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이수성 前 총리의 모친 故 강금복 여사  
중앙일보  2001-05-28  21면  ()  10판  기획.연재  1580자 
지난 22일 90세를 일기로 별세한 이수성(李壽成)전 국무총리의 모친 강금복(姜今福)여사.
그의 일생에는 이 땅 보통 어머니들의 인고(忍苦)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부엌의 후미진 곳에서 내쉬던 어머니들의 가느다란 한숨과 가족의 의미를 새삼 일깨워주고 세상을 떠났다. 
울산 갑부집의 1남2녀 중 맏딸로 태어나 경북고녀와 일본여대를 나온 姜여사는 24세 때 경기여고에서 교생실습을 하던 중 오빠(강정택 전 농림부 차관.납북)의 중매로 동경제대 법학과를 나온 이충영(李忠榮)변호사와 결혼했다. 
李변호사는 일제 치하에서 판사로 재직하면서도 법정에서 꼭 한복 두루마기에 고무신을 신은 채 재판을 했고 1943년엔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법복을 벗었을 정도로 강직했다. 
고인은 신교육을 받은 엘리트임에도 불구하고 결혼과 함께 교사의 꿈을 접고 남편 뒷바라지에 전념했다. 화장은커녕 파마 한 번 하지 않았고, 쪽진 머리에 한복차림을 즐겨했다. 
그러나 한국전쟁 중이던 50년 李변호사는 당시 중학생이던 큰아들 李전총리에게 "어머니를 모시고 시골에 가서 살라" 는 한마디를 남긴 채 북한 정치보위부원들에게 끌려갔다. 
졸지에 남편과 생이별한 姜여사는 4남4녀의 생계를 떠맡아야 했다. 53년 보건사회부 산하 여성문제상담소장직에 촉탁으로 근무했으나 곧 그만두고 물려받은 재산을 하나씩 처분하며 자녀들을 키웠다. 
고인은 어려움 속에서도 네 아들은 서울대, 네 딸은 이화여대를 졸업시켰다. 
둘째 아들 이수인(李壽仁.작고)전 민주당 의원은 생전 한 인터뷰에서 "어머님은 신여성이셨지만 한국적인 전통과 따뜻함, 그리고 헌신으로 우리 형제와 가족들을 가르치신 분" 이라며 "우리 가족의 모든 생활은 어머님께서 가르치고 보여주신 모습에서 한치의 어긋남도 없었다" 고 말했다. 
고인은 `아들의 기를 죽이지 않는 가풍` 을 만들어 나갔다. 야단을 치기보다는 칭찬을 해야 남자다운 용기를 가질 수 있다고 믿었다. 
李전총리는 저서 『신뢰와 희망』에서 "고생을 하면서도 어머니에게 배운 것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옳지 않은 일에는 머리를 숙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고 적었다. 
고인의 헌신 덕분에 큰아들은 서울대 첫 직선총장.국무총리.신한국당 대통령 경선후보 등을 지냈고, 둘째 수인씨는 국회의원을 두 번 했다. 
셋째 수윤(壽允)씨는 고교 시절 `싸움은 1등, 공부는 꼴찌` 였던 문제아였지만 한번도 자신을 나무라지 않던 어머니가 학교에 불려가 선생님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마음을 다잡아 졸업 때는 전교 1등을 했다. 현재 교원대 교수로 있다. 넷째 수억(壽檍)씨는 아서앤더슨 대표다. 
고인은 일흔두번째 생일날 다소 심약해진 마음을 이렇게 표현해 주위를 숙연케 했다. 
`無爲虛送好光陰 七十二年今日時 新年悲歎將何益 自向余年修厥己` (좋은 세월 하는 일 없이 다 보내고/72년이 흘러 오늘을 맞았네/그러나 신년에 비탄에 잠긴들 무슨 도움이 되랴/여생 수양이나 더 하리). 
고인은 李전총리의 신당동 자택에서 자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삶을 마감했다. 李전총리가 지난해 4월 총선에서 낙선하고, 그 두달 뒤 둘째 아들 수인씨가 먼저 세상을 떠나는 아픔을 안고서. 
강민석 기자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