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관리자
2013-09-17 12:13:11 | 조회: 2646
070709A 이 근 택 (李根澤)
피랍인
생년월일: 1925년생
출생지: 강원도 명주군 출생
당시 주소: 강원도 명주군 묵호읍 발한 1리 산 5번지
피랍일: 1950년 8월 20일경
피랍장소: 자택
직업: 무직
직계/부양가족: 부모, 3남매
외모/성격: 미남형, 온순한 편. 건강함.
증언자
성명: 이춘근(1946년생)
관계: 동생
증언성격: 간접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상황/원인)
- 전쟁 직후 인근 산으로 피신했던 피랍인은 1950년 8월 20일경 잠시 집에 들렀다가 동네 사람의 밀고로 피랍됨.
- 전쟁 시 폭격으로 호적 소실, 재등록 과정에서 피랍인이 삭제된 상태임.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피랍인 생사확인 및 피랍인 가족 보상
“6.25전쟁이 나서 인민군이 점령을 하니 형님은 산속으로 피신해 있다가 의복 좀 갈아입고 식사도 좀 할 겸 집에 잠깐 들렀는데 마을에 밀고자가 있어서 잡혀간 거죠. 그 날 총을 든 인민군들이 일시에 동네 청년들을 여러 명을 붙잡아 갔다고 얘기를 들었어요. 8월 20일경이에요.”
“묵호 읍사무소가 폭격을 맞아 호적이 소실됐어요. 그래서 1967년도 주민등록을 갱신 할 적에 죽은 것으로 알고 형님은 호적에서 완전히 삭제시켜서, 지금은 호적에 없습니다. 동해시 호적계에 가서 호적을 다시 만들 수 없냐고 물으니 '남한에 생존해 있지 않는 한은 호적을 올릴 수 없다'고 단호하게 얘기하더라고요. 북에 생존해 계시더라도 남한에 있지 않으면 힘들다고.”
○ 직업 및 활동
문_ 전쟁 당시 어떤 일을 하셨는지?
답_ 철도청에 시험을 봐서 합격통지서를 받았는데 전쟁이 발발하는 바람에 일을 시작하시지는 않은 상태였어요.
문_ 청년회 활동 등은?
답_ 거기는 낙후된 시골이라 그런 단체나 조직이 있다 하더라도 접할 길이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_ 형님이 장남이라 가정을 위해 여러 일들을 해 왔을 것 같은데요?
답_ 그렇죠. 부모님 수입이 없으시니 형님이 동생들 보필하느라 노동도 많이 하시고 그러셨죠.
○ 납북 경위
<전쟁 직후 인근 산으로 피신했던 피랍인은 1950년 8월 20일경 잠시 집에 들렀다가 동네 사람의 밀고로 피랍됨>
문_ 어떻게 납북이 되셨는지?
답_ 6.25전쟁이 나서 인민군이 점령을 하니 형님은 산속으로 피신해 있다가 의복 좀 갈아입고 식사도 좀 할 겸 집에 잠깐 들렀는데 마을에 밀고자가 있어서 잡혀간 거죠. 그 날 총을 든 인민군들이 일시에 동네 청년들을 여러 명을 붙잡아 갔다고 얘기를 들었어요. 8월 20일경이에요.
○ 납치이유
<의용군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추정됨>
답_ 당시 인민군들이 군이 부족하니까 아마 인민군이나 부역으로 쓰려고 잡아가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 납치 후 소식
<없음>
문_ 들려오는 소식이라도 없었는지?
답_ 묵호에서 망상 쪽으로 같이 잡혀가다가 비행기 공습으로 살아나온 사람이 있었어요. 폭격이 심해 살지 못했을 거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혹시라도 이북에 살아있으면 뵙고 싶어서요.
문_ 당시 마을에서 잡혀간 사람이 많았나 봐요?
답_ 제가 찾은 것만 해도 세 사람이 되는데, 당시 꽤 여러 명이 되는 것 같습니다. 곽석근, 차신열 등 명단에 다 있더라고요.
○ 남은 가족의 생활은?
답_ 나머지 가족들은 다들 자기 생활들 하면서 기술 배우고 누구는 시집가고 그런 식으로 나름대로 산거죠.
문_ 부모님이 걱정이 크셨을 것 같은데?
답_ 형님이 잡혀가시고 십여년 간은 항상 안타까움을 이루 말할 수 없이 호소해 오셨죠. 속상하시면 북에 끌려간 아들 얘기를 많이 하고.
○ 정부의 노력
<없었음>
문_ 신고는 하셨나요?
답_ 신고한 적이 없습니다.
문_ 정부의 지원이나 노력은?
답_ 네, 전혀 없고.
○ 호적정리
<전쟁시 폭격으로 호적 소실, 재등록 과정에서 삭제됨>
답_ 묵호 읍사무소가 폭격을 맞아 호적이 소실됐어요. 그래서 1967년도 주민등록을 갱신할 적에 죽은 것으로 알고 형님은 호적에서 완전히 삭제시켜서 지금은 호적에 없습니다. 동해시 호적계에 가서 호적을 다시 만들 수 없냐고 물으니 '남한에 생존해 있지 않는 한은 호적을 올릴 수 없다'고 단호하게 얘기하더라고요. 북에 생존해 계시더라도 남한에 있지 않으면 힘들다고.
○ 연좌제 피해
<없었음>
답_ 그런 것 때문에 호적을 삭제했던 거니까요. 혹시라도 남아 있는 가족에서 불편이 있을까 봐 부모님이 형님 호적을 삭제했던 거죠. 명단에 없었으니 피해는 없었죠.
○ 정부에 바라는 말
<피랍인 생사확인 및 피랍자 가족 보상>
답_ 앞으로 정부에서 많은 도움을 주고 생존여부를 확인해 주셨으면 고맙겠고, 엄연히 대한민국 정부 국민으로 있다가 북에 납치된 것이니 6.25때 사변으로 인해 만약 사망했거나 이런 피해를 입었다면 가족들이 응당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이 납북된 분들 가족들에게 정부가 조속한 시일 내에 보상 관계를 해결해 주시고, 인권의 존엄성을 갈구해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답_ 당시 형님이 약혼해 놓고, 결혼을 앞두고 전쟁이 나서 결혼도 못하고 북에 잡혀가셨거든요. 얼마나 원통하셨을까 싶고. 또 부모님도 형님을 평생 그리워하다가 세상을 하직하셨는데 만나면 부모님 산소에도 같이 가서 예를 올리고, 서로 행복하게 같이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만일 살아계시다면 보고 싶고, 북한에서 가족을 이루고 살았다면 가족이라도 보고 싶고, 돌아가셨다면 유해 발굴시 유전자라도 확인해서 유골을 찾아주셨으면 하는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살아계시기를 바랍니다.
번호 |
제목 |
이름 |
날짜 |
조회 |
---|---|---|---|---|
90 | 납북자-강기형,강의형,강선형 (증언자-박옥랑, 강성형) |
관리자 |
13-09-17 | 3035 |
89 | 납북자-김주현 (증언자-이병숙,김택성) |
관리자 |
13-09-17 | 2736 |
88 | 납북자-김명혁 (증언자-김원형) |
관리자 |
13-09-17 | 3104 |
87 | 납북자-지금순 (증언자-지이만) |
관리자 |
13-09-17 | 2812 |
86 | 납북자-김원립 (증언자-김광오) |
관리자 |
13-09-17 | 2764 |
85 | 납북자-최상렬 (증언자-최명숙) |
관리자 |
13-09-17 | 2659 |
84 | 납북자-이근택 (증언자-이춘근) |
관리자 |
13-09-17 | 2645 |
83 | 납북자-홍종필 (증언자-홍순구) |
관리자 |
13-09-17 | 2791 |
82 | 납북자-안태희 (증언자-안선복) |
관리자 |
13-09-17 | 2690 |
81 | 납북자-김각선 (증언자-김인선) |
관리자 |
13-09-17 | 3093 |
80 | 납북자-이광수 (증언자-이정화) |
관리자 |
13-09-17 | 2804 |
79 | 납북자-이득년 (증언자-이희돈) |
관리자 |
13-09-17 | 3230 |
78 | 납북자-이성봉 (증언자-이태찬) |
관리자 |
13-09-17 | 2809 |
77 | 납북자-임숙기 (증언자-임운기) |
관리자 |
13-09-17 | 2568 |
76 | 납북자-윤희병 (증언자-윤신중) |
관리자 |
13-09-17 | 2511 |
75 | 납북자-장명선 (증언자-박선자) |
관리자 |
13-09-17 | 2677 |
74 | 납북자-장원식 (증언자-김용섭) |
관리자 |
13-09-17 | 3022 |
73 | 납북자-이형호 (증언자-이준모) |
관리자 |
13-09-17 | 3000 |
72 | 납북자-서인석 (증언자-서혜원,서계원) |
관리자 |
13-09-17 | 3099 |
71 | 납북자-강재원 (증언자-최정목,강선종) |
관리자 |
13-09-17 | 27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