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기억속 남편은 절대로 늙지 않는다27일 원표공원서 국군포로·납북자 이름 부르기 행사
참가자들 눈물의 호소 "제발 남편을 만나게 해주세요"변윤재 기자 (2011.04.27 19:38:04)
◇ 지난 2010년 4월 29일 오전 세종로 원표공원에서 열린 ´국군포로, 납북자 이름부르기 캠페인´에서 김복남 할머니가 6.25당시 납북된 남편 이성환 씨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 ⓒ연합뉴스
그리웠던 이름이었다. 가슴에 사무쳐서 멍울이 진 이름, 그러나 숱한 세월 ‘납북자’에 대한 편견으로 마음놓고 불러보지 못한 이름이었다.

27일 서울 광화문 원표공원.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와 반인도범죄조사위원회 주최로 열린 ‘국군포로·납북자 이름 부르기’ 캠페인에 참여한 납북자 가족들은 감회어린 표정이었다.

북한자유주간 행사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국군포로·납북자 이름부르기’ 캠페인은 납북자 문제는 ‘인도적 차원에서 시급히 해결돼야 할 과제’임을 환기시키기 위해 마련됐다. 국내외 납북자 단체 회원들과 시민들이 릴레이 방식으로 전시·전후 납북, 국군포로, 일본인 납치피해자 등 8만3437명의 이름을 호명한다.

1년에 꼭 한번, 마음껏 가족들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일까. 오늘 하루는 마음껏 그리워하며 납북자라는 낙인같았던 꼬리표를 의식하지 않은 채 꾹꾹 담아두었던 그들의 이름을 입 밖으로 밀어내면서 가족들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이날 첫 호명의 대상자는 바로 이미일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사장의 아버지인 이성환 씨(92). 이 이사장의 어머니인 김복남 씨(90)가 직접 남편과 다른 납북자 4명의 이름을 차례대로 호명했다. 고령의 나이에 다른 이의 부축을 받아야 할 정도로 거동이 불편한 몸에도 그녀는 올해도 이 자리에 참석했다. 숨이 끊어질 때까지, 남편의 이름을 부르고 그 울림이 퍼져 북한에 있을 남편에게 닿길 바라는 소망을 놓을 수 없어서다.

평범한 부부였고, 단란한 가정이었던 그들 가족에게 시련이 닥친 것은 6.25 전쟁이 발발한 1950년 9월이었다. 당시 서울에서 중소기업을 경영하던 이성만씨는 소아과 의학박사였던 형과 함께 납북됐다. 북한 정치보위부 소속이라는 남자가 찾아와 ‘조사할 게 있으니 가자’고 데려간 뒤 영영이별이었다. 이미일 이사장의 나이가 만 1살이 되던 무렵이었다.

이 이사장과 그의 어머니가 아버지와 남편을 잃은 지 반세기가 지났다. 그나마 지난해 3월 ‘6.25전쟁 납북피해 진상규명 및 납북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데 이어 ‘6.25전쟁납북피해진상규명 및 납북피해자명예회복위원회’와 관련 사무국이 같은 해 12월 문을 열었다. ‘전시납북자는 없다’는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상대로 10년 간 ‘투쟁’한 성과였다. 그러나 이는 납북자 문제 해결의 첫 걸음일 뿐. 오래 묵은 한은 쉬이 씻겨지지 않는다.

김복남 씨는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기억 속 남편은 늙지 않는다. 다른 납북자 가족들도 나이를 먹지도, 감정을 표현하지도 않는 단편적인 기억을 갖고 있을 뿐이다. 김씨는 이 이사장에게 ‘네 아버지는 좋은 분이셨다’는 말을 들려주며 아직도 남편을 기다리고 있다. 기약없는 희망이지만,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이사장은 “연로하신 어머니께 시간이 많이 없다”며 “캄캄한 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그분들께 조국의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오게 해주고 싶다”고 간절한 소망을 드러냈다.

이날 캠페인에서는 납북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적 연대를 강화하자는 목소리도 강하게 제기됐다.

납북 일본인들의 이름을 호명한 니시오카 츠토무 납북일본인구출협의회 회장은 “지난해에도 행사에 참여했는데 내년에는 이 곳에서 이름부르기 말고 환영식이 열렸으면 좋겠다”면서며 “납북피해자는 한국과 일본 뿐 아니라 태국, 루마니아, 중국 등을 비롯해서 12개 나라에도 있다. 국제적인 문제인 만큼, 모두가 연대해야 하며, 특히 한국정부가 자국민 보호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구출 노력을 해달라”고 호소했다.

한편,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에 따르면 북한은 6.25 전쟁 중 엘리트 계층에 해당하는 이들을 대거 납북했다. 북한은 숙청을 피해 남하한 지식인들로 인해 인텔리 부족 현상을 겪고 있던 터였다. 전쟁의 혼란을 틈타 북한은 남한 내 친북좌익 세력을 동원, 성별·나이·사회적 지위 등을 고려해 납치대상을 선별하고 조직적으로 이들의 납치를 감행했다. 납북자 대부분은 ‘자택’ 근처에서 가족과 강제로 헤어져야 했다.

협의회가 추산하는 전시납북자 수는 최소 9만에서 최대 12만 가량에 이른다. 1952년 정부가 발행한 대한민국 통계연감에 따르면 전시 납북자 수는 8만2959명에 이르고, 1951년 말 내무부가 정리한 피랍자 명단의 경우, 12만6000명인 것으로 파악됐다. [데일리안 = 변윤재 기자] 변윤재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