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양중모 기자] "저 사람들에 대한 관심도 있어야 하는 거 아냐?"

김동원 감독의 영화 <송환>을 본 후, 가장 뇌리에 깊이 박힌 장면이 있었다. 비전향 장기수들이 인도적 차원에서 북송되었을 때, 그 곳에 나와 오열하던 또 다른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그건 바로 납북자 가족 모임이었다. <송환>에서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다 짚을 수는 없었지만, `우리는 비전향 장기수를 돌려보내는데, 북한도 마땅히 납북자들을 돌려주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것이 주된 주장인 것 같았다. 일각에서는 남북 화해 관계에 찬물을 끼얹고, 때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만약 자신이 납북자 가족이라면 그런 말을 쉽게 할 수 있을까.

시대에 의해 생이별을 당한 그들이 겪을 고통과 아픔은 비전향 장기수들이 겪었던 고통보다 결코 적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인도적 차원에서 비전향 장기수를 보낸다는 것에 쉽게 감정적인 동의를 해주기 어려웠을 것이다. 인도적 차원을 떠나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건 외교 전략상 맞바꿀 수 있었던 카드 한 패를 아무 것도 받지 않고 그저 준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건, 향후 남측이 받아와야 할 한 패를 더욱 더 받기 어렵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인도적 차원에서 비전향 장기수들을 북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분명 옳은 일이다. 그러나, 외교 정책인 퍼주기 때문이 아니라, 정말 인도적 차원에서 우리와 다소 생각이 다른 그들의 인권까지 존중해주었던 정부라면, 마땅히 그 반대편에 서 있던 사람들의 인권 역시 소중히 다루어야 하는 것이 옳았던 것 아닐까.

그랬기에, <송환>의 비전향 장기수보다, 납북자 가족 모임이 내 뇌리에 강렬하게 박혔다. 그리고 난 드디어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사유진 감독의 영화 <피플 오브 노 리턴>를 2005 인디 다큐 페스티벌에서 만날 수 있었다. 사유진 감독의 전 작품 <다비드의 별>이라는 작품에서 납북자 관련 얘기를 다루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난 아직 이 작품을 보지는 못했다.

<피플 오브 노 리턴>은 주로 전쟁 때 납북되었던 인사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고 전쟁이 끝난 후 첨예한 대립 시기 속에서 납북되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곁들인다. 영화는 감독과의 대화 시간에 한 관객이 지적했듯 영화라기보다는 <추적 60분>같은 고발 프로그램 분위기가 강하다. 그렇긴 하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워낙 방대한 자료를 찾는 작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감독의 말처럼 자세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는 것들도 많았기에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는 생각도 든다.

휴전 이후 납북자 문제와 달리 전쟁 기간의 납북자에 관해서는 나조차도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과연 전쟁 중에 납북인지, 월북인지를 명확히 가릴 기준이 있을까. 영화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여러 자료와 생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전쟁 당시 역시 납북이 있었음을 증명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사실은, 정부에서 자료가 없어 납북 인사를 정확히 알 수 없다고 끊임없이 주장해왔는데, 납북자 가족 모임에서 이를 정면으로 반박할 자료를 도서관에서 찾아낸 것이다.

그리고 그 납북자 가족 모임이 찾아낸 납북자 명단에는 무려 8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기록이 남아 있었다. 물론 이 숫자가 절대적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북한이 체제 우월성을 위해 열심히 데려갔듯, 남측 역시 조사를 게을리할 수 없었다는 것, 그리고 직접 면담 조사를 택했다고 하니 허무맹랑한 근거는 아닐 것이다.

전쟁 중 납북자에 비해 휴전 이후의 납북자들 가운데는 남한으로 돌아온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안타깝게도 사회에서 그다지 환영받지 못한 듯하다. 영화 속에 삽입된 대한 뉴스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납북되었다 돌아온 어부들이 선물을 주겠다, 거기가 더 좋다 라는 말을 하면 북측에 포섭된 간첩이니 신고를 해라`

국가로부터 충분한 보호를 받지 못해, 가족과 떨어지는 고통을 겪다가, 다시 돌아와도 회색분자이니 하는 말로 모욕을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래도, 그나마 이들은 돌아오기라도 했지만, 전쟁을 전후해 납북된 인사들은 아직 한 명도 돌아오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가족들은 이제 대부분 고령이니, 이런 영화들이 없다면 머지않아 납북문제는 잊혀지고 말 것이다. 영화는 단순한 기록을 나열한 듯한 느낌이 강하게 나긴 하지만, 분명 <송환> 못지않은 강렬한 호소력이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 영화는 분명 보수 언론들의 입맛에 맞을 영화다. 이 때문에 어떤 측면에서는 다소 극우 인사들이 영화의 순수성을 저해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우리가 이 영화에서 반드시 바라보아야 할 것은 <송환>의 비전향 장기수들만큼이나 고통을 받고 있는 납북자 가족의 아픔과 고통이다. 그리고 비전향 장기수를 돌려보내면서까지 북한에 말 한마디 하지 못했던 정부의 무책임하고 무성의한 태도다.

김대중 정부가 남북 정상 회담을 만들어낸 건, 어떤 이유에서든 깎아내릴 수 없는 성과다. 그러나 남북 화해 분위기를 타고 비전향 장기수들이 북으로 돌아간 데 비해, 남한에서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납북자 가족들에 대해 남북 화해 저해 등의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내어 그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건 분명 명백한 과오다. 인도적 차원에서 비전향 장기수를 돌려보내는 것은 옳기에, 외교 협상의 무기로 쓰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주장도 있을 법하다.

그러나, 납북자 문제와 비전향 장기수 문제는 외교 협상의 대상이라기보다 진정한 신뢰와 협력 관계를 만들어가기 위한 남북 관계의 상징으로 만들어야 했다. 전쟁 때 납북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했지만 무려 8만 명이 기록된 자료를 민간이 찾아내어 그 주장이 거짓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심지어 휴전 이후 납북자들이 스스로 탈북하여 돌아오기도 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우리나라의 보-혁 갈등은 영원히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것들은 보수 진영 측에 국가가 비전향 장기수를 보내주면서 정작 우리 국민들의 인권에 무관심한 정부라는 비판을 가할 빌미를 준다. 진보 진영이 외교 협상 대상이 아닌 인도적 차원이라고 주장하더라도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는 인도적 차원이라는데 의구심을 가질 국민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남북 화해 분위기에 가려 우리는 정말 북이 아닌 남쪽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아픔은 귀 기울이지 않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에 대해 사유진 감독은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다.

"남북 화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거나, 아직 시기상조라는 비판도 받았는데,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시기상조라면 우리는 대체 언제 이 말을 해야 합니까?"

이는 납북자 가족들의 울분이 서려 있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비전향 장기수에 관심을 가지면 진보, 납북자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 보수처럼 인식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이념의 문제에서부터 정권, 정책 등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이 확연히 갈려지는 문제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갈려 있어 이 문제를 극복하기 쉽지 않고, 심지어 남쪽 땅에서조차 사람들이 두 패로 갈리는 현실은 암울하기조차 하다.

하지만 나는 <피플 오브 노 리턴>를 보면서 희망을 봤다. <피플 오브 노 리턴>를 <송환>의 김동원 감독도 같이 보았다. 얼핏 보면 전혀 상반된 처지에 서 있는 것 같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서 납북자 가족 모임의 일원인 듯한 사람과 김동원 감독이 악수를 하고 인사를 나누는 것을 보면서 사유진 감독이나, 김동원 감독이나 결국 바라는 근본적 지향점은 같아 보였다.

통일에 대한 염원, 그리고 환경으로 인해 받아야 했던 인간들의 고통스러운 상처에 대한 따뜻한 관심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어쩌면 그 사랑이 지금 우리에게 작게는 납북자 가족들과 비전향 장기수 문제에서부터, 크게는 통일에 이르기까지 해결의 중요한 키가 될 유일무이한 희망이라는 점에서 이들은 다른 듯하지만, 사실은 하나의 목표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난 언젠가는 이 문제가 잘 해결될 수 있으리라고 작은 희망이나마 가질 수 있다.


2005. 1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