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님께 올립니다.

지난 1월 17일 저는 아버지의 사진을 가슴에 안고 서울 중앙 법원 앞에 섰습니다.
한국 전쟁 중 납북된 아버지의 문제를 법에 호소하기 위해 섭니다. 이 문제의 해결은 정부의 의지에 있다는 것을 저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주위사람들은 저에게 말합니다. "50여 년 지난 일, 새삼스럽게 지금 와서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그러나 피해자 가족의 생각은 다릅니다.
아무리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또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하에서 자행된 일이라고 해도, 그렇다고 자식으로서 아무 죄없이 끌려가 생사를 모르는 부모를 포기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또한 이 민간인 납치 사건은 지금까지 정부 차원에서나, 피해가족 어느 누구에게서도 해결되었거나. 정리되지 않은 채 남아있습니다. 그 납치 사건의 범죄주체인 북한 정권이 아직까지 그 곳에 그대로 있고, 그 피해자 가족인 저희들도 엄연히 존재합니다.

계획적이고 체계적으로 자행된 북측의 민간인 납치는 그 목적이 정치인 등 사회 지도층 인사, 언론인은 체제 선전용으로, 교수, 의사, 기술자 등은 부족한 전문분야의 인적 자원을 메우기 위하여, 청년 및 학생은 노동력 및 전쟁 자원으로 소모하는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법조계에 몸답고 있던 저희 부친은 그들의 보복대상의 제 1차 표적이 되어 납치 되었다는 것이 자식으로서 일생 가슴 아픈 일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지 50여 년이 지난 지금 저희가 정부에 바라는 것은 큰 것이 아닙니다.
이분들의 안부를 알아 달라는 것입니다.
연세로 보아 거의 돌아가셨을 겁니다. 혹은 생존하여 계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생존하여 계신 분은 그 가족과의 상봉을, 돌아가신분들은 그 유해를 가족에게 돌려 달라는 것입니다.

2000년 6월 15일 남과 북의 길이 뚫렸습니다. 그 길을 통하여 우리의 관광객이 금강산에 가고, 북측의 이산가족이 서울로 왔습니다. 또한 그 길로 비전향 장기수도 가족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전쟁 당시 12살이었던 소년이 70이 다된 노인이 되었습니다.
이제 저에게도 기회를 주십시요.
70의 아들이 40세였던 아버지의 유해를 가슴에 안고 그 길을 따라 내려 올 수 있도록.

저희 가족들은 그 동안 통일부를 비롯하여 국회, 언론계, 학계 및 각 사회단체에 저희의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것을 간청하였습니다. 또한 국제사회에도 우리의 애절한 사연을 호소하였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습니다. 거기서 확고한 믿음을 얻었습니다.
오직 대통령님의 결단만이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다고.

대통령님께 전쟁 납북 피해자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을 고대합니다.

항상 강건하시고 가정에 행운이 늘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2006년 1월 24일
6․25전쟁 당시 서울지방검찰청 부장검사 이 주신의 3남
이 경 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