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납북자’ 용어 개정 반대… 이미일 납북인사가족協 이사장

“피해자라 말도 못하게 하는 것
혈육 찾기에 고군분투한 70년…
가족들 지긋지긋하다며 지쳐가”

“부족한 인텔리 문제를 해결하자면 북조선에 있는 인텔리를 다 찾아내는 한편 남조선에 있는 인텔리를 데려와야 한다.” 

1946년 7월 31일 김일성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한 장의 담화문을 발표했다. 공산정권의 눈엣가시가 된 지주와 기독교인, 지식인들이 북을 떠나 대거 월남하자 부족한 인재를 확보하고자 내린 지시였다. 이에 북한군은 6·25전쟁 초기 서울을 점령한 뒤 3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전문 지식을 갖춘 ‘인텔리’들을 납치해갔다. 이 시기 납북 피해자는 8만1821명으로 전체 9만5456명 중 85.7%에 달했다. 

이미일(사진) 사단법인 6·25전쟁 납북인사 가족협의회 이사장은 17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저희 아버지도 이 시기에 잡혀갔다”며 “9월 4일이라는 날짜까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평안남도 덕천군 출신인 이 이사장의 부친은 일본 와세다대에서 법철학을 공부한 ‘인텔리’였다. 당시 만 한 살이었던 이 이사장은 그 후 70년 가까이 아버지와 ‘생이별’해야 했다. 이 이사장은 “납치 당시 정치보위부에서 아버지의 출신지는 물론, 북에 있을 때의 행적까지 모두 알고 나왔다”며 “납북자 문제의 핵심은 북한의 이러한 반인권적인 납치 행위가 모두 ‘의도적이고 조직적인 계획범죄’였다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이 이사장이 보다 분통을 터뜨리는 지점은 정부와 정치권의 태도다. 정부가 이 같은 북한의 ‘조직적 범죄’에 대해 제대로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정치권이 북한 눈치를 보는 행태가 도를 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이사장이 속한 가족협의회는 결국 송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검찰에 고소했다. 송 의원은 지난 13일 ‘납북(拉北)자’라는 용어를 ‘실종(失踪)자’로 바꾸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6·25전쟁 납북피해 진상규명 및 납북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법’과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 체결 이후 납북피해자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납북자’라는 표현에 북한 측이 큰 거부감을 보이기 때문이라는 이 법안 발의에는 여당 의원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 이사장은 “마치 ‘범죄 피해자’를 두고 앞으로는 ‘피해자라 부르지 말라’고 법으로 박아두겠다는 것과 같다”고 고소 이유를 설명했다. 가족협의회가 고소한 혐의는 사자(死者) 명예훼손과 명예훼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다. “지난 70년간 가족들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납북자 가족들도 ‘이제는 다 지긋지긋하다’ ‘그만 잊어버리고 싶다’며 반쯤 포기한 상태”라고 아쉬움을 토로한 이 이사장은 “납북자 문제 해결 없이 종전선언이 이뤄진다면 우리는 이제 대한민국에서, 역사에서 지워지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라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이희권 기자 leeheke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