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 5.21(수) 00:33

정부, 北비난발언에 납득조치 요구
北, `내용 비공개` 합의깨고 放送도


20일 평양에서 열린 5차 남북경협추진위원회(경추위)는 북측이 “남측이 대결 방향으로 나갈 경우 헤아릴 수 없는 재난을 당할 것”이라고 위협한 데 대해 우리 측이 정면에서 문제 삼으면서 초반부터 삐걱거렸다. 여기에 북측이 ‘기조연설 비공개’ 합의를 깨고 북한 방송을 통해 공개해 회담 분위기가 더욱 싸늘해진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 측은 이날 저녁 수석대표 접촉을 통해 북측의 ‘위협성’ 발언에 대해 엄중 항의하고, 납득할 만한 조치를 요구했으나 북측은 아무런 답을 하지 않은 채 이날 밤을 넘겼다. 지난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이후 열린 각종 남북 회담장에서 우리 측이 북측의 발언을 문제삼아 강하게 해명을 요구한 것은 처음 있는 일.

우리 측의 해명 요구가 의외로 강력해 회의가 아직 이틀 정도 남았지만 무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평양 공동취재단의 전언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도 “쌀을 달라면서 위협하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며 “새 정부는 대북 협상을 당당하게 하겠다는 방침이라 북측이 영 납득할 만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깨고 올 수도 있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날 오전 첫 전체회의에서 우리 측 김광림(金光琳) 수석대표가 북측에 핵문제로 더 이상 정세를 악화시키지 말 것을 경고하자 북측 박창련 단장은 “남측이 핵문제요, 추가적 조치요 하면서 대결 방향으로 나간다면 북남관계는 ‘영(零)’으로 될 것이며, 남쪽에서 헤아릴 수 없는 재난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위협성 발언을 계속했다.

우리 측은 전체회의가 끝난 뒤 대책회의에서 박 단장의 발언이 공식 회담장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심각한 사태로 파악, 북측에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그런데 이 무렵 서울에서 수신된 북한 방송에 박 단장의 위협성 발언 내용이 공개돼 우리 측은 이에 대한 국민들의 감정 등을 감안, 보다 강경한 자세를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는 것.

이날 저녁 6시30분 열린 수석대표 접촉에서 김광림 수석대표는 “기조연설을 공개하지 않기로 한 약속을 깼다. 또 북측의 발언 역시 심각한 문제”라며 강력하게 항의하고 납득할 만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북측의 박 단장은 즉답을 피하면서 오히려 한·미 정상 공동성명에 명시된 ‘추가적 조치’ 내용이 무엇이냐고 되물었다.

이에 우리 측 김 수석대표는 “(공동성명) 문맥을 봐라. 평화적 해결이 기본 원칙이고 상황이 악화되면 추가적 조치를 하겠다는 것 아니냐”고 답하고, 박 단장의 위협성 발언에 대한 해명을 거듭 요구했다. 북측으로부터 납득할 만한 설명이 나오지 않아 수석대표 접촉은 18분 만에 끝이 났으며, 이후 더 이상 접촉이 이루어지 않았다.

그러나 수석대표 접촉 후 조명균 우리 측 회담 대변인은 “한·미 정상회담 결과와 핵문제는 이미 알려진 상황”이라며 회담 전망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라고 주문했다. 이에 따라 벌써부터 지난달 10차 장관급회담 때처럼 초반에 팽팽히 맞서다가 회의 막판에 타협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박용근 기자 ykpark@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