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마는 달리는데, 아버지는 지금 어디에…”

실향민 이성의씨의 애틋한 사연

아비(이종령)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당분간 오지 못할 것 같다.” 어미(이춘단)는 놀라는 기색을 애써 감췄다. 아비는 맏이(이맹호)를 불러세웠다. “정신 바짝 차리고 주의해서 가족들 챙겨라.” 1950년 7월 초 새벽 3시께, 그날 아비는 떠나갔다. 7남매의 세살배기 막내 딸(이성의)에게는 사진 한 장만을 남긴 채 그렇게….

이념의 벽에 가로막혀 반세기 넘게 달리지 못했던 남북 열차가 오고 가는 역사적인 5월 17일. 이순(耳順)에 가까운 나이가 된 막내 이성의(58) 할머니는 불쑥 찾아온 기자 앞에서 열차에 타지 못한 아쉬움 때문에, 그리고 평생의 소원인 아버지의 생사 확인과 북에 있는 오빠?언니에 대한 걱정으로 세번의 눈물을 보였다. 납북된 아비의 딸이자 오누이와 헤어진 이산가족으로 57년을 살아온 설움이 한순간 폭발한 듯했다.

“동해선 열차에 우리 오빠?언니가 타고 올 수 있었지.” 어미는 여섯째(이강이)가 저러다 죽지 싶었다. “친정(황해도 연백)으로 보내면 밥은 먹겠지”라는 생각에 맏이를 불렀다. “얘야. 셋째(이정숙)랑 여섯째(이강이)를 외가에 데려다 주고 오너라.” 전쟁이 끝날 때쯤 어미는 두 자식을 데리러 갔다. “다시는 떨어져 있지 말자.” 몇 번을 중얼거리는데 아비가 말렸다. “조금만 있으면 열차(경의선)가 다시 연결될 거다. 그때 데려 가라.” 눈물을 꾹 참은 채 어미는 혼자 내려왔다. “며칠만 참자. 기차만 연결되면 데리고 오자.” 그러나 며칠 뒤 휴전선이 그어졌다. 며칠이 수십년이 돼버리면서 어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끊긴 기찻길을 보면서 하염없이 눈물 흘리는 것뿐이었다.

“어머니가 저 끊긴 기찻길 보며 얼마나 우셨는데….” 이성의 할머니는 “철마는 드디어 달리게 됐지만 돌아가신 어머니와 북쪽 어딘가에 있을 오빠와 언니를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며 울먹였다.

할머니는 틈만 나면 탈북자를 만나 북한의 실상을 듣는다고 했다. 뜬금없이 설렁탕 얘기를 꺼내더니 또 눈물을 글썽인다. “(탈북자와) 설렁탕을 먹는데 밥을 못 먹는거야. 북에 두고온 가족 생각하면 자기만 배불리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없다며 목이 메이는 거였어.”

할머니는 “남한으로 내려와서는 어머니는 북으로 끌려간 아버지, 지리산에 공비 토벌하러 갔다 온 뒤 시름시름 앓다 죽은 장남 얘기만 하며 몸져누웠다”면서 “집안살림을 다 챙긴 큰 언니에 대한 미안함도 뼈에 사무친다”고 했다.

열차 왕래가 시작됐지만 할머니는 희망을 버렸다고 했다. 어머니가 그토록 원하던 경의선이 개통됐다는 소식을 듣고도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우리 같은 사람에게 어떤 혜택이라도 있을 거라 생각 안 해.” 실향민이나 정작 북한에 가야 할 사람은 한 명도 타지 못한 채 기차가 시험운행된다는 것을 알아서다. 또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도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한 차례의 이벤트로 끝날 수 있다고 생각한 듯했다. 우리 측이 남북철도 연결에 쏟아넣은 비용은 모두 5454억원이다. “이제 시작이라지만, 우리 같은 사람이 한꺼번에 통일열차를 타고 헤어진 가족을 만날 날이 오기는 오늘 걸까.”

‘역사적, 57년 만, 남북관계의 전기 마련’ 등 TV에서 흘러나오는 흥분한 아나운서의 말을 들으면서도 할머니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글.사진=남상욱 기자(kaka@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