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운영자
2001-09-27 00:00:00 | 조회: 1948
이름 : 관리자 번호 : 57
게시일 : 2001/02/26 (월) AM 10:34:05 조회 : 14
1962년 4월 25일 동아일보에서
죽음의 歲月 26
납북인사 북한생활기
戀愛에도 말썽부려
金起林과 그의 戀人은 쫓겨나가고
金憶 金東煥 冷酷한 눈초리 속에
나중에는 모두 숙청 당했으나 당시는 세도를 누리던 남로당간부 李源朝, 趙一鳴, 金南天등의 요청에 따라 납치된 문화인중 滿浦에서 金起林만은 문학예술총동맹에 배속되어 시집 편집 등을 보고있었다.
51년 2월 平壤에 와서도 같은 일을 보고 있었으나 자유주의 사상이 농후한 金起林은 늘 파벌적 입장을 취하였기 때문에 북로당계 간부들의 비위를 거슬렀다.
동년가을 그는 국악 예술원으로 옮겨가 글도 쓰고 극편찬도 하였다. 거기서 그는 예술극장(현 괴뢰민족예술극장)에 가수로 있는 어느 여자의 열렬한 사랑을 받아 동거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 여자의 남편은 동극장 총무과장으로 있다가 형사법으로 투옥되어 복역하고 있었다.
金起林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기 일에 태만하였을 뿐 아니라 이와 같은 사실이 후에 알려지자 동여인은 당회의에서 신랄하게 공격을 받게 되었다.
『우리나라 법률에 남편이 국법에 걸려 징역살이를 하게 되면 이혼할 권리가 보장돼있지 않소. 그런데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이요.』
하고 항의하였다. 그러나 당회의에서는 『정식 이혼을 하고 다시 결혼을 한다면 모르나 그렇지 않고 연애에 열중하여 자기의 일에 태만했고 또한 직장의 풍기를 문란케 했으니 딴 곳으로 이동시킬 수밖에 없다.』고 결정을 내림으로써 그녀는 딴 곳으로 추방되었다.
이 사건으로 金起林에게도 화가 미쳤다. 그는 당원들 앞에서 얼굴도 들 수 없으리 만큼 망신을 당한 끝에 52년 2월 平北문학가 동맹지부로 쫓겨갔다.
한편 平壤근처 大同군 始族면에 있다가 중앙당지시에 따라 불려간 金億과 金東煥은 祖統에서 수일간 남한 출신 남로당간부들의 엄격한 심사를 받은 후 소위반동작가로 규정되었으나 그 재질을 이용하려고 각각 직장에 배치하였다.
金億은 平壤시외로 소개간 국영출판사에 배치되어 각종 신문, 잡지 정리와 교정을 보았다.
합숙소에 기거하면서 잡곡밥과 날된장만 먹여 몇 달 안에 병이 들었다.
사회보장제도란 이름 밑에 하루 六백「그람」의 잡곡밥과 당시 「와이샤쓰」한 벌에 二천원씩 하는 판에 월 一천원의 보장금으로는 도저히 몸을 지탱할 수 가 없었다.
드디어 그는 심한 폐침윤(肺浸潤)으로 드러눕게 되었다. 병중에도 자신이 빨래를 해야했고 옷을 꿰매야했다.
그러나 金億에 대한 감시의 눈은 냉혹하였으며 자주 정치보위부원들이 문병을 가장 하고 주인에게 방문객과 그 외 동태를 조사해 가곤 하였다.
金億보다도 金東煥은 더욱 동정을 받지 못했다. 심사하는 당간부 및 남로계 문화인중 친지가 많았으나 모두 언제 보았느냐는 식으로 냉대가 심했다. 다만 그 당시는 그리 높은 지위에는 있지 않았지만 괴집문예총에 속해있는 趙鳴岩만이 金東煥을 동정하여 「샤쓰」도 갖다주고 자기가 입던 헌 옷도 주곤 하였다.
심사후 金東煥은 당시 平南일보 교정원 및 제본원으로 배치되었는데 반노동 반사무원식 대우였다. 동사의 간부 및 기자들도 金東煥을 만날 때마다 차겁게 살피는 태도다.
폭격이 심할 때라 산비탈 굴속에서 일을 하였는데 끝나면 청소까지 도맡았다.
다만 영업부장으로 있는 尹이란 자만이 金東煥을 높이 보아 기회만 있으면 자기방에 불러서 위로도하고 배급받은 술도 주었다. 후에야 안 일이지만 그자는 東京法政 대학출신인 尹一模였는데 東京시대부터 金東煥을 사숙해왔던 尹은 그를 볼 때마다 『혼자 고생하지말고 마땅한 아주머니를 얻어 밥이라도 얻어 잡수시지요.』하고 권하곤 하였으나 그때마다 金東煥은 『이런 초라한 신세에 마누라를 얻어선 뭘하겠소.』하고 쓸쓸히 웃곤 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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