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아래 기사를 보고, 추모공원을 만들수 있도록, 국유지사용을 댓글로 요청하였습니다
이름: 윤정우
2010-03-10 06:22:33  |  조회: 2009

**저의 댓글(100자평)
납북자가 8만여명입니다. 이분들을 추모하는 작은 추모공원(미국의 수도 워싱톤디.에 있는 한국전쟁공원정도의 크기)을 서울의 미아리고개근처에 만들고, 8만여납북자의 이름을 새겨넣는 추모벽을 만들어, 다시는 이런 동족간의 전쟁이 없도록 하여야겠습니다. 국가나 서울특별시가 보유하고 있는국.시유지를 납북자유족들의 모임에 사용토록 해 주시길 바랍니다. [2010.03.10 07:29:16]

**조선일보 기사(2010.3.9.자)

[사람과 이야기] "납북 아버지 기다리느라 70년 넘게 한옥 못 떠나"
이혜운 기자 liety@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기사 100자평(1)
입력 : 2010.03.09 03:18 / 수정 : 2010.03.09 18:09

북아현동 88세 송병훈씨
美서 한글 타자기 만들어 1934년 귀국한 송기주씨가 6·25때 납북된 그의 부친…
당시 지식인들 왕래 많아… 재개발로 허물어질 위기
"생활 불편하긴 하지만 그냥 살게 놔뒀으면…"
"1950년 6·25전쟁 당시 납북된 아버지를 기다리느라 70년 넘게 이 한옥을 지키고 있어요. 그런데 재개발로 이 집이 허물어진다니…."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길을 따라 걷다 보면 오래된 한옥 3채가 나란히 서 있다. 이 중 가운데 집, 검게 때가 탄 화방벽(돌 섞은 흙으로 쌓은 벽)으로 둘러싸인 1-223번지가 송병훈(88)씨의 집이다. 외풍이 센 한옥 구조 탓에 검은색 패딩점퍼에 주황색 스웨터까지 껴입은 송씨는 아버지의 옛 사진과 스크랩한 기사들을 보여주다 고개를 떨어뜨렸다. '우리 글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잇(있)다. 언더우드 社(사)에서 製作中(제작중).' 노랗게 바랜 오래된 신문기사 조각에는 그의 아버지 사진이 실렸다.

송씨의 아버지는 공병우 박사의 한글타자기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언더우드-송기주 타자기'를 만든 송기주씨다. 당시 타자기는 자판이 복잡하고 타자 열이 고르지 않아 실용성이 적었는데, 송기주씨가 미국 유학시절 뉴욕의 타자기 제조회사 언더우드사와 함께 만든 '언더우드-송기주 타자기'는 42개의 키로 한글을 고르게 찍을 수 있어 주목받았다. 송기주씨는 시카고에 있을 때 한국 지도를 최초로 서구식 입체 본으로 떠내기도 했다. 그가 1934년 '언더우드-송기주 타자기'를 만들어 귀국했을 때 국내 지식인들이 기생집 명월관에 모여 자축 파티를 했고, 그 파티가 신문에 대서특필될 정도였다.

송병훈씨의 기억에 '아버지의 타자기'는 거의 팔리지 않았다. 당시 타자기 가격이 사무실용은 550원, 휴대용은 239원으로 '집 한 채' 값이었던 탓이다. 하지만 타자기를 사용하기 위해 많은 지식인이 송씨의 북아현동 집을 밤낮 가리지 않고 찾아왔다.

"우리 집은 북아현동에 살았던 지식인들 모임 장소였어. '자유부인'을 쓴 정비석씨, '바우고개' 작곡가 이흥렬씨도 자주 드나들었지." 송병훈씨는 현재 북아현동의 고풍스러운 한옥가를 생생히 기억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 송병훈(88)씨가 아버지 송기주씨가 만든‘언더우드-송기주 타자기’를 보여주고 있다. 송씨는 70년 넘게 아버지를 기다리며 북아현동 한옥을 지키고 있다. 송씨가 살고 있 는 한옥은 곧 뉴타운 재개발로 철거될 예정이다. /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한글타자기를 최초로 시장화한 공병우 박사도 이때 북아현동을 찾아 송기주 박사에게 도움을 청했다고 한다. 공병우 박사의 제자인 송현 한글문화원 원장은 "송기주 박사 귀국 후 공병우 박사가 발명권 양도를 교섭하기 위해 찾아갔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송 박사가 납북된 후 공 박사가 송 박사 방식의 타자기를 참고해 편리하게 발전시켜 시장화했다"고 말했다.

송병훈씨와 같은 동네에 살던 친구들은 모두 해방 후 이사하고 지금은 아파트 생활을 하고 있다. 북아현동 다른 한옥들은 대부분 1990년대 초반 다세대주택이나 빌라로 개조됐다. 송씨 집은 그가 연세의료원에 다닐 때 마루를 새로 깐 게 전부다.

"우리도 강남 큰 아파트로 이사할 기회가 있었어. 그런데 어머니께서 '아버지 돌아오실 때 이 집으로 찾아올 것이니 난 (이사) 안 간다. 나는 관으로 나가지 안 나간다' 그랬거든. 그런데 이제 끝난 것 같아요. 아버지가 1900년생이니 살아계셔도 100살이 넘어…."

송씨의 아버지는 6·25전쟁이 난 해 9월 17일 납북됐다. 송병훈씨는 1951년 1·4후퇴 때 어머니와 남동생을 데리고 경남 진해로 피란 갔다가 2년 후 돌아왔다. 그의 집은 인민군이 마구간으로 쓴 탓에 마룻바닥이 성한 곳이 없었다. 그럼에도 집이 망가지지 않은 건 송씨의 외할머니가 '사위가 집에 돌아올지 모른다'는 이유로 집을 떠나지 않고 지킨 덕이다. 송씨는 "인민군이 들어와 된장·고추장을 퍼먹으면 '우리 아들 딸이 먹을 건데 왜 퍼먹느냐'며 싸우고 그랬대. 그래도 노인네니까 내버려 둔 거지"라고 했다.

송씨는 불편한 재래식 부엌과 바람이 많이 드는 한옥의 구조 탓에 고생이 많지만 그래도 이 집에 머무르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소박한 소망은 머지않아 무너지게 됐다. 북아현동 일대가 뉴타운 개발구역으로 지정돼 곧 철거될 운명에 처했기 때문이다. 송씨는 "그저 여기를 아파트로 안 만들었으면 참 좋겠다는 바람밖에 없어. 원하는 사람은 그대로 살라고 했으면 좋겠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송씨의 사연은 서울역사박물관이 뉴타운 사업으로 사라지는 동네와 주민 이야기를 담아 최근 발행한 보고서에 담겼다.

신장이 안 좋아 거동이 불편한 송씨는 모아 놓은 사진·우표 등을 보며 과거의 기억을 더듬었다. 아버지가 개발한 타자기도 가끔 꺼내 본다고 한다.

"아버지가 쓰던 타자기는 인민군이 가져가고, 나는 피란길 대구의 한 구멍가게에서 같은 종류의 타자기를 발견했어. 그런데 그 타자기를 살 50만원이 없어 친구들로부터 돈을 꾸어 간신히 샀지. 이 타자기가 현재 국내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언더우드-송기주 타자기'야." 송씨는 "이게 하나밖에 없으니 여기저기서 달라는 사람이 많은데, 내가 죽기 전에는 가지고 있을 거야"라며 '아버지의 타자기'를 쓰다듬었다.
  목록 수정 삭제  
댓글  총0
 
덧글 입력박스
덧글모듈
0 / 1200 byt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100 아래 기사를 보고, 추모공원을 만들수 있도록, 국유지사용을 댓글로 요청하..
윤정우
10-03-10 2008
99 아래 글의 법, 전문을 봅 게시판에 게시하시길 바랍니다.
윤정우
10-03-03 2673
98 6.25전쟁납북자가족들도 유전자등록을 해 놓아야 하겠군요!
윤정우
10-03-01 2314
97 유전자분석기관에 문의한 결과와 저의 의견을 드립니다.
윤정우
10-02-27 2096
96 아래 조선일조 기사를 보고, 우리 납북자가족도 유전자등록을 해 놓았으면..
윤정우
10-02-26 2817
95 아래 조선일보 기사를 보고, 6.25전쟁시 공무원 납북자2,895명에 대한 인정..
윤정우
10-02-19 2518
94 세미나 "북한 화폐개혁의 의미와 전망" -북한민주화네트워크-
강주희
09-12-10 2345
93 반인도범죄조사위원회- 국제인권세미나에 초청합니다.
황인철
09-10-23 2195
92 해외거주 회원가입 희망.
송원섭
09-10-23 2150
91 북인권뮤지컬 '요덕스토리' 국회공연 초대안내
요덕스토리
09-09-17 2280
90 북한인권국제회의에 초대합니다.
북한민주화네트워크
09-09-04 2146
89 제1기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이태춘
09-08-02 2066
88 책기증
민봉기
09-06-27 2178
87 개성공단 어떻게 할 것인가?
북한민주화네트워크
09-04-28 2605
86 [세미나개최] 북한의 권력이동과 인권문제
성공적인 통일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09-03-24 2494
85 [포럼]김정일의 후계구도 전망과 북한의 미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09-03-03 2360
84 피해법률안 공청회 동영상자료 분있는지요
민봉기
09-03-01 2489
83 남북정상회담 합의/ 민생, 북핵의 근본해법
한규범
09-02-27 2228
82 [세미나]북한의 대남 강경책과 한국 정부의 대응방안
북한민주화네트워크
09-02-09 2232
81 대한민국의 敵 좌파척결 1,000萬名 서명운동
한재준
09-02-06 1975
11 12 13 14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