 책임성 문제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라고 본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의 일반적인 피해 즉 다시 말하면 사망, 행방불명과 같이 전쟁 중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불특정 다수의 피해는 그 책임을 묻기 어렵다. 하지만 사전 계획아래 대상자를 선별하여 조직적으로 행한 학살이나 납치와 같은 피해는 비록 전쟁 중이라 할지라도 법으로 엄격히 금지된 전쟁범죄에 해당한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 이 통계를 무시하고 납치와 행방불명을 합쳐서 애매한 통계를 예시하는 사례가 빈번해지고 있다. 그 예로 김태훈 변호사님께서 처음 보내주신 발표 자료에 법원사(법원행정처 1995. 4. 25)에서 인용한 “사망 15만, 행방불명 20만, 부상 25만”은 통계연감에 등재된 통계치와 다르고 납치 통계가 누락되어 있다. 그리고 “행방불명 중에는 북한에 의하여 강제 납북된 사람들이 상당수에 이르는 바, 이들을 전시납북자라 한다.”는 문구는 별도의 납치 통계가 있기 때문에 삭제해야 한다. 이러한 제 의견을 수용해 주시고 바로잡아 주신 데 대하여 감사드린다.

법원사 기록 뿐 아니라 군사편찬연구소 홈페이지에도 민간인 피해를 납치와 행불, 사망과 피살을 하나로 합해 통계치가 게시되어 있어 2007년 5월 19일 자유게시판에 정정 요청을 하여 5월 23일 정정이 된 적이 있다. 그러나 며칠 전 군사편찬연구소 홈페이지가 새롭게 단장되었는데 또 다시 잘못된 예전의 민간인 피해 통계를 게시했다. 시간이 없어 아직 수정 요청을 못했는데 전쟁과 관련한 전문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군사편찬연구소가 이렇게 분간을 못하니 더 말할 여지가 없다. 이는 피해유형에 대해 무지하거나 아니면 납북범죄를 은폐하기 위한 어떤 불순한 의도에서 비롯된 결과일 가능성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행방불명 중에는 간혹 납치가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납치와 행방불명이 같은 피해유형이 될 수는 없다. 납치와 행방불명은 반드시 구분되어야 하며 그 통계치도 구분하여 기록되어야만 한다.

세계 제2차 대전이 끝나자마자 전쟁을 일으킨 독일과 일본은 각각 뉘른베르크 재판과 동경재판에 회부되었다. 이를 통해 이러한 악행은 결코 용서될 수 없음을 전 세계가 확인했다. 그러나 6·25전쟁은 60년이 되도록 전쟁을 일으키고 무고한 양민들을 납치 학살한 범죄에 대한 전범처리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범죄사실 자체마저도 잊혀지고 있다. 납북과 같이 현재도 계속되는 피해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들이 반드시 그리고 마땅히 취해져야 한다. 이는 정부와 국가가 존립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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