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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Q

Q. 전시 납북자에는 누가 해당되나요?
남한에 거주하고 있던 대한민국 국민(군인제외)으로서 6ㆍ25전쟁 중 (1950.6.25~1953.7.27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 체결 전까지)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북한에 강제로 납북되어 북한에 억류 또는 거주하게 된 사람을 말합니다.
Q. 납북자 신고는 어떻게 하나요?
납북자와 친족 관계 (8촌 이내의 혈족, 4촌 이내의 인척, 배우자)인 사람이 주민등록 주소지 시청, 군청, 구청에 가서 하시면 됩니다. 자세한 문의 사항은 국무총리소속 6ㆍ25전쟁납북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대표전화 1661-6250)으로 문의하십시오.
Q. 과거에 작성된 납북자 명부에 한자 이름, 주소 등이 잘못 기재되어 있는데 고칠 수 있나요?
6ㆍ25전쟁 중 혹은 종전 후에 작성된 명부는 과거의 공공기록물 자료입니다. 따라서 오류가 있다고 내용을 수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대단히 까다로우며, 납북자 심사 과정에서 과거 명부의 단순한 기재상의 오류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현재까지 오류를 수정한 경우는 없습니다.
Q. 어떻게 가족회 회원이 될 수 있나요?
6ㆍ25전쟁납북진상규명 및 납북피해자명예회복위원회로부터 납북자결정통지서를 받은 분들은 자동으로 가족회 회원이 되시는 것이 아닙니다. 별도로 가족회 가입신청서를 팩스, 우편, 방문을 통하여 수령하셔서 직접 작성하신 후에 저희 가족회 사무실에 팩스, 우편, 방문을 통하여 전달해 주셔야 합니다.

위원회에서 납북자 결정통지를 받더라도, 개인정보보호방침에 의하여 저희 가족회와 납북결정자의 정보가 공유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저희 가족회에는 따로 가입을 하셔야만 합니다.
Q. 가족회 회원이 되면 어떤 혜택이 있나요?
가족회에서 진행하는 증언 채록 사업에 참여하여 가족들의 과거 기억에만 묻혀 있는 납북자의 이야기를 역사적인 기록물로 남길 수 있습니다. 또한 납북자 호적정리를 무료로 진행할 수 있으며, 매년 열리는 납북희생자를 위한 기념 행사들에 참석하여 납북 피해자들이 과거의 기억으로 사라지는 것을 막는 활동에 직접 참여할 수 있습니다. 국제 기구들과의 협력을 통하여 납북 희생자의 생사확인, 유해송환을 요청하는 진정서를 제출하는 등의 활동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모두가 마음을 하나로 모아 납북 희생자를 기억하며, 납북 피해의 아픔을 공유하는 것이 가장 큰 혜택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Q. 왜 가족회는 지금에서야 활동하나요?

지난 날 연좌제 적용으로 피해가족에서 감시대상 가족으로 전락

한국전쟁 당시 1951년 9월 6.25사변피랍치인사가족회가 결성되어 활발히 구출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그러나 1950년대 후반부터 북한이 젊은 전쟁납북자를 무장간첩으로 남파하자 남한 정부는 1990년대 초까지 전쟁납북자 가족들에게도 연좌제를 적용하였습니다. 이 결과 납북피해 가족들은 감시대상 가족으로 전락했고 전쟁 중 결성된 가족회도 더 이상 활동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북한과의 대화 두절

전쟁으로 인한 북한과의 극심한 이념 대립으로 휴전 이후부터는 남북 간의 대화 자체가 어려워졌고, 북한은 시종일관 납북사실을 부인했습니다.

2000년부터 시작된 북한과의 화해모드가 조성되면서 6.25전쟁납북자의 존재는 사라짐

언젠가 북한과 회담이 열리면, 대한민국 건국 초기에 가장 극심한 자국민 인명 피해지만 고스란히 미제로 남아 있는 6·25전쟁납북자 문제를 최우선적으로 의제 화 해주리라고 기대해왔습니다. 마침내 2000년 6월 15일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북한과 화해를 한다며 남북정상회담을 한 이후 수많은 남북회담이 개최되었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의 기대와는 정 반대로 존재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형국이 되고 말았습니다.

북한이 경제적인 지원을 절실히 원하는 지금이 6.25전쟁납북자 생사확인과 귀환의 기회

북한에서는 1997년경 극심해진 식량난으로 300만 북한주민들이 굶어 죽었습니다. 경제적으로 피폐해져 있는 상황, 즉 김정일에게 우리의 경제적 도움이 절대 필요한 이 시기가 지원에 대한 조건으로 전쟁납북자 소식이라도 알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보았습니다.

이에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는 2000년부터 우리 6.25전쟁납북자의 존재를 정부에 알리고 우선적으로 소식이라도 알기 위해 우리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