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으로 넘겨준 통일부 장관 인사권 


홍순영장관과 남북관계
   

개각을 마친 광화문 정부청사 풍경은 마치 시합이 끝난 권투장과 비슷하다. 언론은 승자를 향해 하이라이트를 비추고 패자는 피묻은 타월을 주섬주섬 챙겨 집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패자가 무슨 말이 있으랴. 그러나 임명된지 5달만에 도중하차 하는 홍순영(洪淳瑛)통일부장관 인사 문제는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것같다. 

이번 홍순영장관 인사의 최대 문제점은 이제부터 평양이 통일부 장관의 사실상 인사권자가 됐다는 점이다. 북한식으로 표현하자면 평양이 통일부 장관에 대해 `걸고 넘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전에도 숱하게 통일부 장관과 통일부 및 안기부 해체를 주장해왔다. 그러나 내 기억으로는 한국정부가 북한의 이 어처구니 없는 요구를 수용한 것은 역사상 김대중 정부가 처음이다. 김대중 정부는 정권초기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강인덕 장관을 평양의 요구로 해임했으며 지난 200년 11월에는 장충식 전적십자사 총재도 북한의 요구대로 중도 하차시켰다. 

관료사회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선례(先例)이며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이 인사조치다. 평양의 `해임 요구=퇴진` 이런 인사와 선례가 굳어지면 누가 통일부장관이 되더라도 그는 청와대와 함께 평양의 노동당 1호청사 눈치를 안볼 수 없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정부의 대북 정책 책임자이자 협상 대표자인 통일부 장관의 인사권을 평양에 주고 나서 무슨 대북 정책이 제대로 추진하겠으며 그런 상황에서 이뤄지는 남북대화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둘째, 일관성과 원칙 측면에서도 이번 인사는 문제가 있다. 청와대는 지난 6차 남북장관급 회담 결렬의 책임을 물어서 또 교착 상태에빠진 남북대화를 재개하기 위해 홍장관을 중도하차 시켰다고 언론은 전하고 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본말이 뒤바껴도 한참 뒤바뀐 경우다. 아무리 장관급회담이라도 협상대표로 나간 장관의 재량은 거의 없다. 기조 발언은 물론이고 거의 모든 내용을 일일히 정부의 훈령에따라 하기 마련이다. 그런 내용을 도외시 한채 `회담이 잘 안됐다`라는 말도 안되는 이유를 들어 퇴진시킨다면 어느 누가 납득하겠는가. 아무리 급해도 실을 바늘 허리에 매서는 안되는 법이다. 인사에도 원칙과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 것인데 김대중대통령과, 임동원특보는 이 점을 망각했다. 대단히 유감스럽다. 

셋째, 홍장관 경질은 청와대 인사에 대한 관료는 물론 국민의 신뢰에도 흠집을 내는 조치다. 청와대는 지난해 9월7일 홍장관을 임명하면서 "김대통령은 전문성과 개혁성, 지역안배를 고려해 개각을 단행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불과 5개월만에 특별한 잘못도 없는 상태에서 본인을 불명예퇴진 시켰다. 그렇다면 청와대가 밝힌 전문성과 개혁성은 어떻게 된 것인가. 다른 곳도 아니고 청와대는 국정의 최고 부서다. 말과 행동이 모두 국민의 신뢰를 받게끔 해야한다. 말과 행동을 그렇게 농담하거나 빈말하듯이 가벼이 해서야 어떻게 국민이 대통령을 믿고 청와대를 믿겠는가. 

끝으로 비록 짧은 재직기간이만 홍장관의 `정치적 유산`을 정리해보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같다. 홍장관이 여타 장관과 다른 점은 그가 국회와 야당과의 관계 설정에 주력했다는 점이다. 그는 그 누구보다 야당과 자주 접촉을 하면서 초당적인 대북 정책에 애쓴 인물이다. 또 그는 금강산관광의 장기적 처리를 주장했다. 일단 금강산 관광을 유지하되 그 처리는 차기 정권에 넘기자는 입장을 보였다. 홍장관이 아주 훌륭한 북한 전문가는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그가 대북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초당적인 국민적 지지이면 이를 위해서는 국회와 야당의 지지와 협력이 긴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실천에 옮긴 장관이었다. 거의 모든 통일부 장관이 초당적인 대북 정책을 외치지만 막상 야당 당사를 방문해 정책을 설명하고 국회를 의식하는 장관은 별로 없다. 그런뜻에서 비록 5개월로 짧기는 했지만 홍장관이 기울인 노력이 차지하는 의미는 결코 작지않다. 

사족(蛇足)으로 정치권이 곰곰 생각해 볼 것은 장관 특히 통일문제처럼 초당적 이슈를 다루는 부처 장관에 대해서는 안정적인 인사 보장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권력층이 양말갈아 신듯이 장관을 갈아 치워서는 일관성 있는 정책 수행도 진정한 남북관계 개선도 힘들다. 요즘 한나라당은 일정 한도를 넘는 대북 예산 지원에 대해서는 국회의 승인을 받는 법안 제정을 추진중이다. 차제에 초당적인 대북 정책 수행을 위해 대통령이 1년6개월내에 통일부 장관을 경질할 경우에는 국회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방안도 논의했으면 한다. 국민의 돈인 세금도 소중하게 여기고 아껴야 하지만 우리 사회의 인적자원은 보다 소중하게 다루고 아껴야 하기 때문이다. 
최원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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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01.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