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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납북이야기]금강산의 가족 나들이를 꿈꾸며-이중희
이름: 관리자
2013-09-24 12:06:45  |  조회: 3098
금강산의 가족 나들이를 꿈꾸며

이중희

할아버지!!
지척인 대한민국 땅에서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짐 정리에 분주했다. 사진과 보신 약, 옷가지 등 빠진 것이 없나 다시 한 번 점검하고 점검했다. 바로 우리는 금강산에서 개최 될 할아버지와의 60년만의 상봉을 초조하면서도 긴장된 모습으로 앞두고 있는 중 이었다.

이 얼마나 감격스럽고 역사적인 순간이던가?

하지만 이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한낮의 꿈같이 수포로 돌아가 버렸다. 돌연 북측에서 약속된 과정과 절차를 무시하고 일방적인 통보로 만남의 기회를 앗아 가버렸기 때문이다. 북한은 다시 한 번 우리가족에게 상처와 피눈물을 안겨준 것이다. 이 일의 충격으로 할머니는 쓰러지셨고 아버지 또한 상심과 근심의 모습을 감출 수 없었다.

우리 가족은 6․25전쟁납북자 가족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전쟁이 발발하기 전 결혼 하신 후 당시 갓 난 아기였던 아버지를 홀로 두시고 떠나게 된 것이다. 할아버지는 당시 수원의 한 정부기관에서 공무원으로 일하셨다고 나는 전해 들었다. 그간 할머니와 아버지는 눈물 없이는 살 수 없었던 사회와 인생을 걸어올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가장이 없는 그 슬픔, 친 아버지가 하늘아래 같이 숨 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맘껏 불러볼 수도, 볼 수도 없었던 그 힘들었던 60여년의 세월을 견뎌내야만 했었던 것이다.

휴전 후 할머니는 아버지와의 생계를 위하여 생활전선에 뛰어들 수 밖에 없었다. 온갖 굳은 일을 하며 아버지를 대학까지 보내게 된 것이다. 전행 후 세계 최빈국에 대열에 오른 우리나라는 세계 각국의 원조를 받는, 국민 모두가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바로 이때 보릿고개라는 말도 나왔듯이 할머니와 아버지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할머니는 하루 4시간씩 잠을 자며 일을 했어야 했고 아버지는 매일 왕복 2시간이 넘는 등하교 길을 걸어가며 어려운 학업을 이어나갈 수 밖에 없었다.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모두 절제하고 버티며 다시 만날 날만을 고대하며 살아온 것이다.

하지만 하루하루 언젠가는 꼭 만나는 그 날을 학수고대하며 살아온 세월이 이제는 너무나 허무하다. 제 작년 할머니는 뇌출혈로 쓰러지셨고 병상에서 6개월이 넘도록 고생하시다가 그만 세상을 뜨셨다.

많은 것을 바란 것도 아닌데…….

단지 서로의 손을 잡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싶었을 뿐인데,
한명의 여성이자 아내였던 할머니에게 북한은 너무나 큰 상처와 피눈물을 안겨주었다.
항상 함께하여도 부족한 가족의 정을, 부모와 자식 간의 정을 이렇게 끊어버릴 수 있단 말인가?
단지 몇 시간만이라도 서로의 얼굴을 보며 “보고 싶었다” 말 한마디 건네는 것이 이토록 어렵고 힘든 일이란 말인가?
분통스럽고 슬픔이 복받쳐 오는 일이다.

아버지 없는 삶을 살았던 내 아버지는 너무나 힘든 청년의 시기를 보내야만 했다. 어리광을 피며 부모의 그늘아래 있을 시기 없이 일찍부터 집안의 가장의 역할을 해야만 했었다.
왜 평범한 가정의 아들로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며 살아가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이였는가? 어린 나이에 홀로 모든 일들을 감내하며 살아올 수 밖에 없었던 내 아버지를 생각하면 절로 눈물이 흐른다.

이 세상 그 어느 누구가 이럴 권리가 있단 말인가?

어릴 적 나는 왜 할아버지가 안 계실까 궁금했었다. 친구들이 나에게 물을 때마다 죄를 마치 지은 것처럼 할아버지 이야기를 해야만 했다. 왜 아무런 잘못도 없는 아버지와 우리가족은 시대의 흐름 속에 묻힌 이야기가 되고 쉬쉬되어야만 했었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연좌제가 있던 그 시절, 왜 우리는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야만 했는가?
왜 대한민국정부는 정치적인 이유를 핑계로 전쟁납북자 가족의 설움을 적극적으로 대변하지 않았는지 아쉬움만 커진다.

휴전 후 60여년이 흐른 지금,
우리세대는 전쟁을 직접 겪어보지 않은 세대이다. 그래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전쟁에 대해 너무나 안이한 생각을 하고 있으며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특히 요즈음의 대학생을 비롯한 중고생에 대한 설문조사를 보면 6․25전쟁이 남침인지 북침인지도, 전쟁이 몇 년에 발발했는지도 정확히 모르는 학생이 많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미래의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우리가 다시는 전쟁의 아픔을 겪지 않기 위해서 지금의 이런 모습이 최선이었는지 의구심이 든다.

나는 정치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인류사 이래 그 어떤 체제나 국가도 천륜인 부모와 자식 간의 인연을 끊었던 역사는 없을 것이라 믿는다.
그런데 왜 북한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뼈아픈 고통과 피눈물을 안겨주어야 하는가? 더 늦기 전에 북한의 이성적이며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지 않는 현명한 판단과 결단을 기대해 보며 아울러 대한민국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모습도 바래본다.

할아버지!
금강산에서 뵙겠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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