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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12회 1962. 4. 11
이름: 관리자
2005-10-05 16:37:10  |  조회: 2015
첨부 : 19620411-3.pdf  
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歲月 12

1962년 4월 11일 동아일보에서...


죽음의 歲月 ⑫


납북인사 북한생활기


具滋玉氏 「들것」에서 殞命
一行의 옷찢어 遺骸감아 壽衣로
고약한 警備員 혼내기도



종교계의 납치인사들은 中和를 떠나 軍隅里, 寧邊을 거쳐 溫井까지는 대로로 무사히 갔다. 그러나 여기에서 「유엔」군이 등 뒤까지 압박했다는 정보에 접하자 험산준령 白岩山 줄기를 타고 수십 개의 고개를 넘기 시작하였다.

具滋玉, 南宮赫, 兪漢柱는 중태에 빠져 들것에 들려서 갔고 宋昌根, 吳澤寬은 업혀서 갔다. 업고 가던 인민군들은 자기들도 지쳤으므로 『이런 반동 들은 업고 가선 무엇 하느냐?』고 짜증을 내며 힘들면 그냥 산길에 내동댕이치곤 하였다.

그때마다 업혀가던 노인들은 땅바닥에 쓰러져 신음하였다. 그러면 뒤따르던 인솔당(黨) 간부가 허둥지둥 쫓아와 그 인민군장정을 꾸짖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명단을 막 작성해 가지고 江界까지 무사히 데리고 오라는 엄명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龍淵 약 20리 못미쳐 산길에서였다. 이때 들것에 들려오던 滋玉이 숨을 거두었다. 이 사실을 안 동행 납치 인사들은 그 자리에서 모두 시체를 둘러싸고 꿇어앉아 기도를 올리고 눈물을 흘리며 찬송가를 불렀다.

시체를 방치하고 빨리 가자고 인민군들은 고함을 치기도 하고 한편 달래기도 했으나 이들 인사들은 四시간이건 五시간이건 시체주위에 꿇어앉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시체를 감쌀 천 조각 하나 없었다. 납치인사들은 자기들의 옷을 찢었다. 찢은 옷 조각을 줄줄이 묶어 연필로 거기에다 각자의 이름을 쭉 쓰고 그것으로 시체를 두루 감쌌다. 그리고 양지바른 장소를 골라 손가락과 나무로 흙을 파고 돌을 골라내고 하며 시체를 묻고 나무로 십자가를 만들어 표를 하였다.

이 고개를 넘다가 具滋玉보다 먼저 운명한 것은 兪漢柱신부였다. 그는 운명할 때 호주머니에 고이 간직해오던 십자가를 꺼내어 옆에 있던 목사에게 전하였다.

溫井에서 龍淵까지 불과 一백 五0리, 그러나 이곳까지 무려 一주일이나 걸렸다. 그 후 이들이 江界에 도착한 것은 11월 10일쯤이었다.

한편 종교계납치인사들과 같은 「코스」로 溫井까지 간 소위반동문화계인사들은 이곳에서 雲山으로 빠졌다. 雲山에서 이들은 중공군이 들어온다는 소문을 들었다. 熙川거쳐 왜정때 설치되었으나 사용치 않고 있는 철길을 따라 狄踰山을 넘어 江界로 들어섰다.

「반동납치인사」중 平壤에서 江界까지 가는 도중 한 명의 희생자도 안낸 것은 오직 이 대열뿐이었다.

平壤교외 坎北里에 수용되었던 저명치 않은 국회의원들은 安州, 泰川, 雲山을 거쳐 험하기로 이름난 大揄洞고개를 넘기 시작하였다. 국군이 뒤미쳐 왔다고 재촉을 하는 바람에 밤낮을 걸어 하루에도 七∼八0리씩을 걸어야 하였다.

나이 많은 金禹植과 중병에 시달리던 金尙德외 십 여명은 업혀서 갔다. 끌고 가는 인민군 경비원 중 한 놈이 어떻게 고약하게 구는지 申容勳이 참다 못하여 『이 다 늙은이더러 어떻게 그리 빨리 걸으란 말이냐, 넌 부모도 없는 자이냐?』하고 호령을 하자 그 자는 총대로 申容勳의 머리를 내리쳤다. 申容勳의 깨진 머리에서는 피가 흘렀다.

이를 본 李康雨외 몇 명이 화가 치밀어 대들며 모두 그놈을 둘러싸고 마구 주먹질을 하였다. 그 통에 그놈은 죽도록 매를 얻어맞았다. 당황한 인민군과 인솔당 간부는 공포를 쏘고 李康雨를 잡아 꽁꽁 묶었다. 이에 분격한 납치인사들은 모두 그 자리에 주저앉아 만약 李康雨를 풀어주지 않으면 안가겠다고 버티었다. 그자들은 하는 수 없이 李康雨를 풀어놓았다.

壁洞에 닿았을 때 金禹植은 몸이 퉁퉁 부어 그대로 운명하였다. 楚山가까이 이르렀을 때 이미 거기에는 국군이 들어와 있어 산중에서 며칠을 묵은 다음 10월 29일 국군이 후퇴하자 楚山을 거쳐 원래는 江界로 들어갈 예정이었던 것을 渭原을지나 滿浦로 멀어졌다. 이때가 11월 15일경.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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