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국가와 정부의 존재이유`   2002.2.7.
 
“북한으로 간 비전향 장기수들은 아직도 이 땅에서 화제의 주인공이 되곤 합니다. 도대체 우리 정부는, 우리 나라는, 우리를 왜 이렇게 허탈하게 만드는 것입니까.(중략)우리는 우리의 송환요구를 방해하고, 어쭙잖은 논리로 무마하려 하고, 쉬쉬하라고 종용하는 한심한 정부에 대해…”

여기서 ‘우리’는 한국전쟁 기간 중이나 정전 이후, 북쪽으로 납치된 대한민국 국민과 그 가족들이다. ‘한심한 정부’는 2000년 9월2일 이른바 ‘비전향 장기수’63명을 북한으로 송환시킨 현 정부다.

납북자가족협의회 회원들은 지난 16일 서울지방법원에 ①나라(법률상 대표자 최경원법무부장관) ②김대중대통령 ③박재규전통일부장관 등 3명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내면서 발표한 ‘소송의 변’에서 “대한민국 법 앞에서 조국의 양심을 확인하려 한다”고 밝혔다. 이는 우리 모두를 향한 ‘확인’이기도 해 부끄럽다.

지난 1987년 1월15일 서해 백령도 부근에서 조업하다가 북한경비정에 의해 납치된 동진호 어로장 최종석씨 등 15~34년 전에 납북된 12명의 어업종사자 가족 26명은 “정부가 납북자 송환문제를 방치하고 있어 납북자 가족들이 막대한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보고 있다”며 가족 당 2000만원씩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임광규변호사 등 6명의 변호인을 통해 낸 소장에서 “원고(납북자 가족)들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나라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고 불법납치, 불법감금, 불법억류를 당했을 경우 나라로부터 모든 합당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구출받을 권리가 있다”면서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신체, 그리고 자유를 보호하는데 가장 중요한 존재 이유가 있다”고 강조했다.

사실 동진호의 경우 피랍된 직후 김상협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북한 적십자회 측에 전문을 보내 송환을 요청했고 이에 북적은 손성필중앙위원회위원장 명의의 회신에서 ‘1월21일에 동진호 선원들을 돌려보내겠다’고 약속까지 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김만철씨 일가족 탈북사건이 발생하자 태도를 바꿔, 동진호 선원들에게 간첩혐의가 있다는 식으로 억지 주장을 펴면서 송환을 거부, 지금까지 억류하고 있는 것이다.

원고들은 소장에서 김대통령과 박재규전통일부장관이 2000년 6월15일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 합의서를 작성하면서 ‘흩어진 가족 친척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나가기로 한다’는 문구를 넣은 것도 “불법이며, 직무유기이고 책임포기이며 북한에 잘못된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비전향 장기수는 대한민국의 헌법체제를 전복, 붕괴시키기 위해 남파돼 간첩활동을 한 자들인데도 귀환을 허용한 것은 국가와 반국가 단체 간에는 물론이고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도 관례가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또 납북 어민을 ‘흩어진 가족’ 정도로 인식하고, 자기 발로 고향을 떠난 사람처럼 취급하는 것은 잘못된 메시지를 북한 당국에 보낸 꼴이 되었다고 지적했다.

한국전쟁을 통해 우리 국민 8만5000여명이 납북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최근에는 1950년 6월25일부터 3개월간 서울에서만 2438명이 납치됐다는 정부의 공식기록이 공개되기도 했다. 1953년 7월27일 휴전 후에도 3756명이 납북되었고 이들 중 487명이 북한에 억류돼 있는 것으로 통일연구원에서도 밝혔다.

북한 당국은 그동안 300여회 우리 측과 만났지만 ‘북한에는 납북자와 억류자가 없다’고 강변한다. 그들의 주장이 옳다는 것인가. 왜 우리는 납북 인사들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천명하지 못하고 눈치를 보고 있는가.

국가와 나라는 국민에게 행복감을 줘야 한다. 행복감을 느끼는 국민의 비율이 높은 나라가 좋은 나라다. 소송에 필요한 인지대 10만원을 마련하지 못해 이번에 일부 가족들만 소송을 제기했다고 한다. 납북자들의 생사확인과 송환은 정부의 몫이다. 사법부의 판단에 맡길 일은 아니다.

/글 김재봉 수석논설위원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