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 거론도 못하고 평화? 망신스런 일”

납북자 및 국군포로 관련단체, 릴레이 단식 농성 돌입…대국민사과 등 요구
“김정일에 가족 빼앗긴 전쟁피해자, 정부가 우리를 죄인으로 만들었다”

2007-10-05 15:51:54

제2차 남북정상회담 합의문에서 납북자 및 국군포로 문제가 제외되자 관련단체들이 납북자 국군포로 관련 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하며 단식 농성 등 고강도 대응에 나섰다.

6.25전쟁국군포로가족협의회와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납북자가족모임, 피랍탈북인권연대 등은 ”그렇게 기대했건만 희망은 물거품이 됐다“며 실망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분위기.

특히 지난 1일 청와대에 ‘납북자 및 국군포로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뜻을 전달했던 이들은 이번 회담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었던 만큼 적지 않은 충격과 배신감을 느끼는 모습이다.

5일 청와대 앞 공원에서 릴레이 단식 농성에 돌입한 단체들은 “거짓 평화를 외치며 국민을 기만한 노무현 정부,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며 자국민 보호 책무를 유기한 정부를 규탄한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노무현 정부를 “그놈의 정부”라고 서슴없이 평가절하하면서 “납북자 및 국군포로 가족들의 피맺힌 한을 철저히 외면하고 대북지원의 명분만 늘어놓은 노 대통령은 실패한 회담을 했다”고 대립각을 세웠다.

이어 단체들은 “납북 거론도 못하고 평화 운운하는 건 노 대통령에 망신스런 일”이라며 공세를 이어갔다.

단체들은 정부가 납북자 및 국군포로 문제와 관련, 해결의지가 보이지 않고 북한의 눈치를 보며 납북 인정을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고 문제삼았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의 ‘자진 월북’ 발언은 이같은 분위기를 반영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납북자 단체의 한 관계자는 “사실 노무현 정권이 적극적으로 나서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평화’ ‘종전’ 의지가 강하기에 내심 마음이 설레였었다”면서 “그런데 남편, 친지를 애달게 그리워하는 우리더러 ‘죄송하지만 차차 풀자’ 하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아무 죄없는 우리를 연좌제로 죄인 취급하더니 이젠 죽어 조상 앞에 얼굴도 못들 몹쓸 사람으로 만드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또 단체들은 납북자 가족을 이산가족으로 묶어 1회에 2~3명씩 상봉에 참여시키는 것에도 강한 불만을 표시한다. 그동안 북한은 ‘납북자는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국군포로·납북자의 별도 상봉을 거부해왔다.

이에 따라 지난 2000년 11월 2차 상봉 행사에 1987년 납북된 동진27호 갑판장 강희근씨와 남측의 어머니 김삼례씨를 상봉시킨 이후 지난 5월 15차 상봉까지 국군포로 및 납북자를 ´특수 이산가족´ 범주에 포함시켜 2~3명씩 극소수의 가족을 상봉시켜 왔다. 결국 전후납북자 485명과 전시납북자 8만여명(의용군 포함), 국군포로 500여명 가운데 납북자 16가족 73명, 국군포로 20가족만이 해후의 기쁨을 누린 것.

때문에 비율을 늘려봤자 별다른 혜택을 기대키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이산가족과 납북자 및 국군포로는 차원이 다르다”며 “김정일 정권에 가족을 빼앗긴 전쟁피해자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와 함께 주무부처인 이재정 통일부 장관이 납북자 및 국군포로 문제에 대해 “"남북관계 발전과 진전에 따라 해소될 수 있는 문제”라고 양해를 구한 반면 일본인 납북자에 관해서는 “북일 관계정상화와 한반도 평화. 동북아 평화에 대단히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말한 것에 서운함을 드러냈다.

메구미 납북으로 일본인 납북에 대해 공식 사과를 받은 일본과 한국의 태도가 비교된다면서 “자국민보다 세계 평화를 위해 일본인부터 챙기는 훌륭한 정부”라는 비아냥도 터져나온다. “일본으로 귀화해야겠다”는 자조어린 반응도 적지 않다.

한편 단체들은 노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와 함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납북 시인 등을 요구하면서 납북자 가족들이 1명씩 돌아가며 단식 농성을 벌일 계획이다. 1달 가량 단식을 이어갈 방침이지만 상황에 따라 늘릴 수도 있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 이미일 “노 대통령 스스로 망신 자처”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미일 이사장은 “전쟁시 납북은 엄연한 전쟁범죄”라고 강조한 뒤 “정부는 피해자인 우리와 가해자인 북한의 입장을 혼동하는 모양”이라고 비난했다.

5일 청와대 앞 공원에서 릴레이 단식 농성장에서 만난 이 이사장은 “우리는 6.25 한국전쟁,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전쟁, 가족찾기의 전쟁 등 3차례의 전쟁을 견뎌온 사람들”이라며 “그런데도 아무일 없다는 듯 덮어놓고 기다리라는 건 무책임한 행동 아니냐. 적어도 정부가 6.25 전쟁 납북자 숫자 파악이라도 관심을 보였다면 이렇게 화나진 않았을 것”고 꼬집었다.

이 이사장은 “1956년 대한적십자사에서 작성한 7034명(남 6884명, 여 150명)만이 신뢰할 수 있는 정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전쟁 직후 작성된 ‘6·25사변 피납치자명부’만 보더라도 납북자 수가 8만661명에 이르는데 정부는 ‘정확한 숫자가 아니다’며 숫자에만 연연한다”면서 “과거에 작성된 전쟁 납북자 명부들은 유명인사 위주 작성, 호주 중심 작성, 신고에 의한 작성 등으로 다른 조사방법을 적용했기 때문에 인원수에 차이가 현격할 뿐 아니라 매스컴이 발달하지 않은 상황에서 제한된 기간동안 실시했으므로 이를 맹신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이사장은 “실태조사를 하자고 해도 비용이 없다고 거부하던 정부가 북한에는 경제지원할 여력이 있다니 참 신기한 일이다”며 “항상 위풍당당하던 노 대통령이 납북자 및 국군포로 문제 언급없이 평화, 종전 운운하는 건 스스로에게 망신스런 일”이라고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이 이사장은 “북한에 공개적으로 납북자라는 단어를 쓸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불편한 심기를 우회적으로 나타내기도 했다.

변윤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