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관리자
2007-09-03 11:27:53 | 조회: 4279
입력 : 2007.09.03 09:01
“7년 전인 2000년 9월 2일 비전향 장기수 63명은 이곳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아프가니스탄 무장단체에 납치됐던 한국인 인질 19명이 귀국했다는 낭보(朗報)가 전해진 날입니다. 그런데 왜 유독 우리 납북자 가족에게만은 이렇게 슬픈 날이 되어야 합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고령의 납북자 가족들은 사랑하는 가족의 생사조차 모른 채 유명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짙은 먹구름 사이로 간간이 가랑비가 흩뿌리던 2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망배단 앞. 지난해 56년 만에 부친 이봉우(82)씨와의 상봉이 예정됐으나 결국 무산됐던 이상일(58)씨가 북한에 계신 부친께 드리는 편지를 읽으며 오열했다.
이날 파주 임진각 망배단 앞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앞 라파예트 공원에서는 납북자의 생사확인 및 송환의 염원이 담긴 ‘납북자 이름 부르기’ 행사가 동시에 열렸다.
파주 임진각에서는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와 납북자가족모임 등 회원 100여명이 참석했다. 머리가 하얗게 새고, 얼굴에 주름이 깊게 패인 납북자 가족들은 돋보기를 꺼내들고 물기 어린 목소리로 납북자 1214명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며 납북자의 생사확인 및 송환을 촉구했다. “김석만” “박두남” “박두현” “정완상.”
특히 지난달 27일 납북어부인 남편 박두현씨의 사망소식에 심한 우울증을 앓다 스스로 세상을 등진 유우봉(70) 할머니와 함께 동고동락했던 거제도 농소마을의 납북 피해자 가족들도 참석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납북자 가족들은 “납북자 송환 없는 남북정상회담 반대한다” “허울 좋은 민족화해, 죽어가는 납북인사” 등의 글귀가 쓰인 피켓을 들고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납북자 문제가 반드시 해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납북자가족모임 최성용 대표는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은 2000년 비전향 장기수들을 북송하면서 임기 내에 반드시 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으면서도 7년이 지난 지금까지 납북자 문제에는 아무런 진전도 없다”며 “햇볕정책의 미명 아래 납북자 문제는 외면당해왔지만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납북자 문제가 반드시 의제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납북자 가족들은 1214명의 납북자 이름을 일일이 호명한 뒤 자유의 다리에서 북녘 땅을 향해 편지 등을 담은 풍선을 띄워보내는 것으로 이날 행사를 마무리했다. 한편 미국 워싱턴에서는 5일까지 납북자 8만3000여명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는 행사가 계속된다.
파주=안준호 기자 libai@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