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전 11시 서울 세종로 원표공원 은행나무 밑 연단에 김복남(88) 할머니가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올라섰다. 마이크를 잡은 김 할머니는 가느다란 한숨을 뱉은 뒤 입을 뗐다 "이…성…환!"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발음했다.

이성환(90)씨는 그의 남편이다. 6·25 전쟁 때 서울 청량리에서 유기 공장을 운영하던 남편 이씨는 우익단체인 서북청년회에 기부금을 냈다는 이유로 북한군에게 끌려간 뒤 지금껏 소식이 없다.

"올해도 어김없이 봄이 왔고, 전 당신을 기다립니다." 김 할머니는 다른 납북자들의 이름도 불렀다. "이성철, 김성재, 김상호…" 지나가던 사람들은 흠칫 연단을 쳐다보고 가던 길을 갔다.

김 할머니가 참여한 행사는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와 6·25국군포로가족회가 주최한 '국군포로·납북자 이름 부르기 캠페인'이다. 참석자들은 이날 오전 11시부터 다음 달 1일 오전 10시까지 한 사람씩 돌아가며 47시간 동안 쉬지 않고 국군포로와 납북자 8만여명의 이름을 모두 부른다. 이미일(61) 6·25 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사장은 "우리 국민 수만명이 납북됐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잊힌 이름들을 다시 불러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중함을 되새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김 할머니의 딸이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수잔 숄티 미국 디펜스포럼 대표는 "납북자 문제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은 자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워온 국민을 외면하는 부끄러운 일"이라며 "북한 독재정권이 행한 이런 참혹한 만행은 참기 힘든 것"이라고 말했다.

야마모토 일본납치대책본부 참사관도 "한국은 자국민 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며 "납북 문제에 관해서는 일본, 태국 등 다른 나라와 공조해 강경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백건 기자 loogu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