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가위에도 아버지 드리려 송편 빚는데 …” [중앙일보] 한국전쟁 납북인사가족협 이미일 이사장
58년째 소식 몰라 … “정부 진상조사 나서야”

“아버지 생사도 모르는 못난 딸이 추석 상에 올리려고 송편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미일(59·사진) 한국전쟁 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사장은 한가위가 다가오면서 가슴이 더욱 미어진다. 1950년 9월 4일 북한군에 끌려간 아버지의 행방을 지금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가 갓난 아기일 때의 일이다.

“납치된 뒤 기약 없이 기다리다 58년이 흘렀습니다.”

2000년 사재를 털어 협의회를 조직하고 6·25 전쟁 당시 납북자의 생사라도 확인해달라고 정부와 국회에 수없이 탄원했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다. 그래서 2006년 전시 납북자 가족 14명과 함께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1심에서 패하고 항소를 해놓은 상태다. 협의회 사무실에는 그의 부모가 신혼 때 찍은 사진이 걸려있다.

-협의회는 어떻게 조직하게 됐나.

“납북자 문제에서 정부는 휴전 뒤 납북자만 언급할 뿐, 6·25전쟁 당시 민간인 납북자 문제는 외면해 왔다. 통일부 등에 정보공개를 청구해도 ‘없다’라는 대답뿐이다. 그래서 자구책으로 피해자 가족들을 모아 협의회를 구성, 정부에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성과는.

“정부가 그동안 존재를 부인해온 납북자 명부들을 여러 종류 찾아냈다. 50년 12월 공보처 통계국에서 작성한 ‘서울특별시 피해자명부’를 고서 수집가에게서 400만원을 주고 입수했다. (서울은 49년 특별시가 됨) 납북자의 이름과 직업·피랍시기·약력을 항목별로 손으로 꼼꼼하게 기록한 것이다. 내겐 보물 1호나 다름없어 현재 은행 개인금고에 보관하고 있다. 52년 정부가 간행한 ‘6·25사변 피납치자 명부’도 찾았다. 8만3000명을 기록한 자료다. 이러한 정부 문서와 사료를 발굴해 2006년 ‘전시 납북자 사료집’을 펴냈다.”

-국가를 상대로 손배소송을 낸 이유는.

“1심 때는 변호사가 1인당 500만~1000만원을 청구하자고 해서 그렇게 했다. 1심 패소 뒤엔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고 가족들이 직접 항소했는데 배상액을 58원으로 책정했다. 58년이 지나도록 정부가 전시 납북자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는 점을 알리고 싶었다. 6·25전쟁이 일어난 50년을 기준으로 1년에 1원씩 계산한 금액이기도 하다. 피해자 가족들은 오랜 세월 연좌제로 고통을 받았다. 공직 진출과 사관학교 입학의 길이 막혔다. 국외여행에 제한을 받기도 했다. 그보다 더한 것은 정부의 외면과 사회의 무관심이다. 전시 납북자 문제는 이념이 아닌 인권의 문제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배상이 아니라 정부의 진상조사다.”

-정부에 바라는 점은?

“2006년 당시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 약속하고, 국가인권위원회가 권고한 전쟁 납북자 현황 파악과 특별법 제정이 속히 이뤄져야 한다. 일제 신고를 받아 현황부터 파악해야 한다. 협의회가 신고양식까지 만들어 통일부에 제출했지만 반응이 없다. 피랍자와 가족이 모두 고령이므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김용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