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납북자 가족，북송 비전향 장기수에 편지…“사상·이념 떠나 이산 동병상련”



"이념과 사상을 떠나 여러분들과 우리는 같은 아픔을 지닌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가족과 헤어져 너무 긴 아픈 세월을 보내야했습니다. 북한으로 돌아가는 여러분들이 우리의 애타는 마음을 꼭 전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6·25전쟁 당시 북한군에게 끌려갔던 납북자의 가족이 1960년대 남파간첩으로 체포돼 최근까지 수감돼 있던 비전향 장기수에게 동병상련의 심정과 함께 당부의 말을 전했다. 우리 사회가 보혁갈등이 재현되고 있지만 50년 넘게 냉전의 희생자로 힘겹게 살아온 이들은 비전향 장기수들도 같은 아픔을 나눈 `희생자`로 받아들였다.

6·25전쟁 납북인사가족협의회는 31일 비전향 장기수가 머물고 있는 서울 봉천동 만남의 집으로 "가족과 헤어진 아픔은 같다"는 편지를 보냈다고 밝혔다. 이들의 마음이 담긴 편지는 비전향 장기수 김영식(71) 문상봉(80)씨에게 1일 우편으로 전달된다.

가족협의회 이미일(56) 이사장은 `북한으로 돌아가는 장기수 여러분께`라는 제목의 편지에서 "남북한 이념 대립 속에서 큰 괴로움을 온몸으로 감당하고,이제 꿈으로라도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가게 돼 얼마나 기쁘겠는가"라며 "곧 북에서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55년 동안 막혔던 말문을 열었다. 이 이사장은 편지봉투에 `가족과 생이별하는 것은 고통입니다`라는 문구를 적어넣었다.

그는 "고향을 못가고 가족과 생이별하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 줄 알고 있는 우리로서는 여러분들이 가족과 재회한다니 막을 수도 반대할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며 "도리어 진심으로 축하를 보내고 싶다"고 했다.

편지에는 납북자 가족으로 살아온 55년에 대한 소회도 담겨 있다. 이 이사장은 "북한으로 사라져간 분들이 지금 살아 있는지,살아 있다면 어디에 있는지 소식이라도 듣고 싶다"며 "우리 가족들도 전쟁으로 가정이 파괴되고 인권이 짓밟힌 지 50년 넘게 살아왔다"고 적었다. 그는 "북으로 돌아가면 여러분들이 우리의 아픔을 멈추게 하는 데 도움을 달라"며 "우리의 애타는 마음을 꼭 전달해달라"고 호소했다.

가족협의회는 12월에 납북자의 신원파악 및 송환에 무관심한 정부를 상대로 단돈 1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본보 10월27일자 5면). 비전향 장기수의 2차 북송을 추진하면서도 6·25납북자 문제에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정부에 이 한 장의 편지가 의미있는 촉구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 이사장 역시 1950년 서울 청량리동에서 유기공장을 운영하다 인민군에게 끌려간 뒤 소식이 끊어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50여년을 살아왔다. 이 이사장은 편지를 발송한 뒤 "평생 억울함과 분노를 안고 살았고,인민군과 남파간첩을 아무 조건 없이 북한에 보내는 우리 정부에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한편 정부는 1993년 3월 이인모씨와 2000년 9월 63명 등 모두 64명의 비전향 장기수를 북송한 데 이어 나머지 28명도 조만간 북송할 계획이다.

허윤 기자 y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