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 럼> 6·25와 전시납북 과거사

노무현 정부가 법제 정비와 예산 뒷받침을 통해 과거사 파헤치기에 ‘정성’을 쏟고 있으나, 아직까지 손을 놓고 있는 과거사가 하나 있다. 12만명에 달하는 전쟁납북의 진상규명과 피해 회복 문제가 그것이다.

전시납북은 기획납북·유인납북·색출납북으로 나뉜다. 이 중 기획납북은 김일성이 지시한 남한 요인(要人) ‘모셔오기’ 작전을 가리킨다. 이와 관련, ‘김일성전집’ 4권은 ‘남조선에서 인테리들을 데려올 데 대하여’라는 1946년 7월31일자 김일성 교시를 전하고 있다. 이는 전시납북이 북한 정권이 직접 개입, 자행한 납치테러의 산물로 조직성·불법성·강제성·범죄성을 띠고 있음을 말해준다.

1953년 체결된 군사정전협정 제59항에 따라 ‘실향사민귀향협조위원회’가 설치됐으나, 이 위원회의 노력으로 귀환한 전시 납북자는 단 한 명도 없다. 1955년 9월 대한적십자사의 요청으로 국제적십자사(ICRC)가 1만7500명의 전시 납북자 송환을 위한 주선에 나섰지만, 북한은 묵묵부답이었다. 단지 1957년 뉴델리 국제회의에서 330여명의 생존자만을 확인해 주었을 뿐이다. 이처럼 북한은 납북자 불법억류와 축소은폐, 원상회복과 인권실현 거부 등 2차 범죄를 저질렀다.

이후 50여년의 세월이 속절없이 흘러가는 사이 전시 납북자는 기억에서 사라져 갔다. 졸지에 가장을 잃은 납북자 가족들이 지난 세월 간난신고(艱難辛苦) 속에서 살아왔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전쟁과 강제납치를 막지 못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 후 국가가 자국민 보호 차원에서 즉각 송환 및 지원 대책을 마련했어야 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는 그렇지 않았다.

이제라도 정부는 할 도리와 책무를 다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전시 납북자 가족들은 정부가 행한 공약마저 지키지 않고 있음에 당혹해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이미일 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사장과의 면담에서 ‘전후’ 납북자 입법을 먼저 한 후 나중에 ‘전시’ 납북자 실태조사와 특별법 제정을 하기로 다짐했었다. 이 분리 추진 약속이 흐지부지되고 있다.

정부는 또 2002년 9월 이래 북측과 적십자회담 등에서 10차례나 ‘전쟁중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자’의 생사 및 소재 확인을 하기로 한다는 겉치레 합의를 반복 생산하는 데 안주하고 있다. 대북 설득과 압박 등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강력한 실천의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8일 이재정 통일부 장관의 “납북자 중 일부는 월북자일 가능성이 있다”는 발언은 충격적이었다. 자기 의사에 반해 끌려간 피랍자와 사회주의체제가 좋다고 제 발로 북한에 간 자를 어떻게 같은 선상에서 거론할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납북자 가족들이 분노한 것은 당연했다.

전시납북 문제 해결을 위해선 먼저 실태조사가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는 현재 민간단체가 제시한 조사방안의 실효성 문제, 주무 부처의 지정 곤란, 과다한 비용 등을 들어 실태조사를 피하고 있다. 반면 정부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에 대해선 실태 파악을 위해 행정기관은 물론 재외공관까지 동원해 피해 신고를 받고 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아래서 입은 피해도 해당 과거사위원회에 신고토록 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의 논리는 군색하기 짝이 없다.

2004년 11월 국회에 제출된 전시 납북자 법안은 아직도 잠자고 있다. 국회는 조속히 특별법을 제정해 납북자 송환 노력, 당사자의 명예회복, 추모사업, 가족 생활지원 등을 제도화해야 한다. 정부도 인권과 인도주의를 표방한다면 전쟁 피해자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눈물을 씻겨주는 일(과거청산)에 보다 적극 나서야 한다. 6·25전쟁(피해)은 끝나지 않았음을 명심해야 한다.

[제성호 / 중앙대 교수·법학]

기사 게재 일자 2007-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