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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11회 1962. 4. 10
이름: 관리자
2005-10-05 16:36:19  |  조회: 2070
첨부 : 19620410-3.pdf  
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歲月 11

이름 : 관리자 번호 : 28
게시일 : 2001/01/22 (월) AM 11:52:22 (수정 2001/01/26 (금) PM 00:36:00) 조회 : 31

1962년 4월 10일 동아일보에서


죽음의 歲月 ⑪


납북인사 북한생활기


유엔軍 避해서 山길로 强行軍
굶주림과 疲勞에 氣盡脈盡
病者는 絶壁에 버리고


江界로 끌려가는 도중 가장 희생자를 많이 낸 것은 소위 반동 저명납치인사들로 崔麟을 필두로한 一백여명의 대열이었다.

이들은 安州에서 다 떨어진 헌 솜옷을 하나만 얻어 입고 泰川을 거쳐 野山에 이르렀다는데 거기서 인솔책임당간부와 인민군들은 「유엔」군이 급속도로 뒤쫓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부랴부랴 산길로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험한 산길은 무한정 북으로 뻗어있었다. 이리저리 산굽이를 휘돌아 깊은 산골짜기에 이르렀을 때 약 20명이 신병과 피로에 지쳐 그대로 쓰러졌다. 그러나 인민군들은 다급한 나머지 그들을 끌고 갈 생각은 않고 보행이 가능한 사람과 처음부터 들것에 들려오던 인사들만을 데리고 산길을 재촉하였다.

첩첩 산중에 내버려진 이들은 그곳에서 그대로 죽었을 것이 분명하다.

溫井을 지나 다시 「개고개」로 기어오르기 시작하였다. 이 고개는 올라가는데 50리, 내려가는데 50리로 한 고개를 넘는데 백리는 걸어야되는 험한 산길이었다.

「개고개」를 넘어 平北 熙川 가까이 갔을 때 이미 「유엔」군이 앞질러 熙川까지 들이닥쳤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이들은 또 산길로 접어들었다. 이윽고 험준하기로 이름난 狄踰산맥 줄기를 타게 되었다. 해발 一천 九백 二십 二 「미터」- 산허리를 굽이도는 길은 올라가는데 80리, 내리막길 80리, 속칭 180리 고개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들은 혹시 「유엔」군과 맞부딪칠까 두려워 길도 없는 험한 산맥을 타고 가야만 하였다. 키를 넘게 우거진 관목숲 낙엽은 첩첩이 쌓여 무릎 위까지 푹푹 묻혔다. 옷은 나뭇가지에 걸려 찢어지고 신발은 떨어져 발가락이 튀어나오고 풀뿌리와 나무뿌리에 차여 피가 흘렀다. 찬밥 덩어리, 건빵조각으로 간신히 끼니를 이으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죽지 못해 끌려가는 강행군이었다.

崔麟, 高元勳, 鄭寅普와 그 외 환자들을 업고 가던 인민군들도 점점 지치기 시작 자기 혼자만 걷기에도 허덕일 판이었다. 이때부터 인민군들은 밤중에 업고 가던 환자들을 몰래 절벽 밑으로 굴러 떨궈 죽이고 도망도치고 또는 잠들었을 때 목을 졸라 죽인 후 낙엽 밑에 파묻기도 하였다.

이윽고 狄踰山脈중의 최고봉인 「돌고개」에 이르렀다. 병풍을 둘러 세운 듯한 절벽과 절벽사이 바위틈을 더듬어 지나 가야하는 것이다. 한발자국 잘못 디디면 그대로 수 천길 절벽 밑으로 자취도 없이 사라질 판이었다.

이 고개를 넘던 때가 10월 23일에서 25일 사이 - 산간에는 어둠이 내릴 무렵 곁에서 업혀가던 崔麟과 鄭寅普가 부득이 여기서 떨어지게 되었다. 절벽을 끼고 도는 길이라 한사람씩 간신히 지나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먼저 崔麟이 가고 얼마 떨어져서 鄭寅普 高元勳이 뒤따랐다. 崔麟은 얼마 가지 않아서 등뒤에서 鄭寅普가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절벽을 타고 아슬아슬하게 지나가고 있기 때문에 뒤돌아 볼 겨를도 없었다. 안전한 곳까지 이르러 뒤돌아 보았을 때 이미 鄭寅普는 물론 高元勳도 안보였다.

이처럼 희생자를 많이 내면서 狄踰山준령을 완전히 넘었을 때는 일행 一백여명중 六0여명밖에 남지 않았다. 이때 崔麟과 玄相允은 『寅普와 元勳이 어떻게 되었느냐?』고 당간부와 인민군들을 붙들고 통곡하였다.

11월 중순 江界에 도착한 이들은 곧 중앙당과 내무서에 항의를 제출, 난처해진 괴뢰간부들은 高山鎭에 있던 괴뢰최고 검찰소에 인솔당간부와 내무서원을 회부하여 형식적이 나마 재판을 받은 후 五년이상의 징역형을 언도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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