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청량리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사장실. 인터뷰 동안 이미일 이사장은 납북자 문제가 ‘인권의 문제’임을 여러 차례 말했다. 그는 “우리는 사상이나 이념과는 전혀 상관없는 그저 60년 전에 납치된 가족을 찾고자 하는 유가족 모임”임을 강조하며,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 이제는 거의 다 돌아가셨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래도 정확한 생사여부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고 밝혔다.

이 이사장의 아버지도 1950년 9월에 납북됐다. 어느날 갑자기 가장이 납치돼 사라져 버린 충격이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라고 말하는 그녀에게서 오랜 세월의 고통이 묻어 나왔다.

인권과 명예회복도 목적중 하나

-전쟁납북자는 이산가족과는 어떤 점이 다른가.

이산가족이란 포괄적으로 헤어진 가족을 의미하는 말이다. 하지만 납북자란 본인의 의사에 반(反)해 강제로 잡혀간 사람으로 이는 납치로서 범죄행위다. 이산가족도 좋아서 떠나온 것은 아니지만, 자발적이란 점에서 납북자와는 그 발생 배경이 다르다.

납북자는 강제성에 의한 것으로 이산가족이라는 범주에 그냥 포함시키면 의미가 희석된다. 납북자를 이산가족과 동일시하는 것은 납북자 사건의 진상을 왜곡하고 호도하는 것이다. 이는 아이가 유괴됐을 때 이산이라고 표현하지 않는 것과 같다.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의 설립 취지와 목적은.

언제부턴가 우리사회에서 전쟁납북자란 존재가 없어져 버렸다. 협의회는 납북자의 존재를 알리고자 하는 취지로 지난 2000년 11월에 만들었다. 전쟁 중이던 1951년에 ‘6·25사변피랍치인사가족회’라는 단체가 있었으나 1960년대 들어 연좌제로 소멸됐다.

우리의 소원은 납북된 가족의 소식을 아는 것이다. 그들의 생사를 확인하고 살아있다면 만나보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오랜 세월 경과로 대부분 돌아가셨을 것으로 추측) 그분들의 유해라도 송환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납북자의 인권과 명예를 회복하는 것도 협의회를 결성한 목적 중 하나다.

-어떤 사람들이 어떤 경로로 얼마나 많이 잡혀 갔는가.

공산화 와중에 북한 인텔리들은 대거 숙청되거나 남하했다. 이를 보충하기 위해 김일성은 전쟁 직후 남한 인사들의 납치를 지시했다. 전쟁납북자의 88.2%가 1950년 7~9월 사이에, 80.3%가 자택 또는 자택 인근에서 잡혀갔다는 사실이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납치임을 뒷받침 한다. 이외에 전후복구를 위해 기술자 노무자 등도 잡아갔고, 많은 젊은이들을 하루 이틀 총 쏘는 연습만 시키고 낙동강 전선으로 내몰기도 했다.

납북자수는 8만 명 이상으로 파악하고 있다. 1952년 정부가 작성한 명부에는 82959명으로 나와 있다. 정부에서 이 명부를 만든 이유는 휴전회담에서 송환을 요구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북한의 강한 부인(납북자 없다)과 빠른 휴전 협정을 원한 미국의 묵인에 의해 무산됐다.

이들은 처음엔 청량리에서 원산가는 기차로 끌려갔으나, 9·28서울수복 후 폭격으로 청량리역이 폐쇄되자 밧줄에 묶인 채 미아리고개→의정부→연천을 거쳐 도보로 압송됐다.

52년 정부가 작성한 명부에는 82959명

휴전회담에서 송환 요구하기 위해 작성

-납북자 중 생사가 확인 된 사례는? 비공식적으로라도 접촉 가능한 방법이 있는가.

1956년에 적십자사를 통해 북한에 7034명 생사확인의뢰서를 보내 337명에 대한 회신을 받았다. 그런데 정부에서 이들을 오히려 월북자로 의심해 간첩으로까지 몰았다. 북한에서 젊은 납북자 중 공산주의 사상에 세뇌된 사람으로 명단을 만들어 보냈기 때문이다. 물론 극소수의 (납북 사실을) 감출 수 없는 유명인사도 명단에 끼어있었지만, 대부분이 세뇌당한 이들의 명단이었다. 이마저도 정부에서 생사만 확인해줬을 뿐 어디에서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서는 가르쳐 주지 않았다.

이후론 개인적으로 브로커나 북한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통해 생사를 확인하고자 했으나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결국 56년 이후에 2명의 사망자를 확인한 것이 전부다.

-협의회에서 지금까지 해온 사업과 앞으로의 계획은.

처음으로 한 일이 자료를 찾는 일이었다. 2005년 한국전쟁납북사건자료원을 개설하고 남북전쟁납북사건사료집 두 권을 만들었다. 정부가 납북자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에 대항키 위한 것이다. 사료집에는 납북자명부, 국내외 관련 문서, 언론 보도 내용, 휴전회담자료까지 실려 있다.

생사만이라도 알려 달라

자료발굴과 함께 특별법을 제정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1990년대까지는 국민 모두가 알고 있었던 납북자의 존재가 잊히게 된 이유는 납북자에 관련한 특별법이나 기념사업, 기념관 등 그들의 존재를 알 수 있는 근거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반드시 이들의 명예회복과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돼야 한다. 그래야 국가가 이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다.

지난해 11월 공청회도 성공적으로 마쳤고, 반대하는 국회의원도 없는 만큼 이르면 올 2월 중으로 특별법이 제정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별법 제정과 함께 꼭 필요한 일이 있다면.

사실자료를 모아서 납북자명단을 확정해야 한다. 명단이 있어야 북한이나 국제 사회에 생사확인이나 송환 요구를 할 수 있다. 요즘 거론되는 평화회담이 열리게 될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도 그전에 명단이 완성돼야 한다.

휴전회담에서 미국이 ‘실향민간인’이라는 잘못된 용어를 선택함으로서 납북자 송환에 실패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미국의회에 직접 가서 확인시키고 ‘납북민간인’이라는 용어로 납북자결의안이 채택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 전쟁 중 납북된 외국 민간인 55명은 휴전회담에서 모두 송환됐지만 우리는 한명도 돌아오지 못했다. 휴전회담당사국으로서 미국은 이에 대해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납북자 존재 알리기 위해 2000년 11월 조직

대통령 직속의 전담기구 필요

-납북자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전제돼야 할 것이 있다면.

정부에 전담기구를 설치해야한다. 2000년부터 정부에 전담기구 만들어 달라고 해왔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대통령 직속으로 전담기구를 설치하고 대통령이 문제 해결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일본의 경우를 보면 고이즈미 총리가 나서서 결국 해결했다.

정부 관계부처 대표와 관련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된 직속전담기구를 만들어 구체적 실행방안을 마련, 끝까지 추진해 나가는 것이 절실하다.

-생존해 있는 납북자 송환에 대한 생각은.

북한이 살아있는 사람을 돌려보내기 힘들다. 정부에서는 북한에 대한 지원의 대가로 국군포로·납북자(생존자) 송환을 거론하지만, 생존자 송환에는 어려움이 많다. 그들은 현재 북에 가족이 있다. 그들을 데려오면 가족과 함께 데려와야 한다. 북에서 최소 80살이 넘을 때까지 살아왔는데, 함께 산 가족은 계속 북에 두고 본인만 남한에 와 살려고 하겠는가. 차라리 경제적으로 도우면서 북에서 가족과 함께 계속 살도록 하는 것이 낫다. 나중에 돌아가신 후 고국에 (원한다면) 안장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특별법 제정 및 기념사업 추진

유해를 송환하는 것은, 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에 북한에서 수용하리라 생각한다.

-정부 혹은 다른 곳에서 운영에 대한 지원은 받고 있나.

정부 지원은 전혀 없다. 오직 회원들의 회비를 통해 운영한다. 우리는 정부에서 홀대만 안했으면 좋겠다는 심정이다. 정부는 전쟁납북자에 대해 인정은 하지만 절대 언급은 하지 않고 있다. 납북자 문제, 이것은 인권에 관한 문제인데 왜 홀대를 하는지 모르겠다. 지난 두 정권(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는 아예 우리 존재 자체를 무시했다. 정권이 바뀌었어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정부는 오로지 전후납북자 문제만 강조한다. 국군포로·납북자라고 언론에 나는 것을 보면 480여명(전후납북자)이라고 돼 있다. 이것은 명백한 오보고 잘못이다. 8만 명 이상이 납북됐다. 정부와 언론이 진실을 감추고 호도하고 있다.

-무관심한 사회와 국민들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납북자 문제가 피해자들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한다. 언제든지 누구라도 납치피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사회는 많은 성장을 했다. 이제는 어둠에 묻어둔, 묻힌 문제를 찾아 빛으로 나올 수 있도록 사회적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납북자 문제에 있어서는 이제까지는 피해가족들만 목소리를 높여 왔지만, 앞으로 많은 인권단체나 시민단체와 국민적 관심을 부탁드린다. 납북자 문제는 지금 벌어진 일은 아니지만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문제다. 어느 날 갑자가 집안의 가장이 끌려가서 생사도 모른다고 가정해보라 그 심정이 어떻겠는가.

-올해 남북한 관계가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 통일에 대한 전망은.

통일을 너무 너무 바라고 있다. 통일 되면 모든 게 해결된다. 궁극적 해결방법은 통일뿐이다. 하지만 어떻게 통일이 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북한의 몰락은 확실시 되고 있다. 굶어죽는 북한 주민들을 우리나라가 끌어안아야 한다.

현재 많은 이들이 경제적 부담 때문에 통일을 원치 않는다고 하지만, 우리는 한 다리 건너면 다 북한에 가족(친인척)이 있는 한민족이다. 통일은 북한 주민들을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느냐 하는 길로 나가야지 북한 정권을 살리는 길이 돼서는 안 된다. 또 남북정상회담은 반드시 해야 하겠지만 대원칙을 갖고 임해야 한다.

지난 정권처럼 이산가족상봉조건으로 경제지원을 한다던가 하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 지난 60년간 배운 학습효과를 바탕으로 북한을 상대하는데 있어 원칙을 지켜야 한다. 전쟁납북자 국군포로 전후납북자 문제 등을 반드시 해결할 수 있는 원칙을 지키는 통일의 길로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일우 기자 free@unityinf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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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란?

전쟁납북자와 전후납북자로 구분할 수 있다. 전쟁납북자란 전쟁기간 동안 38선 이남 점령 전 지역에서 강제로 납치된 후 사망했거나 북한에 억류 생존해 있는 남한 민간인을 뜻한다. 주로 공무원 등 나랏일을 하다가 잡혀간 사람이 많다. 8만 명 이상으로, 단 한명도 돌아오지 못했다.

전후납북자는 주로 어부나 해외교포로 생활형 납북자가 많다. 경제활동을 하다가 납북된 경우가 대부분으로 약 4천명 미만으로 추산되며 80~90%가 돌아왔다. 449명 정도만 돌아오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