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하영남
2011-04-11 15:24:40 | 조회: 7297
내 가슴을 찌르는 6.25가 또 왔네. 철없이 맞았던 지나간 13年前 6.25.
하루도 떨어져서 못살 것 같던 님. 離別도 서러워 밤마다 벼계 머리 적시며 눈물의 세월은 흘렀다. 今年따라 6.25 記念行事는 대단히 簡消하고 朝刊新問의 拉致人士 500명이 기재되어 그 男便 姓名 찾아보니 눈시울이 뜨겁구나. 心中이 편치 못해 우울히 消日. 오후 洛倫이와 明洞에서 洋服 맞추다. 3,000원
恨 - 6.25 열두 돐에 - 許儀寧
그날은 太陽도 서러워 빛을 잃고
흰구름도 하염없이 南으로 南으로 흘렀어라
江山도 拾年이면 變한다지만
그날의 怨恨은 千秋인들 길다하리
온 누리의 大敵이요 이 나라 子孫의 원수인 북녘 땅 이리떼는
녹스고 무딘 탱크의 톱니바퀴로 兄弟의 몸통을 짓이겼고
비둘기 같은 姉妹의 가슴에 凶한 칼을 휘둘렀으니 -
그날은 하나의 살길인 피난의 길도 멀어
피도 마르지 않는 갓난아이 지치다 죽으면 길가에 묻고
그러다가 또 쓰러지면 까마귀의 饒?가 되어 白骨만 소롯이 남았다.
한 밤을 자고자면 아비가 없어지고 두 밤을 새고 보면 어미가 竹槍에 찍혀 돌아오고
소도 말도 없어지고 알곡까지 쓸어 갔으니 - 잃고 놓친 서름 하늘을 메웠었네.
아 - 이 나라 百姓이여! 子孫이여!
그날의 불바다를 울음바다를 記憶하는가, 구둣발에 짓밟힌 그날의 屈辱을 기억하는가.
마지막 빛을 잃은 그날의 痛憤을 모두 記憶하는가.
해마다 이렇게 六·二五가 오면 그날의 怨恨이 뉘우쳐온다
그날의 서러움이 못박혀온다 아- 이 나라 百姓이여! 子孫이여!
그날은 太陽도 서러워 빛을 잃고 흰구름도 하염없이 南으로 南으로 흘렀어라.
(한국일보 1962년 6월 25일 신문에서 스크랩해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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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記에 記錄하기조차 실증이 난 나의 生活 모든 것은 終末을 고하고만 싶은 마음 살아갈수록 생의 愛着心은 점점 희미해진다. 이렇게 살아도 죽은 사람 보다 나을까? 살아갈수록 집 나간 그대가 원망스럽고 살아갈수록 그대 생각의 온 몸은 갈기갈기 찢기어지네 온 世上은 "삶"의 빛깔 밑에 넘쳐흐르나 나만은 "죽엄"의 어둠 속에서 몸부림 치네 運命이라고 斷念하기에는 너무도 억울한 신세 生佛이 되어서 餘生을 虛送하리?
1966년 6월 25일
6.25가 또 왔다. 나를 永遠한 不具者로 만든 6.25. 원한의 6.25가 17年을 두고 나를 괴롭힌다. 華, 生日을 잊어 祝賀도 못 해주고 오늘 親友들과 저녁을 먹는다고 해서 6,00원을 주었다. 非常金으로 만원 貯蓄했는데 20일 날 5,000원 찾고 나머지 마저 찾아 생활비에 쓴다. 병원에는 갔다왔으나 여전히 아프다. 5일째.
1969년 6월 25일
6.25의 쓰라린 動亂이 어언 19回를 맞았다. 27세의 꽃다운 젊은 나이의 생의 뜻도 체 體得치 못했던 아주 純朴한 시절 豫告없이 몰려든 赤軍에 휘말려 男便과 財産을 한꺼번에 잃어야만 했던 쓰라렸던 과거. 남은 것은 어린 것과 육체만인 나. 4식구가 窮窮轉轉먹어야만 하는 것이 삶인 양 그저 먹기 위해 나는 晝夜로 努力 努力으로만 一貫. 이제는 거의 다 終末이 가까워지니 좀 삶의 위치도 많이 향상 되 있지만 아직도 할 일은 태산같고 살아갈수록 인간생활은 深山幽谷으로만 느껴진다. 銅雀洞 國軍墓地의 朴正熙 大統領이 參拜를 했고 매스콤은 통해 6.25의 쓰라렸던 過去事를 새로이 되새겨보는 프로도 많이 報道되었지만 人間으로서 가장 尊嚴한 生을 꺽인 拉致人事에 대해선 그 被害者의 관한 기사는 한 군데도 없는 것 같아 무척이나 마음속으로 섭섭하고 억울하다. 모든 것이 죽음이란 무서운 낱말 앞에는 종말이 오는 법. 어쩌면 이렇게 세상을 險難하게 살아온 슬픈 女人이 이렇게 生存競爭에 落伍가 되지 않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살아가건만 이 세상 모든 사람은 外面만 하고 있을까. 大韓 民國인 나의 祖國이 때로는 원망스럽기도 하다.
1971년 6月 25日 6.25. 21周年
생각하니 22年을 혼자 苦生으로 一貫 全 生涯를 살아오고 있다. 그 고생이 언제까지 갈 것인지. 이 생명 다 하도록 까지 갈 것 같다. 지겨운 생활 --
1972년 6월 6일 현충일.
午前 10시 正刻 政府에서 들려주는 싸이렌 소리에 1분간 默念으로 護國英烈에 答禮를 했다. 집 마루에서 이때마다 느껴지는 일이지만 6.25 拉致보다 救國守身으로 散華했더라면 一年 一回씩은 地下에서나마 再會할 수 있을 것을 더욱이 國立墓地의 아름다운 환경속에서 家族들의 訪問을 받을 수도 있고. 요사이같이 心苦에 시달릴 때 20원이면 갈 수 있는 그대 옆에 가서 嗚咽로서나 울어볼 것을. 그런 榮光마저 바랄 수 없는 이 不運의 女心은 그저 모든 것이 괴롭고 지루하기만 해져가니 어디서 어떻게 他界해버린 그의 靈魂을 향해 소리 높도록 불러 보고픈 마음뿐이다.
1972년 6월 9일
自己生活의 맛도 吟味 못한 채 20여 년을 (정확히 23年)을 살다보니 이젠 완전 老境에 접어든 昨今. 생각할수록 生의 無常만이 가슴깊이 스며드는 슬픈 現實로 化해버렸다. 10代의 풋내기 시절에서 20代의 結婚. 7年이란 짧은 夫婦生活에서 딸 넷을 얻었다. 其中 長女를 生後 1년 2개월만에 잃어버리고 (死亡) 둘째는 2 3개월만에 流産. 수효로는 셋째가 現在 長女인 玲華다. 8.15 終戰을 北支 山西省 臨分이라는 地方에서 맞았고 그 해 가을의 그곳을 撤收 太原을 거쳐 天津서 1개월 이상 머물다 釜山으로 歸鄕하는 가 上船속에서 華를 分娩하고 서울로 올라오니 꼭 1주일 부석부석한 산구의 몸으로 親庭집으로 들어섰고 其後, 인의동으로 남창동으로 거치며 鮮이를 낳고 (四街 어머님댁에서1948.3.20) 南이를 南倉洞집 地下室에서 낳고 (1950년 2월 10일). 그리고 6.25에 男便을 여의고 이렇게 23년째 고생을 연결을 이어온다. 27세의 꽃다운 나이에 내 生涯는 夭折되어 지금껏 생의 가시밭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남의 속도 모르고 주위의 제 3자인들은 무척이나 나를 좋게 보며 昨年에 지은 빌딩으로 나는 더 有名해졌는지 길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이젠 걱정 없이 살게되었으니 成功했다고 羨望의 눈초리를 보여준다. 아직도 내 생활은 불안 속에서 안정을 못하고 허덕이는 실태인데 안타까운 말에는 실감이 안 난다. 하루가 지나면 또 하루가 다가서고 그 하루를 역겹게 보내고 또 똑같은 그 하루가 다가서고 하더니 어느덧 10년이 두 번이나 지나가 이젠 努力도 희생도 용기도 사라져버린 50대 할머니가 되어버렸다.
1973년 6월 6일 현충일.
散華한 國軍勇士의 넋을 슬퍼하는 듯 종일 날씨가 흐렸다. 銅雀洞 墓地에서 슬픔을 터트리다 숨진 老婆의 報道가 地面을 통해 들으니 同感이 간다. 차라리 玲華 父도 戰死나 했더라면 1년의 한 번씩은 속 시원히 울어나 볼 것을 每年 이날이면 느끼는 일이다.
1973년 6월 25일
6.25도 어느덧 잊혀지는 옛날 이야기로 되가는듯 많이 많이 잊혀져간다. 우선은 現實에 급급하다 보니 옛날의 苦樂도 점점 희미해지는 모양이다.
1975년 6월 25일 Wednesday 6.25 25周年日
어느덧 25년의 세월이 흘러 내 靑春을 앗아간 옛날이 새로워진다. 아무것도 모르던 철부지 20代에서 老鍊한 50代로 접어들어 이제는 삶 그 자체에 회의를 느끼는 시절로 접어들어 철나자 망녕이라고 산다는 것보다 죽는다는 것이 더 많아진 느낌 속에 하루하루를 이어간다. 이제 내일 죽을지 모래 죽을지 혹은 1개월 1년 후에 다가설지 모르는 생의 終末이 가까워진 것을 느끼며 그저 아무생각도 하기 싫고 혼자서 조용히 여생을 보내고만 싶다. 英姬와 8년간이나 戀愛해오던 남자가 27일 미국으로 就業移民을 떠난단다. 영희와 같이 가야만 되는데 일이 안되어 먼저 혼자 떠나고 英姬는 留學生으로 갈까한다니 참 딱한 일이다. 모두 모두 美國으로만 가니 마음이 어수선해진다. 노량진 姑母가 어제 오셔서 주무시고 오늘 가셨다. 저녁, 朝飯 해드리느라 분주했다.
1976년 6월 25일 Friday
6.25 動亂 26회 되는 날이다. 내가 혼자 된지도 어언 27년째다. 6.25 되든 날. 나는 세 딸의 어머니이고 27세의 꽃다운 나이였다. 一線에서 전쟁이 났다고들 하는 소리를 듣고 어린 것들에 매여 있는데 모두 피난을 가야한다고 서성대는 소리만 듣고 나는 어쩔 줄 몰라 남편에게만 依支를 했다. 하루가 지나니 더 소란한 소리만 들리고 저녁때는 모두 웅성거리며 피난 가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꼼짝도 못했다. 영화 4세. 선 2세 영남이 1세 혼자서 어쩔 도리가 없다. 기저귀보따리만 챙겨서 한 아름 머릿 맡에 챙겨놓고 들락거리며 동태만 엿보며 죽어도 앉아죽는 수밖에 도리 없는 생각만 들었었다. 희미한 기억을 더듬으니 꿈 속같은 생각이 드는데 어언 20년이 지나갔으니 참 빠른 것은 시간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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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6월 25일 Friday 6.25 기념일. 마이클 잭슨 기념공연보다
한 많은 내 人生을 이렇게 망쳐놓은 6.25 動亂. 50년 歲月이 흘렀다. 점점 더 생각나는 내 運命. 내 처지. 살아온 긴 시산들. 拉致되간 男便. 죽음이 가까워서인가 내 팔자가 새삼 새삼 억울한 피맺힌 사연들이 나를 느닷없이 슬프게 한다. 때로는 당장 죽고 싶은 심정이 샘솟는 昨今. 왜 내가 이렇게 아직도 살아가야하는가 自問自答해본다. 더 生存해야 할 아무런 가치도 없는 人間인데 무엇을 바라고 살고 있는지-- 限界가 다가선 肉身을 점점 더 老衰되가고 반비례로 心中은 哀痛만이 감도는 하루하루를 消日하고 살고 있다. 또 약한 胃가 고장이 난 듯 食慾이 없고 편치 않아 食事를 못하고 찹쌀 물 끓여 마신다. 午後 6시 올림픽 운동장서 있는 미국 팝가수 마이클 잭슨의 공연에 영남이 주연이 3이 구경하고 새벽 1시에 귀가함. 처음부터 안 간다고 했건만 나만 나두고 가는 것이 미안한지 표 한 장을 더 구해서 가자고 하는 바람에 따라갔다가 희생? 당한 기분으로 돌아옴. 원래가 이 나이에 잘 이해도 안되는 것이라 침울하게 있다옴.
2003년 6월 25일 Wednesday 6.25 동란일 (1950.6.25 發生)
Seoul서는 6.25 記念日을 생각하며 무슨 行事가 있겠다. 2000년의 發足한 拉致人士 家族모임이 있겠다. 물 흐르듯 흘러간 歲月이 많이 지나가 27세의 나이가 80세가 되어있으니 53년의 지나간 서 百日이된 영남이 없고 피난살이 사던 것이 어렴풋이 생각도 나고 그동안 길러온 딸들에 어릴 적 모습이 走馬燈같이 떠오르다 사라지고 한번 왔다가는 人生살이 점점 죽음이 가까워지니 그동안 살아온 것이 너무도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난다. 이렇게 속절없이 세상살이 낙도 모르고 오로지 딸 3만 成長시켜 놓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고 안일한 여생을 살 줄 알았는데 이렇게 異域萬里에서 외로움 속에서 지샐 줄은 꿈에도 상상 못했던 일. 모든 것이 끝나가는 昨今 새삼 새삼 生의 어리석음이 마음속 넉두리가 계속되가고 있다.
2004년 6月 25日 Niagara Fall Hotel에서
어제 Toronto를 떠나 이곳에서 一泊하고 오늘 더 있다 來日 간다고 한다. 내가 願해서 온 것도 아니요 영화의 提案으로 온 것인데 내게는 별로이다. 오늘이 그리고 보니 6.25날이구나. 1950. 6.25 발생한 6.25 戰爭. 끔찍한 同族끼리의 싸움. 나를 不具者로 만든 싸움. 가물가물 해지는 옛 추억이 가끔씩 내 눈시울을 적신다. 生後 百日지난 ‘영남’이를 업고 뜨거운 뙤약볕에 걸어서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던 27세 꽃다운 나이의 나. 누구하나 도와주는 이 없이 50餘年을 살아온 昨今. 인제는 世上 뜰 날만 苦待하는 신세가 되었다. 죽을 때가 다가서고 딸자식들이 ‘철’이 들어 어미에 대한 사랑을 베풀고자 이렇게 觀光으로 온 것. 문석, Chris가 共同으로 Hotel 비용을 내주어 孫子 德에 비싼 Hilton 호텔에 묵고 있다. 폭포수가 내다보이는 窓가에서 이것을 쓴다. 영선이는 혼자 수영하고 영화는 化粧室에 있다. 영남이가 어제 떠나올 때 Seoul서 전화가 왔고 자기도 같이 싶다고 함.. pen이 마음에 안 들어 글씨가 엉망이다. 오늘 하루는 어찌 消日할지 80 고령에 당뇨병 환자를 인식 못하는 딸은 자기 나름대로 50대 行動으로 어미를 “리-드” 하래니 같이 지내는 것이 즐겁지 만은 않다. 늙은 몸 내 집에서 지내는 것이 훨씬 나은 것은 모른다. 가고 싶은 곳도 보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없는 씁쓰래한 여생을 살아가는 몸. 그냥 혼자 편히 있는 것이 나을 것 같다.
번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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