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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8회 1962. 4. 6
이름: 관리자
2005-10-05 16:32:42  |  조회: 2510
첨부 : 19620406-3.pdf  
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歲月 8

이름 : 관리자 번호 : 25
게시일 : 2001/01/19 (금) AM 09:57:47 (수정 2001/01/26 (금) PM 01:01:28) 조회 : 45

1962년 4월 6일 동아일보에서...


죽음의 歲月 ⑧


납북인사 북한생활기


國軍의 平壤入城直前
曺晩植先生被殺
50年10月15日 비오는 밤의 慘變




50년 10월 15일, 국군과 「유엔」군대부대가 입성을 다투는 平壤시내에는 살벌한 분위기 속에 어둠만이 짙고 늦가을 찬비만 줄기차게 내리 퍼부었다. 괴뢰수도 平壤 방위를 위한 일부 인민군부대가 남았을 뿐 당간부, 내각간
부, 각 기관원들은 이미 모두 도망쳐버렸고 시민들은 집 속에 틀어박혀 거리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밤도 깊어 大同江변에 자리잡고 있던 내무성 정보처 안에서 어둠을 뚫고 일발의 총성이 요란하게 울렸고 뒤미처 수십 발의 총성이 주위의 고요를 흔들었다.

그 순간 이 나라의 위대한 민족주의자 曺晩植선생이 68세를 일기로 괴뢰내무서원 韓圭滿소좌가 지휘하는 내무서원들의 무자비한 총탄에 맞아 피를 흘리며 마루바닥에 쓰러진 사실을 목격자들 이외엔 알 사람이 없었다.
이 참극은 45년 12월 「모스크바」 三相會議결정을 반대 분연히 일어서던 순간 공산당에 의하여 平壤시내의 高麗 「호텔」二층에 연금된 후 五년만의 일이었다.

六·二五후 선생은 극심한 심적 고통과 심장쇠약에 복막염이 겹쳐 南平壤의약대학부속병원 특별실에 누워있었다. 「유엔」군의 참전으로 전세(戰勢)가 역전하자 넓은 내무성구락부에 그때까지 감금해두었던 재북 저명인사, 종교인들을 모두 집결시키고 병상에 누워 있던 曺선생마저 그곳으로 옮겼다.

이때 이들 저명인사를 후송할 책임을 맡은 자가 바로 내무서원 韓圭滿(당시 33세) 소좌였다. 平壤출신인 韓은 키가 六척 二0관이나 되는 큰 체구에 얼굴은 얽적백이었다.

제일차로 韓은 曺선생을 후송하려하였다. 너무도 머리가 텁수룩하여 「바리캉」을 갖고 와 먼저 머리를 깎으려 하였으나 선생은 이를 뿌리쳤다. 그리고 입고 있는 한복을 벗기고 군복 비슷한 양복을 갈아 입히려 하였을 때 분노에 못 이겨 이빨로 그 옷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마루바닥에 깐 것도 없이 손을 묶인 채 쓰러져서 『나는 죽어도 平壤을 떠날수는 없다.』고 딱 한마디로 잘라서 말하였다.

그러자 그자는 우선 딴 감금인사들을 먼저 江界방면으로 후송한 다음 曺선생과 金善默 목사 등 십여명의 기거를 할 수 없는 중환자들만을 남겨 놓았다.11시쯤 포장을 씌운 일대의 소련제 「스리코터」가 내무성구락부 정문 앞에 「라이트」를 끈 채 달려와 멎자 수명의 내무서원이 황급한 걸음으로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韓의 일당이었다. 강당 안으로 들어온 韓은 曺선생앞에 이르자 『차가 왔으니 빨리 타시오.』하고 소리쳤다.

曺선생은 『죽이려거든 여기서 죽여주게. 간들 어차피 도중에서 죽을 몸이 아닌가?』 이에 초조해진 韓은 부하를 시켜 강제로 선생을 끌어내려고 하였다. 그 순간 선생은 그들의 손을 완강히 뿌리치며 『내 몸에 손가락하나 대지 말아주게』하고 언성을 높였다.

비록몸은 쇠약했을망정 그 얼굴에는 감히 접근 못할 위엄이 서려있었다. 멀리 大洞江 남쪽에선 유엔군의 포성이 어둠을 뚫고 은은히 울려나오고 있었다. 당황한 韓은 당시 平壤방위사령관으로 武亭한테 연락을 취하였다.

『될 수 있는 한 살려서 데리고 가도록 하되 만약 피치 못할 경우에는 사살하여 버리라.』는 것이었다. 이윽고 불빛하나 없는 구락부 안에서는 한방의 총성이 요란하게 울리고 뒤이어 무질서한 총성이 잠시 계속되었다. 金善默목사도 이때 같이 사살 당한 것이다.

일을 치르고 난 그자들은 즉시 선생의 시체를 어디론가 가져다 버리고 江界방면으로 도망쳐 버렸다.

曺선생을 사살한 韓圭滿은 六·二五 얼마 전에는 平壤에서 피신 중이던 저명한 목사 金化湜씨를 잡아내어 사살하였는데 이분이 월남하여 현재 서울에서 살고 있는 작곡가 金東振씨의 부친이다. 그 후도 韓은 수많은 사람들을 제멋대로 쏘아 죽여 과오로 인한 기한전제대(불명예제대)를 한 후 南平壤 피복협동조합 위원장으로 있다가 현재는 내각직속 출판지도총국검열원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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